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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대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7.12.26 22:56
최근연재일 :
2019.01.17 01:53
연재수 :
149 회
조회수 :
43,079
추천수 :
683
글자수 :
731,223

작성
18.05.03 01:26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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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의지

DUMMY

바다를 가르며 집회 장소에서 빠져나온 아론과 레나는 가란을 데리고 시온의 집으로 돌아갔다. 때는 이미 한밤중이라 누군가에게 들킬 걱정 같은 건 할 필요가 없었다. 늦은 시각인데도 용케 깨어 있던 제프가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시온은 아직 안 들어왔어?”

집안에 들어온 후에도 그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레나가 제프에게 물었다.

“바쁜가 봐요. 요즘 계속 늦어요.”

그러나 레나는 시온이 지금 덴스타인 저택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자신의 검을 찾고 있을 것이다.

레나는 가란을 단단히 포박해서 다락방에 처넣었다. 그 뒤 아론과 함께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한숨 돌리며 쉬고 있는데 제프가 차를 끓여왔다. 보면 볼수록 어른스러운 소년이다.

“으윽!”

아론은 씁쓸한 차가 영 입맛에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한바탕 요란을 떤 후 다시는 입에 대지 않았다. 레나는 제프에게 아론의 몫까지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고마워, 제프. 마침 차 생각이 났었는데. 맛있네.”

제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차마 레나를 볼 면목이 없는 모양이었다. 가란을 붙잡으면서 레나의 주장이 명백한 사실로 입증되자, 두 사람을 신고한 게 더욱 미안해진 것이다.

“낮에 수비대가 조사하러 왔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말해줬어요. 누나가 그 미친 아저씨를 막으려 했다고. 위험을 무릅쓰면서 말이에요. 동네 사람들도 전부 그렇게 증언했으니 나중에 정상참작이 될 거예요.”

레스릭 사건이 어떻게 수습되었는지 설명하면서, 자신이 유리하게 증언해줬다는 부분을 특히 강조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지는 모양이었다.

“고마워. 이제 저 아저씨만 데려가면 확실히 누명을 벗을 수 있겠네.”

레나는 시원하게 미소 지으며 눈으로 비어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차마 앉지도 못하고 서 있던 제프는 그제야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런데 괜찮니, 제프? 충격 받지 않았어?”

“네? 무슨 충격요?”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잖아. 비록 미친 살인마이긴 했지만.... 아직 나이도 어린데 네가 괜찮은지 걱정돼.”

“괜찮아요. 이번이 처음이 아니거든요.”

“정말? 처음이 아니야?”

“아버지 동료들이 죽는 거 많이 봤어요. 반디표범에게....”

레나는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프가 빨리 철이 들 수밖에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누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뭔데? 얘기해봐.”

제프는 갑자기 현관을 응시했다. 곧 레나는 그가 시온에 대해 말하려 한다는 걸 눈치 챘다.

“제가 누나와 같이 나서서 그 미친 아저씨를 막았다는 건 비밀로 해주세요.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괜한 걱정을 끼치지 싶지 않나 보구나? 알았어. 시온에게는 말하지 않을게.”

레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프는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검을 훔쳐간 도적들의 행방은 찾았어요?”

그리고 잔뜩 기대에 찬 눈으로 물었다. 어린 소년이 이 시각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바로 이걸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레나는 고민한 끝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전은 있었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아. 내일 좀 더 알아봐야할 것 같아.”

그녀가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찾아낸 결론에 시온은 이미 도달해 있었다. 그가 제프를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숨기고 있는 이상, 상의도 없이 멋대로 알려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전 이만 들어갈게요.”

제프는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인사한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둘만 남게 되자 레나는 아론에게도 제프와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아론은 어때요? 사람을 죽인 건 처음이죠?”

“네.”

“기분이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해요.”

아론은 라몬의 지시로 묵념을 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 자신도 모르고 있지만 아론은 사람의 죽음에 비교적 감흥을 받지 않는 성격이었다. 왜냐하면 노아가 죽음에 무감각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묵념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이 좀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도 그래요. 창피해서 제프 앞에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충격 받았어요. 사람이 죽는 건 처음 봤거든요.”

레나는 아론에게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다.

“하루 동안 참 많은 일이 벌어졌네요. 제 아버지가 누군지도 오늘 알게 되었고.”

“오늘 알았다고요? 아버지를?”

아론은 놀란 얼굴로 되묻는다. 아버지란 존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네. 아닐 가능성도 남아 있지만.... 제 아버지는 여기서 활동한 도적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굉장히 혼란스러워요.”

20년 전에 덴스타인 저택에서 마법화살을 훔친 후 칼 아반트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도적 바델. 정황상 그는 레나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두 번이나 마법 화살을 쏴 그녀를 구해준 것도 설명된다. 그런데 그는 왜 그녀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까? 그리고 어쩌다 칼린 같은 악녀에게 딸을 맡긴 걸까? 꼬리의 꼬리를 물며 이어지던 레나의 사고는 여기서 단절된다. 이런 형태를 빌어서라도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칼린이 싫기 때문이다.

“나는 수비대가 되려 했는데 아버지가 도적이었다니.... 마음에 안 드네요.”

“나도 아버지가 마음에 안 들어요.”

아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항상 화를 냈어요. 소리 지르고 실망하고. 힘든데 운동 계속 시키고....”

“....이제 아버지 생각은 그만하죠. 그럴수록 우리만 상처 받는 것 같으니.”

해답을 얻을 수 없는 의문은 혼란만 줄 뿐이었다. 이에 지친 레나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최근에 저는 래리라는 사람에게 졌어요.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그것 때문에도 제법 큰 충격을 받았죠. 인정하기 싫지만 전 겁쟁이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점점 약해지고 있어요.”

“레나가 겁쟁이라고요?”

“네. 솔직히 레스릭이라는 사람한테도 겁이 났어요. 마법으로 라몬의 목을 천천히 베는 것 같았는데, 당황해서 아무 것도 못했어요. 그냥 무력하게 보고만 있었죠.”

“음....”

“도적 길드에서도 겁이 났어요. 생각보다 수가 더 많았거든요. 게다가 실력도 만만치 않아 보였고, 탁 트여있어서 다수를 상대로 싸우기에 유리한 지형도 아니었죠. 여차하면 싸울 생각이었는데 막상 창고 안에 들어간 후에는 그 생각이 사라졌죠.”

레나는 이제야 자신이 가만히 있었던 이유를 아론에게 설명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론이 도적들과 대화를 하게 된 것이다.

“아론이 바닷물을 가를 수 없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요.”

“....”

레나는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심정까지 거리낌 없이 아론에게 드러냈다. 그녀를 제대로 위로해 주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아론은 레나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끼고, 얼마나 안 좋은지 파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위로를 해주지 않기에 오히려 레나에게는 최고의 대화 상대였다.

“이제 시온의 검을 되찾으려면 또 다시 래리와 대면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솔직히 무서워요. 레스릭이나 도적 길드 때와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에요. 그 둘은 불가항력이었지만, 래리는 그렇지 않거든요. 이길 수도 있었는데, 좀 더 잘 싸울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한심하게. 나 자신에게 실망하게 될까 두려운 거죠.”

비슷한 주제로 쉬린과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런데 쉬린은 레나를 자신과 같은 수준의 나약함으로 끌어내리려 했다. 레나는 그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죽기보다 더 싫은데도 말이다.

“조금 위험할 수도 있지만.... 아론, 래리와 대면할 때 내 옆에 있어 줄래요? 그러면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레스릭이란 사람에게 겁먹었을 때 당신이 그의 위협을 끝내줬어요. 도적 길드에서도 덕분에 위기를 넘겼죠. 이번에도 당신이 있으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던 아론에게 그 말은 눈에 보일 정도로 명확한 것이었다. 그는 혹시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대답했다.

“네, 그럴게요.”

“고마워요, 아론.”

레나는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모든 혼란과 두려움을 극복해낸, 후련한 웃음이었다.

“저도 부탁이 있어요, 레나.”

“뭔데요?”

“계속 나한테 부탁해 주세요.”

비록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서투른 아론이었지만, 레나는 이것이 그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걸 직감했다. 그래서 충분히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럴게요.”

두 사람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대화였다. 아론과 레나는 그대로 소파에 앉아서 그 만족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 흐뭇한 시간은 현관문이 열리고, 시온이 들어올 때까지 지속되었다.

“동료를 데리고 왔군.”

시온은 아론을 흘깃 보더니 그 말 한마디만 던질 뿐이었다. 그들이 자신의 집에서 뭘 하던 관심도 없는 듯 곧바로 씻으러 가려 한다.

“잠깐만요, 시온.”

레나가 불러세우자 시온은 우뚝 선 후 고개를 돌려 무심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레나는 그가 아닌 아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론, 혹시 내가 가지고 있던 마법화살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나요?”

첫 만남에서 아론이 노아에게 물어봐서 모든 걸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노아가 그가 경험한 기억의 창고 같은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그러나 라몬과 아론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그녀의 예상이 빗나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 한 번 실험을 해본 것이다.

“아.... 저쪽에 있어요.”

때마침 아론은 필요한 정보를 거의 곧바로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깨달은 참이었다. 덕분에 레나의 가설을 입증해 줄 수 있었다. 서슴지 않고 덴스타인 저택이 있는 방향을 가리킨 것이다.

“시온, 내일 덴스타인 저택에 갈 때는 우리와 같이 가요. 어쩌면 아론이 당신의 검을 찾아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시온이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그가 며칠을 잠입했는데도 아직까지 찾지 못한 검을 아론이 어떻게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제가 가지고 다니던 화살은 저와 함께 덴스타인에게 넘겨졌어요. 과연 덴스타인이 그걸 어디에 두었을까요?”

시온은 비로소 레나의 뜻을 이해했다. 지금 아론의 손가락은 바로 대부호의 저택에서도 가장 깊숙이 숨겨진, 덴스타인의 수집품을 보관하는 비밀창고나 금고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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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아론 : 그런데 제프는 왜 레나의 활약만 강조하는 거죠?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저였는데...-_-+

라몬 : 본문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수비대에게 레스릭을 죽인 사람이 나라고 했다는 설정이야.

아론 : 헉, 왜요?

라몬 : 수비대가 범죄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마법사들이 다 모인 상황이었거든. 그들에게 네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였지.

아론 :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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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8 메틸아민
    작성일
    18.05.03 08:36
    No. 1

    레나도 참 대단한 듯.
    어떻게 아론을 보고 의지할 맘이 생기는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8.05.04 22:30
    No. 2

    레나도 아론의 부족한 면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선이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의 장점까지도 살핀다는 점이 다르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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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세계의 끝 +4 18.05.29 161 5 11쪽
72 대니로의 가호 +4 18.05.26 169 5 10쪽
71 퇴근길 +4 18.05.24 192 5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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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증인 +4 18.05.20 418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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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전환 +4 18.05.16 159 5 10쪽
66 경계 +6 18.05.14 172 5 9쪽
65 비밀창고 +6 18.05.12 170 6 10쪽
64 잠입 +4 18.05.09 175 5 12쪽
63 약속 시간 +4 18.05.07 178 5 9쪽
62 짝패 +6 18.05.05 187 5 9쪽
» 의지 +2 18.05.03 181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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