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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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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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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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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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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04화 오늘과 내일

DUMMY

604화 오늘과 내일


“적들이 물러납니다.”


침착한 어조로 보고하는 또 다른 사제이자 이곳 진지 조성 및 감독을 맡은 이, 손가망의 말에 대리국 장수 이정국은 긴장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운이 아주 없는 건 아닌 모양이군. 만약 저들이 그대로 달려들었으면 위험했을 거야.”


불길에 타오른 진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요술이나 환상이 아니었다.


그저 처음부터 시간만 끌 진지와 제대로 싸울 진지를 구별하여 지었을 따름이었다.


다만 시간이 촉박하여 진지를 짓고서 이동한 게 아니라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군을 나누어 진군하였으니 기실 불을 지른 진지와 이곳 진지는 건축하는 시일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당장 저들이 화포에 놀라 후퇴한 것은 실로 천만다행이었다.


앞에 나아가 건축진 진지는 어차피 여차하면 태우고 도망할 생각으로 지은 것이나 이곳에 있는 것은 일전을 각오하고 만들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었다.


“손 사제, 얼마나 완공했나?”

“전면에서 보면 모르지만 조금만 측면으로 돌면 후방의 대처가 미흡함이 훤히 보일 지경입니다. 거기에 전면도 예정대로라면 높이며 두께를 보강해야 하니······.”


말끝을 흐리며 남은 일수를 계산한 손가망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곤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적어도 일주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다고 해도 아마 사흘은 족히 들여야 완성할 겁니다.”


지금은 착각할 정도로 비슷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서 그것과 같아서야 청나라를 막기란 요원하다.


당연히 지금 모습은 완성된 모습이 아니었고, 심지어 이정국이 불을 지르고 도망한 진지에 비교하면 틈도 많았다.


갈길이 멀다는 말이 참으로 피부에 와닿는다고 느낀 이정국은 애써 밝은 얼굴로 크게 말했다.


“하하하! 그래도 그만하면 아주 나쁘진 않으니 좋지 않나! 그리고 이제 어찌 또 하루를 벌었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자고!”

“하루만이겠습니까. 그곳에서 여기까지 온 걸 생각하면 이틀은 되겠지요.”


뜻은 다소 달라도 방금 청나라 군사들이 물러나기 전까지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똑같이 긴장하던 사제 애능기의 말에 이정국은 쓴웃음을 지었다.


“후후, 그렇다면 정말 좋겠지만 오늘 이리 빠르게 온 것을 보면 이틀은 아니겠지. 기껏해야 반나절을 더 붙이면 다행이지.”

“저들이 오면서 반나절, 돌아가서 본대랑 함께 오면서 반나절이면 충분히 이틀이지요.”


애능기가 하는 말에 이정국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이내에 고개를 흔들었다.


“네 말이 맞다고 한들 너무 빨라. 우리의 임무는 가능하면 놈들을 오래도록, 최소 한 달은 붙잡아 두는 것이다.”

“그랬지요.”


고개를 끄덕여 대답한 애능기는 그 성정이 어디 가지 않는다고 하듯 속으로 생각하던 것을 입에 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습니다만.”

“달라진다. 그걸 알기에 이 위험한 일을 받아들인 거다.”


이정국이 단언하여 말하니 애능기는 이해는 하나 못내 의심스럽다는 투로 물었다.


“그럴 가치가 있습니까?”

“있다.”


주저함이 없는 대답에 애능기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나도 나지만 사형도 대단합니다.”


시작은 감탄이나 이내에 애능기의 말에 담긴 감정은 복잡하게 변했다.


“제길, 그렇게 주저 하나 없이 말하면 일단 믿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단 말입니다.”

“그건 좋은 일이구나.”


이는 그저 빈말이나 예의상 꺼낸 말이 아니라 이정국이 속에 품은 진심이었다.


당장 그들이 처한 상황은 결코 쉽지 않으니 서로가 서로를 믿으며 힘을 합쳐야 했다.


그러니 애능기가 일단은 저를 믿어주겠다고 하는 말은 이정국에게 있어서 참으로 달갑고 반가운 것이었다.


“그럼 사제에게 명령 하나 내려도 되겠지?”

“말씀하시죠. 이 애능기, 지금이라면 사형을 위해 목이라도 걸 수 있습니다.”


곧 죽어도 대리국을 들먹이지 않으며 여전히 개인적인 관계를 논하는 애능기의 모습에 이정국은 실소가 나올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키고 동한다고 하여 무작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분위기를 해하는 일이니 이정국은 나오는 실소를 참고 누르며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여기서 버티기는 어렵다.”

“당연한 소리를 하십니다.”

“그러니 너는 당장 진지를 떠나서 흔적을 만들어라.”

“흔적? 무슨 흔적을 말하시는 겁니까?”


의도를 알기 어려워 되묻는 애능기의 말에 이정국은 그를 똑바로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또 다른 진지, 그리고 우리가 포기했다는 흔적.”



***



“전에 명나라 북방군을 이끈 홍승주가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지.”

“심양이 위협당했을 때를 이르심이군요.”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이 하는 말에 팔기 지휘관 구왈기야 오보이는 선대 황제인 홍타이지 시절에 저들이 청나라 깊숙이 치고 들어왔던 일을 떠올렸다.


그도 당시에는 어디든 힘을 보태기 위해서 준비하였고 필요하면 어디든 가서 도우라는 말을 들었던지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가 눈에 띄게 크게 활약할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상당히 까다로운 방식이었다. 당시에도 중간에 북경이며 금주며 산해관 등등을 위협하고 온갖 흔드는 방식으로 상대하고 말리고 조였다. 그런 후에야 그들을 치고 일망타진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지.”


전에 정말 말 그대로 모든 걸 걸었던 일을 기억한 도르곤은 그 마지막을 떠올리며 눈을 깊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니 나는 기회를 잡지 못했어.”

“대청은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끝내지 못했다.”


북경을 얻는 순간 도르곤은 그때 미처 하지 못한 걸 이루었다고 여겼다.


허나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역시 그때 더 면밀하고 완벽하게 계획을 짜고 행동해야 하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때때로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러나면서 진지를 세우고 있는 셈인데,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지연. 오로지 시간을 끄는 일에만 몰두하는 방식이다.”


적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읽어낸 도르곤이나 그 의도 너머에 있는 것까지는 아직 읽어내기 어려웠다.


무엇이 달라질까 싶었기 때문이니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한동안 고민했다.


허나 짚이는 구석이 없다면 없고 있다면 반대로 너무 많아 도르곤은 좀처럼 대답을 내기 어려웠다.


“전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보이의 물음에 도르곤은 생각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저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신속하고 강해야 합니다.”


일말의 주저도 없이 돌아온 대답에 도르곤은 실로 오보이 다운 대답이라고 여기며 웃었다.


“후후, 그렇지. 신속하고 강해야 하지. 그리고 용맹해야 하고, 나아가고 물러남에 주저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조건, 좋은 병사의 조건이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할 일이 아니다. 아니, 할 일이 맞기는 하지만 전쟁을 벌이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에 가깝지.”


도르곤이 하는 말에 오보이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공감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과연 그러합니다. 허면 그것들은 전쟁을 벌이기 전에 필요하다면 전쟁을 하는 중에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바투루라 이름 높은 그대에게 이런 가르침을 청함 받다니 영광이군. 헌데 그것만 듣고 싶은가?”


오히려 되묻는 말에 오보이는 잠시 주저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받고 싶습니다.”

“훌륭하군. 그대는 정녕 대청의 기둥이라 하겠어. 부디 오래 보도록 하지.”


오래 보자는 말에 오보이는 내심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은 스스로 점수를 깎아 먹는 짓거리라 여긴 오보이는 아닌척 고개를 숙이며 다음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전쟁 중에 해야 할 것은 간단하다. 하나는 적들이 원하는 대로 풀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 후에 아닌 쪽으로 몰아넣는 것. 다른 하나는 아예 처음부터 적들이 바라지 않는 쪽에서 시작하는 거다.”

“지금은 어느 쪽을 취하고자 하십니까?”

“후자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고 하듯 단언한 도르곤은 근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들이 시간을 벌고자 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시간을 줄여가야지. 바로 진군하여 적들을 친다. 고민할 시간에 놈들을 치고 깨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자신들이 앞으로 취할 지침을 명확히 한 도르곤은 걸음을 옮겨서 지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을 살핀 도르곤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오보이에게 명했다.


“바투루 구왈기야 오보이.”

“예, 전하.”

“전에 이끌었던 이들을 끌고 달려라. 그리고 놈들을 끊임없이 위협해라. 도착까지 사흘이면 충분하겠지?”

“사흘이라니요. 그건 너무 깁니다.”


당장 전에 저들과 대치하였던 곳에서 말을 달려도 숙련된 팔기라면 사흘이면 시간이 차고 넘친다고 할 정도 건만, 지금은 그 거리가 더 줄어든 상태였다.


“하루면 충분합니다.”



***



“빌어먹을, 놈들이 도로 왔다!”

“종을, 종을 쳐!”


뎅뎅뎅뎅


빠르게 울리는 종소리가 위협이 다가왔음을 알리니 대리국 군사들은 다급히 각각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막사 안에서 지휘관들이 직접 상황을 살피기 위해 달려나오니 그들 가운데 가장 앞에 있는 이정국은 망루에 직접 올라 적을 살폈다.


“선발대군.”


불행 중 다행으로 적들은 본대가 아니라 선발대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얼마 전에 그들이 화포 소리로 놀래어 도망하게 하였던 것과 비슷한 규모니 그걸 구별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사형, 아니 장군.”


이정국의 뒤를 이어서 망루에 오른 손가망의 부름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 감정을 여실히 느낀 이정국은 고개를 돌려 사제와 얼굴을 마주하기 전에 남몰래 심호흡하며 표정과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무슨 일이지?”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아직 진지는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밤낮을 구별하지 않고 교대로 돌아가며 진지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아쉽게도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적들의 빠른 대처로 인해 그리 많지 않았다.


당장 사흘을 논한 날로부터 고작 이틀째에 불과하니 당연하게도 예정된 보강은 아직 마무리가 되지 못한 상태였다.


“나도 알아. 하지만 하루는 벌 수 있는 책략이 있지 않으냐.”

저들이 곧바로 돌아온다면 시일이 부족하게 될 것은 뻔하니 이정국은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며 준비한 바가 있었다.


당연히 손가망도 그걸 알았지만 그는 못내 불안을 덜어내지 못하여 입을 움직였다.


“압니다. 통하겠지요. 그 징글징글하고 흉물스러운 것들을 한때는 적으로서 마주하였으니 그게 효과적이라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고작 저들을 상대로 하기에는 아깝지 않습니까.”

“아깝다?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구나.”


아깝다는 말에 이정국이 나무라니 손가망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항변했다.


“잘 쓰면 청나라 본대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비격진천뢰는 분명 그러한 물건들입니다.”


말과 함께 이미 진지 앞에 거리를 두고 박아둔 비격진천뢰들을 바라본 손가망은 그 바라보는 눈망울에 아쉬움을 짙게 드러냈다.


허나 이정국이 보기에 그건 그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였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당장이 없는데 내일을 생각하여도 의미가 없는 법. 그리고 저건 이번에는 그리 유용하지 않을 거야.”


이정국은 그렇게 말하며 제가 들었던 말들을 고스란히 입에 담았다.


“저들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비르지니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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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 627화 등롱 +1 24.07.03 93 13 12쪽
627 626화 들으면 궁금해진다 +2 24.07.02 93 15 13쪽
626 625화 자질구레한 일 +1 24.07.01 95 14 12쪽
625 624화 알지만 모르는 사람 +2 24.06.30 120 15 13쪽
624 623화 숫자를 살리는 방법 +2 24.06.29 105 16 12쪽
623 622화 단단한 쐐기 +1 24.06.28 102 15 12쪽
622 621화 의복과 말 +1 24.06.27 95 17 13쪽
621 620화 정면돌파 +2 24.06.26 99 18 16쪽
620 619화 치부 +1 24.06.25 105 14 13쪽
619 618화 가장 안전한 방패 +3 24.06.24 100 14 15쪽
618 617화 증오 +1 24.06.23 111 14 13쪽
617 616화 뒤틀린 계획 +1 24.06.21 95 16 12쪽
616 615화 현실은 상상을 넘는다 +2 24.06.20 94 14 12쪽
615 614화 숨긴다고 하여 보이지 않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1 24.06.19 105 15 13쪽
614 613화 고변 +2 24.06.18 94 14 11쪽
613 612화 순수하지 않은 의도 +1 24.06.17 92 14 13쪽
612 611화 반쪽짜리 영광 +4 24.06.16 99 14 14쪽
611 610화 희생과 목소리는 비례한다 +2 24.06.15 92 13 14쪽
610 609화 누구나 살고 싶다 +3 24.06.14 94 15 12쪽
609 608화 적을 믿어라 +4 24.06.13 90 15 14쪽
608 607화 솎아내기 +1 24.06.12 109 12 14쪽
607 606화 쇠와 나무 +2 24.06.11 107 13 11쪽
606 605화 돌아서 가는 게 빠르다 +1 24.06.10 97 13 12쪽
» 604화 오늘과 내일 +1 24.06.08 116 12 12쪽
604 603화 같은 진지 +1 24.06.07 110 14 12쪽
603 602화 희생이 더 크면 의미가 없다 24.06.06 101 14 12쪽
602 601화 어울리는 일 +2 24.06.05 101 16 13쪽
601 600화 동상이몽 +5 24.06.04 100 20 14쪽
600 599화 의도와 결과 +1 24.06.03 98 16 13쪽
599 598화 영웅 +1 24.06.02 101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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