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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정(蘭亭)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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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2011년 가을에 작성했던 글


주영숙이 옮기고 각색하고 엮은 
 작품으로 읽는 연암박지원 소설편  
                               -북치는마을/국학자료원-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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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이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린다. 
범이 한 번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가 
굴각이 되어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사는데, 
그러면서 범이 남의 집 부엌엘 들어가도록 
꼬드겨 솥전을 핥게 한다. 
그 집 주인이 갑자기 배가 고파 
아내에게 야식을 짓게 하고, 
그래서 범은 두 번째 사람을 먹게 되고, 
남편 밤참 먹이려다 잡아먹힌 그 창귀는 
이올이 되어 
범의 광대뼈에 붙어살게 된다. 
이올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사냥꾼의 동태를 살피는데, 
만일 깊은 골짜기에 함정이나 화살을 감췄다면 
먼저 가서 그 틀을 벗겨 놓으려고 그런다. 
범이 세 번째로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는
육혼이 되어 범의 턱에 붙어살되 
한평생 알고 지내던 친구들 이름을 
자꾸만 불러댄다.
요상한 꼬락서니에 
다섯 아들이 주거니 받거니 구시렁댔다.
“[예기]에 이르기를, 
‘현자는 과부댁 문에는 함부로 들어서지 않는다.’
라고 했으니, 
저 사람이 필시 북곽선생은 아닐테고…”
“북곽선생은 현자이시니까…” 
“내가 듣기로는 
정나라 성문이 헐어 여우구멍이 났다던데…”
“여우가 천년을 묵으면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대.” 
“저놈은 필시 여우란 놈이 북곽선생으로 둔갑한 거다.”
“여우 갓을 얻으면 큰 부자가 될 수 있고, 
여우 신발을 얻으면 대낮에도 그림자를 감출 수 있고…”
“여우 꼬리를 얻으면 
남을 잘 꼬드겨 자신을 좋아하게 만든다고 하던데…”
“우리 저 놈의 여우를 때려잡아서 나눠 가질까?”
“그게 좋겠다.”
이윽고 
다섯 놈들이 
어미의 방을 에워싸고 들이닥쳤다. 
북곽선생이 깜짝 놀라서 부리나케 내빼는데, 
그 와중에도 행여 남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겁나는지, 
한 다리를 비틀어서 모가지에 얹은 뒤에 
도깨비처럼 춤추고 귀신처럼 낄낄거리며 
문밖으로 빠져나가 들입다 뛰는 거였다. 
그렇게 내닫다가 그만 
들판에 파 놓은 똥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그 속에는 똥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참 버둥거리던 끝에 
지푸라기인지 뭔지를 붙들고 간신히 기어올라 
목을 내밀어 살펴보니, 
뜻밖에 범 한 마리가 길을 막고 앉아있었다. 
범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구역질을 해대면서 코를 싸쥐고 고개를 돌렸다. 
“에그그, 그 선비양반, 냄새 한 번 구리도다.”
 
 -본문 중에서(동양자수[하산]/주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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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은 어느 하루 
조선의 협객 백동수와 함께 
개성 부근을 다니고 있었다. 
황해도 금천군 개성에서 
30리 떨어진 연암골짜기. 
산은 깊고 길은 험난하여 
하루 종일 걸어가도 
사람 하나 만날 수가 없었다. 
고려 때 
목은 이색과 익재 이제현 등 
여러 어진 이가 살았었지만 
후에는 황폐해져 사는 이가 없는 곳. 
처음엔 보봉산 화장사에 올랐는데 
동쪽으로 아침해를 바라보니 
산봉우리가 하늘에 꽂힌 듯하였다. 
마치 홀린 사람처럼 
골짜기로 걸음을 놓았다. 
산이 깊고 험난할 뿐만 아니라 
초목까지 우거져 
가까스로 
시냇물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자니 
기이한 땅이 나타났다. 
평평한 언덕, 
수려한 산기슭, 
하얀 바위, 깨끗한 모래, 
게다가 깎아지른 듯 서 있는 검푸른 절벽은 
마치 산수화 병풍이 펼쳐진 것 같다. 
뭐라 쫑알대며 흐르는 시냇물은 
속이 환하게 들여다보일 만큼 맑고, 
판판한 너럭바위들이 
여기저기 평상처럼 놓인 한가운데서 
잡초 우거진 빈터가 널찍한 품을 벌리며 
그를 부르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부르짖었다.
“난 이제 연암 박지원일세. 
아니 ‘신선 박지원’이란 말이지.”
 
 

나는 처음에 연암 소재의 소설 한편을 쓰자고 연암 글에 관련한 자료를 수집하여 덤벼들었었다.
하다가 어느 순간, ‘지금 이대로 연암 소재의 소설을 씀은 연암에게 굉장한 결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암을 내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는 일이 바쁜 게 아니라,
연암이 쓴 글들, 적어도 문학의 범주에 들어갈 만한 글들을 모두 제대로,
그리고 진정 문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런데 연암의 문장들을 옮기다보니 희한하게도 거기에 시조의 율격이 일렁이고 있는 게 아닌가.
연암의 글이 대부분 시조로 구분되어진다는 말이다.
고전문학이 아닌 현대문학 전공자인 나는 유달리 고전문학에 관심이 많다.
오늘날의 문학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과거의 문학을 먼저 이해하는 게 순서라고 하는 고지식한 사고방식의 발로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옛것이 좋다.
그리고 우리의 시조, 특히 사설시조가 좋다.
그래서 석사논문도 [아픔의 변주곡과 체험적 시조론]이며,
박사논문 역시 시조로써, [사설시조의 변용양상 연구 -한국현대소설을 중심으로]이다.
그런데, 시조라는 장르를 파고들면 들수록 그 궁극적 도달점엔 ‘천손’이 도사리고 있는거였다. ‘시조의 생성 점은 어디인가?’에 대하여 소급하여 파헤치면,
그 시작이 단지 문헌상 증거로서의 ‘고려 말엽’이라는 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혹 삼국시대? 라고 추정해보니 그 결론조차도 개운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내린 정의는 이러하다.

‘시조의 초 ‧ 중 ‧ 종장에 나타나는 열두 걸음의 합리적인 구성은 애초 한국인의 호흡법에 기인한 율격을 기준 삼고 있으며, 시조의 역사는 이 지구상에 우리 겨레가 생겨났던 그 시점과 동일하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우리가 바로 천손이다’라는 견해와 일맥상통하고, ‘상투’라는 상징성과도 통한다.
따라서 오랑캐의 풍습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어린 아들에게 쌍상투를 틀게 했던 연암의 사고방식과도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연암에게 있어서의 상투란, ‘우리가 바로 천손이다.’라는 입증의 표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땅이 줄어들 대로 줄어들어서 이제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만 뿌리박았으나,
그래도 ‘상투’는 까마득한 과거에서부터 중원을 주름잡던 민족 고유의 자존심이고 상징이었다.
상투가 얼마나 중요한 상징이었으면 말에게까지 상투 장식을 했겠는가 말이다.
얼마나 중요하였으면 천마총에서 발굴한 ‘천마도’에 뿔이 달렸다면서
그게 기린일 거라는 추정 하에 어느 박사논문에까지 등장하였고,
그래서 결국 ‘KBS다큐’ 촬영 팀이 중국에까지 가서 그게 ‘기린 뿔’이 아니라 ‘말 상투’였다는 사실을 확인했겠는가 말이다.

아무튼 나는, 필연적으로 동원해야 했던 ‘대 옥편’ ‘사서오경’ 번역본 등이 너덜너덜해져서 이제는 복사하여 새로 붙이고 떨어져 나간 데는 땜질까지 하는 등, 대수선에 들어갔을 지경으로 오랜 시간 연암문학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그의 글과 함께 울고 웃다가 보니, 연암을 연구해본 선학들의 말대로
“연암은 과연 천재였다.” 

하지만 연암이 아무리 희대의 천재였으면 뭘 하는가. 그의 글이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연암소재의 소설’은 감히 쓰지 못한 채로 ‘연암전’을 시작하였고,
연암이 소설을 쓴 시기에 맞추어
광문자전 ․ 마장전 ․ 예덕선생전 ․ 민옹전 ․ 양반전 ․ 우상전 ․ 김신선전 ․ 호질 ․
열녀함양박씨전 등등을 옮겨놓았다.

그냥 놓은 게 아니라, 대부분 ‘사설시조’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독자가 읽기 편하도록 문단 구별까지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연암 소설을 판소리가락의 한국소설로 자리매김해둔 것이다.
그런데 이 변용작업이 비단 소설에만 그친 것은 아니다.
‘시를 시조로 변용하는 게 더 쉽지.’ 싶어서 연암의 한문시를 ‘사설시조’로 재구성하다가,
나는 갑자기 울음을 쏟으면서 외쳤다.

“바로 이거야!”

사설시조의 얼개나 특성 따위는 앞에 약간 언급했으니 생략하겠고, 어쨌든 우리 시조의 생성은 그 시초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생체리듬이 중얼거림이나 노래로 이어져 오다가, 삼국시대쯤에 한자로 표기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
한글로서의 시조 표기는 한글창제 285년 후인 1728년(영조4) [청구영언]에 와서야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시를 한문으로 표현하던 관습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시는 즉 노래이고 시절가였으며 시조였다.

다시 말해, 연암의 시는 그냥 한시가 아니라 ‘우리 호흡방식’에 기초한 음률의 시, 시조였다고 아니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연암의 시 「총석정에서 해돋이를 보고」는 딱 13수의 사설시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조금만 들여다본다.

마을에 개짓던 소리도 뚝 그치고 적막마저 감도니
고요가 극에 달해 서생 마음 으스스한데 
때마침 환청 같은 한 소리, 
귀 기울이니 처마 위 닭울음소리 
‘총석정은 여기서 십리’라 하네. 
기필코 해돋이를 보리라, 넓은 바다 마주하여 

붉은 기운 차츰 풀어져 오색으로 갈라지고 
물결은 멀리서 솟구치어 머리 절로 맑아지네. 

온갖 바다괴물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희화만이 홀로 남아 수레를 타려 하네. 

육 만이라 사천 년을 둥글둥글 내려왔다고
오늘 아침엔 동그라미를 고쳐 네모가 되려하네. 

만 길 깊은 바다 속에서 어느 누가 길어 올렸나.

오호라, 이제야 믿겠노라, 하늘에도 섬돌 있음을.



이와 같이, 연암 박지원의 소설 전부, 산문, 일기, 편지, 시 등 일부를 발췌하되 박지원이 나서 죽을 때까지의 연대순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사설시조 작법으로 변용해보임으로써
작품으로 읽는 연암박지원탄생시키는 바이다.




2011 가을, 난정뜨락에서 주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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