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주의 신들이 나에게 집착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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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야?”
에밀이 몸을 움츠렸다.
[섭섭하네, 몇 번이나 불렀는데 모르는 거야?]
“뭔 소리를...”
에밀이 어이없어 하던 그때.
[아, 맞다. 너 아니었지?]
빙의 하기 직전.
딱 그때 그 상황이 떠오르는 듯한 말투.
“설마...”
[뭐, 상관 없나? 어쨌든 너나 걔나!]
화아아악!
짙게 퍼져있던 안개가 걷히고.
[우리의 초대에 응했으니 우리를 마주할 시간이다.]
안개 속에서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꿈틀, 꿈틀.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알.
꿀렁, 꿀렁.
사방으로 꿈틀대는 촉수.
[보아라, 이것이 너희들의 파멸이자 미래이며, 과거이자...]
“으엑.”
뭔진 몰라도, 에밀은 곧바로 얼굴을 찡그렸다.
그도 그럴게, 굉장히 역겨운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응?]
뒤룩.
촉수속에 휘감긴 거대한 눈알이 에밀을 향했다.
[너... 내가 보이지 않는건가?]
“그게 네 모습이냐? 촉수에 눈깔 달린게?”
마치 성게처럼 수많은 촉수들로 이루어진 몸.
그 중앙에 딱 하나, 거대한 눈알이 박혀 있었다.
[아니, 내 모습은 맞는데...]
다만, 뭐랄까.
근엄하고 위대한 존재같은 목소리와는 달리, 그냥 징그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어서 그런걸까.
좀 맥이 빠졌다.
[아무튼, 내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다 그거지?]
“...뭐 반응이라도 해줘야 하나?”
오히려 되묻는 에밀.
난감하다는 듯 괴물이 촉수로 제 눈알 위를 벅벅 긁었다.
[아니, 뭔가... 나를 숭배하고 싶지 않아?]
“...네가 파이커냐?”
[네 몸을 바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죽고 싶다는 생각도?]
“우울증 없다.”
몇가지 질문이 이어지고.
[...허, 참.]
어딘가 허탈한.
하지만 기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훨씬 더 쓸모있는 놈이네, 너.]
“칭찬은 됐고. 너 정체가 뭐냐?”
정체 모를 괴물의 인정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것보다 더 알고 싶은건...
“그리고 너, 나를 여기로 끌고 온게 너냐?”
에밀이 빙의 당하기 직전에 들었던 목소리.
그것과의 관계였다.
[워워, 진정하라고.]
그렇게 말한 괴물이, 촉수를 제 몸에 감기 시작했다.
차르르륵.
그렇게 눈알을 가릴 정도로 감았던 촉수가 풀려나자.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이야기해 보자고.]
터벅.
촉수 안에서, 한 어린아이의 형상이 걸어 나왔다.
[물론 그쪽이 궁금해 하는 것까지 전부 말이야.]
“...그래.”
씨익.
하고 웃는 그의 모습이.
에밀은 어딘가 섬뜩해 보였다.
****
딱!
하고 녀석이 손가락을 튕기자 안개가 사라졌다.
딱!
하고 한번 더 튕기니 해가 떴고.
딱딱딱!
몇 번 더 튕기자, 이제는...
“...허.”
해가 뜬 동산 위에서 찻잔이 놓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에밀의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차는 별로인가? 내가 본 놈들은 차를 못 마셔서 환장하던데.]
호로록.
여자로도, 남자로도 보이는 모습의 얼굴.
그 모습을 한 자에게 에밀이 물었다.
“넌 누구지?”
[이름을 묻는거야, 아니면 정체를 묻는거야?]
호록.
에밀이 차를 한 모금 들이키자.
[물론 둘 다 말해줄게, 궁금하다면.]
그것은 웃으며 말해주었다.
[나는 샤그라.]
에밀의 기억속에 없는 이름이었다.
[너의 대적자이자 주적인, 외우주의 신중 하나야.]
그리고 그 이유는 곧바로 나왔다.
에밀이 한번도 해 보지 않은 흑마법사.
그 직업의 주적이라 자신을 밝히고 있었으니.
“...그걸 나한테 가르쳐주는 이유는.”
스윽.
에밀이 찻잔을 옆으로 밀어 치웠다.
“나랑 싸우겠다는 의미겠지.”
[원래라면 말이야.]
킥킥.
그렇게 웃은 샤그라가 에밀을 가리켰다.
[그러기엔 네가 너무 재밌더라고?]
“...재밌다고? 뭐가?”
[내 본모습을 보고도, 미치지도 않고 아주 멀쩡 하잖아. 그 정도면 충분하지.]
순간 에밀은 떠올렸다.
이러한 존재와 비슷한 개념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크툴루.’
그래, 그런 이름이었다.
인간의 지능으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굉장한 신적 존재.
그런 존재가 지금,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단지 미치지 않았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그것 때문에, 흥미가 생겼단 말이지. 마침 네 몸도 아주 특이한 체질인 것 같고.]
척.
그렇게 말하며 샤그라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우우웅.
동시에 샤그라의 손 끝에 모여드는 마력.
황급이 에밀이 방어 마법을 전개했다.
콰득!
순식간에 부서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방어해낸 마법.
[우리들의 힘을 받아들이기 아주 좋은 구조야. 응, 아마 우리들 보다 더 우리들의 힘을 잘 쓸 가능성도 있고.]
그제서야 에밀은 깨달았다.
왜 자신을 이 녀석이 부른건지.
‘내 재능 때문이구나.’
흑마법사의 재능.
그것은 자신보다 훨씬 더한 존재마저 탐을 내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다만 다행인 점이라면, 흥미를 가지기만 할 뿐.
에밀을 죽여서까지 얻으려 하진 않는 듯 했다.
[그래, 그러고보니 그것도 물었지?]
짝.
그제서야 생각 났다는 듯 박수를 치는 샤그라.
[너, 여기에 왜 오게 된지 알고 싶다며?]
“...알고 있는거였어?!”
혹시나.
비슷한 목소리였길래 설마 했는데.
진짜 알고 있는거였나?
[알다마다,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가거든.]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샤그라.
[너 혹시 여기로 오기 직전에 하던거 있었어?]
“...게임 말하는건가?”
[그래, 게임. 그거였지, 그거.]
에밀은 뭔가 알 것 같았다.
이 세상이 본래 게임인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듯 했다.
[아무튼, 그거에 뭔가 평가질 한거 없어? 리뷰...라고 했나?]
“...아.”
설마 그것 때문에?하지만 분명히 그때 자신은...
“난 분명히 좋다고 했는데?”
[응? 진짜?]
달그락.
마시던 차를 내려놓곤 샤그라가 재차 물었다.
[거짓말 하는건 아니지?]
“너 정도 되는 존재면 내가 거짓말 하는지 아닌지는 알아볼 수 있는거 아닌가?”
[어... 그런 것 만은 아닌데.]
긁적긁적.
머리를 긁어대는 샤그라.
“그러고 보니, 여기로 들어오기 직전에 너 같은 목소리가 들린 적은 있는데.”
[그래? 뭔데?]
“어, X발. 이 새끼가 아닌데.”
토씨 하나 안틀리고.
정확하게.
그렇게 말해주자.
[...어.]
순간 샤그라가 가만히 눈을 끔뻑거렸다.
[진짜? 그렇게 말했다고?]
“응.”
[아... 어떻게 된건지 알곘다. 어, 그래... 그래서 였구만.]
그렇게 헛웃음을 흘리던 그는.
[아무래도 네가 아니라 다른 놈이 왔어야 했나 보네.]
“에?”
내가 좀 특별한 상황이라는 걸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아니, 원래 그 녀석은 자기한테 좋지 않은말을 하는 놈들을 여기로 보낸단 말이지?]
“아, 그래서...”
뭔가 좋지 않은 리뷰에 항상 그런 답변을 달더니.
그럼 그 녀석들도 여기로 전부 빙의당한 듯 했다.
[그러던 와중에 네가 단 그... 리뷰? 그게 마음에 안드는 놈을 여기로 보내다 실수로 했나봐.]
“하...”
한숨을 쉬면서도 에밀은 내심 안도했다.
엔딩 포인트를 다 쓴 캐릭터로 빙의했다는 사실에.
만약 그런 거 없이 그냥 쌩 캐릭터로 빙의 했어봐라.
일주일도 안되서 시체로 발견될 게 분명했다.
“그럼 다시 내보내 줄 수는, 있는거죠?”
[그게...]
힐끔.
에밀의 눈길을 피하던 샤그라가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그 몸의 힘은 좋지 않아? 들어보니까 엄청 센 놈이라며?]
“뭐, 맘에 들긴 하죠.”
만점 스탯이 한두개도 아니고 다섯 개다.
위계가 낮아서 그렇지, 이대로 무난하게 성장 한다면 원래 게임 엔딩 정도는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특전은 또 어떠한가.
하나만 있어도 천재라 할 수 있는 특전들이 거의 열 개가 넘는다.
이걸로 강해지지 못하면 거의 미친놈이라 봐야 할 정도로.
[그런 몸인데, 굳이 원래 세게로 돌아 가야겠어...? 안그래?]
“흠.”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 태도.
에밀은 곧바로 물었다.
“못 돌아가는거 아닌가?”
[응?]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지. 못 돌아가서 이런 이야기나 꺼내고 있는 거 아닌가?”
그 당당한 모습에 몇 번이고 뭐라 변명하려던 샤그라는.
[...맞아. 못 돌아가.]
결국 진실을 꺼냈고.
“하아.”
에밀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 그래도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그런 에밀에게 샤그라가 열심히 떠벌거렸다.
[9위계 너머, 원래 10위계로 불리는 그 영역을 지나 너도 우리와 같은 영역에 들어서면...]
“들어서면?”
[그때는 방법이 있을거야, 틀림 없어!]
우리와 같은 영역.
샤그라는 자신을 외우주의 신이라 칭했다.
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
10위계에 도달하면, 그런 존재가 된다는 건가.
[네 재능 정도면 분명히 우리랑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테니까... 그럴 테니까.]
마치 애원하는 듯.
그렇게까지 말하자 에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 말곤 방법이 없다는 거냐.”
[응...]
“그래, 알겠다.”
그 말에.
[다행이다...]
휴.
하고 샤그라가 한숨을 내뱉었다.
외신 씩이나 되는 존재가 하는 행동 치곤 퍽 인간다웠다.
“그나저나, 넌 내 주적이라고 하지 않았나?”
[응? 아, 어! 그렇지.]
주적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엿같은지 에밀은 알고 있었다.
메인 퀘스트 격인 존재이지만, 주는 것도 없고 빡세기만 한 보스몹.
그렇기에 원래라면 치를 떠는 존재 였지만...
“그런데 이렇게까지 나에게 대하는 이유가 내게 흥미가 있는 거, 하나 뿐이라고?”
[아, 그거.]
쉬르르륵.
샤그라가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그건 네 압도적인 재능 때문이야.]
“왜?”
재능이야 저들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에밀은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들은 직접적으로 네게 간섭할 수 없어, 그러기 위해선 우리도 많은 걸 포기해야 하는데... 그럴 순 없지.]
“아하.”
[그래서 너희같은, 우리들의 대행자를 내보내는 거야, 그런데....]
번쩍.
샤그라가 눈을 빛냈다.
[너는, 그 정도가 아니야.]
에밀을 향하는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너는 우리들의 추종자에서 머무르는 정도가 아닌, 우리와 동등한 일원이 될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는 녀석이야, 그렇기에 나는 너를 최대한 후원해 주고 싶은데, 문제는...]
하아.
한숨을 내쉬는 샤그라.
[내가 아닌 다른 녀석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아하.”
하기야, 원래 저 놈들은 내 주적이었으니.
나를 죽이지 못해 안달난 놈들도 있겠지.
[그래서, 내가 최대한 녀석들을 설득해 볼텐데, 그러기 위해선 네가 그만한 존재라는 걸 증명해 줘야 하거든?]
“그래, 증명은 뭐로 하면 되지?”
에밀이 자신의 말을 믿어줘서일까.
왠지 샤그라는 기뻐하는 듯 했다.
[간단해, 우리들의 권속들과 싸워서 이기면 돼!]
“...네 권속들?”
그 말과 함께 나타나는 샤그라의 권속들.
그들을 본 에밀이 순간 놀랐다.
‘밤의 포식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출몰할지 모르는 최악의 인카운터 몹중 하나로 꼽히는 놈들이었다.
이 놈들이 이 녀석의 권속이었다고?
그것보다, 문제가 있었다.
“이 녀석들... 4위계급 몬스터일텐데.”
4위계급 몬스터는 4위계급 능력자 한 파티.
그러니까 4명이 있어야만 사냥 가능한 놈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샤그라가 한 것이라곤...
[자, 여기 내 힘을 줄테니까, 알아서 싸워봐! 파이팅!]
그 말과 함께, 에밀의 머릿속에 뭔 짓을 한 것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들어오는 지식들에 에밀이 중얼거렸다.
“이건 뭔...”
이해할 수 없는 지식에 순간 당황한 것도 잠시.
컹컹!
개 짖는 소리와 함께 놈들이 들이닥쳤다.
“으아악!!”
다른 놈도 아니고 4위계급 몬스터를 1위계인 내가 어떻게 잡아!
그렇게 생각하며 도망치려 한 순간.
“...허.”
머릿속에 주어진 놈의 힘.
그게 이해가 되면 될수록...
‘진짜?’
뭔가.
이래선 안되는데.
될 것 같았다.
저 놈들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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