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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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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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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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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05화 돌아서 가는 게 빠르다

DUMMY

605화 돌아서 가는 게 빠르다


“동관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접근하면 터질 겁니다.”

“그래?”


동관에서 전투를 치르며 이미 한번 비격진천뢰를 경험해 본 팔기의 말에 팔기 지휘관 구왈기야 오보이는 유심히 앞쪽에 가득 깔린 쇳덩이들을 살폈다.


“사방에 쇳조각이 비산한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거기에 전부 다 터지는 시각이 제각각이었습니다. 바로 터지거나, 아예 터지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했고요.”

“과연.”


경험을 토대로 한 정보에 고개를 끄덕인 오보이는 가만히 보다가 피식 웃었다.


“훗, 여기에 있는 건 그 정도로 위험하게 보이진 않는데.”

“예?”


오보이가 자신감 넘치게 하는 말에 팔기는 당황했다.


물론 익숙해진 순간 피해를 받지 않도록 대처하는 수단은 동관 시절에도 많기는 했다.


나무벽을 준비하여 숨거나 터지기 전에 바로 차거나 던지는 등등 단순하지만 아주 대처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려웠으니 그가 듣기에 이는 맹수를 상대하려면 기회를 노려서 눈을 쏘라는 말과 다르지 않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동관 시절에는 어떻게 했지?”

“나무벽을 준비하여-.”

“아니, 우리 쪽 말고.”


고개를 흔들어 제가 물은 게 그게 아니라고 한 오보이는 명확하게 말함으로 그가 듣고 싶었던 걸 확실하게 했다.


“동관에서 적들이 저걸로 공격할 때 말이야. 성벽 위에서 던졌나?”

“저걸 쏘기 위한 포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가 모자라거나 성문에 가까이 오면 그대로 굴리기도 했습니다.”

“역시 그렇군그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혹은 알겠다는 듯이 말하는 오보이였지만 대답하던 팔기로서는 그가 도대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헤아렸는지 알기 어려웠다.


하여 잠시 고민하던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서 물었다.


“바투루, 무슨 말씀이신지 저로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하지.”


질문에 웃으며 입은 연 오보이는 손가락을 들어서 쇳덩이들, 비격진천뢰들이 깔린 걸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거, 어떻게 터지게 할 생각일까?”

“그야 미리 불을 붙인 게 아니겠습니까. 전에도 그렇게 하여······아니군요.”


경험에 의거하여 대답하던 팔기는 방금 한 말에 크나큰 문제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기를 알기 어렵겠습니다.”

“그래. 우리가 언제 올 줄 알고 불을 미리 붙여두겠나.”


불이란 붙으면 제멋대로 움직이기 일쑤다.


그런 불길이 사람의 말대로 타라고 할 때만 타고 그러지 말라고 하여 멈췄다면 세상에 화재(火災)라는 말이, 불이란 표현에 재난이라는 말이 붙었을 리가 없다.


“화승을 따로 준비하고 우리가 접근하면 불을 붙일 생각이겠지.”

“저만큼 길면 도중에 꺼질 겁니다. 아니면 다 타기 전에 질주하여 통과할 수도 있고요.”

“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네.”


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오보이는 곧바로 그가 예상한 바를 입에 담았다.


“그럼 당연히 대비를 하고 대안을 세웠겠지. 아니라는 안일한 소리는 말게. 그러면 너무 슬퍼지지 않나.”

“슬퍼진다니, 무엇이 말입니까?”

“그런 지극히 단순하며 마땅히 해야 할 일도 하지 않는 어리석은 무리에게 우리 청나라가, 만주족이 애먹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자신들이 벌인 전쟁, 그리고 정복 활동 자체의 가치를 낮춘다는 말이니 팔기는 저도 모르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라는 건 실로 묘하여 편하게 얻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편하게 얻어서 이루거나 얻은 것이 가치가 낮아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


“불화살을 준비했겠지. 아니면 흙 아래에 화약을 깔았을 수도 있고.”

“그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낭비지 않겠습니까.”

“예친왕께서 이르셨지. 저들이 원하는 건 오로지 하나, 시간이라고.”


전에 나눈 이야기를 떠올린 오보이는 서늘한 눈으로 자신들이 돌파해야 할 장소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도 무엇이 일어날지, 어떤 술수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걸리는 순간 반드시 그들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 터였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한참을 생각하던 오보이는 돌연 생각을 바꾸었다.


“좋다. 네놈들이 그토록 원한다면 주도록 하지. 그 시간이라는 걸 말이다.”


얼핏 들으면 마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말이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오보이에게는 그럴 생각이 눈곱 만큼도 없었으니 그의 이어지는 말이 이를 증명했다.


“허나 네놈들이 바라는 정도는 아닐 것이다.”



***



“놈들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무슨 생각일까요?”


망루에서 제게 묻는 사제 손가망의 물음에 대리국 장수 이정국은 딱딱한 얼굴로 멀리 보이는 청나라 군세를 살폈다.


그라고 하여 무언가 뚜렷하게 아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직감이 계속 불길하게 울리고 있으니 이정국은 무언가 벌어진다고 여겼다.


“이대로 다시 물러나면 참 좋겠습니다만.”


손가망이 하는 말에 이정국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지금 나온 말이 얼마나 부질 없으며 동시에 얼마나 매혹적으로 들리는 제대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럴 리가 있나. 저번에 진지가 있음을 보고 물러가고는 다시 왔다. 그것도 전과 그렇게 변함이 없는 규모, 구성으로 말이다. 이러고 다시 물러간다고?”


스스로 말하고도 가망이 없다는 걸 절실히 느낀 이정국은 미련을 떨치겠다고 하듯 터무니없는 말들을 꺼냈다.


“그건 하늘이 저놈들 지휘관을 천벌로 죽이지 않는한, 아니 그러고서 남은 이들도 벼락에 맞거나 하지 않는한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하하하!”


별로 웃기지 않는 농담이었으나 손가망은 크게 웃었다.


이윽고 웃음을 그친 손가망은 냉정하게 잘라서 말했다.


“하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거기에 있을 뿐입니다.”

“하늘은 그럴지도 모르지.”

“도교에서 말하는 상제며 불교에서 이르는 부처 그리고 서역 사람들이 이르는 천주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손가망의 말에는 그 아직 약관에도 이르지 못한 이가 말한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관적이며 냉소적이었다.


“그런 게 있다면 세상이 왜 이렇겠습니까?”

“바라는 이들이 너무 한결 같이 자신의 일만 바라서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면 단편적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지금 우리 모두는 그렇지 않더냐.”

“······우리는 대의를 위했습니다.”

“아니.”


고개를 가로저어 말한 이정국은 전에 사천에 갔다가 본 광경을, 자신들에게 태평성대가 찾아왔다고 하듯 평안하게 생업에 매진하는 광경을 떠올리며 말을 덧붙였다.


“그건 ‘우리가 생각한’, 아니 ‘우리가 바란 대의’였다.”

“······.”


이정국의 대답에 손가망은 말문이 막히는 느끼며 입을 달싹였다.


하지만 움직이기만 할뿐 소리는 나오지 않으니 이정국은 그런 사제를 보며 화제를 돌렸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는 이 논의로 시간을 보낼 수 없게 되었다고 함이 옳았다.


“놈들이 움직인다.”

“후퇴입니까?”

“그렇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만 아니다.”


손가망의 바람이 담긴 말을 고개 저어 부정한 이정국은 적들의 움직임을 보며 안색을 흐렸다.


그리고는 손가망을 돌아보니 그와 눈을 마주한 이정국은 천천히 물었다.


“방금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 하나가 생겼다. 무엇부터 듣고 싶으냐?”

“좋은 소식부터 듣지요. 그런 게 정말 있다면 말입니다.”

“있고 말고.”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연 이정국은 뜸들이지 않고 좋은 소식을 입에 담았다.


“적어도 하루, 아니 이틀은 저들과 싸울 일이 없을 거다.”


청나라 군사들이 바로 앞에서 하루에서 이틀을 그냥 지켜만 보고만 있을 거라는 말이니 이상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정국이 보는 것은 손가망도 함께 보고 있었기에 그는 이내에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더불어서 이정국이 아직 말해주지 않은 나쁜 소식이 무엇인지도 함께 알았다.


“이틀이 끝이군요.”

“그래.”


이정국의 대답과 함께 진지 앞이 크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밝아지는 불길은 사방에서 폭음을 동반하니 그것은 그들이 대비한 방어책, 혹은 부려둔 수작이라고 해야 할 것들이 무력화되는 모습이며 소리였다.


“서둘러라. 가능하면 오늘 중으로 사방에 대비를, 어렵다면 전면이라도 보강을 완성해야 한다.”

“물론입니다.”



***



“잘 타는군.”

“폭음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땅에도 무언가 수작을 부린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기름이나 화약이려나?”


그들이 직접 놓은 불길이 점차 대리국 진지로 향하면서 비격진천뢰들을 격발한다.


폭음과 함께 쇳조각이 비산하고 사방을 헤짚으니 만약 사람이 있었다면 수없이 다치고 목숨에 경각에 달하였을 것이다.


그런 동료들을 보고 사기가 내려감은 덤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었다.


그들은 빠르게 달려서 비격진천뢰 구간을 통과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그 구간을 날려버리는 걸 골랐다.


직접 횃불과 불화살로 전부를 불사르는 방법을 취하였으니 이제 불길과 시간이 그들의 앞길을, 진군로를 깨끗하게 하여 줄 터였다.


다만 이로 인해 잠시 적들을 두고 보아야 하니 그 점에 오보이로서는 못내 아쉬웠다.


“쯧, 이래서야 적어도 이틀은 가만히 두고 보게 생겼군.”

“적은 시간이 아닙니다. 안전하게 되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입니다. 결국 저들이 원하는 시간은 얻은 셈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보이지만 다르지.”


휘하 팔기의 말에 고개를 저은 오보이는 진득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후후. 그렇지. 분명히 네 말대로다. 난 저들에게 분명히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주어지면 유리해지는 건 저들이 다가 아니다. 우리도 그렇지.”

“예친왕 전하께서 도착하심을 기다리실 생각이십니까? 전략적으로는 좋은 판단이지만 그래서야 바투루께 공이 돌아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공을 탐내어 허튼 짓을 하면 나며 대청 전체로 보아도 득이 되지 않는다.”


눈을 빛내며 말한 오보이는 가만히 시일을 헤아린 후에 웃음을 짙게 했다.


“서두름으로 여러 번 번투를 벌이고 저들을 친 끝에 반절에 이르는 손상과 십 수일의 시간 허비와 기다림 끝에 한번 전투로 모든 걸 끝내어 손상을 줄이고 시일도 열흘 안쪽으로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지.”

“저들의 대비가 더욱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안쪽에서 말이냐? 그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도 충실해질 거다.”


안심하라는 투로 말하던 오보이는 문득 마냥 쉬는 것보다 조금은 나은 방법을 떠올렸다.


“그렇군. 그저 기다리는 것도 재미가 없으니 작은 일이라도 할까. 여기서 낙양과 동관 방향, 사람을 뽑아서 살피게 해라. 전에 그 사이에 대리국 군사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그러한지 확인하고 싶다.”

“알겠습니다.”


오보이의 명에 팔기는 곧장 말을 몰아서 날랜 사람 몇을 뽑아서 명령하니 곳 수백에 이르는 팔기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멀어지는 이들을 살핀 오보이는 느긋한 얼굴로 여전히 불타고 있는 벌판을 보았다.


콰앙!


“이번에는 제법 크군그래. 화약이 많이 들었나?”


폭음이 큰 걸 느끼며 여유롭게 평한 오보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즐겨라. 곧 너희의 마지막이 될 것이니.”



***



청나라 팔기들이 오보이의 지휘에 따라 불을 지른 날로부터 사흘 후.


대리국 사람들은 바라는대로 진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꼭 대리국 사람들의 유리함을 뜻하진 않았으니, 그 사흘로 인해 그들이 상대해야 할 적이 단순히 말을 타고 활을 쏘는 팔기들에 그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저 깃발은······.”


바깥에 휘날리는 깃발을, 분명히 어젯밤만 하여도 보이지 않던 깃발을 발견한 손가망은 말끝을 흐리며 혹시나 하는 얼굴로 사형 이정국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그가 제대로 알아보았음을 알려줄 따름이었다.


“북경에 있다는 귀한 놈이지. 아마도 지금 청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자, 그리고 북경을 점령한 자.”

“난적, 아니 강적이 왔습니다.”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그가 이끄는 본대가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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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7 ageha19
    작성일
    24.06.10 21:05
    No. 1

    대리국 원정군의 본격적인 첫 전투. 더군다나 상대는 그 교활한 도르곤... 장헌충의 유지를 이은 이들은 과연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지는군요.

    찬성: 2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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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 627화 등롱 +1 24.07.03 93 13 12쪽
627 626화 들으면 궁금해진다 +2 24.07.02 93 15 13쪽
626 625화 자질구레한 일 +1 24.07.01 95 14 12쪽
625 624화 알지만 모르는 사람 +2 24.06.30 120 15 13쪽
624 623화 숫자를 살리는 방법 +2 24.06.29 105 16 12쪽
623 622화 단단한 쐐기 +1 24.06.28 102 15 12쪽
622 621화 의복과 말 +1 24.06.27 95 17 13쪽
621 620화 정면돌파 +2 24.06.26 99 18 16쪽
620 619화 치부 +1 24.06.25 105 14 13쪽
619 618화 가장 안전한 방패 +3 24.06.24 100 14 15쪽
618 617화 증오 +1 24.06.23 111 14 13쪽
617 616화 뒤틀린 계획 +1 24.06.21 95 16 12쪽
616 615화 현실은 상상을 넘는다 +2 24.06.20 94 14 12쪽
615 614화 숨긴다고 하여 보이지 않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1 24.06.19 105 15 13쪽
614 613화 고변 +2 24.06.18 94 14 11쪽
613 612화 순수하지 않은 의도 +1 24.06.17 92 14 13쪽
612 611화 반쪽짜리 영광 +4 24.06.16 99 14 14쪽
611 610화 희생과 목소리는 비례한다 +2 24.06.15 92 13 14쪽
610 609화 누구나 살고 싶다 +3 24.06.14 94 15 12쪽
609 608화 적을 믿어라 +4 24.06.13 90 15 14쪽
608 607화 솎아내기 +1 24.06.12 108 12 14쪽
607 606화 쇠와 나무 +2 24.06.11 107 13 11쪽
» 605화 돌아서 가는 게 빠르다 +1 24.06.10 97 13 12쪽
605 604화 오늘과 내일 +1 24.06.08 115 12 12쪽
604 603화 같은 진지 +1 24.06.07 110 14 12쪽
603 602화 희생이 더 크면 의미가 없다 24.06.06 100 14 12쪽
602 601화 어울리는 일 +2 24.06.05 100 16 13쪽
601 600화 동상이몽 +5 24.06.04 99 20 14쪽
600 599화 의도와 결과 +1 24.06.03 98 16 13쪽
599 598화 영웅 +1 24.06.02 101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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