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섬
흐릿한 안개의 바다 너머
천 년 동안 잠들어 있는 섬이 있습니다
성벽은 세월에 허물어지고
돌기둥만 외로이 남아
낡은 요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잠들어 있는 공주는
백 년에 한 번씩 잠을 깨어
바깥세상으로 외출합니다
하얀 백조 조각배를 타고
부드럽게 넘실대는 바다를 건너
바뀐 세상으로 발을 내딛습니다
새로운 세상에는
진실을 수호하는 커다란 성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용맹한 왕자는
사냥감을 쫓아 숲을 헤매다가
막 육지로 올라온 그녀와 마주쳤습니다
그대의 이름은?
왕자의 물음에
두 사람의 운명이 얽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랑을 약속하고
어여쁜 키스와 함께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돌아갈 시간이 되었고
공주는 사랑하는 왕자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잊지 마세요 잊지 마세요
저를 사랑한다면
첫 달빛을 받아 피어나는
진줏빛 꽃을 찾아 꺾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어여쁜 공주는 조각배로 돌아가
안개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세상 모든 이들은
또다시 공주를 잊었고
왕자도 하나뿐인 사랑을 잊어버렸습니다
새로운 별들이 뜨고 지길 수차례
왕이 된 왕자는 새로운 배필을 얻어
초야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신방의 향이 피어오르고
우윳빛 살갗의 아름다운 신부는
달빛을 받아 반짝였습니다
왕의 눈에 비친 신부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특히 눈 안에 깃든 진줏빛이 너무나 영롱하여
왕은 손을 뻗어
신부의 맑은 눈망울을 향해 물었습니다
그대의 이름은?
문득 희뿌연 안개가 달을 가리고
열린 창문으로 넘실넘실 차올라
향로를 뒤덮고 침실을 메웠습니다
안개의 바닷속에서
왕은 추억을 더듬으며
오래전에 잊힌 목소리를 떠올렸습니다
채 걷히지 않은 안개 사이로
다시 달이 얼굴을 내밀어
두 사람을 비추었을 때 비로소
두 사람의 운명이 얽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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