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남녘의 서재입니다.

네크로맨서와 최후의 구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남녘
작품등록일 :
2021.12.31 12:03
최근연재일 :
2022.01.15 18:00
연재수 :
8 회
조회수 :
164
추천수 :
0
글자수 :
39,064

작성
22.01.02 18:00
조회
20
추천
0
글자
10쪽

3화. 최강의 네크로맨서와 최악의 구울

DUMMY

앙증맞은 턱을 붙잡고 뭔가를 생각하고 있던 그녀가 내 질문에 눈을 깜빡이며 답한다.


“으, 으응? 아, 그렇지. 널 구울로 만든 것도 사자부활 마법이니까.”

“자, 잠깐, 잠깐. 혹시 그렇다면 여기 드래곤이나 마녀, 몬스터 같은 게 있다는 건가요?”

“응, 있어.”


참으로 담백한 답변이다.


“아니 그것보다 이, 있다고?! 드워프라던가 고양이 귀를 가진 종족이···!”

“드워프는 당연히 있고. 고양이 귀는···수인족을 말하는 건가?”

“수수수수, 수인족이 있다고? 그럼 엘프도?!”

“있지. 마법 잘 쓰는 애들. 근데 무슨 반응이 그래? 좀 역겨운데?”


오물이라도 보는 것 같은 눈으로 그녀가 나를 바라봤으나,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죽었다가 눈떠봤더니 판타지 세계라고···?’


거기다가 죽기 전에는 말조차 걸 수 없었을 외견의 여성이 주인이고.

나는 그런 주인의 ‘최후의 구울’이라는 칭호까지 붙었다.


“음. 이 정도까지 대화가 가능하다니. 이건 놀라운데? 뇌가 살아 있는 건가? 하지만 구울이 그럴 수가 있나? 역시 두개골을 부숴서 한 번 확인해 보는 게 좋겠어.”


···라는 그녀의 중얼거림은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판타지 세계에서 구울로 환생한, 소설과 같은 상황과 ‘죄후의 구울’이라는 칭호에 흠뻑 심취하고 있을 뿐이다.


“호혹호, 혹시 저한테 무슨 특별한 능력 같은 게 있을까요?”


나는 흥분감에 도취된 눈으로 물었다.

그러자 아까부터 뭐라 중얼거리고 있던 그녀가 대뜸 다가온 나의 얼굴을 반사적으로 밀어낸다.


“가, 갑자기 가까이 오지 마! 죽여 버릴 뻔 했으니까!”


그게 거짓이 아니라는 듯, 그녀의 머리카락이 조금 곤두선 채로 주변에 스파크를 일이키고 있었다.

정말 마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사실이 나를 더 흥분시킨다.


“그것보다 저한테 특별한 능력 같은 게 있어요? 보통 그렇잖아요? 판타지 세계에서 부활한 현대인이면 스테이터스라거나 스킬, 그런 거요! 있는 거예요? 있겠죠?”


오히려 없으며 여러모로 곤란하다.

스스로 자초한 일로 죽은 거라 억울하진 않지만, 고백하기 직전에 죽어서 온 곳이니 그 정도는 해주어야 이해타산이 맞다.


“···뭔 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기분 나쁘니까 떨어져줄래? 지금 시체 썩은 내로 머리가 아파오고 있거든?”

“써, 썩은 내? 그런 게 나요?”

“응. 역겨워.”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역겹다는 말에 나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몸을 물려야 했다.


“방금 말···, 울 수 있었으면 분명 대성통곡을 했을 거예요.”

“구울은 눈물샘이 없으니까 다행이네. 네 꼴사나운 모습은 공짜라도 보고 싶지 않거든.”


그녀는 위로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게 정말이라는 듯, 발을 뻗어 흙바닥에 경계선을 그으며 넘어오지 말라는 소리까지 한다.


“그래도 그건 좀 궁금하긴 하네.”

“그거?”

“응, 능력 말이야.”


그녀가 약간의 흥미가 일었는지 연분홍빛 입술을 살며시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고민을 할 때 중얼거리는 습관이 있는지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그래, 최후의 구울이니까 능력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그래도 번호가 너무 뒨데···. 아, 나랑 이렇게까지 대화를 나누는 게 혹시 능력은 아닐까? 역시 두개골을···.”


따위의 중얼거림을 끝낸 그녀가 내 쪽을 바라본다.


“좋아, 그럼···. 한 번 확인해 볼까?”

“확인이요? 가능한 거예요?”

“뭐, 그렇지. 다만 기대는 하지 마.”


나는 그녀의 말과 정 반대로 기대감에 가득 찬 눈을 반짝인다.


‘수정구 같은 것에 마력을 주입해 보는 건가? 그게 아니면 카드 같은 걸로 확인한다거나!’


그런 내 기대감과 달리 푸른빛이 감도는 그녀는 눈빛은 조금씩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비장한 표정으로 한 번 심호흡을 하는 것과 동시에.

몸에 두르고 있던 칠흑처럼 어두운 망토를 펄럭였다.

망토를 훑은 손은 자연스레 잿빛 고깔모자의 챙을 부여잡더니―



“ 내 이름은 엣다 베일라! ”



―지면이 울리 정도의 목소리로 외친다.



“ 이 연옥에서 가장 위대하고 강대한, 최강의 네크로맨서이자 유일한 최강의 사령술사! ”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태클을 걸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그녀의 목소리와 동작 하나하나에는 그러한 힘이 있었다.



“ 자, 환영한다. 나의 999,999,999번째 구울이여! 이제부터 너의 주인인 나, 엣다 베일라가 그대의 영혼에 담긴 그릇을 확인해 주노라!!! ”


그래, 이거다!

판타지 세계라면 이러한 연출로 능력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녀의 몸에 둘러진 칠흑처럼 어두운 망토가 자연스럽지 않은 바람에 펄럭인다.

지면에서 피어오른 이질적인 바람에 날아갈 것 같은 잿빛의 고깔모자를 그녀는 단단히 고정해 붙잡는다.

그렇게 취해진 “멋들어지는” 포즈는 가히 압도적이다.


한 번의 펄럭임과 함께 구불구불한 마법 지팡이가 나의 어깨에 닿는다.

예쁘장한 얼굴에 보석처럼 박히 푸르스름한 눈이 나의 그릇을 파악하기 위해 번쩍였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걸린 사악한 미소가 나의 기대감을 폭발시키기 일보 직전이었다.


‘과연 무슨 능력일까? 초재생? 이건 구울이니까 기본 스펙이려나? 그게 아니면 예지능력?’


순간이동이라던가 압도적인 힘이라던가!


“자아아앗!!!”


마지막 기합이 울려 퍼지며 바람이 멎는다.

요란하게 펄럭이던 그녀의 옷가지들도 얌전해졌다.


“어, 어떤가요?! 무슨 능력이 있죠? 제 먼치킨 라이프는 괜찮은 건가요?!”


그런 내 기대 섞인 질문에.


“엥?”


그녀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다.


“왜, 왜 그래요?”


불안이 엄습한다.


“제 먼치킨 라이프···, 안녕해요?”

“아, 그게···. 미안. 실망할 정도로 별 거 없어.”


그녀는 완전히 흥미를 잃고 심드렁한 얼굴이 됐다.


“거, 거짓말 마!”


부정하고 싶은 현실에 내가 달려들자 그녀는 이제 귀찮다는 얼굴을 한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해? 오히려 실망한 건 나거든?”

“알려줘! 뭐라도 있을 거 아니야!”

“뭐···, 하나도 없던 건 아닌데.”

“그거라도!”


제발이라는 단어는 눈빛으로 날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전달받는 그녀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다시 내 어깨에 지팡이를 올린다.


“에···어디보자, 어디보자. 육체 재생에 정신 재생. 응···. 다시 봐도 이건 구울이면 누구나 있는 거야.”


그녀가 말이 없자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 나를 그녀도 물끄러미 바라본다.


“···끝이에요?”

“끝인데?”


음. 끝났다.

내 판타지 세계. 먼치킨 라이프. 구울의 인생.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 걸로 하자.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오고 만다.


“주인 앞에서 한숨이라니. 건방진 구울이네.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

“격려해주는 거라면 감사하지만 안 그러셔도 돼요.”

“응, 격려하려는 건 아니고. 원래 네 자릿수 구울들은 죄다 그런 수준이야. 그러니 당연한 거라고”


굳이 그런 말을 해서 상처를 줘야 하나싶었으나, 어차피 현실이니 받아들이고 그 자릿수라는 걸 물어보았다.


“그 자릿수라는 게 아까 말씀하셨던 999,999? 그건 가요?”

“응. 99,999,999. 내가 최대한 부활시킬 수 있는 구울의 수. 구울의 능력은 맨 처음 만드는 1번 대부터 네가 있는 천만 번 대까지 수준이란 게 있거든. 상대적으로 뒤에 있을수록 적은 마력으로 부활한 거니까.”


그래서 그녀는 구울을 1번 대부터 10, 100···. 단위 수로 구분하며, 여기에 A, B, C, D, E, F, G, H라는 수준으로 부른다 한다.


“그럼 저는 H 수준이라는 거죠?”

“응. 맞아. 앞 글자를 따서 허접(Heojeop)이라고 불러.”

“뭐, 뭐요?”


잘못 들었나 했다.

하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허접. Heojeop.”

“제가 아는 그 허접이에요?”

“네가 아는 허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수준이 매우 낮다는 의미야.”

“사과하세요! 당장! 10,000,000번 대 구울들 전부에게 사과하라고요!”


나도 모르게 그 말에는 울컥하고 만다.

그녀는 화를 내는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더니 빙그레 미소 짓는다.


“역시 이상한 녀석이네. 미안하지만 걔들은 영광으로 생각하는 걸? 너처럼 불만을 표한 애들은 한 명도 없었어.”


그래서 두개골을 한 번 열어보고 싶다는 말이 들렸지만, 아마 환청일 것이다.


“···하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구울의 몸인데도 두통이 인다.


‘결국 판타지 세계에서 되살아났지만, 가진 거라고는 기본적인 구울 스팩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이라니.’


더군다나 그런 구울이 내 앞에 99,999,998마리나 존재한다.

그거면 그냥 던전 잡몹 1 정도의 수준도 되지 못한다.


“그래서 저는 뭘 하면 돼요?”


약간의 자포자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도 던전 잡몹 1 정도의 일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 섞인 물음이었다.


“으음. 그러네. 네가 그래도 내 최후의 구울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으니까···.”


그녀는 잠시. 아니 상당히 오랫동안 고민하더니―


“···내 말동무나 할래?”


―터무니없이 하찮은 임무를 부여해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네크로맨서와 최후의 구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8화. 최약의 구울과 최강의 구울 22.01.15 12 0 16쪽
7 7화. 최초의 구울과 최후의 구울 22.01.09 12 0 6쪽
6 6화. 구울의 마을과 최후의 구울 22.01.08 19 0 12쪽
5 5화. 심심한 네크로맨서와 심심풀이 구울 22.01.02 15 0 9쪽
4 4화. 막무가내 네크로맨서와 슬픈에 잠긴 구울. 22.01.02 19 0 9쪽
» 3화. 최강의 네크로맨서와 최악의 구울 22.01.02 21 0 10쪽
2 2화. 죽어버린 현실과 최후의 구울 22.01.02 26 0 9쪽
1 1화. 고백하려던 날에 인생이 고백(Go Back)했다. 22.01.01 41 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