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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베클리님의 서재입니다.

임해군 호위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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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베클리
작품등록일 :
2023.02.24 21:18
최근연재일 :
2023.05.02 01:23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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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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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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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임해군, 충청도를 휘어잡다.

DUMMY

35.


"형, 왔어?"


"어, 너 먼저 와 있었구나."


단 둘 뿐인 공빈 김씨의 자식들인데도 둘의 만남은 매우 어색했다. 딱 그 한 마디만 나누고 돌아서려는 광해군.


"인사해라, 네 새형수님이다."


광해군은 임해군이 소개하는 아카리를 보더니 인상을 쓰며 가벼운 목례만 하고 돌아섰다. 그게 다였다. 그날밤 두 형제의 만남은.



임해군은 충청감사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김도윤은 임해군의 호위군관이니 정자의 곁에서 어슬렁거리며 그저 임해군이 개판치지 못하게 감시나 하면서 밤이슬을 맞아야 했다.


가만히 서있자니 심심해진 김도윤은 꽈리를 불러 광해군에 대해 물었다. 김도윤이 꽈리에게 자세한 내용을 거의 다 들을 때쯤 누가 불렀다.


"저, 나리가 군관 김도윤이라 하십니까?"


나이든 노비가 김도윤을 찾아와 조심스레 물었다. 그리고는 광해군이 찾는다고 했다. 김도윤은 노비를 따라 광해군의 처소로 갔다.



김도윤은 방으로 들어가 꿇어 엎드렸다.


"편히 앉거라."


김도윤은 고개를 들어 광해군을 바라보았다.


기대와 달리 이병헌과 닮지 않은 얼굴. 반듯하지만 피곤과 짜증에 찌든 얼굴. 광해군의 인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정이었다.


광해군의 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재수없게 끼인 인생'이다. 지금 상황은 그 중에서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얼마 전에 정철이 광해군을 세자로 세우자고 주장하다가 파직당하고 귀양갔다. 한 마디로 못된 아비 선조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직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얼굴이 그럴 만도 했다. 그 피곤한 얼굴과 힘든 인생을 생각하면 안쓰럽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이 솟아났지만, 지금 이 게임에서 김도윤은 그 반대편에 서야 하는 운명이었다.


"네가 왜국에 갔다온 김도윤이냐?"


"네, 마마."


광해군은 김도윤을 찬찬히 살폈다. 잠시 뜸을 들인 광해군이 탁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보기에는 어떻더냐? 왜놈들이 쳐들어올 것 같더냐?"


김도윤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저 같이 미천한 것이 어찌 감히 마마께 제 어리석은 생각을 아뢰겠습니까."


"괜찮다. 보태지도 빼지도 말고 네가 보고 느낀 대로 말해보거라."


김도윤은 선뜻 말을 못하고 시간을 끌었다.


"괜찮다고 하지 않느냐. 네 뭐라하든 혼내지 않을 것이니 말해 보거라."


"곧 침공해 올 것으로 보였습니다."


김도윤의 말에 광해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렇구나. 그러면 우리와 왜국이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으냐?"


김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것 같더냐?"


재차 물어도 김도윤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광해군은 김도윤을 물끄러미 보더니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지는 게로구나."


광해군은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감아쥐었다. 그러다가 다시 물었다.


"어찌해야 이길 수 있겠느냐?"


김도윤은 또 말을 하지 않았다. 광해군이 재차 물었으나 역시 김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말이 없자 광해군은 마침내 언성을 높였다.


"어찌해야 이길 수 있겠냐고 묻고 있지 않느냐!"


김도윤은 고개를 더욱 깊이 숙였다.


"마마, 조선은 적에 대해 너무 모르옵니다."


김도윤의 나직한 말에 광해군이 부르르 떨었다. 한참 동안 김도윤을 쳐다보던 광해군이 한숨을 내쉬며 땅 속으로 꺼지듯이 주저앉았다.


"그래 그거였어. 내가 찾던 답을 네가 갖고 있었구나. 우리는 일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구나. 그러니 이길 방도를 찾을 길도 없고."


광해군은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더니 김도윤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


김도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 역사에서 광해군은 임해군을 죽였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김도윤은 임해군의 호위무사다. 임해군을 도와 광해군을 죽여야 했다.


"마마, 저는 임해군 호위무사입니다."




다음날 아침.


공산성의 공터 비탈은 온통 흰빛으로 물들었다. 천 명이 넘는 선비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임해군은 의기양양하게 그들의 앞으로 나섰다.


임해군이 나서자 유림들이 일제히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임해군도 맞절을 하고 그들을 자리에 앉혔다.


"존경하고 친애하는 동학 여러분!"


임해군이 유림들에게 같은 학문을 공부하는 동학(同學)이라 칭하자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늘 조선의 장자, 저 임해군이 온 곳이 어딥니까?"


"충청도유."

"공주지유."


드문드문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오늘 저 임해군이 온 곳이 바로 충절의 고장 아닙니까!"


일제히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충절의 고장, 충청도에서 의기에 불타는 여러 동학을 뵈오니, 이 임해군 가슴 속에서 뜨거운 피가 끓어오릅니다!"


"마마!"

"임해군 마마!"


"지금 저 불의한 왜놈들이 쳐들어오려 하고 있습니다. 놈들의 흉악한 야욕에 종묘사직과 선현의 사당이 더럽혀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저희가 물리치겠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충절의 고장이 다시 한번 의기로 똘똘 뭉쳐 떨쳐 일어설 때입니다. 저 임해군이 맨 앞에 서겠습니다. 여러 동학은 저를 따르시겠습니까!"


충청도는 서인의 안방이다. 마치 지금의 대구경북이 보수의 아성인 것처럼. 원래 경기와 충청도의 기호학파는 주로 서인이 되었고, 경상도의 영남학파는 주로 동인이 되었다. 하지만 경기는 한양을 끼고 있어 동인도 많이 거주했다. 그러니 자연 서인 순혈 지역은 충청도였다.


당초 서인은 일본 침공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충청지역 유림의 민심은 전쟁에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 왕의 맏아들이 나서 싸우자고 주장하니 그들은 일제히 기쁨에 겨워 싸울 것을 맹세했다.


"충의로 종묘사직을 지키자!"

"왜적을 무찌르자!"


분위기가 달궈지자 한 늙은 선비가 앞으로 나왔다.


"마마, 충의로서 나라를 지키자는 군신간의 맹약을 맺었으니, 그 의로움이 만세토록 기억되게 할 시조를 한 수 내려주시지요."


"시조?"


당황한 임해군은 김도윤을 노려봤다.


이건 시나리오에 없던 거잖아!


김도윤도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임해군이 잽싸게 김도윤의 옆에 오더니 숙제를 떠넘겼다.


"내가 불러줄 테니 네가 받아 적어라."


그러면서 마치 시조를 불러주는 것처럼 김도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빨리 써서 내놔. 빨리 내놔, 빠알리."


김도윤은 바삐 적기 시작했다. 임해군은 김도윤이 첫 줄을 적자 군중을 향해 큰 소리로 읊기 시작했다.


속리산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백마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벗들아, 우리네 붉은 피는 나라 위해 바치세


임해군이 떠듬떠듬 시조를 읊자 군중은 광란의 도가니로 변했다. 속리산과 백마강! 충청도 선비들은 박수를 쳤다. 그러자 한 중년 선비가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군중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저는 속리산 푸른솔, 보은 현감을 지낸 조헌이라 하외다. 제가 한양에 가서 풍신수길의 친서를 보니 선전포고를 하였더이다. 이 같이 왜구의 침략은 불을 보듯 명확한데 조정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소. 그런데 천지신명이 우리 조선을 보우하사 이처럼 훌륭한 왕자 마마를 보내주셨소."


조헌의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는지 성벽이 부르르 떨 정도였다.


"마마께서 앞장 서신다니 우리 모두 주상 전하와 임해군 마마를 위해 장부답게 싸웁시다! 우리의 붉은 피를 나라를 위해 바칩시다!"


너무나 우렁찬 목소리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이 새끼가 왜 갑자기 주인공 자리를 가로채려 해.


임해군이 조헌을 밀쳐냈다.


"장부답게 싸우고 선비답게 죽읍시다!"


임해군이 주먹을 불끈 쥐니 흥분한 선비들은 금기도 잊고 일제히 일어나 외쳤다.


"주상 전하 만세!"

"임해군 마마 천세!"


분위기가 의혈로 들끓는 가운데 면사를 두른 아카리가 나타났다. 왜국 여인의 등장에 들끓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선비들도 소문에 떠도는 사연을 듣고는 있었으나, 유림의 체질상 왜인에게도, 여자에게도 거부감이 강했던 것이다.


아카리가 군중의 앞에 서자, 김도윤이 바짝 붙어 아카리의 말을 듣는 척하고 미리 준비된 시나리오를 군중에게 전했다.


"조선의 선비님들. 군신간에 충의의 맹약을 하는 이 자리는 감히 아녀자가 나설 자리가 아님을 알고 있사오나, 이는 제 남편, 제 조국의 일이기에 열녀의 단심으로 작은 정성을 보태려 나왔습니다."


아카리의 앞에 작은 상이 차려졌다.


"아녀자의 신분으로 천지신명께 고할 수는 없지만, 아녀자도 지신(地神)에게는 제를 올릴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도윤의 말이 떨어지자 아카리는 젯상에 술을 올리고 엎드려 절을 했다. 김도윤이 큰 소리로 아카리의 말을 전했다.


"지신이시여, 부디 저 무도한 왜국을 무찌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신이시여, 제 부군, 임해군 전하가 외적을 막아내는 위업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첩 이명리가 이렇게 간절히 비나이다."

"지신이시여, 충절의 선비들이 전쟁에서 이겨 모두 천수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카리의 말이 전해지자 분위기는 다시 반전됐다. 제사를 마친 아카리가 손수 만든 일본식 찹쌀떡, 즉 모찌를 연로한 선비에게 전하니 모두가 아카리를 칭찬했다.


임해군이 다시 앞에 나섰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무릇 나를 알고 적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했소."


그러면서 임해군은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다시 아카리를 가리켰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나 임해군에게는 저 사람이 있으니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이오!"


분위기는 처음보다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임해군 마마!"

"명리공주 마마!"

"지피지기 백전백승!"

"다 같이 마마를 위해 죽읍시다!"




오후가 되자 궁사장에 감영의 군사들이 모두 모였다. 군사에 더해 많은 수의 선비들도 임해군의 시범을 보러 몰려들었다.


김도윤과 미구엘은 다시 조총 3단 사격을 보여주었다. 천지를 진동하는 총성과 함께 과녁들이 박살이 나서 흩어졌다. 군사들과 선비들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총이 보여준 위력에 장내에는 깊은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을 뚫고 김도윤의 우렁찬 외침이 울려 퍼졌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모두가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니 곁에 있던 임해군이 거만하게 외쳤다.


"이게 왜놈들 비장의 무기다. 무섭지?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걸 안다.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임해군의 자신있는 외침에 군사들과 선비들이 일제히 주먹을 들고 따라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일제히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로 조용히 수근거림이 퍼져나갔다.


저게 다 명리공주가 가르쳐준 거래.



임해군은 김도윤에게 명해 그들이 사용한 조총을 충청감사에게 넘겨주었다.


"이걸 충청도 모든 고을의 군사들에게 보여주고, 이걸 본떠서 많이 만드시오. 그리고 충청 군사들에게 무장시키고 연습시키시오."


"네, 마마. 명을 받들겠습니다."




공주를 떠난 임해군 일행은 회인에 이르러 광해군과 다시 만났다. 광해군은 소수의 인원과 더불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길을 가도 계속 같이 가게되자 광해군이 임해군에게 다가왔다.


"형. 형은 왜 이 길로 가?"


작가의말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 단체, 지명은 실제 역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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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네가 도쿠가와를 죽이고, 아우가 신성군을 죽이면 23.05.02 98 1 12쪽
42 쓰레기 장수들을 바꿔라 23.04.30 99 1 11쪽
41 세자 자리를 양보한다 23.04.29 99 1 11쪽
40 내가 제갈량이다. 23.04.27 101 1 12쪽
39 이슈의 중심, 임해군 23.04.26 124 1 12쪽
38 명나라 황제, 만력제를 만나자 23.04.25 114 1 12쪽
37 배신자 조선의 속셈을 확인하라 23.04.23 128 1 11쪽
36 광해야, 내가 세자하면 안되냐 23.04.22 130 1 12쪽
» 임해군, 충청도를 휘어잡다. 23.04.20 127 1 11쪽
34 백성들이 임해군과 명리공주를 연호하다 23.04.19 147 1 11쪽
33 전쟁의 승패는 준비에서 갈린다 23.04.18 150 1 11쪽
32 정권을 줄 테니 임금을 시켜주시오 23.04.18 153 2 12쪽
31 엘리자베스, 황금조선회사 설립을 허가하다 23.04.16 143 1 12쪽
30 해적 드레이크, 포르투갈 황금선을 나포하다 23.04.14 153 1 12쪽
29 왜구가 뭐가 중요해? 중요한 것은 정권장악이지 23.04.13 205 1 12쪽
28 이원익과 전쟁을 논하다 23.04.11 169 1 12쪽
27 드림팀을 구성하라 23.04.10 171 1 12쪽
26 임진왜란 승리를 위해 제일 먼저 해야할 일 23.04.08 188 1 11쪽
25 숨가쁜 오사카의 마지막 밤 23.04.06 175 1 12쪽
24 교토의 여자 닌자 23.04.05 200 1 11쪽
23 일본을 먹자꾸나 23.04.04 200 2 12쪽
22 항왜는 임해군의 무력으로 23.03.31 213 3 11쪽
21 정명가도 통행료는 황금 백만냥 23.03.29 209 3 11쪽
20 도요토미는 조조, 도쿠가와는 사마의 23.03.27 227 3 12쪽
19 임해군, 각성하다. 23.03.27 244 3 12쪽
18 직접 붙어보겠느냐? +1 23.03.25 241 3 11쪽
17 히데요시와 히데요리 +1 23.03.21 259 3 12쪽
16 도쿠가와 이에야쓰와 손을 잡아라 23.03.20 275 4 11쪽
15 적의 심장에서 왕의 자리를 노리다 23.03.19 292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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