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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서재입니다.

벨럼 데오룸: 케난그르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게임

완결

FromZ
작품등록일 :
2023.02.28 19:41
최근연재일 :
2023.04.02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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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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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12. 왕국 (3)

DUMMY

***



테렉시스는 투석기의 실험장에 와있다. 여러 대의 투석기가 미완성된 채 방치된 가운데 단 한 대만이 제대로 완성되어서 공병대의 손길을 타고 있다.

미리 완성된 투석기를 바퀴로 굴려서 편리하게 가져오고, 적들이 보는 앞에 설치하고 발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투석기는 테렉시스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을 요구하는 공성병기였다.

일단 너무 무거워서 나무 바퀴로 옮길 수가 없다. 무게 탓에 땅에 박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투석기처럼 커다란 기계를 행군 중에 대놓고 끄는 것도 적들에게 정보를 주는 꼴이 된다.

따라서 투석기는 현장의 지형과 적들의 성벽을 가늠하고 그 자리에서 최대한 빠르게 조립하는 편이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이에 따라 투석기의 해체, 조립, 설치, 발사를 담당할 자들이 따로 필요하고 투석기가 설치되기 전까지 이를 보호할 수단과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서 굉장히 까다로운 공성병기인데, 이렇게까지 준비해서라도 굳이 쓰려는 이유는 단연코 투석기의 위력 때문이다.


‘벌써 몇 번째 실험인지 모르겠네.’


성벽은 무너지지 않아야 성벽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런 성벽을 극복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사다리, 귀갑거, 공성추, 공성탑 따위를 쓰며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데 투석기는 성벽 그 자체를 때려 부수는 기계다.

대포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가장 강력한 물리력을 보였던 병기이며, 적들의 성벽을 부숨과 동시에 마음까지 부숴버리는 기계라는 것이다.

아시로스와 베이톤은 그 커다란 기계를 구경하다가 테렉시스의 옆으로 왔다.


“애늙은이.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무슨 생각?”


“칼데라의 족장 있잖아.”


“유틀라스카.”


“걔 저번에 보니까 맨땅에서 파도까지 일으키던데, 굳이 이런 기계를 만들지 않아도 그 친구의 수공이 있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자 아시로스도 같은 의견을 내비쳤다.


“포위당해서 고립된 도시에 물난리를 일으키면 쉬울 것 같다. 그에 반해서 이 빌어먹을 투석기는 운용하기 너무 까다롭다고.”


“도시를 대상으로 수공은 쓸 수 없다.”


“왜? 그게 제일 효과적일 텐데.”


“효과적이긴 하지. 하지만 도시에 수공을 퍼부었다간 나중에 그곳을 점령했을 때 남는 게 없다.”


공성에 있어 수공은 효과적이다. 성벽이 세워진 지반을 약화시키고, 성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도심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도시 내부에서 질병이 퍼지고, 무기가 녹슬고, 식량이 썩는다.

그러나 테렉시스의 목적은 수도의 ‘파괴’가 아니라 ‘점령’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확실하게 이기는 편이 좋지 않겠냐?”


“걱정마라. 나는 성벽을 극복하기 위해 준비한 모든 수단을 순차적으로 실행할 것이다. 만약 수공까지 써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실패를 앞두게 되었을 때겠지.”


공병대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바위와 기름이 담긴 커다란 항아리를 옮기고 있다.


‘공병대도 고생이 많았다. 나중에 한몫씩 챙겨줘야겠어.’


투석기를 완성하기 위해 몇 번이나 실패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왔다. 그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투석기는 반드시 전장에서 활약해야만 한다.


“애늙은이, 바위에도 네 마나를 담을 거지?”


“물론이다.”


“와, 존나 충격적이겠네. 당하는 입장에서.”


그러던 중 아시로스가 뭔가를 떠올렸다.


“재밌는 생각이 났다.”


“뭔데?”


“여기다가 고블린을 장전해서 던져보자고.”


“고블린이라면 다 죽은 거 아니었나?”


“이나가 몇 마리 고환을 잘라서 가두고 있다. 재밌을 것 같지 않냐? 영주민들 모아서 다 같이 구경하자고. 그러면 여전히 널 싫어하는 놈들도 조금은 생각이 바뀌지 않겠냐.”


베이톤은 아시로스의 아이디어를 듣고 픽 웃었다.


“존나 병신 같은 생각이네.”


“당장 해보자.”


완성된 투석기는 성채 내부의 전사들과 영주민들에게 당당히 공개되었다.

절연 축적된 바위가 산으로 날아가서 전기를 터뜨리는 장면은 일품이었다. 기름이 담긴 항아리도 정확한 궤도로 날아가서 화염을 터뜨렸다.

그때가지도 일부 영주민들은 박수를 치기 보다는 침묵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살아있는 고블린들을 날려보내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영주민들도 주변 전사들처럼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렇게 투석기와 공병대는 성공적으로 준비된 것이다.



***



댕댕댕댕!!

노틴 왕국의 수도 전체로 시끄러운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람들은 혼비백산이 되어서 집으로 숨었고 병사들은 거리에 있는 남자들을 끌고 가서 갑옷과 검을 억지로 쥐여주었다.


“테렉시스가 왔어!”

“우린 다 죽을 거야! 전부 낙뢰에 맞아 죽을 거라고!”


테렉시스의 군세 약 3000명이 수도의 북쪽에서 나타났다. 이번에는 좌익, 중앙, 우익의 구분 없이 전사들이 대체로 뒤섞여서 각자의 깃발을 곳곳에 세우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전사들을 거느린 채 안장 위에 있는 테렉시스.


‘그럼 그렇지. 정규군을 거의 다 소모한 상황에 성문 밖으로 나와서 싸울 리가 없다.’


그래서 굳이 진형을 구분하지 않고 섞은 것이다. 그렇게 밀집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섞여서 산개된 전사들은 상대 입장에서 머릿수를 세기가 어렵고, 결과적으로 본래 진형을 갖추었을 때보다 병력이 더 많아 보이는 효과를 만든다.


“마애라스테아나. 데인슨.”


- 예.


“예정대로 네 전사들을 이끌고 남문까지 포위해라.”


- 맡겨주십시오.


“마애라스테아나. 베이톤.”


- 어, 나 지금 데인슨 옆에 같이 있어.


“이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는 누구 한 명도 도시에서 나올 수 없게 해라.”


- 내 눈을 믿으라고. 쥐새끼 한 마리의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겠어.


“통신 종료하겠다.”


이제 테렉시스는 큰 목소리로 전사들에게 묻는다.


“너희 눈에 무엇이 보이느냐!”


전사들은 대답했다.


“적과 이교도들이 바글대는 도시입니다!”

“족장님의 심판 아래에 곧 무너질 성벽입니다!”

“이콘님께서 원하시는 땅입니다!”


“아니! 지금 내 눈에는 우리의 것이 보인다!”


그는 말했다.


“우리의 도시! 우리의 성벽! 우리의 땅! 우리의 인간들! 저건 모두 우리 것이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우리는 노틴 왕국의 모든 것을 원한다고!”


“와아아아!”


“그리고 우리는 오늘! 대륙에 왕국을 세울 주역이 되는 영광을 거머쥘 것이다!”


부오오오!

뿔피리 소리가 울렸다. 칼데라의 전사들이 1차로 타격을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하얄인들이 바퀴 달린 커다란 장치 열 대를 끌며 뛰었다.

쿠르르르르!

그것들은 성벽 위에서 날아드는 발사체로부터 전사들을 보호할 귀갑거였다. 네 개의 투박한 나무 바퀴가 시끄럽게 구르고 목재와 젖은 가죽으로 만든 지붕이 있다.

그리고 닥쳐오는 1차 군세를 목도한 성벽 위에서는 활과 쇠뇌를 들이밀었다. 쇠뇌를 든 자들은 활쏘기 훈련이 되지 않은 자들이었고 활을 든 자들은 훈련된 정규군으로서 불화살을 준비했다.


“쏴라!”


파파파팍!

화살들이 칼데라와 하얄의 전사들을 노렸다. 하지만 그들은 잽싸게 열 대의 귀갑거 밑으로 숨어서 피해를 최소화했다.

그래도 귀갑거 열 대 분량의 전사들만 오고 있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일까. 성벽 위 병사들은 별도의 명령이 없어도 끊임없이 화살을 장전해서 쏘아댔다.


“볼토스벨그. 적들이 화살을 너무 편하게 쏜다.”


테렉시스는 전리층 통신을 발동하고 있었다.


“견제해라.”


그러자 테렉시스 군세의 후방으로부터 코케노그 장궁병들의 화살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그렇게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화살들을 목도한 병사들은 잠시나마 그것이 환상이기를 바랐다.


“쏟아진다···.”

“으아아!”

“뭐라도 들어!”


믿을 수 없는 사정거리, 믿을 수 없는 위력, 믿고 싶지 않은 숫자의 화살들은 문자 그대로 화살비가 되어 성벽 위의 병사들에게 쏟아졌다.


“아아악! 살려줘!”

“다리에 맞았어!”

“제국의 화살비를 본 것 같아···.”


테렉시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2차 공세를 투입한 것이다.


“장벽 부대! 전진하라!”


처걱! 처걱! 처걱!

통나무를 엮어 만든 나무 방책의 무게는 수백 킬로그램에 이른다. 하지만 하얄인 네다섯 명이 각자 무거운 방책을 하나씩 들고 일렬로 늘어서서 성벽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끼리릭! 끼리릭!

마찬가지로 나무 바퀴가 달린 방책들은 하얄인들의 힘과 더불어 빠르게 전진했다. 그렇게 늘어선 채로 전진하는 방책은 아군을 위한 장벽이 되었고, 뒤에 전사들이 붙어서 함께 전진할 수 있게 해주었다.


‘탱크 뒤에 붙은 보병들 같군.’


“족장님!”


어느 전사가 테렉시스에게 뛰어왔다. 체격을 보니 북부인은 아니다.


“공병대인가?”


“예! 저희는 투석기···”


“당장 조립해라.”


나무 장벽은 화살로부터 전사들을 보호한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것의 주된 목적은 투석기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까다로운 공성병기가 제값을 해줬으면 좋겠네.’


북문과 북쪽 성벽 밑으로 전사들이 붙었다. 귀갑거 열 대 중에 한 대는 바퀴가 빠져서 쓸 수 없게 되었지만, 남은 아홉 대로도 전사들은 순차적으로 옮길 수 있다.

끼기긱!

공성추를 숨긴 귀갑거 한 대가 북문에 붙었다. 테렉시스는 나무 장벽의 틈새로 공성추를 노려봤다.


“뚫어!”

“으랴아아!”


···쿵!

공성추가 북문을 때림과 동시에 스킬을 발동한다.


‘절연 파괴.’


파지직! 파지지직!

공성추의 금속 충각과 테렉시스의 전격이 북문을 강타했다. 하지만 북문에는 흠집은커녕 그을린 자국조차 생기지 않았다.


“다시!”


콰앙! 파지직!

두 차례 공성추를 들이받았다. 그 순간, 북문의 성벽 위쪽 구멍에서 검고 진득한 기름 같은 것이 떨어졌다.


“아아아아!”

“카일레에에!”


그것은 펄펄 끓는 타르였다. 공성추를 다루다가 타르를 뒤집어쓴 전사들은 끓는 타르가 피부를 녹이고 살점 속으로 들어오는 고통을 느끼며 쓰러져갔다.


“무엇이 두려운가!”

“다시!”


전사들은 검게 타버린 시체들을 밖으로 치워버리고 곧장 공성추에 붙으려고 했다. 그러자 이번엔 타르에 불이 붙으면서 주변 바닥과 공성추를 통째로 불태우는 것이다.

테렉시스는 외쳤다.


“유틀라스카! 불을 꺼라!”


그러자 칼데라 전사들과 그들의 족장 유틀라스카가 방패를 위로 든 채 북문으로 돌진했다.


‘끓는 기름을 붓다니···!’


유틀라스카와 전사들이 북문 주변의 성벽 밑으로 더 붙었다.

촤아아!

유틀라스카는 타오르는 타르에 물을 부었다. 그러나 불이 쉽게 꺼지질 않는다.


‘평범한 기름이 아닌가?!’


그래서 땅바닥 밑으로 물을 보내 흙을 뒤집다시피 터뜨렸다. 그렇게 흙을 머금은 물을 움직여서 타오르는 타르를 뒤덮어 새로운 땅을 만들었다.


“빨리 붙어라!”


그의 명령에 칼데라의 전사들이 서둘러 공성추로 붙었다.


“이거 망가졌습니다!”


공성추는 바퀴가 부서지고 타르가 붙어서 쓸 수 없게 되었다.


“망할! 그럼 빠져라! 성벽 밑으로!”


언제든지 타르가 쏟아질 수 있는 구멍이 북문 위에 있다. 그래서 또 당하기 전에 바깥으로 나온 것이다.

터억!

그때 미처 죽지 못한 전사가 유틀라스카의 발목을 붙잡았다.


“허윽···. 허으윽···.”


얼굴 가죽까지 전부 검게 눌어붙어서 신음하는 하얄 전사. 용맹하게 뛰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고통에 빠진 채 안쓰러운 몰골이다.


“카, 카일레···. 내 영혼을 당신이···. 어서···.”


“수고했다! 동족의 형제여!”


푹!

유틀라스카는 신음하는 하얄 전사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끼기기긱!

때마침 본대로 돌아갔던 귀갑거 여덟 대가 새로운 전사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이번에는 에이드라의 전사들이었다.


“유틀라스카 족장님! 사다리를 가져왔습니다!”


“붙여라!”


터걱터걱!

전사들은 북문 위로 사다리를 올렸다. 밑에서 몇 사람이 사다리를 잡아주고, 가장 용감한 전사들이 직접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벽 위에서도 다급히 움직였다.


“밀어! 올라오잖아!”

“으아아아!”


밑에서 사다리를 잡아주어도 위에서 있는 힘껏 밀면 결국 밀리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몇 개의 사다리가 무력하게 넘어지고 바닥에 떨어진 전사들이 화살에 당했다.

보다 못한 유틀라스카는 뒤를 돌아서 나무 장벽 뒤에 있는 테렉시스에게 시선을 보냈다.


“여기서 뭘 어떡하라는 겁니까!”


그러자 테렉시스가 소리쳤다.


“사다리를 고정해라!”


“그걸 어떻게···”


“네 스킬로!”


유틀라스카는 눈을 번뜩였다.

촤아아!

그는 즉시 여러 갈래의 물줄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물줄기는 나무를 타고 오르는 덩굴처럼 각각의 사다리를 휘감아 고정했다.

촤아아아!

전사들보다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오른 물줄기는 성벽 위에서 병사들을 견제했다.


“이게 뭐야!”

“물 속성 스킬이다!”

“우리도 스킬을 써야 해!”


속성을 가진 정예병들이 흙덩어리와 화염구 따위를 만들어서 물줄기를 견제했다. 그리고 속성이 없는 자들은 달궈진 돌이 담긴 양동이나 뜨거운 타르가 담긴 양동이를 성벽 밑으로 무작정 기울였다.

촤아아아! 촤아아!

전사들이 돌멩이에 맞고 타르를 뒤집어쓰면서 또 죽었다. 그러자 유틀라스카는 전사들에게 차가운 물을 뿌려주면서 외쳤다.


“어서 올라가라! 형제들이여!”


전사들이 다시금 사다리를 오른다. 성벽 위로 무사히 올라가서 온 사방의 검과 창을 받아낸다. 그러다 죽으면 성벽 밑으로 떨어지고, 새로운 전사가 사다리 위로 머리를 들이민다.

그러기를 약 30분째.

성벽 위를 점령하는 게 지체되고 있다. 아무래도 성벽의 높기도 하고 너비까지 제법 있어서, 다수의 병사들이 사다리를 오른 소수의 전사를 공격할 공간이 충분한 탓이었다.

테렉시스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미안하다. 전사들아.’


그는 사실 알고 있었다. 저런 성벽은 사다리로 극복하기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이콘. 먼저 그곳으로 올라간 자들을 잘 부탁한다.’


그럼에도 사다리를 쓴 건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북문의 적들이 미리 준비한 타르를 아군 전사의 목숨과 맞바꿔서 소모시키기 위함이었다.


“공병대! 공성탑은 멀었나?”


“아직입니다!”


“사다리를 포기해라! 귀갑거 밑으로 가라! 다시 화살을 쏴라!”


전사들을 성벽 밑에 붙은 귀갑거에 숨었다. 그리고 코케노그 장궁병들의 화살이 재차 쇄도하며 성벽 위의 병사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때 언제든지 2인 1조로 투입될 준비가 된 아시로스와 이나가 차례로 물었다.


“야! 저 자식들이 우리 화살을 주워서 쓰고 있다! 화살 견제도 적당히 해야지!”


“테렉시스! 차라리 나랑 아시로스가 사다리를 올라갈게!”


“성벽 위로 오르는 전략은 폐기한다. 놈들은 사다리에 대한 방어 전력이 충분하다.”


이 순간 테렉시스는 성벽 밑으로 더는 타르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따라서 이 이상의 희생은 불필요하다. 시급히 북문을 돌파해야 할 시점이다.


“내가 가겠다.”


“네가?”

“어?”


“나무 장벽 뒤에서 대기해라. 그리고 내가 북문을 파괴하면 따로 명령하지 않아도 즉시 들어와라.”


테렉시스는 옆에 박힌 깃발을 뽑아서 나무 장벽 바깥으로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ᛊ」

그러자 성벽 위의 병사들은 그와 그가 들고 있는 깃발을 가리켰다.


“회, 회백색 털···. 우라크의 문자!”

“저놈이다! 테렉시스라고!”

“죽여!”


그 즉시 흙덩어리, 화염구, 불화살, 화살, 물방울이 오로지 테렉시스 한 명을 노려서 쇄도했다.


‘무작위 전극 징검다리.’


파지지지직!

테렉시스는 자기 주변을 전격이 휘몰아치는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자 날아들던 흙덩어리는 전격에 맞아서 부서졌고, 화염구는 플라스마로 변하여 공간의 일부가 되었고, 불화살과 화살은 튕겨나갔으며, 물방울은 순식간에 증발하였다.

파직! 파직! 파직!

그렇게 귀갑거도 방패도 없이 당당하게 혼자서 걸어오는 테렉시스의 모습은 병사들의 사기를 꺾고 성벽 밑에서 고군분투하던 전사들의 투지를 일깨웠다.

유틀라스카는 테렉시스를 보면서 뛰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말했다.


“테렉시스 족장님! 여긴 위험합니다!”


“비켜서라. 전에 말했던 거 하게.”


“예? 아, 아아···. 비켜라! 다들 양옆으로 물러서라고!”


전사들은 귀갑거의 그늘 밑에서 테렉시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유틀라스카는 테렉시스를 따라서 북문이 있는 짧은 통로까지 들어왔다.


“여기 위쪽 구멍에서 불타는 기름이 쏟아졌습니다! 조심하십시오!”


“그건 타르라고 하는 물질이다.”


“타르?”


“이젠 다 썼겠지. 그러니 어서 준비해라.”


“아.”


“북문을 폭파하겠다.”


유틀라스카는 그 즉시 커다란 물방울을 만들었다. 그 크기가 너무 커서 공성추까지 집어삼키고 통로를 꽉 채워, 두 사람이 벽에 간신히 붙을 공간만 남겨둘 정도였다.


‘전하 축적.’


치직···! 치직···!

커다란 물방울 속에서 기포가 발생했다.


‘방전구.’


그는 커다란 물방울과 통로의 벽 사이에 방전구 여섯 개를 소환해서 띄워두었다.


“나가자.”


타다닷!

유틀라스카와 테렉시스는 서둘러 귀갑거가 있는 곳까지 빠져나왔다. 그리고 유틀라스카는 물줄기를 움직여서 공성추를 통로와 바깥의 경계선까지 빼내고, 주변의 무거운 귀갑거들을 공성추 주변에 다닥다닥 붙였다.


“잘 했다. 유틀라스카.”


“모두 귀를 막고 입을 벌려라!”


전사들은 모두 귓구멍을 막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성벽 위 병사들은 성벽 아래에 귀갑거도 없이 노출된 자들을 죽이겠다고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또 전사들이 쓰러졌지만, 다음 순간에 테렉시스의 스킬은 그보다 많은 적들을 무력화했다.


‘절연 파괴. 징검다리. 가속.’


세 가지 스킬이 연달아 발동되었다. 전하 축적이 걸린 물방울이 1초보다 짧은 순간에 폭발적으로 증발하면서 액체보다 부피가 큰 기체로 변모하였다. 곧이어 북문 앞 짧은 통로 전체를 대상으로 발동된 무작위 전극 징검다리는 전류를 일으켜 뿌연 수증기 구름과 공성추의 금속 충각, 철판이 덧대진 북문 사이로 연쇄적인 번개를 일으켰고 마지막으로 방전구 세 개가 무작위의 번개에 맞아서 무작위 방향으로 가속하여 비좁은 통로 안을 미친 듯이 활보하는 고무공처럼 변하였다.

그 결과, 북문을 위해 만들어진 짧은 통로는 발파(發破)를 위한 구멍이 되어버린 것이다.

콰아아앙!!!!

머릿속은 물론이며 몸속 모든 내장과 혈류가 진동했다. 전사들은 귓구멍을 막았음에도 손을 뗀 직후 이명을 느꼈다.

콰지직!

귀갑거와 공성추는 폭발의 반대 방향으로 밀려나서 아군의 나무 장벽을 강타했다.


“아아아아악!”

“아아아!”

“아아! 아아아!”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기절하거나, 성벽 밑으로 떨어지거나, 고막이 찢어지고 말았다.

사아아···.

그리고 테렉시스와 유틀라스카는 북문이 위치한 짧은 통로 속을 보았다.

문은 완벽하게 파괴되었다. 금속 철판은 까맣게 찢어져 떨어졌고 그 뒤의 목재 문은 아무렇게나 부서져서 더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귀가 안 들려!”

“끄아아아! 내 귀! 내 귀가···!”

“도망쳐야 해! 우린 이길 수 없다고!”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적들.

감탄하는 아군들.

그러나 유틀라스카와 테렉시스는 기뻐하지 못했다.


“이런 씨발.”


“족장님···.”


북문 뒤에 있던 건 ‘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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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8. 결전 (3) 23.03.28 126 4 18쪽
42 8. 결전 (2) +2 23.03.27 124 5 16쪽
41 8. 결전 (1) 23.03.27 129 3 21쪽
40 7. 민족 대침공 (5) +2 23.03.26 126 3 16쪽
39 7. 민족 대침공 (4) +2 23.03.25 135 3 16쪽
38 7. 민족 대침공 (3) 23.03.24 143 6 16쪽
37 7. 민족 대침공 (2) +6 23.03.23 152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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