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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oMeNon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비늘 연맹 : 디온 내전사 episode1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SanToMeNon
작품등록일 :
2019.04.01 12:41
최근연재일 :
2019.04.18 17:29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2,371
추천수 :
25
글자수 :
230,020

작성
19.04.0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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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첫 번째 수호자 (5)

DUMMY

식사를 마친 말레안과 헤르나가 당갈 부족장의 집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인조가 대문 밖에서부터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레안은 느끼지 못했지만 인조는 헤르나의 얼굴을 보며 일전의 일이 떠올랐는지 또 다시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어서오라우. 안 그래도 다르호씨와의 만담도 슬슬 지겨워진 참이었우.”

“마지막 시험이 문고리 두드리는 거였으면 전 탈락이었을 거요다.”


말레안은 수확제 마지막 날 밤의 일을 떠올리며 인조에게 인사했다.

인조는 문으로 들어오려는 말레안을 잠시 멈춰 세우고는 헤르나를 먼저 들여보냈다.


“사온에선 이런 경우에 여자 먼저 들여보내는 게 법도라 하우.”

“그런 것도 있수요까? 참으로 딴 세상 아니요까?”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인조를 쳐다보는 말레안을 돌아보며 헤르나는 몰래 웃음지었다.


“오 이게 누구시우까? 세상 너머에서 온 미인이 있다던 말이 거짓이 아니었구로.”

“안녕하십니까. 에르고 헤르나입니다.”

“저는 말리콘 최고의 대장장 ... 아, 자네가 아만 말레안이구로. 인조 어르신께 말씀 많이 들었우다.”

“안녕하시우까?”


가이노 다르호는 자신을 소개하다 말고는 말레안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그런 다르호의 태도에 헤르나는 빈정이 상했는지, 인조의 집 안뜰로 향하는 문을 벌컥 열었다.

안뜰에는 거대한 황토 가마가 자리하고 가마 주위로 여러 부족의 부족장들이 차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르단 다락 역시 부족장 무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어떻게 티반 부족의 마을에 갔다가 벌써 왔냐는 표정을 지은 헤르나에게 놀리는 투로 말했다.


“말 타고 오는 길에, 마을 근처 언덕에서 자네와 말레안이 한 이불 덮고 자길래 좋은 시간 보내라고 먼저 왔우다.”


다락의 농담에 헤르나는 목까지 빨개지며 그런 적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고,

뒤이어 들어와 아무것도 모른 채 무슨 일 있냐는 말레안에게 애꿎게 화를 냈다.

말레안과 헤르나가 도착한 그날 저녁, 당갈 부족장의 집에서는 연회가 열렸다.


“하이란과의 전쟁이 한창인 요즘, 귀한 시간 내주신 부족장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요다.”


많은 부족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당갈 인조는 찻잔을 높이 들고 일어나 입을 열었다.

하이란 모톨은 흑마법이라는 공포를 이용해 다른 부족들을 침공하고 빼앗고 그들을 재물로 삼았다.

당갈 인조는 자신의 정령술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다른 이들을 지키고, 아끼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세상을 원했다.

그런 그에게 아만 말레안은 희망의 증명이자 믿음이었고 인조는 그것을 온 부족장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오늘 우리는 파멸이 아닌 희망을 향한 새로운 첫걸음을 내딛수요다. 제가 그 동안 배우고 연구하고 깨우친 정령술을 부족장님들 앞에서 증명할 것이요다. 말레안 군?”

“아, 야. 야!”

“이 친구, 아만 말레안은 여태껏 보지 못한 강인함을 그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내요다.”


난생 처음 마주한 푸짐한 상차림 앞에 말레안은 정신 없이 밥을 먹다가 인조에게 불리고는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말레안의 모습에 헤르나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그의 입가에 묻은 음식 자국을 닦아주었다.


“부족장님 모두들 오시는 길에 안뜰에 놓인 황토 가마를 보셨을 거요다. 정령술은 그 안에서 진행될 것이요다.”


이어 인조는 정령술에 도움을 준 부족들을 하나씩 소개하였고, 소개가 끝날 때면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마지막으로, 정령술이 진행되는 삼 일간 가마에 불을 지피는 일은 여러분이 익히 아시는 말리콘 최고의 대장장이. 가이노 부족장 다르호님께서 해주실 거요다.”


그렇게 모든 소개가 끝나고 연회는 밤으로 이어져 어느덧 예정된 시간이 왔다.

좋은 음식을 대접받아 기분 좋은 마음으로 안뜰로 향하는 부족장들과 달리, 말레안은 무언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안뜰로 이동하던 말레안은 갑자기 당갈 인조를 찾기 시작했고, 아들 누조의 방 앞에서 인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인조는 그의 아들 누조에게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가만히 내용을 듣게 된 말레안은 이윽고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인조는 정령술을 통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했던 것이었고, 원래 그것은 아들 누조를 위해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인조 어르신, 이것은 하면 아니 될 일이요다.”

“무슨 말이우까? 일단 가면서 이야기하우.”


방을 나선 인조에게 말레안은 따지듯이 물었다.


“인조 어르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제게 힘을 주시려는 것 아니요까?”

“자네가 알았다니, 한결 마음이 편하우.”

“지키고자 여기까지 와서 어르신의 목숨을 빼앗는 다면, 제가 그 죄책감을 어찌 감당하겠수요까?”

“너가 빼앗는 게 아니우다. 내가 주는 것이우다.”

“다른 분들은 이 사실을 아시요까?”

“이제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안다우.”


어느덧 안뜰에 도착한 말레안은 자신과 인조를 바라보는 부족장들의 희망찬 눈빛이 원망스러웠다.

말레안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머뭇거리다가 이내 마루에 걸터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말레안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은 아무 말도 않고 숙연히 그를 기다려 주었다.

얼마간이 시간이 흘렀을까. 말레안이 그를 둘러싼 정적을 깨고 일어났을 때, 인조는 말레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옷을 벗고 들어가 옥돌들 위에 누우면 되우다.”


말레안은 아무 말 없이 옷을 벗고는 숯 더미를 밟고 올라서서 가마의 좁은 입구 앞에 섰다.

그는 뒤를 돌아 당갈 인조의 얼굴을 뇌리에 각인시키려는 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좁은 입구로 들어간 말레안이 옥이 깔려있는 바닥에 드러누운 지 얼마 안되어 인조 역시 발가벗은 몸으로 가마에 들어왔다.


“불편해도 좀 참으라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마 안에는 인조가 드러눕는지 옥들의 자그락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자 내 손을 잡우라.”

“봤던 것 보다 손가락이 굵으시요다.”

“그건 내 물건이우다.”

“아, 죄송하요다.”


어둠 속에서 손을 맞잡은 말레안과 인조는 구태여 감지 않아도 되지만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인조는 이어 가마 밖에서 대기 중이던 가이노 다르호에게 외쳤다.


“우린 준비 되었수요다!”

“야, 어르신. 그럼 먼저 가마를 완전히 틀어 막겠수요다.”


다르호는 그의 일꾼들을 시켜 황토 흙으로 가마의 입구를 틀어막게 했다.

헤르나는 그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본다고 했지만, 다른 부족장들 앞에서 그녀의 불안해하는 표정은 숨겨지지 않았다.

황토흙이 발리는 소리가 가마 안에 진동하고 있었고, 살며시 떨리는 말레안의 손을 느낀 인조는 입을 열었다.


“너를 믿으라우.”

“야, 나는 옳은 사람이우다. 이거 말이요까?”


말레안의 떨림이 가라앉을 때쯤, 가마 안이 고요해졌고 이윽고 가마 밖에서 다르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시작하겠수요다. 후 ...”


깊은 숨을 몰아 쉰 다르호는 장작에 불을 놓고는 그의 일꾼들과 함께 풀무질을 시작했다.

말리콘 최고의 대장장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을 만큼, 다르호의 풀무질은 규칙적이었고 그를 따라 일꾼들의 풀무질도 고르게 지속되었다.

다르호의 풀무질이 계속 될수록 말레안과 인조가 들어있는 가마의 온도는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가마 안의 온도가 충분히 달아올랐을 때, 인조는 조용히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뜨거워진 가마 속에서 말레안은 무언가 더 뜨거운 것이 자신의 손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맞잡은 인조의 손으로부터 알 수는 없는 느낌을 주며 끊임없이 밀려들기 시작했으나, 불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소나무 숲 한가운데에서 봄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그런 상쾌하면서도 푸근한 기운.

그 기운은 말레안의 팔을 타고 가슴으로 들어왔다가 이내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그렇게 말레안은 깊은 잠에 빠졌다.


3일이 지나 다르호의 망치가 가마를 깨었을 때, 엄청난 양의 증기가 솟구쳐 나왔다.

뿜어져 나오는 증기 사이로 커다란 체구의 말레안과 뼈와 가죽만을 남기고 앙상하게 말라버린 인조의 모습이 보였다.


“성공이요다! 인조 어르신의 말이 맞았우요다!”


다르호의 외침에 가장 먼저 달려 나온 것은 역시나 헤르나였다.

다르호와 그의 인부들의 부축을 받으며 가마 밖으로 걸어 나오는 말레안의 몸은 이전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헤르나의 뒤를 쫓아온 오르단 다락보다 큰 키에 더 우람한 근육.

정령술과 인조의 희생으로 말리콘 최강의 전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말레안, 자네가 아니, 인조 어르신과 자네가 해냈우.”


삼일을 쉬지 않고 풀무질을 한 다르호는 그 자신도 온몸이 후들거렸지만 말레안을 떠받치며 기뻐하였다.

갑자기 변한 말레안의 모습에 헤르나는 잠시 주춤 했으나 땀으로 범벅이 된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몸은 괜찮은 거야? 뭐가 안 들리던 게 들린다던가 어지럽다거나 그러진 않아?”


헤르나는 땀을 닦아주기 위해 수건을 가져다 주었고 말레안을 받치던 다르호가 휘청이자,

말레안은 자신도 모르게 다가온 그녀에게 쓰러지듯 안겼다.


“어 ... 음 ... 약간 어지럽긴 한데 ... 온몸이 돌덩이 같수요다. 장교님도 작아진 것 같우고 ...”


갑자기 안겨 들어온 말레안에게 당황한 헤르나는 잠시 그대로 멈춰있다가

어지러워하는 말레안의 넓어진 등에 손을 뻗어 토닥여 주었다.


“너가 커진 거야. 수고했어.”


둘이 부둥켜 안은 모습은 다르호를 비롯해 성공소식을 전하고 돌아온 다락과 온 부족장들에게 보였다.

다락은 그 모습에 약간은 머쓱하다는 듯이 웃음 지으며 다른 부족장들에게 말을 건넸다.


“역시 요즘 젊은 애들이 사랑 표현에 과감하요다.”


다락의 말이 귀에 들렸는지 아니면 다른 부족장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는지, 에르고 헤르나는 말레안을 밀쳐내었다.

밀쳐진 말레안을 앞에 둔 헤르나는 그제서야 말레안이 발가벗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얼굴이 새빨개져 허겁지겁 도망쳤다.

그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던 다르호는 헤르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있는 말레안에게 바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자, 나도 여자를 참 좋아하지만, 대낮에 발가벗고 안은 적은 없우다.”


로기엔 폐허는 하이란의 부족장 하이란 바톨의 방문으로 매우 혼잡하였다.

사온의 공세가 주춤한 틈을 타 하이란 바톨은 그의 주력 전사들과 함께 동생 모톨을 찾아온 것이었다.

모톨은 그를 찾아온 이들을 앞장서 진지 안으로 안내했다.

모톨의 뒤에 바짝 붙은 부족장 바톨과 그의 오른팔 아슈르 칼스는 모톨의 뒤에서 거칠게 그를 비난했다.


“모톨, 감히 네가 나, 바톨의 요구를 무시하우까? 너가 적들로부터 노획한 가이노의 무기들을 북부 전선으로 보내기로 약속하지 않았우까?”

“그렇수요다. 모톨, 부족장님의 아칼(동생)이라 하여도 이것은 도가 지나친 것이요다. 이 수많은 전사들은 오로지 부족장님이 당신을 생각한 배려인 것이요다.”


형과 형의 친구가 쏟아내는 비난에 모톨 역시 그들의 비난에 날카롭게 받아 쳤다.


“배려? 아할(형)은 남부 전선을 버리고 간 거 아니우까? 아할(형)은 나의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우다.”

“버리고 간 게 아니우다! 네가 지휘하는 동안, 시마칸 초원을 빼앗겨 당갈과 하온 마을에 고립된 전사가 삼천이우다! 게다가 모톨 니 녀석이 흑마법에 손을 댔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우!”

“흑마법에 관한 소문부터 해명하시우, 모톨!”


흑마법에 대한 칼스의 언성이 높아지자 모톨은 갑자기 멈춰 서서 뒤를 돌았다.

모톨이 내뿜는 어두운 기운에 칼스 뿐만 아니라 부족장 바톨까지 움찔하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무기를 달라하셨우까? 보여주겠우다.”

5 세텔야르실의 칼날.jpg

<세텔야르실의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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