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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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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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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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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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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415화 찻잔은 넘길 수 없다

DUMMY

415화 찻잔은 넘길 수 없다


“적들이 마주 나옵니다!”


나무 방패 단 배에 타고 강을 미끄러져 가던 시마 요스케는 귀에 들어온 말에 감고 있던 두 눈을 뜨고 검을 뽑아 들었다.


“전투 준비! 화살은 아끼고 바로 배를 붙여서 백병전으로 이행한다! 겁먹지 마라! 우리의 백병 실력은 최고다!”


단순한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 요스케는 그렇게 생각했다.


말 타고 화살 쏘면 모를까, 땅에 두 발 딛고 서서 싸우는 일은 그들이 서정군 가운데서 최고라고 여겼다.


콰광!


멀리서 어느새 고지 점령한 화포들이 차례로 굉음 토하는 소리가 들리니 요스케는 한층 더 자신을 얻었다.


적들이 어느 쪽을 대처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리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쉽게도 그저 바람에 그쳤다.


“당주, 아니 버일러! 이번에 나온 놈들은 화포가 없는 거 같습니다!”

“뭣!?”


화포가 없다는 말에 요스케는 당황하여 앞에 시선을 주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어느새 적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이는 거리건만 적들의 배에 화포는 없었다.


오히려 이쪽처럼 칼이며 창을 쥐고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적들은 나오기 전에 고민을 마친 모양이었다.


“제길.”


예상이 빗나감은 물론이고 이득이라 여겼던 부분이 빗나갔다는 생각에 요스케는 저도 모르게 거친 쇠를 내뱉었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기면 그만이고, 우리가 유리합니다.”


시기적절하게 검술 스승 미야모토 무사시가 이르는 말에 요스케는 당황을 빠르게 털어내고 외쳤다.


“전투 준비! 시코쿠를 위해, 대청을 위해!”


전투 준비! 시코쿠를 위해, 대청을 위해!


요스케의 선창에 다른 이들이 따라서 외치니 이내에 동관군과 서정군 양측 배는 뱃머리를 부딪치며 맑은 강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



“수군이 접전을 시작했습니다!”

“화포 전부 배치 완료, 적들의 수군은 아군에 가로막혀 전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 성채에서 화포가 쏘아집니다!”


연이어서 들어오는 보고에 정친왕 아이신기오로 지르가랑은 머릿속에서 전황을 그려보고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군.”

“허면 이제 나도 앞으로 나가보겠습니다.”


성친왕 아이신기오로 요토가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지르가랑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꼭 그래야하겠냐?”

“맨 앞에서 성벽 오르는 건 양보했으니 가서 기운 돋는 일 정도는 해야지.”

“어휴, 이게 친왕인지 버일러인지 모르겠군. 아니, 버일러라도 적당히 좀 사려야지 원.”

“흐하하하! 친왕이기 전에 팔기고, 그 이전에 만주족이니 어찌 참을까!”


요토는 기세 좋게 웃은 후에 걸음을 옮기다가 말고 돌아보며 이죽거렸다.


“실은 나가고 싶으시지 않습니까?”

“······쯧. 약 올리지 말고 얼른 가라.”


지르가랑이 차마 부정하지 못하고 혀를 차니 요토는 즐거운 얼굴로 전장을 향했다.


그가 떠나고 얼마 있다가 지르가랑은 복잡함을 담아서 중얼거렸다.


“그러고야 싶지.”

‘하지만 그러다가 호오거 꼴이 나면 곤란하단 말이다.’


불길하여 입밖으로 내놓기 어려운 말을 꿀꺽 삼킨 지르가랑은 고개를 휘휘 저어서 불길함을 떨쳐냈다.


“각지에 전령을 보내라. 절대로 공세를 늦추지 말라고 말이다.”


지르가랑은 그리 말한 후에 멀리 보이는 구릉연곽을, 더 정확히는 거기서 홀로 우뚝 솟은 천수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오늘 저녁은 저기서 먹을 것이다.”



***



오늘 저녁은 천수에서.


이 말이 그저 말에 그치지 않게 하겠다고 하듯 서정군의 공세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매섭게 변했다.


콰광!

쾅!


“적들의 공세가 매섭습니다!”

“당황하지 말고 응사해라! 이미 뻔히 보이는 위치에 있지 않느냐!”


물론 동관군이라고 놀고 있지는 않았다.


고지를 점거하여 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대단히 유리하게 들리나 사실 구릉연곽 가장 위쪽에서 보면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해도 좋은 장소들뿐이었다.


그러니 마주 쏘기도 어렵지는 않았고, 화포로 적들 화포 막아내는 일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그 일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때에 한하니,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또 온다!”

“젠장, 다들 숙여!”


숙이라는 말에 화포 다루던 이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물론 속도 차이는 있어서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늦었다.


그리고 늦은 사람은 그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끄륵.”

“또 당했어!”

“여기도!”

“피해는 개의치 마라! 이 나라, 대명의 미래가 너희에게 걸려있다!”


장수가 다시금 그들을 독려하며 외치자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던 병사들이 달려와서 빈자리를 채웠다.


그 모습을 본 장수는 내심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돼.’


자리 채워서 화포 쏘는 일은 계속하고 있지만 자꾸 쏘는 일을 멈추고 쏘는 것도 그렇고 빈자리 생기는 일이 있으니 손발이 점차 어긋나고 있었다.


화포 하나에서가 아니라, 모든 화포를 놓고 보았을 때 말이다.


처음에는 일사불란하게 합동하여 쏘아 고지에 놓은 적들 화포며 접근하는 적병 쫓는 일에 위력을 보이던 화포였다.


그러나 이제 저들이 온전히 자리 잡고 여러 곳에서 타격하고 밑에서는 구릉을 말 타고 올라와 화살 쏘아서 어지럽게 하였다.


물론 이쪽도 대응하긴 하나 저들의 활솜씨에 비하면 이쪽은 아무래도 부족함이 많았다.


그뿐이라면 다행이겠는데, 숫자조차 밀리니 손해가 나면 날수록 크게 흔들리는 건 동관군이었다.


“정신들 차리고 노려라!”

“한 번에 노리란 말이다!”


그 모습에 절로 답답함을 느낀 장수들은 호령하며 재촉하나 한번 어지러워진 호흡이며 손발은 그저 어긋나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사방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 성벽이 뚫렸다!”

“막아! 놈들이 들어온다!”


“성벽이 뚫렸다! 돌격!”

“대청 팔기의 힘을 보여라!”


사방에서 홍이포로 두들기니 단단하다고는 하나 결국 급조한 성이라 할 수 있는 구릉연곽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 허리를 훤히 드러내고 말았다.


한쪽은 드러난 허리를 지키기 위해 몰리고 한쪽은 드러난 허리를 아예 베어버릴 심산으로 몰린다.


이렇게 양쪽에서 눈에 불을 켜서 달려드니 곧 구멍 난 곳에서는 혈전이 벌어졌다.


“오랑캐가 어딜 감, 커헉!?”


용감하게 달려드는 명나라 병사 하나를 화살 쏘아 목에 바람구멍 하나 선사하여 가벼이 제압한 청나라 병사는 자신만한한 얼굴로 대꾸했다.


“흐흐흐, 이제 우리가 북경 얻었으니 니들이 오랑캐, 끄윽!?”

“박혔다! 찔러!”

“주저하지 마! 주저하면 우리가 죽는다, 끄륵.”

“왕씨! 이런 젠, 끅.”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성벽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에게 창으로 허리며 배를 찔러 팔기는 괴로운 얼굴로 절명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화살 두엇 날려 주변에 있던 이들 몇을 길동무로 삼으니 그 위용은 놀라울 정도였다.


이러한 교환비는 우연이 아니라고 하듯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연달아 일어났으니, 잠시 전투하여 서로 소모한 끝에 상황 살피니 어느새 구릉연곽 내부에는 청나라 군사들이 들어와서 날뛰고 있었다.


이 광경은 중간 연곽에 있는 이들은 아나 다른 연곽에 있는 이들은 잘 몰랐다.


또한 중간 연곽을 포함하여 열심히 싸우던 이들 모두가 아직 모르는 비보가 있었으니, 수군이 밀리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천수에서 상황 살피던 이에게는 훤히 보였다.


모든 게 말이다.



***



“오래 조용하다 싶더니 과연 이걸 위한 거였나.”

천수에서 적들, 청나라 서정군이 진군하는 모습을 본 시마즈 히사요시는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번 물러난 후에 청나라 군은 기본적인 정찰 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속 모르는 이들은 이걸 보고 적들이 겁을 먹었느나 어쩌니 하며 기뻐했고, 다른 이유로 싸우기를 고대하던 이들은 외려 분노하여 치고 나갈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동관군 장수 손세서 역시 그냥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가는 게 어떻겠냐고 은근히 의견을 타진하였으니 구릉연곽 내 분위기는 이미 승전한 기분이라고 하여도 틀리지 않았다.


허나 히사요시는 이 모두를 물리치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가 바다 건너서 본 명나라 군은 강했다.


파죽지세로 장헌충의 반란군을 이기고 사천으로 밀어 넣어 토벌하는 그 솜씨는 정예한 강군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물론 그가 본 것은 임경업이 이끄는 사천 토벌군뿐이었다.


허나 언젠가 떠보아서 사천 토벌군이 명나라 최강인지 물으니 아니라고 들은 후에 히사요시는 생각했다.


이러한 강군, 명나라 군을 물리친 청나라 군사는 대체 얼마나 강한지 말이다.


그리고 그 청나라 군사들을 직접 보고 전에 작은 피해가 나자 주저없이 물러나는 걸 본 히사요시는 확신했다.


적은 그가 살아오며 본 가운데 가장 강하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경거망동하지 않고 대기하여 준비한 것들을 여러 번 확인하며 오늘에 이르니 그가 품은 생각은 틀리지 않았음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주변 고지를 넷, 그리고 전방에서도 압박, 강을 타고 수군. 만만치 않구나.”


숫자의 이점을 살리겠다고 하듯, 혹은 다방면에서 확실하게 힘으로 밀어내겠다고 하듯 생각할 수 있는 수단 전부를 동원해 공성을 거는 청나라 서정군의 위용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또다시 보아도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그 심상치 않음은 수군이 밀려나는 것이며 연곽 허리 뚫리는 것에서 정점을 찍었다.


‘하, 이거 아무래도 각오를 해야겠는데.’

“시마즈 장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본 시마즈 히사요시는 강으로 수군 몰고 나갔던 손세서가 있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급한 와중에 안부를 먼저 물을 정도로 손세서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수군을 일단 한번 몰고 나가서 혈투 끝에 간신히 살아돌아온지라 갑옷 여기저기에 피가 묻었고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결사대를 남겨 후퇴하였소. 수문은 일단 막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피곤에 절은 얼굴과 그에 어울리는 어조로 말하는 손세서의 말을 들으며 히사요시는 고개를 끄덕이고 결심을 굳혔다.


“아무래도 각오를 다져야겠습니다.”

“!”


손세서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방금 생각한 것을 그대로 입에 담은 히사요시는 거짓이 아니라고 하듯 곁에 둔 찻잔을 들어 내던졌다.


챙그랑


“무, 무슨!?”

“세가 너무 단번에 기울어서 이제 이곳을 지키긴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 오늘 비장의 수단을 쓸 생각을 해두는 게 낫겠습니다.”


비장의 수단이라는 말에 손세서는 어두운 얼굴로 고민하더니 이내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허면 그리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신호는 전에 정한 대로 하지요.”


전에 정한 신호라는 말에 손세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것은 좋으나 과연 저들에게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을까요?”

“이상함을 느낀다고 한들 뭐 어쩌겠습니까.”


히사요시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지막으로 바깥을 한 번 더 내다본 후 비릿하게 웃었다.


“우리나 그 뜻을 알 텐데 말입니다.”



***



뜻이 정해지니 다음에 할 일도 정해졌다.


곧 구릉연곽 내부에는 한 가지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며 행동할 것을 촉구했다.


“모두 들어라! 찻잔은 내어줄 수 없다! 반복한다! 우린 찻잔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여럿이 전장을, 연곽을 아래며 위며 중간이며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며 외치니 병사들의 눈에 변했다.


몇몇은 결사의 각오를 더욱 강하게 보였고, 몇몇은 전투며 수성하는 일에 미련을 버렸다.


이윽고 전자가 더욱 맹렬히 싸우는 동안 후자는 아직 적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을 통해, 혹은 저마다 생각한 통로며 길을 통해 구릉연곽을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밀어냈다! 전진! 놈들의 수문과 수로를 통해 진입한다!”


하나 죽이고 다시 멀쩡한 적이 하나.


아군이 하나 죽으면 적 하나.


정말 이만큼 비효율적인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요스케는 수군 싸움에서 정직하게 싸웠다.


요스케에게는 천만다행스럽게도 이 교환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나 죽이면 다시 멀쩡한 하나가 아니라 동료와 교전하는 이들뿐.


아군 하나 죽으면 적은 셋.


어느 순간 이쪽 숫자에 저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시기가 와버린 것이다.


이윽고 적들도 그를 읽었는지 얼마간 막을 이들 남기고 후퇴하였고, 그 남은 이들 정리하는 건 요스케를 비롯한 서정군 수군에게 있어서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요스케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욱 배를 몰아 구릉연곽에 진입하고자 했다.


“근처에 배 대고 기어오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한다!”


한 사람이 크게 외치는 말에 요스케는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명령했다.


그 주저 없음에 사람들은 크게 사기 올라서 구릉연곽에서 강으로 바로 나가기 위해 마련한 수문을 열고자 벽을 올랐다.


“어딜 감히 올라오느냐!”

“죽어라!”


이에 동관군은 바로 저항하고자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수문에 배치된 이들은 너무 적었다.


이미 강에 그 몸 누인 이들이 많았고 그나마 남은 이들 가운데서 다수가 빠지니 저항하는 이는 실로 한 줌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이는 자연스럽게 수문 막기 버거운 상황으로 이어졌고, 수문은 곧 요스케와 그가 이끄는 수군에게 점령당했다.


“엽니다!”


몇 사람이 얼굴에 묻은 피와 땀을 닦아내며 수문을 여니 요스케 휘하 병졸들은 곧장 안으로 진입하여 싸우려고 하였다.


허나 맥 빠지게도 사방에 있는 적들의 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적었다.


“여기 왜 이렇게 적이 적지?”

“아무래도 본대에서 벽을 뚫은 모양입니다. 저기 보십쇼.”


요스케의 의아함을 풀어준 것은 무사시의 말과 손가락이었다.


그 말에 따라서 시선 옮긴 요스케는 두 번째 연곽 성벽에 익숙한 이들이 날뛰고 있는 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이래서야 수문 통해서 들어온 게 빛바래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지는 것보다야 낫습니다.”


사뭇 아쉬움을 담아서 요스케가 말하니 무사시는 곧 그를 위로했다.


딴에는 맞는 말이라, 요스케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뭔가 더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사방 살피던 요스케의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저거, 우리 쪽 놈이 아닙니까?”


멀리서 익숙한 머리며 복색을 한 이가 명나라 군사들 가득한 곳을 제지하나 받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가만히 살핀 무사시는 딱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복색을 보니 아닙니다.”


잠시 더 돌아다니는 이를 보고 있자니 그자만이 아니라 비슷한 이들 몇인가 더 보였다.


또한 명나라 병사들과 함께 모습을 감추어 성벽에서 달아나는 모습을 본 무사시는 저들이 누군지 짐작하고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싸우느라 잘 몰랐는데, 아무래도 여기에 사츠마에서 갔다는 놈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사시가 그렇게 말하며 수문에서 항전하던 이들 가운데 하나를 발로 뒤집은 후에 칼끝 내밀어 그 쓴 투구를 벗기니 익숙한 머리가 보였다.


“하.”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 드니 요스케는 소리 한번 내고는 가만히 주변을 살폈다.


그들이 수문 돌입하며 용서 없이 적을 벤 덕에 사방 바닥에 피가 흥건한 가운데 누군가 하나가 억지로 기어서 벽으로 가는 게 보였다.


자세히 살피니 익숙한 얼굴이며 머리라 여긴 요스케는 흥미를 품고 그에게 다가갔다.


“여, 동향인.”

“······네놈은 누구냐?”


일본어로 거는 말에 벽에 몸 간신히 기댄 이가 경계하며 물으니 요스케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누구긴, 너희처럼 팔려서 싸우는 놈들이지.”

“······흐흐흐, 막부에서 이걸로 재미 보고 있다는 소문 듣기는 했지. 그런데 양쪽에 다 팔아치우는 걸 이렇게 실감할 줄은 몰랐는, 쿨럭.”


말하다 말고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낸 그는 주변 보며 이미 아는 얼굴 하나 없는 걸 보고 자신의 가슴께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끝났다.


그도, 이 구릉연곽도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였던 탓인가, 그는 돌연 처연한 눈으로 요스케를 불렀다.


“거기 당신.”

“유언이라도 남길 생각인가?”

“아니. 편하게 보내주면 좋은 걸 알려주지.”


편하게 보내달라는 말에 요스케는 영 께름칙한 얼굴이었으나 어느새 다가온 무사시의 생각은 달랐다.


“이자는 이미 글렀으니 동정 베풀어 주고 정보 얻으면 그것도 좋은 공이 될 것입니다.”


무사시가 하는 말에 요스케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여 승낙했다.


이에 무사시가 다가가서 칼을 높이 드니 사츠마 사내는 웃으며 물었다.


“노인장, 이름은?”

“미야모토 무사시.”

“허?”


예상치 못한 이름에 그는 놀랐다가 더욱 크게 웃었다.


“영광이군.”

“남길 말은?”

“있지.”


그는 두 눈을 지그시 감더니 또렷하게 말했다.


“우린 찻잔을 내어주지 않을 거야.”

“!?”


놀라면서도 단박에 사내의 목을 벤 무사시는 사방 둘러보더니 심각한 얼굴로 요스케를 돌아보았다.


“주군.”

“그가 뭐라고 했습니까?”

“당장 나가야 합니다.”

“예?”


묻는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기대한 것이 아니니, 요스케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에 무사시는 무어라 설명해 주고 싶었으나 일변한 상황은 그럴 여유가 없다는 걸 알려주었다.


“부, 불이 올랐습니다! 중앙과 상층에서요!”


이번에 제법 분투하였는지 몸을 피칠갑한 무사시의 제자 신타로가 크게 놀라 외쳤다.


제자가 외치는 소리에 때가 임박하여 이미 시간이 없다는 걸 안 무사시는 설명을 포기하고 외쳤다.


“당장 나가야 합니다! 전원, 당장 배에 올라서 물러나라! 어서!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강으로 나가!”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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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 444화 성문 공방 +4 23.12.24 210 16 13쪽
444 443화 물러날 수 없는 자리 +3 23.12.23 203 15 13쪽
443 442화 상잔 +2 23.12.22 209 17 13쪽
442 441화 동관풍운 +4 23.12.21 234 17 12쪽
441 440화 막역지우 +2 23.12.20 222 17 14쪽
440 439화 욕심을 부려야 할 때도 있다 +3 23.12.19 239 16 13쪽
439 438화 갈림길 +3 23.12.18 218 14 12쪽
438 437화 도적인가 이웃인가 +5 23.12.17 232 17 13쪽
437 436화 천하는 쉬지 않는다 +2 23.12.16 239 16 12쪽
436 435화 사대부의 나라 +4 23.12.15 268 17 14쪽
435 434화 새로운 이웃 +3 23.12.14 232 19 12쪽
434 433화 노신과 황제 +4 23.12.13 233 14 13쪽
433 432화 관중왕 +3 23.12.12 224 15 13쪽
432 431화 죽은 말과 산 말 +3 23.12.11 228 18 13쪽
431 430화 패인 골을 메우기는 어렵다 +3 23.12.09 248 15 14쪽
430 429화 높을수록 떨어질 때 아프다 +4 23.12.08 258 13 15쪽
429 428화 산둥의 주인 +8 23.12.07 281 16 16쪽
428 427화 하늘의 뜻을 받고 덕을 세우고자 하는 자 +7 23.12.06 286 20 17쪽
427 426화 저울질 +6 23.12.05 240 16 13쪽
426 425화 중간 +7 23.12.04 256 16 14쪽
425 424화 두 사람의 결심 +2 23.12.03 257 15 12쪽
424 423화 삼국 조정 +3 23.12.02 291 12 12쪽
423 422화 경계 +2 23.12.01 272 14 12쪽
422 421화 중재 +5 23.11.30 274 18 13쪽
421 420화 억겁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7 23.11.29 268 18 13쪽
420 419화 거부할 수 없는 제안 +5 23.11.28 245 17 13쪽
419 418화 땅의 용도 +4 23.11.27 254 18 13쪽
418 417화 멈추는 것은 언제인가 +4 23.11.26 249 19 13쪽
417 416화 승전 아닌 승전 +2 23.11.25 261 2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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