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할매집 옛 사진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는 내가 핸드폰 영상을 반복해서 보자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할지 짐작은 갔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내 능력으로 아이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니까.
사람은 저마다의 고유 특성을 갖는 목소리의 떨림이 있는데, 아이가 우는 동영상에서 특유의 톤을 유심히 들어본 후 백사장으로 나갔다.
파도 소리와 바다의 바람 소리, 그리고 수만 명의 사람이 내는 소리 속에서 눈을 감고 아이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봤다.
또래 아이들이 우는 소리, 학생들이 깔깔대며 노는 소리, 부모들이 아이들을 향해 위험하다고 고함치는 소리가 한데 섞여 들리며 내가 듣고 싶은 아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행동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아이 엄마의 표정도 시무룩해졌고.
미셸 때는 들렸는데 오늘은 왜 안 들리는 거지?
그 사건 이후에 다른 테스트를 해볼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그 순간.
아이 엄마가 여경 두 명의 손을 잡고 오는 아이에게 뛰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엄마 어디 갔었어. 에~ 에엥.”
아이가 엄마에게 달려들어 두 팔로 목을 세게 감싸 안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괜히 나섰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고, 길을 잃었던 아이가 엄마 품에 돌아온 거로 만족하며 생각해봤다.
미셸 때는 정말 운이 좋아서 그랬던 건가?
그때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미셸을 찾을 때도 집중했고 조금 전에도 아이 목소리에만 집중했는데 왜 안 들렸지?
능력이 사라진 건가?
이 능력으로 번 돈은 만지지도 않았고 신문이나 방송에 내 이름 석 자도 나온 적 없는데.
아이의 소리를 듣지 못한 이유를 더 분석해보고 싶었지만, 인테리어 가게로 갈 시간이라 해변을 떠났다.
잠시 후.
“안녕하세요? 전화 드렸던 사람입니다. 바쁘신데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아, 네. 귀찮은 건 아니지만 현장 일 때문에 제대로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라서요. 멀리서 오셨다니 들르라고는 했는데 일단 따라와 봐요. 이게 정리된 게 아니라서.”
인테리어 가게 사장을 따라 창고로 갔다.
“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짐 정리도 못 했어요. 40년 넘게 굿 사진, 신내림 하는 사진, 그리고 동해안 풍어제 사진 같은 것만 찍으셨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엄두가 안 나네요. 가만있어 보자. 사진은 이쪽에 있는데 이것도 엄청 많아요.”
“40년을 넘게 찍으셨다니 그렇네요.”
앨범에 보관하지 않은 사진이 한쪽 벽에 몇 박스나 있었다.
“저는 현장에 다시 가봐야 하는데. 어쩌죠? 여기서 함께 찾으려면 제가 쉬는 날 오시는 게 좋은데.”
“혹시 저 혼자 보고 있어도 될까요? 일 마치고 오실 때까지만 보고 있을게요.”
“나야 상관은 없지만. 그럼, 한 박스 씩 테이블에 앉아서 봐요. 멀리서 온 손님인데 혼자 두고 가기가 좀 그렇네요.”
“괜찮습니다. 제가 불쑥 찾아온걸요.”
미안해하던 인테리어 가게 사장이 현장으로 떠난 후 박스를 하나씩 열어 사진을 봤다.
흑백 사진이 많았고 사진을 구분해 담은 비닐봉지에 장소와 시간이 적혀있었다.
장소는 고성,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 등 동해안 지방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인제, 정선, 태백 등 내륙 지방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다.
오래된 사진들이라 고인이 된 분들이 사진에 많이 있었고 곳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야. 내 사진이 몇 년 만에 빛을 보는 거나?]
[이봐. 내 말 들려? 나 강릉 송정 선녀야.]
[총각은 누군데 이 사진을 보나?]
사진 속 고인들에게 일일이 답해 드릴 수 없어서 양양이라고 적힌 사진만 찾기로 했다.
첫 두 박스엔 없었고, 세 번째 박스를 열자 양양 지방의 사진이 등장했다.
양양 바닷가의 풍어제 사진들이 계속 보이다가 드디어 할매집 옛 사진이 나왔다.
진지한 표정으로 굿을 하던 할매의 얼굴 사진이 보여 반가웠는데 바로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백정이 니. 여기까지 와서 뭐하나? 이 사진들은 왜 보는데?]
할매가 화를 내는 이유는 짐작이 갔지만,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이해하시리라 생각해 말했다.
‘할매. 쟁골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어. 여기 가면 옛 사진이 있을 거라고 해서.’
[그 할망구가 니한테 이상한 말 했제? 그 말 듣지 말고. 여기 있는 사진 보면 니한테 안 좋으니까 얼른 나가라. 바로 나가라고.]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보고 갈게.’
[빨리 나가래도. 야가 왜 말을 안 듣나? 어여...]
지금은 할매와의 대화를 차단해야 사진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진을 손에서 놨다.
할매 사진이 나오면 손에 쥐지 않고 테이블에 놓고 보면서 할매의 목소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태어난 1991년에 찍은 만삭의 여인을 대상으로 굿을 하는 사진들이 나왔다.
여인이 무릎 꿇고 있는 옆모습이고 긴 머리가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배가 불룩한 거로 봐선 쟁골 할머니가 말한 그 여인 같았다.
어쩌면 내 엄마일 수도 있는 여인이다.
얼굴이 자세히 나온 사진이 나오길 고대하며 계속 사진을 넘기다가 부적 사진이 나와 만졌는데, 바람과 천둥소리가 귀를 찢듯이 크게 들렸다.
최 씨 아저씨의 가게에서 만졌던 부적 액자에서 들린 소리보다 훨씬 컸고, 사진이 손에 자석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 같아 혼났다.
휴우.
할매가 지난번에 부적에서 나는 소리가 안 좋다고 주의하라고 했는데.
마음을 진정시킨 후 다시 사진을 뒤적였는데 여인의 얼굴이 자세히 나온 건 없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박스는 양양이 아닌 다른 지방의 사진만 있었고, 여섯 번째 박스에서 다시 할매집 사진이 나왔다.
이번에는 시간이 흘러 내가 할매집에 들어온 이후인 1996년부터의 사진들이었고, 문성 도령일 때의 사진도 꽤 있었다.
나머지 박스도 열어봤지만 1991년 내가 태어나던 해의 사진은 더 나오지 않았다.
아까 본 세 번째 박스만 1991년 전후인 것 같아서 그 박스를 열어 이번엔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봤다.
할매가 굿을 하러 다른 지역에 가기도 했으니 일말의 희망을 품고서.
한참 사진을 뒤적인 끝에 양양이 아닌 곳에서 할매가 굿을 하는 사진이 나왔다.
이런 사진이 더 나오길 바라면서 다시 찾다가 부적을 확대한 사진 하나를 만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엔 고막이 터질 듯한 천둥소리에 저절로 귀를 감쌀 수밖에 없었다.
“아악. 아아...”
반복적으로 울리는 천둥소리를 들으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난 바닥에 쓰러졌고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눈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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