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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역대급 제작사의 탄생

유료웹소설 > 연재 > 현대판타지

유료 완결

유나파파
작품등록일 :
2019.09.19 21:28
최근연재일 :
2020.03.11 06:05
연재수 :
190 회
조회수 :
1,067,493
추천수 :
29,682
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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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8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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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열병(靑春 熱病)


“오랜만이다. 언제 제대했냐?”


하준은 강의실로 향하던 중 같은 학번 동기 정식을 만났다.


“한 달 정도?”


“새끼. 연락이라도 하지······.”


“미안. 갑자기 나온 과제에 과외 일에 눈 코 뜰 새가 없었다.”


“과외 한다고? 교수들 알면 쓸데없는 짓 한다고 난리 나겠다.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해라. 연락 안한 건 도량 넓은 형이 봐주마. 근데 혹시 여고생?”


“무슨 상상하는 거야. 시커먼 남자애야. 신경 꺼.”


아직 입대를 하지 않은 정식이 하준이 강의실에 도착하기까지 군생활 동안 학교에 벌어졌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역사 연대기처럼 읊어주었다. 정식의 말을 반쯤 건성으로 듣고 흘리다보니 어느새 강의실에 도착했다.


“유하준.”


교수의 낮고 굵은 목소리는 성악가의 그것과 닮아있다는 것이 곧 바로 연상될 정도로 근엄하고 우렁찼다.


“네.”


“제대한 거냐?”


“아······. 네.”


입대 전에 알고 있던 선후배들마다 하준이 제대했다는 사실을 알고 물어왔는데, 심지어 담당 교수인 민병관도 마찬가지였다.


“군에 다녀온 만큼 이제는 정신 차리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네.”


밖에서는 시위대의 구호 소리가 울려 퍼져 전경들과 혈투를 치르고 있었고, 평화로운 강의실 안은 알싸한 최루탄 냄새만 은은하게 맡아질 뿐이었다. 몇몇 학생들이 곳곳에서 연신 기침을 했다.


하준이 생각하기에 강의실 안과 밖은 완전히 별개의 세상처럼 느껴졌다. 교수의 강의는 입대 전 듣던 것처럼 변함없이 따분했고 인생의 지축을 완전히 뒤바꿀 만큼의 파급력이 전해오지는 않았다.


“자. 그러면 오늘의 하이라이트.”


수강하는 학생들이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과제를 보게 될지 지난밤. 잠을 설칠 정도였다. 자 제출들 해. 내가 엄정하게 평가를 할 테니까.”


인자하고 따분한 교수지만 항상 자신의 직업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후학양성에 힘쓴다는 진지함이 인생관에 배여 있는 듯 했는데, 특히 과제물에 학점의 많은 부분을 할애 했다.


“보자.”


하준이 작곡한 과제를 제출하자. 교수가 여러 장의 악보를 보기 좋게 한데 교탁 위에 펼쳐 놓았다.


“이거 뭐야?”


교수의 눈썹이 높은 파고를 타고 꿈틀거렸다. 악보에 코를 박고 돋보기를 낀 교수가 얼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하준을 쏘아보았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베토벤껄 베껴서 과제로 제출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어?”


“예? 베토벤이요?”


하준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베토벤이라니?


“그게 무슨······. 아. 아닙니다. 교수님. 자세히 보세요. 순전히 제가 작곡한 과제입니다. 베토벤이라뇨. 무슨!”


사력을 다해 작곡한 과제에 대해 해명하고 정밀하게 비교 분석을 한끝에 오해가 일단락되었고, 이 일화가 음대에 퍼지면서 한동안 하준의 수식어에 베토벤이 붙어 다닐 정도였다.


* * *


제대하면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넘치는 의욕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이룩해 낼 수는 없었다. 뻔 한 주머니 사정은 과외를 해도 입대 전이나 후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고, 젊은 청춘들은 오선지처럼 놓여진 틀 안에서 세상과 변화의 물결 앞에서 주춤거리면서 떠밀리듯 나아가고 있었다. 하준의 청춘도 그 물결 위에서 표류하며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었다. 인생의 목표도 없었고, 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몸은 바쁘게 허둥대는데, 정신은 무료해서 따분함을 느끼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며 차곡차곡 저장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응?”


지하철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람은 그룹사운드 ‘와일드 플라워’의 기타리스트 정석현이 틀림없어 보였다. 아니 틀림없었다.


하준이 말을 걸까 말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초저녁부터 이어진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얻은 술기운의 힘을 빌어 그의 옆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형.”


정석현이 피로한 얼굴에 잔뜩 의구심이 깃든 표정을 덧씌여 하준을 바라보았다. 이건 또 뭐하는 놈이야 라고 안면 가득히 적혀있는 듯 했다.


“아······. 안녕하세요.”


“와일드 플라워. 기타리스트 정석현형 맞죠?”


그제야 석현이 표정에서 의구심을 조금은 걷어낸 듯 보였다.


‘팬인가?’


“맞는데. 누구시죠? 혹시 우리 밴드 팬?”


하준이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다.


“네. 와일드 플라워를 엄청 좋아하는 열렬한 골수팬입니다.”


대화의 물꼬가 트이자 두 사람 사이에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서양 록을 우리식으로 잘 옮겼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일 큰 장점이죠.”


“뭐. 록하는 놈들이 다들 그놈이 그놈이고 비슷하다는데 뭘 그리 과찬을 해. 나한테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 없어. 난 생각보다 허접한 기타리스트에 불과하니까.”


“과찬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말씀드린 거예요. 저 거짓말 할 줄 모르는데? 형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건조한 사람일지도 모르죠.”


하준의 와일드 플라워에 대한 이해와 애착은 생각보다 깊은 듯 했다.


“와일드 플라워의 진면목은 파워풀한 그룹사운드 음악에 있다고 보는데, 저는 라이브 공연을 좀 줄이고 앨범에 조금 더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정석현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 역시 마음속 깊숙이 생각하던 바 였기 때문이었다. 하준이 바라보는 시선이 생각보다 정확하다는 생각을 석현은 했다. 그 때문에 서로 의견이 분분해 알게 모르게 멤버 간에 음악에 대한 이견차이의 균열이 눈에 보이지 않게 서서히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록의 본질에 충실하지만, 한국적 감성의 포크가 잘 안착되었다는 겁니다. 제가 높이 사는 건 연주실력, 보컬 모두 훌륭하지만 발매된 곡들이 지극히 한국적이라는 겁니다. 그건 진짜 높이 살만하죠. 아마 와일드 플라워는 앞으로 전설이 될 겁니다.”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의기투합한 석현이 집으로 하준을 데려와 쟁여둔 술을 꺼냈다.


“너 말이 좀 통한다? 마셔.”


이야기가 밤새 질 줄을 모르고 망울을 맺게 하고 종내에는 꽃을 활짝 피웠다. 둘은 날이 밝고 나서야 잠이 들수 있었다.


꽤 늦잠을 잔 하준이 소파 위에 늘어져있는 석현을 보고 피식 웃었다. 대단한 록밴드의 잘나가는 기타리스트도 이렇게 술에 실신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니 인간임에 틀림없음을 새삼 확인이 되었기 때문이었고, 그들도 하준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잠을 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젯밤 지하철에서 무슨 용기가 나서 석현에게 말을 걸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도 선뜻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팬의 마음이 이렇게 하라고 시킨 거겠지······.”


하준이 뇨기를 느끼고 급하게 일어서다가 중심을 잃고 테이블에 부딪쳤는데, 그 위에 잔뜩 쌓여있던 악보가 떨어지면서 흩날리며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응?”


그리다만 오선지 위의 음표들이 그의 눈에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준은 소변을 보러가려했던 생리적 현상은 까맣게 잊은 채 오선지 위에 새 음표를 수정해서 덧입혔다.


“흠······.”


오선지에서 펜을 뗐다. 만족스러움이 찾아오자 다시 뇨기가 찾아왔다.


“으······.”


한참 소변 배출을 잊고 참았던 탓이었는지, 온몸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였다. 석현은 완전히 뻗은 것인지 깨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소변을 보고 술자리를 대충 정리한 하준이 석현의 집을 조용히 빠져나와 학교로 향했다.


* * *


“아······. 머리야.”


생각보다 제법 깔끔한 집안을 보고 어젯밤 지하철에서 처음 만난 하준이 집안을 정리해놓고 사라진 것임을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식······.”


하준은 와일드 플라워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남달랐고 해석도 그러했다. 앨범에 실려 있는 곡마다의 장단점을 칼날처럼 파헤쳐서 들쑤셨고, 이론적으로 어쨌느니 저쨌느니 할 정도로 조예가 깊어보였다.


“응?”


테이블 위에 자신이 작곡하다가 만 오선지 위에 덧 그려진 음표들이 눈에 띄었다. 정신없이 악보를 바라보다가 기타로 하준이 완성시킨 곡의 연주해 보았다. 곡은 한층 더 세련되어지고 깊이가 더해져 있었다. 만족스러움에 석현의 만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 자식 봐라······.”


석현이 하준이 전해준 하숙집에 전화를 걸었지만 학교를 간 탓인지 곧 바로 통화를 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하숙집 주인에게 자신이 찾더라는 이야기를 남겨야했다. 하준이 하숙집 주인에게 석현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과외가 끝나고 돌아온 한밤중이었다.


“형?”


-하준이냐?


“예.”


-네가 내 악보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냐?


하준은 그제야 자신이 한 짓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형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큰 실수를······.”


-아니야. 네가 뭘 잘못했다고 잘잘못 가리자고 그러는 게 아니야. 오선지에 음표 몇 개 그려넣는게 뭐 큰 잘못이라고. 오히려 미완의 곡이 더 나아지게 만들어 놨는걸? 네가 나보다 월등히 낫다.


“잘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형.”


-너. 내일 시간 되냐?


“내일요?”


강의가 있기는 했지만 석현의 부름은 그런 것들을 떨쳐내는데 하등의 주저함을 갖게 하지 않았다. 와일드 플라워의 기타리스트 정석현이 자신을 부르는데 거절이라니? 그것은 팬으로서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다음날 하준이 간곳은 와일드 플라워의 작업실이었는데, 그 유명한 와일드 플라워의 밴드 멤버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네가 그 천재작곡가냐?”


“예?”


“석현이가 그러던데.”


“에이. 천재는 무슨······.”


“새끼. 겸손은······. 악기 다룰 줄 아는 건 있냐?”


하준이 주변을 둘러보자 전자 키보드가 눈에 띄었다.


“제가 작곡과거든요. 본래 피아노를 먼저 시작해서 좀 치는 시늉만해요.”


“그래? 그런 한번 쳐봐.”


하준은 건반 앞에 앉아 무엇을 쳐야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와일드 플라워의 곡을 즉석에서 편곡해 재즈스타일로 연주했다.


멍하니 하준의 연주를 듣고 있던 멤버들이 화들짝 놀라 앞 다투어 말하기에 바빴다.


“그거 우리 곡 아니냐?”


“미친 새끼. 이걸 재즈로 바꿨네?”


“혹시 전에 만들어 놓은 곡이냐? 느낌 죽이는데······.”


“와. 작곡과 다니면 이게 맘대로 그냥 막 바꿔지는 거냐?”


하준이 부끄러움과 머쓱함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전에 만들어놓고 그런 건 아니고, 익히 잘 알고 있던 노래라 재즈로 바꿔보면 어떨까 싶어서 그냥 떠오른 대로 바꿔본 거예요······.”


“와 쓰벌. 석현이가 천재라더니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네.”


“딴거 없냐? 딴거.”


하준은 와일드 플라워를 직접 보게 된 기쁨과 그 느낌을 건반에 실었다.


“못 듣던 노랜데?”


“이건 뭐야? 좋은데?”


“오늘 형님들 보게 되면서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이 자리에서 즉석으로 만들어 본 겁니다.”


와일드 플라워 멤버들은 한동안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허······.”


“와.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지?”


“너 작곡, 편곡 좀 한다고 했지? 형들 좀 도울래?”


그날 이후 하준은 와일드 플라워의 객원멤버로 키보드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들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여러 가수들의 세션까지 맡게 되기도 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음악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형. 이 곡 한번 들어보실래요?”


가요탑텐 정상에 한동안 머물렀던 정민우는 세션맨인 하준이 준 악보를 받아들고 슬쩍 훑었다.


“미안한데 내가 악보를 볼 줄 몰라.”


“아.”


“혹시 키보드로 이걸 들려줄 수 있어?”


하준은 키보드로 작곡한 곡을 들려주면서 허밍음을 넣었다. 정민우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이거 니가 쓴 곡이야?”


“네.”


“이걸 나한테 왜 들려주는데?”


“이 곡. 형 드릴려구요.”


“진짜? 뭐? 진짜로? 잠깐만. 잠깐만. 회사에 전화 좀 해보자!”


하준의 경력이 일천한 탓에 좋은 곡을 팔고도 푼돈밖에 받지는 못했지만 음악으로 벌이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 충만감은 하늘을 찌를 듯 닿아있었다.


* * *


그러던 어느 날 신인 여가수의 녹음을 위해 세션으로 참여한 스튜디오에서였다.


녹음부스에서 파트 녹음을 위해 바이올린을 켜는 그녀의 모습은 천상의 천사가 따로 없었고 현세에 재림한 성녀의 모습이 하준의 눈앞에 있었다. 하준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숨 막힐 듯 한 이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저분 누구시죠?”


현장의 프로듀서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채은지씨. 바이올리니스트.”


“채······. 은지.”


하준은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내였다.


그녀의 연주가 끝나고 하준이 정신없이 그녀를 따라나섰다.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그녀와 대화할 기회가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 저기요.”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치떠졌다.


“네?”


그녀 주변의 대기마저 모두 그녀를 위해 찬란하게 빛을 뿜는 듯 보였다. 그것이 하준에게만 보이는 사랑의 전조임을 그때에는 알 도리가 없었다.


“저······. 저는 유하준이라고 합니다. 한국음대 작곡과 다니고요. 지금은 키보드 세션으로 와일드 플라워 객원멤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수들 세션도 맡아서 하고······.”


중언부언 허둥지둥 하준의 지금 모습이 딱 그랬다.


“그런데요?”


“저······. 차라도 한잔 하실래요? 차가 싫으시면 커피라도?”


“사람 잘못 보셨네요. 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갑작스럽게 일어난 거센 찬바람에 하준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오묘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하준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준이 사랑에 빠진 여파는 꽤 오래갔다.


“야. 또 틀렸잖아. 니 파트에서 빠르게 치고 나와야지.”


석현이 호통 쳤다.


“죄송해요. 형.”


몇 번이나 반주가 반복되었지만 유독 하준의 파트에서 실수가 연발되었다.


“너 그러지 않던 놈이 왜 이러냐?”


“형들 저······. 사실은······.”


하준은 스튜디오에서 만난 채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와일드 플라워 멤버들이 왁자하게 웃으며 하준을 놀려댔다.


“어이구. 우리 애기에게 사랑이 찾아왔네.”


“그거 청춘의 열병이야.”


“짝사랑 시작이네. 그거 무지 아픈데.”


“이거 어쩌나? 홀딱 빠져 버렸네?”


이후 스튜디오에서 몇 번이나 마주쳤지만 그녀는 조금의 틈도 하준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연주를 마치면 칼 같이 스튜디오를 빠져나가는 그녀를 하준이 강제로 막을 방법은 없었고, 그렇다고 별다른 특별한 수도 없었다.


“이게 뭐에요?”


* * *


그렇게 지지부진하며 시간은 흘러갔고, 은지가 세션으로서 녹음을 마칠 마지막 날이 되었다. 하준은 무슨 수라도 내야했고, 그녀의 학교를 찾아가서 그녀에 대한 모든 것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고 그녀가 좋아할만한 것을 마침내 찾아내고 말았다.


“저······.”


“저기 죄송한데요. 저 좀 가만 내버려두면 안 될까요? 댁하고 이럴······.”


하준이 티켓 두 장을 내밀었다. 은지가 공연티켓과 하준을 번갈아 보았다.


“피넬라 쉐리던의 바이올린 독주에요.”


한 달 식비가 족히 될법한 티켓가격도 가격이었지만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피넬라 쉐리던의 공연 티켓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이······. 이걸 어떻게?”


채은지가 침을 꿀꺽 삼키며 하준을 올려다보았다.


하준이 무안함에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제가 여기저기 수소문 했어요. 한 다리 건너고 두 다리 세 다리 안 되면 또 다른 뮤지션이나 가수들한테 묻고해서 아무튼 관련된 그 뭔가가 나타날 때까지 찾았거든요. 운이 좀 좋았나봐요. 이렇게 티켓이 제 손에 들린 거 보니까.”


“풋.”


그녀가 그런 노고와 하준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하준은 단단한 채은지라는 옹벽에 조금씩 실금이 가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필라델피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거쳐서 바이에른 교향악단하고 협연으로 유명하죠. 4살부터 천재성을 나타냈는데 힐러리 베르코비치가 그 진가를 알고 가르치게 된 거죠.”


피넬라 쉐리던에 대해서 노트에 적어 외운 것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달달 외웠다. 그것을 그녀 앞에서 다시 반복한 것이다.


“12살에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데뷔를 했죠.”


하준의 말을 은지가 받아 피넬라 쉐리던에 대해 거침없이 쏟아냈다. 단지 은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피넬라 쉐리던의 정보를 외운 것에 불과하다면 은지는 진작부터 관심이 지대했는지 그녀에 대한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를 사용하지 않고 뷔욤(J.B.Vuillaume)을 주로 사용하죠. 힐러리 베르코비치 아래에서 배운 순간은 지옥과도 같은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해주었다는 말을 항상 하죠.”


피넬라 쉐리던의 음악이 어떠했는지 하준은 전혀 느끼지 못했고, 티켓 값이 비싸다는 것또한 느낄새없이 은지의 옆모습을 계속해서 훔쳐볼 수 있었던 것에 대만족했다.


그녀는 앞모습도 예뻤지만, 옆모습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하준은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에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시간이 아까웠다.


피넬라 쉐리던의 공연을 계기로 하준과 은지와의 거리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사이 하준은 작곡해 두었던 여러 곡을 가수들에게 팔았고 세션 활동을 하면서 받은 돈 덕분에 끼니를 거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덕에 삶이 갑자기 부유해지거나 윤택해진 것은 아니었다. 곡을 팔아도 늘 주머니는 가벼웠고, 심지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하는 날도 있었다.


“날 위해 노래해줘.”


하준은 피아노를 치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자신이 직접 노래 부르는 것은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주변에는 항상 뛰어난 보컬들과 가수들이 차고 넘쳤기에 하준이 노래할 일은 없었고 노래를 하지 않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서?”


손님이 연주할 수 있는 맥주집이었지만 악기는 기타와 피아노 한 대가 전부였다. 중요한 것은 하준이 건반은 제법 칠 수 있지만 노래만은 자신에게 영 익숙해지지 않는 미지의 영역 같은 부분이었다.


“응. 날 위해서 해줄 수 없어?”


하준이 머뭇거리자 은지가 빈정이 상했는지 핸드백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가 그런 용기도 없어?”


은지가 제법 감정이 상했는지 뒤돌아서 술집을 나가고 있었다. 하준이 다급하게 그녀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았다.


“자······. 잠깐 하면 되잖아.”


술집의 계단을 오르던 그녀가 멈춰 섰다.


“진짜?”


그녀가 환하게 웃는 것이 하준에게 보였다.


“그래 할게. 하면 되잖아.”


만취해 기타를 붙잡고 통곡하듯 노래를 부르던 남자손님이 내려가고 하준이 피아노에 앉아 천천히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 곡은 하준이 은지를 처음만난 날을 기억하며 써둔 곡이었다. 채은지를 처음만난 순간은 아마 죽는 순간까지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하준에게 들었었다. 그 느낌을 옮겨 담아 선율에 담은 것이었다.




널 처음 본 순간.


내게 기적이 일어났어.


세상의 모든 시간은 멈춰 섰고,


멈춰진 시간 속에 너는 별빛을 뿌리며 내게 다가왔지.


넌 천사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어.


그 황홀함에 너의 모든 것을 담아두려 애썼어.


잊지 않으려고 몸부림쳤어.


내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지.


누군가가 내게 말했어.


이건 청춘 열병 같은 거라고······.




웅성대던 술집의 손님들이 일제히 멈춘 것처럼 하준에게 집중되었다. 어떤 기교도 없이 담담히 담백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눈을 감고 귀를 열고 단아한 감성에 몸을 맡겼다.


하준의 목소리가 멎고 피아노소리 마저 멎자. 은지와 맥주집 안의 사람들은 그제야 미몽에서 깨어난 듯 아주 짧은 잠시였지만 현실세계와 괴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박수소리가 홀 안을 가득 메웠다.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요청이 쇄도했다. 하준의 난감한 표정이 은지에게 닿았다. 그녀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피넬라 쉐리던의 바이올린곡이 하준의 손끝에서 피아노곡으로 재편곡되어 흘러나왔다. 상식을 뛰어넘는 피아노 실력에 좌중들에게서 경탄성이 흘러나왔다. 잔뜩 놀란 표정의 은지를 바라 보는 것또한 하준에게 크나큰 기쁨이었다.


맥주집에서 은지와 하준이 나오는데 사장이 달려 나와 가게에 다시 한 번 들려줄 것을 간청했다.


* * *


“형들 나 좀 도와줘요.”


“뭔데?”


하준의 연애사에 큰 획을 그을 대작전이 은지가 다니는 모교 가을축제에서 실행되었다.


“다음 무대를 달궈줄 가수는 와일드 플라워!”


축제의 열기가 와일드 플라워의 등장으로 절정으로 치달았다. 가장 인기가 많은 록밴드였고 대학생들에게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던 가수였기에 라이브 공연을 보게 될 그들에게 환호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중에게 많은 사랑받았던 곡들이 차례로 연주되고 각 멤버들의 파트 솔로 연주가 보컬의 소개에 의해 이어졌다.


“키보드. 유하준!”


발군의 실력이 건반 위에서 자유롭게 춤을 췄다. 축제는 그 열기가 마치 광기로 바뀔 것처럼 부글부글 들끓었다.


연주를 멈춘 하준이 무대중앙으로 나아갔는데, 멤버들이 연주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곡이 바뀌더니 하준이 은지를 위해 작곡한 두 번째 곡을 불렀다.


친구들과 객석에서 구경 중이던 은지가 놀라움을 넘어서 감동과 경탄의 순간이 도래한 것이었다.


무대를 내려온 하준이 은지의 손을 잡고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축제에 참여한 학우들의 함성이 무대를 덮고 세상을 덮었다.


하준의 은지를 향한 마음은 흠모하는 마음에서 짝사랑, 그리고 드디어 양방통행을 완벽하게 이루어낸 사랑의 결정체였다.


* * *


하준이 부름을 받아 급하게 시골로 내려오니 집안 분위기가 여수상했다.


“사실대로 말해라.”


“네?”


아버지는 서릿발 같았다.


“소팔고 논팔아 대학 보냈더니. 딴따라짓 하고 다닌다고?”


“딴따라는 아니고.”


“잡소리 말고 사실대로 말해라.”


“다 같은 음악이에요.”


“클래식인가 뭔가 할 때 고지식하고 고급스런 그런 거라고 친지들이 하도 말려서 보내줬더니. 딴따라 짓한다고 잘 다니던 대학교까지 휴학했다고?”


아버지가 툭하고 던진 것은 우편으로 날아든 휴학통지서였다. 하준이 아찔한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아버지의 분노가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그래 이렇게 된 김에 그냥 학교 때려치워라.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일줄 알기는 하냐? 딴딴라 깽깽이 짓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아무것도 모르고 그걸 학교라고 보낸 우리가 참으로 우매했다. 집안 일이나 도와라. 당장 짐 싸들고 내려와!”


지엄하고 국법 같은 아버지의 말씀은 철벽같았고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범접할 수 없는 절대법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하준이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평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와일드 플라워가 크게 싸우고 분열하고 만 것이었다.


“하준아. 너는 니길을 찾아야겠다. 우리도 각자 살길을 찾아봐야지. 어쩌겠냐? 아무래도 우리가 다시 화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곪은 상처가 한 번에 터져 버렸어.”


석현이 하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비극은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떼로 뭉쳐서 왔다.


“하준씨. 나 유학가······.”


은지의 손수건은 물에 적신 것처럼 눈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갑자기 왜······?”


“연애한다고 학교에 소문이 난 것이 집에까지 얘기가 들어갔나 봐.”


은지의 집안은 클래식음악가의 집안으로 그녀의 부모도 클래식 음악계에 정평이 나있는 사람들이었고, 가까운 친척 중에도 유명한 음악가가 몇이나 더 있었다. 아직 어리고 갈 길이 먼 그녀에게 거는 기대도 컸지만, 연애는 아직은 허용되지 않는 항목처럼 보였다. 대중음악을 하는 하준이 하찮고 고깝게 보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은지야. 가지마.”


은지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하준씨가 좋아. 하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연애하는 것말고 무엇을 할 수 있어? 현실을 봐.”


“가지마. 내가 더 잘할게.”


“무얼 잘한다는 거야? 아니. 아니. 우리는 아직 어려. 조금만 기다려 몇 년 걸리지 않을 거야. 그때에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다시 얘기해보자.”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아니 그렇지는 않을 거야.”


가난한 음악가에게 그녀를 책임질 현실적 경제능력은 실제로 전무했다. 스스로도 책임지지 못하는데 하물며 그녀까지 책임질 능력은 현재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 부분이었다.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 분초를 다툰다. 한시바삐 내려오너라!


하준을 예뻐하고 좋아해주시던 할아버지가 노환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것이었다.


그 이후 아버지의 하준을 향한 시선이 더욱 차가워져 옴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절망이 줄이어오는 현실에 괴로워하던 하준이 철길 위에서 마주 오는 기차에 술에 취한 채 섰는데, 고향 친구 경수가 마침 지나던 길에 그를 발견해 철길에서 밀어내 하준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


“아아아아아악! 죽게 내버려 두지. 왜! 왜 날 살려뒀어!”


“너 미친 거야? 왜 이래!”


“그래 나 미쳤다! 나 미쳤어!”


그녀가 떠난 후 슬픔과 절망에 잠긴 하준은 무기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폐인이 되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하준을 일으켜 세우려했다.


“서울 가. 서울 가서 너 하고 싶은 것 해. 그러고 살아.”


하준의 초점 없는 시선이 어머니를 향했다.


“그래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너 하고 싶은 것 원 없이 하고 살아.”


어머니의 도움으로 도망치듯 서울에 도착한 하준은 무너져 내리는 감정과 옅은 끈처럼 남아있는 사랑을 담아 음률로 옮겨 적었고, 기회가 생기면 닥치는 대로 세션 일과 작곡을 병행했다.


“현식이한테 곡을 준게 너지?”


영서울 음반사 대표인 김영인 대표가 제법 큰돈을 하준에게 내주었다.


“이건 현식이가 네가 준 곡에 대해 값을 치르는 것과 다음 앨범에 실을 곡을 부탁하는 돈이야. 곡 몇 개만 더 써주라. 요즘 곡 반응이 너무 좋더라.”


하준은 몇 곡을 작곡해 영서울 음반사에 넘긴 뒤.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은지를 만나볼 요랑 이었는데, 막상 미국에 도착해 그녀가 잘 있는 모습을 보니 그가 쉽사리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녀의 미래와 행복. 모든 것을 자신이 망칠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귀국길에 오른 하준이 허탈하고 슬픈 마음을 담아 곡에 쏟아 부었다.


한국에 돌아와 식음을 전폐하고 미친 듯 써내려간 곡들 그를 음악적으로 한 단계 성숙시켜놓았다.


하준이 판 곡들이 순위권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작곡가로 제법 이름을 알려지게 되었다. 몇 년간 그는 정신없이 음악에 매몰되어 살았다.


* * *


은지의 귀국은 급작스러웠고 매우 뜻밖이었다. 식어버린 하준의 심장이 다시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준씨. 잘 있었어?”


“아니. 은지가 없는 시간이 음악적으로 나를 성장하게 하기는 했지만 그리 즐거운 시간은 아니었어.”


수년간의 시간은 두 사람을 잠시 어색하게 만들었지만 금세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간극의 골을 메우고도 남았다.


은지는 수년 사이에 더욱 성숙하고 여성으로서 아름다워지면서 미모가 절정을 이루었다. 적어도 하준이 보기에는 그러했다.


“은지를 놓지 않을 거야. 걔가 없으면 살 수 없어 그걸 깨달았어.”


석현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 둘이 꽤 잘 어울려. 멤버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생각이었으니까. 잘해봐라. 형이 응원하마.”


“형. 은지 손가락 굵기가 이정도 일까?”


하준이 자신의 새끼손가락 윗마디를 보여주었다.


“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어디가?”


즉흥적이고 정상인들과 행동의 범주가 조금 달랐지만, 하준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꾸밈이 없는 청년이었다. 석현은 갑자기 일어나 밖으로 달려 나간 하준을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뜨겁고 순수한 모습에 웃음지을 수밖에 없었다.


“새끼.”


하준이 달려간 곳은 가까운 금은방이었다.


“여자 친구 손가락 굵기를 잘 모르겠는데······.”


“여자분 손가락 마디가 굵은가요?”


“얇은 것 같은데요. 이정도?”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허공에 동그라미를 만들어내지만 은지의 손가락 굵기를 가늠하기는 힘들어보였다.


“그렇게 해서는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운데······.”


“그냥 이걸로 주세요.”


금은방 주인이 낡고 초라한 행색의 하준을 훑어본다.


“이거 꽤 비싼데. 결혼 예물이에요. 이건······.”


하준이 크게 끄덕이며 돈다발을 꺼냈다.


“예. 프러포즈하려고요.”


* * *


은지는 한껏 차려입고 예쁘게 화장을 했다.


“너.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내가?”


“우리 딸 시집갈 때가 됐나보다.”


“엄마. 나 시집가도 돼?”


“이게. 음악은?”


“음악······. 중요하지. 그런데 내 인생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 깨달은 것 같아······.”


* * *


두근대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애쓰지만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손에든 반지케이스가 더욱 하준을 흥분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따라 횡당보도의 빨간 신호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사랑한다고 먼저 말해야 하나? 아니면 반지를 먼저······? 은지가 너무 놀랄까?”


횡당보도의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었다.


하준이 기쁜 마음으로 횡단보도 위를 달렸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횡단보도를 지나치려던 차가 그대로 하준을 받아버리고 만 것이었다.


쾅!


십 수 미터를 날아가 아스팔트 위를 맥없이 구른 하준의 손에서 반지가 빠져나와 하염없이 도로 위를 굴렀다.


하준이 꺼져가는 생명 속에서 은지의 이름을 끊임없이 되내였다.


“은······.지······.”


* * *


갑작스럽게 생겨난 시위 때문인지, 아니면 교통사고가 난 탓인지 도로는 극도로 혼잡했고 택시는 도통 앞으로 나아갈 줄을 몰랐다.


시계를 보니 이미 하준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삼십분이나 넘어있었다.


은지가 허겁지겁 약속한 커피숍에 도착하니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하준은 보이지 않았고, 하염없이 시간은 흘렀다.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거리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지고 은지가 앉아있는 커피숍도 문을 닫으려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영업시간이······.”


“아 네······.”


약속시간보다 항상 먼저와 있던 그였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몇 시간이나 지났지만 그가 코끝도 보이지 않는다.


허전함과 서운함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하준의 하숙집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부재중이라는 말만 계속해서 반복되어 그녀에게 돌아왔다.


몇 일간 그에게서 일절 연락이 없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었나?”


그럴 리가 없다. 그는 한없이 순수하고 담백한 사람······.


그녀에게 속일 그 무엇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준은 며칠간 하숙집에 오지 않고 있었고, 어떤 연락도 은지에게 오지 않았다. 답답함 그리고 고통과 초조한 시간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 * *


며칠이나 지났을까? 지금은 해체된 와일드 플라워의 기타리스트 정석현이 은지를 찾아 집 앞까지 온 것이었다.


“채은지씨 맞죠?”


그녀가 의아함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석현을 쳐다보았다.


“제가 며칠간 많이 정신이 없었는데, 은지씨가 지금에서야 생각나서 찾아왔습니다.”


“네?”


“하준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분이 각별하다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은지가 고약한 장난에 벌컥 화를 냈다.


“죄송합니다. 하준이가······.”


“거짓말. 거짓말 하지 말아요. 하준씨가 그럴 리가 없어요.”


은지의 비명을 지르듯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녀는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만! 그만!”


그녀가 양쪽 귀를 막았다.


죽음은 친숙하지 않다. 그래서 쉽게 믿기지가 않는 법이다.


그녀가 하준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경기도 외곽의 작고 초라한 하준의 봉분을 보고나서였다.


눈물은 바닥을 보이지 않고 쏟아져 내렸다.


신기했다.


욕조의 물이나 호수의 물도 결국을 끝을 드러낼 텐데 그녀에게는 끝없이 눈물과 슬픔이 쏟아져 나왔다.


“사고 나던 날 하준이가 은지씨 반지크기를 묻더라고요. 난감했죠. 여자들 반지 사이즈를 제가 알도리가 없으니까······.”


그 슬픔은 강이 되고 바다가 되고 소나기가 폭풍우가 되어 세상을 덮었다. 은지의 세상 속에는 온통 슬픔과 절망감만이 존재했다.


“하준이가 좀 힘들었어요. 몇 년 전에 학교도 휴학했고 집에서는 반대를 했어요. 은지씨는 유학을 간다고 떠났고, 와일드 플라워는 해체했어요.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죠. 무슨 일이 그렇게 겹겹이 줄지어 겹쳐서 하준이에게 왔었는지 몰라요.”


그녀의 슬픔과 상심은 마음속에 큰 생채기를 냈다. 은지는 어둠속에 몸을 숨겼고, 빛이 닿는 곳으로 단 한 발짝도 떼지 않았다.


“너. 다시 공부할래?”


은지가 도리질했다.


“유럽에 가볼래? 스위스 눈 구경하고 싶다고 그랬잖아?”


대답이 없었다.


“스위스 가보고 싶구나?”


“제주도에 가보고 싶어.”


생전의 하준이 제주도에 가보고 싶다고 한말이 불현 듯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제주도?”


“응.”


하준이 보고 싶어 했던 겨울바다가 보이는 제주도는 황량했지만 반대로 공기는 몹시도 청량했다. 시리고 아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사방에서 초목이 우거지고 꽃은 만발했다. 온 생명들이 약동하는 듯 했다. 그녀의 마음도 조금씩 세상을 향해 열리면서 치유가 되는 듯 했다.


은지가 세상과 단절된 지도 어느덧 일 년 가까이 된 듯 했다. 시간이 좋은 치료제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누구로부터 나온 말인지 알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해 은지는 그것을 꼬치꼬치 따져 알고 싶지 않았다.


꽤 치유가 된 상태였다. 정신이 갈가리 찢겨져 죽어 버릴 것 같았던 고통은 조금은 나아가는 듯 했다.


오늘은 처음으로 밖의 찻집에서 따스한 햇살을 느끼면서 쓰고 떫은 커피를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맛보고 싶었다.


커피숍은 절벽의 언덕위에 멋지게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었는데, 목재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서 그런지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을 은지에게 전해주었다.


카페에서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주인장이 놓고 간 커피 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따스함과 향 모두 은지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널 처음 본 순간.




뭐지?


이 친근한 음색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였다.




내게 기적이 일어났어.


세상의 모든 시간은 멈춰 섰고,


멈춰진 시간 속에 너는 별빛을 뿌리며 내게 다가왔지.


넌 천사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어.


그 황홀함에 너의 모든 것을 담아두려 애썼어.


잊지 않으려고 몸부림쳤어.


내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지.


누군가가 내게 말했어.


이건 청춘 열병 같은 거라고······.




하준이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던 그 곡······.


한참을 멍하니 있던 은지가 정신을 차린 것은 시간이 꽤 지난 후였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노래가 왜······.”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커피숍 주인장에게 물었다.


“이 노래 누구 노래죠? 아니 이 노래가 어떻게······.”


다급한 은지의 말투에 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카페 한구석을 시선으로 훑는다.


“어? 저기 계셨는데? 저기 앉아 계시던 손님이 이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셨거든요.”


그녀가 바라보니 빈자리에 아무도 없다.


은지가 미친 듯이 밖으로 달려 나가 보니 저 멀리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하준······.”


“하준씨! 유하준!”


은지가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미친 듯이 달려가 보니 그는 하준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생면부지의 얼굴이었다.


“무슨 일로?”


“아 죄송합니다. 그······. 카페에서 음악 때문에······.”


그가 갸우뚱하더니 이내 무언가를 알아챈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제가 요즘 너무 좋아하는 노랜데 이곳과 잘 어울려서 틀어달라고 한 겁니다. 듣고 싶었거든요.”


“아······. 가수가······. 가수 이름이?”


“유하준이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죠. 너무 안타까운 가수인데······.”


“하준······.”


다리에 힘이 풀려 은지가 땅바닥에 주저 않았다.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폭포수처럼 눈물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괜찮으세요?”


아니 그녀는 괜찮지 않았다.


전혀······.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안타까워한 음악가들이 십시일반 돈을 보태 그의 유작들을 앨범으로 만들어서 이번에 냈다고 합니다. 하나같이 기존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명곡들이죠. 아마 지금 가요탑텐 일위일 텐데요.”


그가 우는 그녀를 앞에 두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 모습이 무언가 깊은 사연이 있어 보였는데 한없이 슬퍼보였다. 그렇다고 초면인 그가 그런 것을 자세하게 물을 수는 없었다.


“노래를 많이 맘에 들어 하시는 것 같으니, 이 테이프 드릴게요.”


그녀가 쳐다본다.


“왠지 사연이 있어 보이는데······. 저는 레코드판이 있거든요.”


“고맙습니다······.”


테이프를 받아보니 유하준이라는 이름과 ‘청춘 열병’이라는 앨범의 제목이 보였다.


그녀가 간신히 머물던 곳으로 돌아와 바다를 바라보며 음악을 듣자 하준과의 추억들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봉합해 두었던 상처가 터지면서 슬픔과 고통 모든 것들이 그녀의 심연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글쎄······. 음악이랑 너 중에 무엇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응.”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 두 가지다 하면 안 될까?”


“아냐. 딱 하나만 골라야만 하는 거야.”


“그러면 너를 먼저 고르고, 그 다음에 음악을 하면 안 될까?”


“아하하. 반칙이야. 그건.”


“지금 당장 제일먼저 하고 싶은 건 뭐야?”


“지금 너를 위해 곡들을 쓰고 있어. 너를 만나면서 쓴 곡도 있는데······. 그걸 앨범으로 만들어서 너에게 첫 번째로 전해주고 싶어. 제목은 청춘 열병.”


“청춘 열병?”


“응.”


은지가 밀려드는 추억의 파편에 미소를 지었다.


“사랑한다. 은지야.”


하준이 마치 곁에 있는 듯 그 목소리가 생생하게 그녀의 귓전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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