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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oMeNon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비늘 연맹 : 디온 내전사 episode1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SanToMeNon
작품등록일 :
2019.04.01 12:41
최근연재일 :
2019.04.18 17:29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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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수 :
23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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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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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첫 번째 수호자 (4)

DUMMY

추운 겨울, 오르단 부족의 마을에선 어딘가 많이 모자란 자들을 위한 가혹한 훈련이 시작되었다.

말리콘 최고의 전사들을 만들어낸 오르단 부족의 훈련법에 체계화된 사온의 선진 병법이 더해졌다.

말레안을 포함한 병졸들은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눈 덮인 들판을 달리고,

메마른 산을 넘고, 얼어붙은 계곡을 맨손으로 올랐다.


그렇게 아침 반나절간의 지옥 훈련이 끝나면 그들은 다시 오르단 마을로 돌아왔고,

한숨도 쉬지 못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헤르나의 사온식 검술 교육이었다.

둘씩 짝을 지어 헤르나에게 목검으로 이론 교육을 받았고,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때면 다락의 지도 하에 실전 연습을 했다.

온몸이 근육통과 멍으로 만신창이가 된 밤이면, 일렁이는 촛불 에서 헤르나의 병법 수업을 들어야 했다.


“말레안 이 친구 쉽게 포기할 줄 알았는 데 의외요다.”

“내가 말하지 않았우까. 눈빛이 마치 다락, 자네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우.”

“아직 절반 밖에 안왔우요다, 어르신. 지켜 봐야 할 것이요다..”

“그 절반에 벌써 백오십 명 넘게 나가 떨어지지 않았우까?”

“어르신의 몸이니 인조 어르신이 결정하는 것이 맞겠우만, 전사로써, 부족장으로써 아까워서 그러하우.”


다락은 실전 검술 연습을 지도하기 위해 벌판으로 걸음을 옮겼고 인조가 그의 곁에 함께 했다.

헤르나의 검술 교육이 막바지인 눈 덮인 벌판에선 병졸들이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목검을 쥐고 있었다.


“저기 저 목검보다 가늘어 보이는 팔뚝을 보시요다. 우리 훈련대로면 최소한 저 친구만큼은 되야 하지 않겠우요까?”

“어차피 지금 몸이 중요한 게 아니잖우. 중요한 건 이 안에 있는 것이우.”


다락은 고된 훈련으로 살이 빠지며 빠른 속도로 근육이 붙기 시작한 조길을 가리켰고,

인조는 자신의 가슴을 톡톡 두드리며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 강조했다.


“뭐, 저 친구의 오기는 나도 인정하요다. 그렇다고 악착 같은 오기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게 전쟁은 아니잖수요까?”

“정령술과 영혼왕 실리카께서 말씀하시길 ...”

“그 놈의 옛날이야기... 전쟁에서 중요한 건 이것이요다. 가족과 부족, 동료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책임감.”

“책임감에 꼭 힘이 필요한 건 아니지 않우까?”

“어르신, 저랑 내기 한 번 하시요까? 힘은 공포를 다스리고 공포가 물러난 곳에 자리한 자신감이 곧 책임감을 만드는 것이라 나는 생각하우.”


다락은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마을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새하얀 장군늑대와 함께 나타난 다락은 그것의 등을 툭 치며, 병졸들의 훈련이 한창인 벌판으로 뛰어들게 하였다.

그의 죽은 어미보다야 작지만 웬만한 곰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크기가 된 눈빛갈기.

그는 다락의 말에 따라 전속력으로 눈밭을 가로질러 훈련 중인 이들에게 질주했다.


“장군늑대이우다!”


다락의 외침과 달려오는 새하얀 장군늑대에 검술을 연습하던 병졸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직 아만 말레안만이 달려오는 장군늑대를 바라보았고, 그것이 장교 에르고 헤르나를 향해 달려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갑작스런 상황과 장군늑대라는 것을 처음 본 헤르나는 그녀가 서있던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장교님, 물러나시우!”


말레안은 헤르나를 밀쳐 장군늑대의 경로에서 빼내고는 높이 뛰어오른 장군늑대를 바라보며 마주섰다.

말레안은 그 동안 그가 배운 것을 상기하며 빠르게 자세를 잡아나갔다.

상체를 살짝 낮추고 날아오는 늑대의 두 눈을 응시했다.

장군늑대가 거대한 포물선을 이루며 다가오자 말레안은 두 팔을 벌려 폭을 맞췄다.

이윽고 장군늑대의 두 앞발이 말레안의 두 손에 들어왔다.

그러나 장군늑대의 체중에 말레안은 장군늑대의 발목을 잡은 채 그대로 자빠졌다.


휘익!

“돌아오라우, 눈빛갈기!”


다락은 휘파람과 함께 눈빛갈기를 불러들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소동 앞에 모두들 멍하니 두리번거리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고, 이내 그것이 다락의 시험이었음을 알아차렸다.

헤르나는 일어나 눈을 털고는 자신을 구해준 말레안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눈빛갈기에게 깔려있던 말레안은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며 물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수요까?”


헤르나는 발그레한 얼굴로 말레안에게 고맙다고 전했고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이들을 다시 불러모아 다락에게 인계하고자 했다.

내기를 제안했던 다락은 돌아온 눈빛갈기의 털을 의미 없이 만져주었고,

그런 다락의 똥씹은 표정을 보며 인조는 미소와 함께 속삭였다.


“동료를 위해 기꺼이 헌신할 수 있는 책임감.”

“납작 깔렸으니 무효인 것이요다.”


다락은 심통이 났는지 인조를 쳐다보지도 않고 훈련을 위해 목검을 빼어 들고 눈밭을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날 밤, 인조는 말레안을 불러내어 이야기나 할까 하고 천막을 기웃거렸다.


“음? 헤르나 장교? 이시간에 여기에 무슨 일이우까?”

“아, 깜짝이야! 아 ... 인조 어르신.”

“혹시 말레안 그 친구가 있는 천막을 알고 있우까?”

“아 저도, 아, 아니 아, 아, 저도 잘 모릅니다.”


당황해 하며 갑작스레 오르단 마을 쪽으로 등을 돌려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에 인조는 미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천막 이곳저곳을 뒤져 말레안을 찾아낸 인조는 다른 이들이 깨지 않게 그를 조심스레 깨웠다.

밖으로 나와 모닥불에 앉아 찻잎으로 차를 우려내며 인조는 말레안에게 물었다.


“어땠우까?”

“아 ... 아, 그 장군늑대 일 말이요까? 아직도 정신이 없수요다.”


인조는 우려낸 차를 찻잔에 따라 말레안에게 건네고는 자신도 한 잔 따라 내었다.

추운 겨울 속 유난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찻잔을 바라보며 인조는 운을 띄웠다.


“하이란 바톨과 그의 아칼(동생) 모톨은 신화와 전설, 마법에 관심이 많았우.

바톨은 부족장답게 보다 현실적인 마법에 몰두했고, 적지 않은 수의 마법사들이 사온으로부터 잡혀왔우다.

반면, 모톨은 전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고, 약초와 차를 가져다 준 활의 영혼 엘리카가 정령술을 만들었다는 데에 착안했우.”


차를 한입 가볍게 홀짝인 인조는 그의 옛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정령술 서적들을 잔뜩 가지고 왔고, 나는 그것들을 보며 정령술을 익혔우다.

일전에 내 몸의 상처들을 물었던 것, 기억하우까?”

“야.”

“처음에 나는 그것을 거절했고 모톨은 나를 고문했우다.

하지만 그것으로 나의 뜻을 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나의 아들에게 손을 대더구로.”

“그럴 수가 ...”

“열일곱, 아니 이제 해를 넘겼으니 열여덟이겠구로.

누조는, 아, 내 아들 이름이우다.

아내가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 가면 낳은 유일한 아이라우.”


인조의 이야기에 말레안은 침을 꼴깍 삼키기고 다시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나 대신 불구가 된 아들의 치료를 위해서라도 정령술을 배워야했우.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대로 약초와 차를 가까이한 나에겐 재능이 있었고, 책에 없는 부분들은 시간을 들여 스스로 익히기 시작했우다.”

“아드님은 그럼 ...”

“많이 나아지기는 했우만 ... 충분치 않았구로.”


아들의 이야기에 인조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간신히 누조가 자기 한 몸 건사할 정도가 되었을 무렵, 다시 한 번 모톨이 들이닥쳤우다.

그에게 흑마법사 로코드 자쉬가 합류했고, 더 이상 정령술이 필요가 없어진 모톨은 나와 우리 부족 모두를 죽이려 들었우.”

“그렇게 된 것이 었구로. 그런데 그 정령술과 흑마법은 다 무엇이요까?”

“정령술은 어차피 곧 알게 될 것이우고, 흑마법은 쉽게 설명하면,

남의 생명력을 뽑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사용하는 것이우다.”


인조는 흑마법이 사람 내면의 파괴욕을 일깨우고 그러한 파괴욕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힘을 갈구하게 된다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한 힘의 갈구가 더 많은 생명력을 탐하게 하고 그렇게 생명력을 뺏으면 뺏을수록 더 많은 파괴욕을 불러 일으킨다 말했다.


“멈추지 않는 악순환이라는 말이요까 ...”

“아무튼 말레안, 무슨 일이 있어도 한 가지만 약속하구로.”

“무엇을 말이요까?”

“말레안, 자네 스스로를 믿으라우. 너를 둘러싼 사람, 환경, 힘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우다. 너 스스로가 너를 옳은 사람이라 믿으라우.”

“야, 명심하겠수요다.”

“밤이 깊었구로. 돌아가우.”


춥고 고된 훈련으로 가득한 매일매일의 시간은 더럽게 안 갔지만,

희한하게도 겨울이라는 한 철의 계절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덧 새로운 봄이 성큼 다가온 겨울의 끝자락에서 열린 마지막 시험.

시험에 놓인 자는 단 두 명, 발라크 조길 그리고 아만 말레안.


“이백 명으로 시작한 훈련이 어느새 조길, 그리고 말레안 둘이 남았우다. 이번 시험이 지나면 더 이상 돌멩이들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겠구로. 나, 오르단 다락이 자네 둘에게 내리는 마지막 시험은 ...”

“장군님께 드릴 말씀이 있수요다.”


손을 들고 다락의 말을 끊은 것은 발라크 조길이었다.

마지막 시험에 모인 다락과 말레안, 인조, 헤르나의 시선이 발라크 조길에게 쏠렸다.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조길은 다소 당황한 듯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이제 포기하겠수요다.”


조길의 말에 말레안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고,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 시선이 쏠렸을 때와 달리, 조길은 그들의 놀람을 예상하였다는 듯이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었다.


“지난 한달 간의 훈련이 정말 힘들었수요다. 물론 그것을 생각하면 말레안에게 넘기기는 싫수요다. 하지만 그간 장군님께 배운 대로면 말레안이 선택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요다.”

“뭐라는 거우까? 조길 너야말로 강하고, 더 강해져서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여기까지 왔지 않았우까?”


말레안은 그런 조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조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오로엔의 난쟁이, 잘 들으라우. 그날 장군늑대가 덮쳐온 날 기억하우까? 그날 모두가 도망칠 때 유일하게 나선 것이 너였우다. 그날 이후로 난 너에게 지지 않으려고, 단지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우.”


다락과 헤르나는 아직도 조길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조길의 말에 집중했다.

오직 당갈 인조만이 조길의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말레안, 너는 너의 길을 걸어 여기까지 온 것이우다. 근데 나는 너의 등을 쫓아 여기까지 온 것이우다. 이미 그날 이후로 너는 내가 쫓아가야 할 대장이었우다.”

“다락, 어찌하겠우까?”


인조는 다락에게 의견을 물었고 다락은 체념하였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조길은 시험을 포기하고 말레안에게 나중에 다시 보자는 말만을 남기고는 훌쩍 떠났다.

말레안이 엉겁결에 최후의 1인으로 남겨진 다음날, 당갈 인조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며 먼저 말을 타고 당갈 부족의 마을로 향했다.

아만 말레안과 에르고 헤르나는 천천히 걸어서 인조의 뒤를 쫓았고, 다락은 오르단 부족의 전사들을 이끌고 전선으로 향했다.


“정말 오랜 만이구로. 저번에 말했던 러마, 그 친구에게 끌려 수확제에 왔었수요다.”

“말레안, 왜 그날 나를 지킨 겁니까?”

“야?”

“장군늑대말입니다.”

“글쎄요다 ... 별 생각 없었수요다. 위험과 그 위험으로부터 지켜야 할 것이 눈 앞에 있었다고 밖에 ...”

“너무 많은 걸 지키기엔 몸이 하나로는 모자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사실 ... 누군가를 제대로 지켜본 건 헤르나 장교님이 처음이었수요다. 아니 뭐 그날도 제대로는 아니었우만 ...”


말레안의 수줍은 듯한 말에 헤르나는 미소 지으며 말레안을 바라보았고,

고개를 돌린 채 걷는 말레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

“낮춰보려고 한 소리는 아니에요. 그냥 자기 한 몸 건사하기 어려운 게 세상이니.”

“헤르나 장교님은 그 사온이라는 먼 곳에서 여기에는 어떻게 오셨수요까?”

“사온의 군인인 아버지는 내가 그처럼 군인이 되기를 바랬죠.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니었어요. 많은 방황이 있었죠.”

“전사가 되길 바랬던 저와는 정반대였구로 ...”

“여동생이 사온의 궁중 마법사가 되며 압박은 더 심해졌고. 때마침 흑마법 조사단이 생겼다는 말에 도망치듯 떠나온 거에요.”


당갈 부족의 시장 한켠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헤르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했다.

사온에서 출발한 흑마법 조사단은 멀리 말리콘의 땅에 발을 내딛기가 무섭게 하이란에게 공격을 받았다.

대부분이 포로로 붙잡혔고 헤르나만이 유일하게 도망쳐 티반 부족의 마을까지 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피난 중이던 당갈 인조를 만나 정령술에 대해 알게 되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4 에르고 헤르나.jpg

<에르고 헤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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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첫 번째 수호자 (5) 19.04.02 21 1 12쪽
» 첫 번째 수호자 (4) 19.04.01 36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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