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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서재입니다.

벨럼 데오룸: 케난그르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게임

완결

FromZ
작품등록일 :
2023.02.28 19:41
최근연재일 :
2023.04.02 07:25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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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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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3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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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9. 북부를 통합하는 자 (1)

DUMMY

***



크레이 백작과 가신들이 없는 성채에서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그들은 악마의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양날도끼를 두 자루나 휘두른다! 게다가 덩치는 오크처럼 크지!”

“저주를 퍼붓는 문자를 도끼날이나 방패에 새겼대요!”

“아무리 피를 흘려도 쓰러지지 법이 없고, 사람의 살점을 먹는 놈들이라던데.”


그리고 이곳 교회에서는 사제와 부제 네 명이 모여서 태야의 조각상이 보는 앞에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과장된 소문은 패잔병이나 피난민이 와서 정확한 경험담을 이야기해 줘도 그치질 않습니다. 차라리 사제님께서 영주민들의 공포를 잠재워주시는 편이 더 빠를 겁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시급히 피난길에 나서야 합니다. 성채에 있는 자들을 모두 징집한다고 해도 그런 놈들을 상대로 수성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염려됩니다.”


공포에 떠는 건 부제들도 같았다. 반면에 사제는 북부에서 찾아온 이교도 군세가 두렵지 않은지 혼자서만 다른 의견을 내세웠다.


“지금까지 태야카일 가문의 성벽을 넘은 침략자는 없었습니다.”


“사제님. 그 이교도들은 단순한 야만인 침략자들이 아닙니다. 제대로 지휘도 할 줄 알고, 전대미문의 역량을 가진 족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습니다.”

“예. 가장 큰 문제는 시데레오스 테렉시스의 존재입니다. 그자는 이미 북부 세력들을 규합하고 대륙을 침략했으며, 영주님의 카타프락토스 돌격까지도···”


“그래서 저 앞에 버티고 있는 성벽을 버리고 다 함께 노틴 왕국으로 도망치자는 말씀인가요?”


사제의 뜻도 무조건 틀린 건 아니었다.

공성보다는 수성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리고 해보기도 전에 성벽과 성을 버리고 도망친다는 건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며 노틴 왕국의 명예까지 실추시킬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는 단순히 성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성벽이 둘러싼 마을까지 있다.


“영주민들의 집, 땅, 일자리가 모두 이곳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이 모든 걸 포기하고 피난을 택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부제 네 명은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해야 하는 건 남느냐, 도망치느냐가 아닙니다. 이교도 군세가 이곳까지 도달했을 때 어떻게 싸워야 수성에 성공할 수 있을지. 왕국에서 원군이 오기 전까지 어떻게 하면 농성에 성공할 수 있을지. 바로 그것을 생각해야 하죠.”


바로 그때 누군가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행색을 보니 거리의 부랑자 같다.

부제 한 명이 그에게 다가갔다.


“형제님. 지금은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이리로 오세요.”


사제는 부랑자 같은 남자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그러자 부제가 비켜섰다.


“이 남자는 누구죠?”

“사제님께서 부르셨습니까?”


“예. 내가 불렀습니다.”


사제는 남자의 등을 토닥였다.


“이분은 들판에서 생존한 병사입니다. 그곳에서 북을 치셨다고 했죠?”


“아, 악마가 제 마음을 괴롭힙니다···!”


남자는 사제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태야님은 형제자매들을 지켜주지 못하셨습니다! 악마들의 힘이 너무도 강대하여 태야님께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겁니다···! 저는 두려움에 빠졌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놈들이 꿈속에서 피 묻은 도끼를 들고···”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사제는 남자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적어도 그대는 태야님께서 지켜주셨군요. 악마들이 날뛰던 지옥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아아···.”


“그대가 살아남아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했다는 건, 태야님께서 그대의 발걸음이 희망이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랍니다.”


남자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예, 맞습니다···. 저, 저는 북을 치는 궁수였습니다. 그곳에서 크레이 영주님만큼이나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전황을 주시하고 있었죠. 싸움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피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북부에서 온 이교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놈들은 카일레를 외치면서 사지로 뛰어듭니다.”


“카일레가 뭔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로 치면 ‘천국의 계단’ 같은 것이었습니다. 카일레에서 어떤 수수께끼를 주는데 그걸 극복하면 천국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거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하게 죽으면 수수께끼가 쉬워지고, 겁쟁이처럼 수치스럽게 죽으면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풀어낼 수 없는 난제를 마주하게 된다고 합니다.”


듣고 있던 부제들은 혀를 내둘렀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어도 결국 수수께끼는 풀어야 한다는 거네요.”

“정말이지 광신도 같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살아있는 것들의 자연스러운 본능 아닙니까.”

“그런 걸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강요하는 게 이콘이죠. 그야말로 악신 중에 악신입니다.”


사제는 물었다.


“그들의 족장은 어땠습니까? 정말로 크레이 백작님의 카타프락토스보다 강했습니까?”


“예······?”


“부정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그 족장 말입니다. 시데레오스 테렉···”


“히, 히이익!”


남자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단 위로 뛰어올라갔다.

타다닷!

그대로 태야의 조각상 뒤에 숨어서 머리만 내민 채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눈동자만 움직여 교회의 구석구석을 확인하는 것이다.


“저런···.”

“충격이 컸던 모양입니다.”


사제는 공포에 떨고 있는 그의 모습을 미심쩍은 눈으로 관찰했다.


‘백작이 곁에서 함께 싸웠을 텐데 저렇게까지 공포에 떨 수 있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테렉시스라는 자가 뭐길래···.’


그때 남자는 벌벌 떨면서 소리쳤다.

마치 궁지에 몰린 소동물이 두려움을 이겨내겠다고 애써 우는 것처럼 말이다.


“어, 어디 와봐라! 태야님이 나, 나, 나를, 나를 살려주셨다고! 이번에도 날 지켜주실 거야! 이 악마야! 그, 그쪽 그림자에 숨어있는 거 다 알고 있어! 나오라고! 흐으으! 와아악!”


사제는 단 위로 올라갔다.


“형제님?”


“사제님! 조심하십시오! 놈이 여기에 있습니다! 북쪽을 지배하고 있는 놈이라 한기를 이끌고 다니죠! 저는 방금 살갗에 닿는 걸 느꼈습니다! 놈이 여기에 있어요! 저, 저쪽 그림자! 그림자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올 수 있다고요! 씨, 씨발, 씨발새끼!”


“그렇군요. 형제님. 제가 이 자리에서 그와 싸울 수 있도록, 그의 힘에 대해서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뇌성이 울립니다! 낙뢰가 강림합니다! 다리가 여럿 달린 몬스터처럼 땅과 주변 사람을 긁으면서 불태우고 터뜨리고···! 그 시끄러운 소리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요! 소리만 들어도 너무 두려워서···”


“예, 예. 그리고요?”


“도끼, 손도끼, 단검, 창, 검, 방패! 손에 든 건 뭐든지 무기가 됩니다! 뭔가를 죽이고 파괴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간입니다! 아니, 인간이 아닐 수도 있어, 그래, 맞잖아, 그건 인간이 아니야, 인간은 그럴 수 없어, 영주님의, 카타프락토스를 그런 식으로, 아아아···! 그 강한 분의 황금빛 갑주보다 더 밝은 불꽃이 영주님을 불태우고 그러고도 온몸을 찔리시고 기만까지 당해서···!”


“카타프락토스를 불태울 정도로 밝은 불꽃이라 하심은, 빛 속성과 불 속성이 합쳐진 성질이라고 여기면 되는 걸까요.”


“빛과 불! 그리고 낙뢰까지 씁니다! 아, 아무튼 스킬로도 안 되고 결투로도 안 되고 지략으로도 안 되는 재해 같은 놈이라고요! 놈을 이기려면 왕국의 정규군이 아니라 천계에서 신족이 내려와야 해!”



***



이나는 긴 머리를 전부 헝클어버리고 천으로 만든 옷을 입은 채 성채까지 들어왔다.

성채 안쪽에 있는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으면 병사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피난민들이 보인다. 그리고 피난민들 사이에는 들판에서 도망쳐온 자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끼리라도 가족들 챙겨서 노틴 왕국으로 가자고. 내 사촌이 거기서 싸웠는데 진짜 위험한 놈들이래. 훈련도 안 된 이곳 사람들로 방어하는 건 불가능할 거야.”


“떠날 거면 서둘러야겠네. 사제님이 조만간에 젊은 남자들을 전부 징집한다고 했어.”


“그거 진짜 맞지?”


“나도 몇 사람 건너서 들은 건데 진짜인 것 같아. 들판에서 놈들을 경험한 병사 출신들은 벌써 어젯밤부터 떠나고 있어. 오히려 너랑 내가 뭉그적대고 있는 거라고.”


이나는 대화하고 있는 남자 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질문했다.


“교회는 어디에 있죠?”


“네?”

“북쪽 영지에서 내려오신 분인가.”


“태야님께 기도를 올려야 해요.”


남자는 성채의 중심 방향을 가리켰다.


“교회는 영주님의 성 바로 옆에 붙어있어요.”


“감사해요.”


이나는 성채 중심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데, 거리에 돌고 있는 흉흉한 소문이 사람들을 떠나게 하고 있었다.

들판에서 직접 북부인 군세를 경험한 자들은 절반 이상이 노틴 왕국으로 떠났고, 직접 경험하지 못한 자들도 소문을 듣고 흔들리는 것이다.


“빨리 가자.”

“말은 어디서 빌리냐?”

“빌릴 곳 없어. 말 있는 놈들은 진작 떠났다고.”


계속 성채에 있던 영주민들은 피난민들에게 자신의 집과 땅 등을 싼값에 넘기고 떠나거나, 기꺼이 징집에 응하겠다는 두 가지 태도를 보였다.


“나는 끝까지 태야님의 검이 되어 싸울 거다.”

“맘대로 해라. 난 갈 거니까.”

“이만한 돈이면 노틴 왕국에서 뭐라도 자리를 잡을 수 있겠지.”


북부인 군세를 경험하지 못한 병사들은 그들에 대한 소문 탓에 전전긍긍했고 북쪽에서 온 피난민 중 일부는 그냥 이곳에 눌러앉기로 했다.


“여보. 그들은 의외로 민간인들을 잘 건들지 않는다고 해요. 그냥 우리 입장에서는 윗사람만 바뀌는 거라니까요? 게다가 세금도 절반씩 받는다고 들었어요.”

“누가 그딴 소리를 해요?”

“휴고슨 요새에서 내려온 아주머니가 그랬어요.”

“데인슨 요새겠죠. ···거기 족장이 공성병기도 없이 관문을 일격에 부숴버렸다던데.”

“아무튼 그들은 사람 대 사람으로서 존중도 해주고 이콘교로 개종하면 완전히 동족처럼 대한다고 해요. 여보, 만약 그들이 이 성채까지 밀고 들어온다면 이참에 이콘교로 개종하자고요. 여기서 싼값에 집도 구했잖아요.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나는 남자라서 징집을 당할 거예요.”

“싸우지 않고 투항하면 살려주겠죠. 아, 아니면 어디에 숨을까요? 숨을 곳을 찾아볼게요.”


‘나약한 것들. 끼리끼리 만나네.’


이나의 시선으로 본 태야교인들은 대체로 그런 느낌이었다. 이상하게도 죽음, 피, 싸움 따위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 걸 두려워하는 인간들이 모여서 어떻게 왕국을 세웠다는 말인가. 어떻게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켰다는 말인가. 이나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예상이 정확했어. 여기서 징집된 자들이 모여봤자 진작 사기가 꺾여서 수성은 실패할 거야. 숫자도 얼마 안 되는 것 같고···.’


애당초 테렉시스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사제의 존재다. 성채에 있는 자들이 모여서 뭘 어떻게 저항하고 말고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성채는 결국 함락될 것이다. 테렉시스가 그렇게 하겠다고 정했으니까.


‘사제···. 사제만 처리하면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어.’


마침내 이나는 교회까지 왔다.

요새에 있었던 작은 교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휘황찬란하다. 층고가 상당하고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나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양쪽의 아치형 창문과 알록달록한 색깔을 입힌 유리는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북부와 대륙의 기술 격차에 대한 것도 생각하게 해주었다.


‘투명한 벽이잖아. 저런 걸 어떻게 만들었지?’


이나는 유리창을 처음 본 것이다.


‘정신 차리자.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야.’


교회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겨선 안 된다. 다들 긴 의자에 앉아서 기도하고 있으니 그들과 섞여야 한다.

스윽.

행여나 문신이 보일까, 소매를 확인하고 자리 하나를 골라서 앉았다.

저 앞에 새하얀 여신의 조각상과 새하얀 복장을 입은 남자가 보인다. 남자가 쓰고 있는 모자에는 태야교의 상징물이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정보 좀 열람해주세요. 이콘님, 뇨르딘님.’


「이름: 태야실크 길버트」

「레벨: 7」

「종족: 인간」

「속성: 빛」


‘레벨이 꽤 높네. 크레이 백작이 8레벨이었는데···. 아니, 사제치고는 낮은 레벨인가?’


길버트 사제는 빛 속성이었다.

일단 속성이라는 걸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그래도 굳이 속성을 나열해서 희귀한 순서를 따지자면, 물과 불이 가장 많고 바람과 흙은 그보다 희귀하다.

그리고 바람과 흙보다 희귀한 속성이 빛과 어둠이다.


‘빛 속성이면 무슨 스킬을 쓴다는 걸까.’


“···따라서 우리는 위대한 노틴 왕국의 백성이기 이전에 태야교인으로서 정의로운 검과 방패로 맞서야만 합니다. 태야카일 가문의 시작과 함께 세워진 성채는 그간 북부의 야만인과 고블린으로부터 태야님의 신성한 땅을 수호해왔습니다. 그리고 이교도라고 하여 야만인보다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우상을 숭배하는 야만인 집단일 뿐입니다.”


사제는 징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만 16세 이상부터 40세 이하까지의 남성은 장애를 가진 자를 제외하고 모두가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신성한 땅을 더럽히는 이교도들을 처단하라는 천명이자 우리의 운명입니다. 태야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합장한 채 눈을 감고 있다.

저 앞의 사제와 부제들도 똑같이 눈을 감고 있다.

그래서 이 순간에는 오직 그녀만이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태야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태야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그녀는 혼자서만 눈을 뜬 채 태야 여신의 조각상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 다른 신에게 기도했다.


‘북부인들의 내일을 위해, 무지몽매한 이교도들을 죽음과 심판의 기로로 인도하소서.’


그녀는 품속에 숨겨둔 뿔병을 꺼내서 가죽 덮개를 열었다.


‘이콘님의 뜻대로.’


독물로 범벅이 된 뿔병 내부.

그 속에서 미성숙한 푸른뱀이 그녀의 가슴, 복부, 다리, 발목을 타고 내려와서 수많은 의자 밑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두려움에 빠지게 하지 마소서. 태야님께서 지켜보실 겁니다. 이 땅은 이교도 신이 지배하는 곳보다 더 남쪽에 있기 때문에, 태야님의 은총이 더욱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사제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강조한다. 영주민들의 공포를 잠재우고 병사들의 투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처음보다 큰 목소리로 강조한다.


“아무리 위대한 왕국이라도 세월 앞에 영원하지 못합니다! 노틴 왕국도 같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노틴 왕국의 정신과 태야님을 향한 지상의 믿음은 영원할 것입니다! 결코 이교도 군세에게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땅을,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아아악!”


돌연, 부제 한 명이 쓰러져서 발목을 감싸 쥐었다.


“부제님!”

“뭐야?”

“무슨 일이야!”


쓰러진 부제가 소리쳤다.


“뭐, 뭔가 절 물었습니다!”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자신들의 다리 밑에 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독사를 풀었나?!”

“아니야, 그림자 속에 숨어든 악마야!”

“이콘이다! 이콘의 저주라고!”


믿음의 힘으로 애써 억눌렀던 공포는 억눌렸던 탓에 더욱 큰 공포를 확산했고,


“두려움에 빠지게 하지 마소서, 두려움에 빠지게 하지···”

“놈들의 사악한 기운이 여기까지 왔어요!”

“몸을 피하십시오! 사제님!”

“괜찮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태야님께서 직접 살피시는 신성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곳에서 이교도 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콘은 태야님께 잡혀서 아난카이온에···”


그 순간, 이나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아녀자의 높고 날카로운 비명은 대체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게 하여 인간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그리고 이미 공포가 확산된 상황에서 울려 퍼진 그녀의 비명은, 사제의 목소리를 막고 부제의 죽음을 부각하기에 충분했다.

이나가 먼저 부제를 바라보고 있다. 바로 근처에서 그녀의 비명을 들은 자들은 그녀를 따라서 부제를 바라본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부제를 바라보기 시작하며 군중의 시선이 순식간에 옮겨진다.

사제가 부제를 치료하고 있다. 그의 손바닥에서 나오는 은은한 빛이 기적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푸른뱀의 맹독은 7레벨 빛 속성의 스킬이나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 따위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부, 부제님이···.”

“아니야! 안 돼!”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부제의 죽음이 증명된 순간, 기적이 부정당하고 간절함이 불신으로 뒤바뀐다.

만약 이곳에 있는 태야교인들이 모두 성직자만큼이나 독실했다면 상황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애당초 태야교인들의 믿음이 모두 똑같이 깊었다면 휴고슨, 마고스, 월가디언 같은 자들도 없었으리라. 따라서 이건 그녀가 성공을 확신하는 작전이다.

그녀는 군중을 방패로 목소리를 높였다.


“하늘이 이 땅을 버린 건가요?! 태야님의 가호가 함께한다면서요!”


그녀 한 명의 목소리는 사람들을 선동하고 더 많은 선동자들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선동자들의 목소리가 확대되고 확산하고 제멋대로 의심과 작은 사실들을 덧붙여 변형된다.


“마, 맞아···!”

“어서 부제님을 살려내라고요! 태야님은 무엇을 하고 계신 겁니까!”

“사제가 거짓말을 했어! 이번에도 똑같겠지! 요새에서도 당하고 들판에서도 당하고! 결국 우리도···!”

“태야님은 이 땅을 보살피지 않으신다고! 이 버려진 땅을 지키겠다고 싸우는 건 미친 짓이야!”


그러다 진실의 탈을 쓴 의심이 절대다수의 입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하며 사실상 진실로 간주된다.


“백작님의 카타프락토스도 이기지 못한 적들이잖아요! 차라리 그쪽에 무릎 꿇고 자비를 구하는 게 내 가족들을 위한 일 아니에요?!”

“당장 해명하세요! 사제님!”

“옳소! 옳소!”


결과적으로 공성을 시작하기도 전,

외부에서 들어온 맹독이 내부에 전염병을 풀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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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12. 왕국 (5) +12 23.04.02 127 3 35쪽
64 12. 왕국 (4) 23.04.02 82 1 14쪽
63 12. 왕국 (3) 23.04.02 70 1 19쪽
62 12. 왕국 (2) 23.04.02 73 1 16쪽
61 12. 왕국 (1) 23.04.02 70 1 13쪽
60 11. 방패 전쟁 (5) 23.04.02 69 1 17쪽
59 11. 방패 전쟁 (4) 23.04.02 65 1 15쪽
58 11. 방패 전쟁 (3) 23.04.02 68 1 14쪽
57 11. 방패 전쟁 (2) 23.04.02 70 1 18쪽
56 11. 방패 전쟁 (1) 23.04.02 66 1 15쪽
55 10. 이교도 대군세 (5) 23.04.02 69 1 16쪽
54 10. 이교도 대군세 (4) 23.04.02 68 1 16쪽
53 10. 이교도 대군세 (3) 23.04.02 69 1 17쪽
52 10. 이교도 대군세 (2) 23.04.02 77 1 16쪽
51 10. 이교도 대군세 (1) 23.04.02 73 1 13쪽
50 9. 북부를 통합하는 자 (5) 23.04.02 73 1 15쪽
49 9. 북부를 통합하는 자 (4) 23.04.02 72 1 17쪽
48 9. 북부를 통합하는 자 (3) 23.04.02 73 1 19쪽
47 9. 북부를 통합하는 자 (2) 23.04.01 89 3 18쪽
» 9. 북부를 통합하는 자 (1) +2 23.03.31 114 2 18쪽
45 8. 결전 (5) 23.03.30 119 3 17쪽
44 8. 결전 (4) +4 23.03.29 123 5 19쪽
43 8. 결전 (3) 23.03.28 126 4 18쪽
42 8. 결전 (2) +2 23.03.27 124 5 16쪽
41 8. 결전 (1) 23.03.27 129 3 21쪽
40 7. 민족 대침공 (5) +2 23.03.26 126 3 16쪽
39 7. 민족 대침공 (4) +2 23.03.25 135 3 16쪽
38 7. 민족 대침공 (3) 23.03.24 143 6 16쪽
37 7. 민족 대침공 (2) +6 23.03.23 152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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