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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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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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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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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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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2쪽

578화 모두가 거래한다

DUMMY

578화 모두가 거래한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산둥 감찰로 미적거리던 좌량옥은 남경에서 급히 부른다는 말에 곧장 감찰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온 그를 기다리던 것은 하남 수군 총병 직책과 이미 부총병으로 준비를 시작한 황주였으니 좌량옥은 눈을 부랴리며 재차 물었다.


“이건 계획에 없는 일이란 말이다!”

“예?”


이만하면 잘 풀린 게 아닌가 싶었던 황주는 좌량옥이 하는 말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에 좌량옥은 한숨지으며 본래 생각한 구도를 입에 담았다.


“병부시랑 진신갑 대인을 뒷배로 두고 남경 조정에서 옳은 말 하는 자가 된다. 어렵다면 개봉으로 가지 않고 적당히 명나라 국경 내부를 돌며 시랑 대인에게 연락을 긴밀히 취하여 싸우지 않고 시간을 번다. 이게 본래 내가 꿈꾸던 일이다.”

“그러셨습니까?”

“그래!”


답답함에 크게 소리친 좌량옥은 못마땅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최악은 아니라고 한들 그저 최악만 면한 신세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냔 말이다!”


개봉왕(가칭)이 되면 전에 재주껏 살아온 덕에 지금은 규모나 질이 전에 비하면 보잘것없음을 넘어서 오히려 없는 게 낫지 않은가 싶은 이들을, 잔당이라는 말이 훨씬 나아 보일 부스러기 같은 병사들을 이끌어야 한다.


이끌기만 하면 다행이나 그 병사들로 개봉을 탈환하여야 함을 생각하면 이건 말만 그렇게 하지 않았지 가서 죽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어서 수군을 이끌고 청나라의 수군을 저지하는 일을 맡게 되었으니 전에 비하면 사정은 분명히 나아졌다.


허나 사흘 굶던 이가 한 끼 먹을 주먹밥 하나를 얻었다고 하여 팔자가 폈다고 하지는 않듯이 좌량옥의 처지도 사실 따지고 보면 별반 다를 거 없는 신세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전장으로 가긴 해야 했고, 당장 대항해에 쏟아부은 걸 생각하면 그렇게 좋은 사정도 아닐 테니 말이다.


“제길, 이대로 준비를 늦추는 수밖에 없나?”

“그건 어려울 겁니다.”


산둥에서 한 것처럼 조금 더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며 뭉그적거릴까 생각하 좌량옥이나 그 생각은 드러내자마자 황주에 의해 부정되었다.


안 그래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기분이 단단히 상했던 좌량옥은 황주를 노려보았는데, 이어진 말에 그는 눈에서 힘을 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상께서 ‘속히’ 준비하여 적의 흉계를 막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인께서도 들으신 게 아니었습니까?”

“······끄응.”


앓는 소리로 대답을 갈음한 좌량옥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의흥제 주자랑이 그를 불러 수군 총병으로 임명하며 분명하게 일렀으니, 속히 준비하여 수군을 이끌고 가라고 한 것이다.


단순히 나가서 싸우라는 것에 미적거림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황제가 직접 말하여 명했음에도 미적거린다는 건 솔직히 죽고 싶어 환장한 태도며 짓거리였다.


“또한 황상께서 싸워서 이기라고 하신 것은 아니니 서둘러 준비하는 게 더 나을 것입니다.”


저들이 어떠한 수작을 꾸미고 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본디 이러한 일은 먼저 준비하고 나서는 이가 유리한 법이니 황주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옳은 말이라고 하여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싸워서 이기지 않으면 뭐! 우리가 모습을 보이면 그 한간이며 오랑캐들이 살려줍쇼, 그렇게 말하며 도망이라도 한다는 말이냐?”

“그렇지는 않겠지만······.”

말끝을 흐린 황주는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 모습에 좌량옥은 일단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고갯짓하니 황주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서두른다고 한들 솔직히 말해 우리가 앞서긴 어려운데, 만약 일부러 출병을 질질 끈다면 황상의 분노를 살 것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좌량옥은 한숨이 절로 나오는 듯 하나 이어진 황주의 말에 그 한숨이 도로 쏙 들어갔다.


“다만 물길에 익숙하지 못해 잘못 가는 것은 저희 잘못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호오.”


솔깃하게 하는 말에 좌량옥은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상황을 그렸다.


이내에 결론을 내린 그는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지. 그러면 부총병, 자네는 일부 선단을 준비하는 대로 먼저 출발하게.”

“머, 먼저요?”

“그래. 가서 물길들을 잘 살피고 우리가 아는 그대로인지 확인하게. 그리고 내가 뒤따라 본대를 이끌고 가며 살피지. 그러면 저들이 우리가 있음을 알아서 조금은 위축될 것이고, 잘하면 싸우지 않으면서 생색내는 일도 어렵지 않을 거야.”

“청나라가 과연 그렇게 하겠습니까? 하남 수군은 사실상 극히 일부를 제하면 새로이 초모하는 이들입니다.”

“뭐, 가도 시절부터 단련된 이들에게 미칠 수 있다고는 나도 기대하지 않아.”

한간이라고 부르며 경멸하는 무리지만 그 실력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정말 만만했다면 청나라에서 그렇게 높이 대우하며 북경이 온전할 무렵에 남경을 지킨답시고 해안 포대를 정비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총병 말을 들으니 내 생각이 하나 떠올랐소이다.”

“제 말을 들으시고요?”

“그래, 부총병 덕이외다.”


어느새 분노가 가라앉아 점잖게 변한 좌량옥의 목소리는 제가 생각한 것을 그대로 흘려냈다.


“초모하는 일이 우리만 인가 하면 적어도 그것은 아닐 터, 과연 놈들이 굳이 우리와 싸울까 생각하니 그건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



“아깝구나, 너무나도 아까워.”


줄을 지은 수레에 실린 것들은 양곡들이니 이는 명나라 남경에 보내기 위한 순나라의 조세였다.


본디 조세는 은을 이용하여 냄이 마땅하나 순나라는 이제 막 기틀을 잡아가는 나라라 은보다는 양곡을 이용해 세를 보내고자 했다.


그러나 정한 것은 그들일지언정 이조차도 아깝기 그지 없으니 순나라 이부상서 이암은 저도 모르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말이지, 자네가 하는 말에 이만큼 동감하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를 지경이라니까.”


성미대로 농을 섞어가며 동감한 이는 순나라 예부상서 우금성이니 그는 줄 지어 이동하길 기다리는 수레들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수확이 좋아서 풍족하건만 아쉬움을 토로하는 날이 올 줄이야. 이런 건 상놈들이나 할 생각이 아닌가 싶었는데, 사람이란 참 모를 일이군.”

“상놈이라. 어쩌면 상놈도 상놈 나름인 걸지도 모르지.”


이암이 하는 말에 우금성은 우습다는 듯한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좋은 상인이 있고 나쁜 상인이 있다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그럴 리가.”


세상이 혼란하여지면 반드시라고 하여도 좋을 정도로 잇속을 챙기는 무리가 생기기 마련이니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재에 밝은 이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본래부터 이재를 좇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의 비중이 많은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상인들을 억울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그렇게까지 옹호하여야 할 이들인가 하면 이암은 그건 아니라고 여겼다.


상인이 천하고 그런 게 아니라 살아남은 상인은 이재를 좇은 이들이니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 심성이 좋지 않은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상인들이 이재를 취하는 수법이며 심상은 실로 사람다움이 없으니 그들을 불쌍히 여길 시간은 농민들을 신경 쓴 후에라도 늦지 않아. 다만 이런 생각을 하였을 따름이네.”

“무슨 생각?”


우금성이 묻는 말에 이암은 대수롭지 않다고 하듯 말을 덧붙였다.


“우리도 때때로 상놈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네.”

“우리가?”


다른 사람이 하였다면 당장에 그 모욕을 집어치우라며 멱살을 잡았을지도 모를 말이었다.


하지만 이암이 하니 무언가 내밀한 뜻이 있겠다고 여긴 우금성은 기대하는 얼굴로 물었다.


“어째서 그런가?”

“거래라는 것이 꼭 양곡이 오가며 은이 오가야 거래가 아니지. 우리는 명나라를 상대로 거래했고, 백성들을 상대로 거래했네.”


거래했다고 말한 후에 이암은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하듯 말을 덧붙였다.


“그것도 아직 없는 것으로, 혹은 곧 사라질 것으로 거래했지.”

“그리고 정왕 전하와도 거래했다?”


알겠다는 얼굴로 말을 붙이니 이암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물론 마지막은 사라질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건 일생일대의 커다란 거래, 여불위에 비할 정도로 큰 거래지만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래서야 세상천지가 다 상놈이라는 말이니 영 떨떠름한데.”

“춘추가 시대의 이름이 된 때가 그저 우연이 아니며 공자나 맹자께서 분연히 일어난 것이 괜한 일이 아니라는 증거일지도 모르지.”

“학술적으로는 흥미롭긴 한데,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


너무 파고들어서 현실을 잊지 말라는 충고에 이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야. 그래, 이게 무사히 도착하면 남경에서도 우리에 대한 의심을 풀겠지.”

“적어도 3년, 아니 5년은 적당한 구실이 생기지 않는 한 이렇게 보내야 할 거야.”

“3년도 길건 만 5년이라.”


이암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그 시일이 얼마든지 더 길어질 수도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구태여 그것을 논하진 않았으니, 대신 그는 다른 방향으로 말을 이었다.


“아깝구나. 이게 있다면 3년으로 확실하며 2년이 되기 전에도 가능할지 모르거늘.”

“그것은 나도 동감이야. 하지만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건 잘 알고 있지 않나. 자네 말따나마 우리는 거래했네.”


거래했다고 한 우금성은 아쉬움과 씁쓸함을 담아서 말을 이었다.


“하늘이 도움에 도움을 더한 경우에나 가능한 몽중몽이네. 그런 것에 기대기에는 현실이라는 놈이 그리 녹록지 않음을 자네도 나도 알지.”

“그래, 알지.”

현실을 논하는 말에 이암은 수긍하나 그 눈 속 깊이 담긴 것은 기대며 열망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하늘은 변덕스럽더군.”

“변덕이 우리에게 좋은 일이 될지 아닐지는 모르네. 설령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분다고 한들 반드시 목표에 좋은 일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


고개를 흔든 우금성은 잠시 생각하더니 예시를 들었다.


“가령 이들이 천재지변을 만나서 남경에 도착하지 못하였다고 치세. 그러면 다음에는 비슷한 핑계 혹은 어려움을 들 수 있겠지만 당장에 죽고 잃어버린 것은? 대의를 위한 희생이 필요한 걸 부정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희생이 있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

“자네는 달가워할 줄 알았는데?”

“어허, 어디 예부상서에게 그런 말을 하나.”


장난스레 말한 우금성은 슬쩍 주변을 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일어나면 달갑기는 하겠지. 하지만 일어나라고 고사 지냈다는 말이 무슨 도움이 되나?”


도움이 되고 아니를 따지는 말에 이암은 참으로 우금성 다운 말이라고 여기며 피식 웃었다.


“자네는 언제고 자네답군그래.”

“칭찬으로 듣지.”


말과 함께 멀리서 수송대 지휘관이 호령하는 모습을 본 우금성은 움직이기 시작한 행렬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생각은 해두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생각은 해둔다? 무언가 들은 게 있나?”


이암이 눈을 빛내며 물으니 우금성은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아니. 하지만 슬슬 무언가 일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네. 추스르는 일은 명과 청 양쪽 모두 어느 정도 끝났을 테니 말이야.”

“옳은 말이야. 천명을 한 번에 쥐지 못한다면 적어도 수십 년, 길면 백 년도 넘게 서로를 노려보게 되지. 그것이 싫다면 증명하기 위해 나서야 할 터, 무언가 하고자 하면 우리 순나라와 명나라 사이가 가장 빠르게 무얼 하기 좋지.”


산둥에 감찰로 명나라며 청나라에서 사람이 갔음은 순나라에도 전해졌으니 시일을 생각하면 무언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생각하며 이후의 일을 상상하던 이암은 도중에 생각을 멈추고 쓰게 웃었다.


“정말 상놈이 된 기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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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610화 희생과 목소리는 비례한다 +2 24.06.15 87 13 14쪽
610 609화 누구나 살고 싶다 +3 24.06.14 89 15 12쪽
609 608화 적을 믿어라 +4 24.06.13 85 15 14쪽
608 607화 솎아내기 +1 24.06.12 104 12 14쪽
607 606화 쇠와 나무 +2 24.06.11 102 13 11쪽
606 605화 돌아서 가는 게 빠르다 +1 24.06.10 92 12 12쪽
605 604화 오늘과 내일 +1 24.06.08 111 11 12쪽
604 603화 같은 진지 +1 24.06.07 101 14 12쪽
603 602화 희생이 더 크면 의미가 없다 24.06.06 96 14 12쪽
602 601화 어울리는 일 +2 24.06.05 98 16 13쪽
601 600화 동상이몽 +5 24.06.04 94 20 14쪽
600 599화 의도와 결과 +1 24.06.03 93 16 13쪽
599 598화 영웅 +1 24.06.02 98 15 12쪽
598 597화 상상할 수 없는 세상 +2 24.06.01 97 17 13쪽
597 596화 전쟁에서 가장 먼저 부르짖는 말 +1 24.05.31 101 13 12쪽
596 595화 준비는 누구나 한다 +1 24.05.30 103 9 12쪽
595 594화 자리와 사람 +1 24.05.29 100 13 12쪽
594 593화 고도(古都) +1 24.05.28 93 12 12쪽
593 592화 세상은 준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2 24.05.27 109 13 14쪽
592 591화 두 번째 호고 +1 24.05.26 103 15 13쪽
591 590화 살아있으면 계속할 수 있다 +1 24.05.25 106 15 13쪽
590 589화 예상은 언제나 어긋난다 +2 24.05.24 97 14 11쪽
589 588화 갚아줄 빚 +1 24.05.23 104 15 12쪽
588 587화 백안백이(百眼百耳) +2 24.05.22 118 15 15쪽
587 586화 구관이 명관 +3 24.05.21 111 14 14쪽
586 585화 도박장에서 버는 사람은 도박장 주인이다 +2 24.05.20 118 17 12쪽
585 584화 칼을 뽑았다면 +6 24.05.19 107 17 13쪽
584 583화 말의 무게 +1 24.05.18 109 17 12쪽
583 582화 의무는 누구의 것인가 +1 24.05.17 113 16 12쪽
582 581화 본으로 삼을 나라 +4 24.05.16 107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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