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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네크로맨서와 최후의 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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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작품등록일 :
2021.12.31 12:03
최근연재일 :
2022.01.15 18:00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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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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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39,064

작성
22.01.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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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5화. 심심한 네크로맨서와 심심풀이 구울

DUMMY

저만치 앞서 가는 엣다 베릴다의 뒤를 트레닝복 차림으로 따라 붙어 도착한 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였다.


이 복도는 그녀가 집무실로 쓰고 있는 공간과 내가 몸을 씻었던 그녀의 저택을 잇는 복도다.

단순히 두 건물을 잇는 복도 주제에 그 끝이 전혀 가늠이 되질 않을 정도다.


‘여기 전체가 얼마나 넓을지는 상상도 안 가네.’


복도는 길고 천장은 높고. 거기다 그 높다란 천장 위엔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기괴한 형상들이 보인다.

완전히 대성당이 따로 없다.

더군다나 이곳에는 창문이 없음에도 어디선가 바람이 드는 것처럼 신선한 공기가 감돌고 천장과 복도는 먼지 한 톨, 부식된 흔적 하나 없다.


“마음에 들어? 앞으로 네가 지낼 곳이기도 한데.”

“감탄 중이에요. 어떻게 관리를 하고 있는 걸까···하면서.”


그 말에 나의 주인이자 이곳의 주인은 실소를 터트린다.


“관리는 너와 같은 번호대의 구울들이 하고 있어.”

“아아, 같은 번호대···.”


일명, 10,000,000번대. 알파벳으로는 H. 그걸 상징하는 내 번호대의 이름은.


“···허접들 말이군요.”

“응. 허접들. 다른 건 몰라도 현저하게 능력이 부족한 만큼 그 어떤 구울들보다 말은 잘 듣거든. 거기다가···.”


말을 하던 그녀가 때마침 잘 됐다는 듯 손가락으로 저 멀리 있는 천장 한쪽을 가리킨다.

자연스레 따라간 시선에 천장을 닦고 있는 구울이 걸린다.

그 구울은 간신히 앉아 있을 수 있는 판 위에 앉아 천장과 연결된 로프를 붙잡고 먼지를 털고 있었다. 흡사 그네를 타는 모습이었으나, 그 광경은 아찔한 곡예가 따로 없다.


“오호, 저런 식으로 관리를···.”


···하고 있군요···라는 말을 뱉는 도중, 천장을 닦고 있던 구울이 균형을 잃고 그대로 추락하고 말았다.

비명 하나 없이 단순히 뼈와 살이 짓이겨지는 소리가 한참 후에 들려온다. 나는 느껴지지 않을 그 고통을 상상하며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나의 주인은 태연하게 체리 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한다.


“저렇게 추락해도 멀쩡해지거든.”“적어도 걱정 정도는 하세요!”


같은 구울로서 견딜 수 없어진 나는 언성이 높여 외쳤다.


“그런 항의를 해봤자···.”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자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자연스레 천장에 걸린 그네를 내려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제 일에 감사를 느끼며 열심히 일할 뿐이라서.”

“···저 일을 시키려고 구울로 만든 건 아니죠? 만약 그럴 생각이라면 적어도 저는 감사는 못 느낄 것 같으니까 관둬주세요.”

“크크큭,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시켜보고 싶은데?”


눈부시게 푸른 눈빛이 마치 악마처럼 사악하게 번들거린다.


“하라 해도 안 합니다.”


나는 정말 시킬 것 같아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으나, 오히려 그게 그녀를 자극한 모양이다.


“해. 아니, 하고 와.”

“싫어요.”

“명령이야.”


나는 왜 구울이고.

그녀는 왜 주인인가.

그 이유를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일념을 불태우며 나는 고분고분 그네를 끌고 내려와 올라간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을 향해 다이빙했다.

레고처럼 박살이 난 몸들이 원래대로 복구되는 데는 약 5분 정도가 걸렸다.


“생각보다 빠르네.”


내 몸이 복구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내려다보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차라리 “신체 복구 능력이 얼마나 좋은가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야.”라는 변명이라을 듣고싶은 심정이다.


“아참,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가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방금 같은 거야.”

“무슨 말이에요?”

“왜, 너 끔찍하다는 표정 지었잖아? 다른 애들한테.”

“그렇죠?”


그녀는 빙그레 웃는다.


“그래서 먹혔어. 네 신체 전부. 와작와작.”

“에···?”

“그거 복구되는 데 꽤 시간 오래 걸리더라.”


그런 끔찍한 이유일 거라고 상상을 한 적이 없던 나는 그대로 산화할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녀가 지팡이 끝으로 내 팔을 끌어 강제로 일으킨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자, 계속 가자.”


그 명령에 나는 막 복구가 된 터라 근육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흐느적거리며 뒤를 따른다.


“근데 말동무라는 건 정확히 뭘 하면 되는 거죠?”

“말 그대로 나랑 얘기나 해주면 돼. 꽤 심심하거든.”


어느새 그녀와 나는 복도 끝에 다다라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말했던 말을 증명하려는 듯, 밖에 나갈 수 있는 문을 단단히 지키고 선 두 구울에게 말했다.


“오늘 날씨 어때?”

“···.”


그녀의 질문에 견고한 철갑을 두른 우직한 두 구울은 그저 붉은 시체의 눈동자만을 반짝일 뿐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두 구울로부터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구울은 대부분 나랑 대화조차 불가능해. 명령을 받고 수행하고. 그리고 그 명령에 기뻐하고. 그게 다야. 통제가 된다는 점에서 좀비와 다르지만. 결국에 죽은 것을 부활시켰으니 그 본질은 비슷하다 볼 수 있지.”


그녀가 부드럽게 손을 올리자, 두 구울은 그제야 반응하며 문을 연다. 연다.


“대부분이라는 건, 그래도 대화가 가능한 녀석들도 있다는 거죠?”

“응. 1000번 대부터는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해. 하지만 그것도 기본적인 의사소통 정도야. 예를 들면···.”


마침 묘지와 죽어가는 나무들로 장식된 저택의 정원을 지나고 있던 차에, 그녀는 구울 한 명에게 손짓한다.

그 구울은 밀짚모자를 쓰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양복을 입은 녀석이었다.


“얘는 이곳 정원사와 묘지기들을 전부 관리하고 있는 1021번 구울, ‘데오’라는 녀석인데. 잘 봐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부드럽게 데오에게 묻는다.


“데오. 오늘 관리는 어땠어?”

“살려고 하는 나무를 죽이는 데 애를 조금 먹었지만, 이젠 대부분 숙련된 정원사들이라 문제가 없었습니다. 묘지의 관리도 묘지기들이 완벽하게 하고 있고요. 말 그대로 여느 때와 같이 완벽합니다.”


뭐가 문제일까 싶을 정도로 견실한 대답이다.


“앞으로 개선점은?”

“···개···선점···말입니까?”


하지만 이내 그 이유가 드러났다.


“그, 그것은···. 그러니까.”


데오의 주름진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 때문에 가뜩이나 섬뜩한 시체의 얼굴에 더욱 주름이 가득해져 무서울 지경이다.


“됐어, 됐어. 그냥 장난 친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는 마. 오늘도 애썼어. 자, 사탕.”


사탕을 소중히 받아든 데오는 그제야 원래의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와 기쁘게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일자리로 돌아간다.

그런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던 엣다 베릴다가 휙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봤지? 구울은 스스로 생각하는 건 불가능해. 이건 10번대 까지 전부 그래. 한 마디로 구울들과 내가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일방적이란 소리지.”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조금 쓸쓸하게 비춰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그 기분이 지워지지 않자, 그녀의 말은 약간의 투정처럼 들려왔다.


제대로 된 내 고민을 들어줄 녀석이 아무도 없다고.

그러니 조금은 네가 들어달라고 말이다.


“난 보다 건설적이고 희망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어. 앞으로 뭘 할까. 뭘 해야 할까, 그런 느낌으로!”


빙글, 몸을 돌리자 검은 망토와 체리 색 머리카락이 꼬리를 그리며 함께 돌아간다.


“아무리 대화를 할 수 있어도 과거나 현재 얘기만을 반복하면 외롭고 고여 있는 기분이 들어. 곧 있으면 일어날 일을 난 그런 기분으로 마주하고 싶진 않아.”


곧 일어날 일이란 단어가 죽어버린 내 심장에 깊숙이 박혀드는 기분이다.


“그래도 그나마 1번 대 애들이 미래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생각을 하며 대화를 나눠줄 수 있는데, 걔들은 워낙 바빠서 말이야.”


하기야 명령을 수행하는 녀석들과 달리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구울들은 요긴하게 쓰이고 있을 터다.

아마 구울 밖에 존재하지 않는 이 연옥은 그런 1번 대 구울들과 지금 내 눈앞에 자신의 아주 소소한 꿈을 토로하는 여자 아이에 의해 굴러가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네가 너를 부활시킨 이유는 간단해. 맨 처음 말했듯이 내 말동무나 해주면 된다는 거야.”

“정말 그거면 돼요?”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고. 그게 내가 제일 바라는 일이니까.”


만약 이 말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건 구울의 본능이 주인의 명령을 받아들이는 것에 가깝겠으나, 못 들어 줄 부탁은 아니다.

차라리 이런 목적이 있는 편이 낫기도 하고 말이다.


“요컨대 심심하지 않게 해달라는 거죠?”


빙그레, 그녀가 웃는다.

정답인 모양이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나랑 마을 순찰을 하면서 심심하지 않게 해주도록. 너는 물론 허접이지만, 1번대 보다 더 특별한 대화 능력은 갖춘 것 같으니까 기대하고 있어.”

“노력은 해볼게요.”


그렇게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저택의 마지막 정문을 열어젖히며 정식으로 <연옥>이라는 구울의 마을 속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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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최약의 구울과 최강의 구울 22.01.15 12 0 16쪽
7 7화. 최초의 구울과 최후의 구울 22.01.09 13 0 6쪽
6 6화. 구울의 마을과 최후의 구울 22.01.08 19 0 12쪽
» 5화. 심심한 네크로맨서와 심심풀이 구울 22.01.02 16 0 9쪽
4 4화. 막무가내 네크로맨서와 슬픈에 잠긴 구울. 22.01.02 20 0 9쪽
3 3화. 최강의 네크로맨서와 최악의 구울 22.01.02 21 0 10쪽
2 2화. 죽어버린 현실과 최후의 구울 22.01.02 26 0 9쪽
1 1화. 고백하려던 날에 인생이 고백(Go Back)했다. 22.01.01 41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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