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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oMeNon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비늘 연맹 : 디온 내전사 episode1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SanToMeNon
작품등록일 :
2019.04.01 12:41
최근연재일 :
2019.04.1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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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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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수 :
23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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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1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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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첫 번째 수호자 (2)

DUMMY

로기엔 부족의 마을이 폐허가 된지 6년째,

디오 강 남동쪽 하류에 위치한 부족장들은 시마칸 초원의 서쪽, 전사의 땅 중앙에 위치한 티반 부족의 마을으로 집결했다.

부족장들은 로가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며 그들의 세력을 모으겠노라 언약했다.

하지만 부족장들이 각자의 부족에서 전사를 데려오기도 전에 시마칸 초원의 마지막 부족, 시마칸 부족의 마을이 함락되었다.


전사의 땅에 위치한 부족들은 서쪽에서 넘어온 부족들의 마을을 수복하겠노라 외쳤지만,

사실 상 동쪽으로 진군해오는 하이란 부족을 상대로 방어전를 펼치는 것이 최선이었다.

오르단 부족의 마을로부터 북쪽에 위치한 디오 강변의 오로엔 부족의 마을.

늦게 소식을 접한 오로엔 부족 역시 서쪽으로 보낼 그들의 전사를 추리고 있었다.


“오코마 너크, 조라 바훔, 아만 말레안, 다인 ... 말레안?”

“야!”

“저리 가라우.”

“싸울 수 있수요다. 제 아발(아버지)도 전투에서 말리콘의 명예를 다하셨수요다.”

“니 몸을 보라우.”


전쟁터로 가겠다는 당찬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왜소한 체구의 아만 말레안.

말레안은 자신의 몸을 슬쩍 훑으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허리춤에 찬 돌칼을 꺼내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기 시작했다.

휘둘렀다기 보단 그냥 움직였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


“보시우, 작은 만큼 날렵하게 적들을 제압할 수 있수요다. 나도 우리 부족과 말리콘들을 지킬 수 있수요다.”

“안돼우.”

“아할(형), 제발 그러지 말고 한번만 도와주면 안되겠수요까?”

“돕고 있잖우. 아칼(동생의 말리콘 방언) 목숨 내가 살렸우다. 니 목숨부터 지키라우.”


그날 저녁, 아만 말레안은 마을 공동 경작지에서 볏짚을 베고 있었다.

벼는 오로엔 부족의 상징이자 서쪽으로 떠나는 전사들이 타고 갈 말들에게 먹일 귀한 식량이었다.

그런 점에서 말레안도 전쟁에 일조하는 셈이기는 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말레안은 그의 손칼을 집어 던지고는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쌓아 올린 짚단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레안은 애꿎은 그의 이름만 곱씹었다.

싸우는 남자라는 뜻의 ‘말레안’은 전사의 명예를 다하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주신 것이었다.

허나 지금의 모습을 보면 그 이름 앞에 더욱 작아지는 말레안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지쳐갈 무렵, 저 멀리 쌓여있던 짚단이 들썩거리는 모습이 말레안의 눈에 들어왔다.


“거기 누구 있수요까? 아니!”


말레안이 인기척을 느끼고 그를 불렀을 때, 짚단을 한 움큼 쥔 사내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말레안은 있는 힘껏 내달리다 뛰어들어 간신히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누구요까? 왜 이 짚단을 훔쳐가는 것이요까?”

“아씨, 어차피 가서 다 죽어올 거, 살 사람 짚신 묶는 게 낫지 않우까?”

“뭐요까? 아달(아저씨, 삼촌의 말리콘 방언), 그리 말하시면 안 되는 것이요다.”

“내가 틀린 말 했우? 이거 받고 눈 감으라우.”


붙잡혔던 그 아저씨는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며 품 안에서 사과를 몇 개 꺼내어 말레안에게 던졌다.

하필 던져진 사과 중 하나가 말레안의 눈두덩을 가격했고 얼굴을 감싸 쥔 말레안이 외쳤다.


“닥치시우! 말리콘으로 태어나서 명예가 없우까?”

“뭐어? 닥치라고? 이 고아새끼가 어른한테 말하는 것 보라우.”


짜증 섞인 말투로 일관하던 그 아저씨는 말레안이 쏘아붙이자 말레안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땅바닥에 나뒹굴었던 말레안이 다시 일어나 달려들자 그는 가볍게 말레안을 붙잡아 내동댕이쳤다.


“말리콘으로 태어나서 힘이 없우면, 그게 말리콘이우까?”


그는 일어나려는 말레안을 다시 발로 차서 쓰러뜨렸고, 말레안은 비틀거리며 다시 그에게 달려들었다.


“힘이야 키우면 되지만, 잃어버린 명예는 키울 수 없우.”

“입만 살았우다! 진짜 명예는 이미 죽은 자들에게나 있는 것이우다.”


그는 간신히 일어선 말레안의 배에 주먹을 꽂았고, 말레안은 컥컥거리며 또 다시 쓰러졌다.

그는 배를 움켜쥔 말레안을 뒤로하고 그가 가져가려던 짚단을 다시 추려 들었다.

그렇게 승자의 미소를 띄며 떠나려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말레안이 붙잡았다.


“가져가지 마시우... 그리고 죽어야 명예로워지는 것이 아니우다, 명예로운 삶의 끝에 죽음이 있는 것 뿐이우.”

“이제 그만 좀 하라. 더 맞으면 너에게 남는 게 죽음 뿐인 거우다.”

“천궁이 세 번 무너질 때까진 할 수 있우.”


말싸움에 지친 건지, 아니면 계속 일어나는 말레안을 때리는 데에 지친 건지, 그의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그는 숨을 고르고는 온 힘을 다해 다리에 매달린 말레안의 머리를 가격하려 했다.


“별 것도 아닌 게!”




“사람 잡겠우요다.”


짚단 도둑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발길질에 그대로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으며 들고 있던 짚단을 쏟았다.

짚단 도둑이 쓰러진 채 올려다 보았을 때, 훤칠한 키에 잘 손질된 가죽 옷을 입은 젊은이가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짚단 도둑은 스스로 체격에서 밀릴 것을 직감했는지, 주섬주섬 뒷걸음쳐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가죽 옷의 젊은이는 쓰러진 말레안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며 말했다.


“난 정말 너를 위해서라도 밤하늘의 천궁이 좀 무너졌으면 좋겠우다.”

“한 번으로는 어림도 없우다.”


말레온은 얼굴에 묻은 진흙을 닦아내고는 그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잘 손질된 가죽 옷이 눈에 들어온 말레온은 부러워하는 눈초리로 물었다.


“가기로 한거우, 바헬 러마?”

“야, 우리 오로엔 부족은 곧장 시마칸 초원으로 간다하구로. 하이란 놈들이 우글우글한 그곳에 미리 정찰대로 가라시우다.”

“나도 가야 하는 것이운데 ...”


말레안의 한숨과 자조 섞인 말에 러마는 멋쩍은 듯 가볍게 웃으며 어깨를 토닥였다.


“사지로 가는 건 난데 표정 풀라우. 그러지 말고 신나게 놀러 가보자우.”

“어, 어디로?”


잠시 후 말을 끌고 온 러마는 덜 풀린 표정의 말레안을 태우고 밤새 서쪽으로 말을 달렸다.

이틀 뒤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한 곳은 바로 당갈 부족의 수확제였다.

보통 닷새는 족히 걸릴 거리를 이틀 만에 주파한 것만 보아도 러마는 확실히 정찰대로써 승마에 재능이 있었다.

아무튼 시미칸 초원에서 살아가던 당갈 부족 역시 하이란 부족의 침공에 3년전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뭐가 대체 그렇게 불만인 거우냐?”

“나는 이런, 막 사람 많은 곳에서 어울리는 거 못하는 거 알지 않우까?”


약초와 의술로 유명하던 당갈 부족의 수확제는 엄청난 크기의 잔치였고 동시에 인근 여러 부족들의 장터이기도 했다.

커다란 모닥불과 인근 마을에서 놀러 온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


“보라우 이 수많은 아리따운 여인들~. 사내라면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것 아니겠우까?”

“그것도 그러우다. 막 한 순간의 불장난 같은 그것도 별로 ...”

“변하질 않는 구로, 그 놈의 진실된 사랑 타령.”

“바헬 러마!”


러마는 그를 향해 손짓하는 여자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그의 가죽 갑옷을 뽐내었다.

러마에게 인사한 그녀 뒤로 또 한 명의 여자가 숨은 듯 안 숨은 듯 그녀의 존재를 보이고 있었다.


“뭐라 하고 부른 거우까?”

“운명적인 밤에 운명적인 사랑을 찾는 남자가 있다 했우.”


그렇게 두 남자와 두 여자는 당갈 수확제의 꽃이라 볼 수 있는 장터를 거닐기 시작했다.

디오 강 동부 각지에서 몰려온 신기한 음식과 물건들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그들 일행은 어느덧 많은 인파가 모여든 그곳에 다다랐다.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요다! 말리콘 최고의 대장장이 가이노 다르호씨가 왔수요다!”


이야기꾼의 소개를 받으며 나타난 가이노 다르호의 손에는 푸른 청동으로 만든 방패가 들려있었다.

머리를 반질하게 밀어내어 광택이 흐르는 전형적인 말리콘 미남인 다르호는 대장장이답지 않게 말로 좌중을 매혹시켰다.

다르호는 그가 들고 나온 방패를 들어 보이며, 곁에 선 덩치 좋은 사내에게 손짓을 했다.


“자, 여러분. 만일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뚫을 수 없는 방패가 있다면 어떠시겠수요까?”


덩치 좋은 사내는 그의 등에 매달려있던 큰 푸른 청동검을 사람들에게 보이며,

날카로움을 자랑하듯 그 앞에 놓여있는 나무 기둥을 단칼에 베어 보였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러마와 두 여인 역시 신기한 듯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말레안은 수많은 인파 가려 보이지도 않은 광경에 억지로 박수를 보내는 고역을 치르고 있었다.


“자, 이 친구 오베른이 들고 있는 칼은 작년에 제가 가지고 왔던 세상에 그 무엇도 베어 버리는 칼이요다.”


다르호는 미소 지으며 사람들의 눈치를 슥 훑고는 사람들의 턱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을 한 박자 먼저 뱉어내었다.


“그렇담, 여러분 모두가 궁금해하는 그것! 세상에 그 무엇도 베어버리는 칼로 세상에 그 무엇도 뚫을 수 없는 방패를 내리치면 어떻게 되겠수요까?”


다르호에게 말을 빼앗겨버린 사람들은 피식 웃으며 긴장이 풀렸고,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말리콘 최고의 대장장이는 그의 입담을 내보였다.


“하~ 이거 방패가 잘려버리우면 지금 제가 거짓말쟁이가 되어 올해 장사 다 말아먹는 것이우고, 그렇다고 칼에 날이 나가버리우면 작년의 제가 거짓말쟁이가 되어 작년에 식칼 사간 온 아낙네들에게 칼을 맞게 생겼수요다.”


다르호의 말에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재밌다는 듯이 호응하여 주었고, 곧이어 오베른이 양손을 모아 칼로 방패를 내리쳤다.

까앙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고, 시끌벅쩍 떠들던 사람들이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칼과 방패의 싸움, 그 결과에 집중되었다.

오베른이 세워 든 칼을 그곳에 모인 모두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찬찬히 훑어내려 갔다.


“저, 저기! 칼에 금이 갔우다!”


한 사내가 칼의 중간 지점을 가리키며 외쳤고, 작년에 그의 식칼을 사갔던 사람들은 다르호한테 성을 내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다르호는 이미 그의 방패를 들고 숨었고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이것으로 작년의 제가 거짓말쟁이가 되었수요다~. 허나, 이 방패와 함께라면 아낙들의 식칼 세례도 두렵지 않으니,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겠수요다! 자, 그리하여 오늘 가지고 온 물건은 이 방패처럼 절대 부서지지 않는! 바가지 긁는 부인의 식칼이 두렵지 않은! 밥그릇, 찬그릇, 국그릇~ 되겠습니다!”


다르호는 자연스럽게 그의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물건들을 소개하며 방패를 든 채 좌판 뒤로 모습을 감췄다.

이윽고 오베른과 일꾼들이 좌판을 뒤덮고 있던 천을 치우자 가이노 대장간의 물건들이 베일을 벗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너 나 할거 없이 가지고 온 물건들을 앞세워 앞서 소개된 식기들을 비싼 값을 치르고 바꿔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온 이목이 쏠린 와중에 뒤로 밀려난 말레안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장터 한 켠에 붙은 당갈 부족의 전사 모집 글이었다.


“어이 말레안, 이 기회에 네 짝에게 그릇 하나 선 ...”


바헬 러마가 고개를 돌려 말레안을 찾았을 때, 아만 말레안은 온데 간데 없었다.

러마는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고는 말레안이 어디로 갔는지 짐작했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뭐하우, 수확제까지 와서. 볼일 보러 갔다 했으니, 빨리 돌아가서 모닥불 앞에서 차 한잔 하시우.”


러마는 당갈 부족장의 집 앞에서 말레안을 찾았고, 말레안은 굳은 표정으로 서서 러마에게 답했다.


“속이 안 좋아 좀 걸릴 것 같다 하우.”

“이제 뭐, 당갈 부족으로 가서, 우리 부족을 등지면서까지 하려는 거우까? 전쟁이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거우까? 아님 누구를 죽이지 못해 안달인 것이우까?”

“그런 게 아닌 거 알잖우까...”


러마는 말레안의 고집에 화가 나 언성을 높였고, 그 소리에 당갈 부족장의 집 창문 한 켠이 살짝 열렸다.

2 당갈의 수확제.jpg

<당갈의 수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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