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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고양이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왕이 될 상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사향고양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0.12 17:29
최근연재일 :
2020.11.10 21:2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9,194
추천수 :
282
글자수 :
132,971

작성
20.10.28 16:20
조회
326
추천
8
글자
12쪽

나한테 방법이 있어,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DUMMY

대니는 짐짓 목소리에 힘을 줬다.


“유슬리, 잘 들어! 하정이 빈약하다는 건 부하운이 별로라는 거야. 너는 특히 부하운이 최악이야.”

“하, 하지만 관운은 좋다고 하지 않았어?”

“응, 상정은 튼실해. 하지만 하정은 빈약하니 얼굴의 밸런스가 안 맞아. 이런 경우 높은 자리에 오를 수는 있지만 얼마 안 가 부하에게 뒷통수를 맞을 상이야.”

“내, 내 부하가 나를 죽인다는 소리야?”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지.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아, 아니다.”


대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치 불치병에 걸린 환자의 병명을 숨기려는 의사같은 표정을 지으며.


“뭐, 뭔데? 대니, 답답하게 굴지말고 어서 말해 봐!”


유슬리가 발을 동동 구르며 대니를 재촉했다.


‘너무 순진해서 미안해지네.’


사미라가 현실의 문제를 무식하게 해결하는 스타일이라면, 유슬리는 머릿속에 든 건 많지만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였다.


유슬리의 나이를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니는 유슬리에게 약간의 거짓말을 할 속셈이었다.


“유슬리, 너는 단명할 관상이야. 기색을 보아하니 브란이랑 비슷해. 빠른 시일 내에··· 어쩌면 증명식 날 믿었던 부하에게 뒷통수 맞을 수도 있겠어.”


유슬리가 단명할 관상인 건 사실이다. 부하운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그러니 겐드리같은 새끼가 직속 기사로 있는 거다.


하지만 브란처럼 당장 죽음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유슬리는 겨우 15살이었다. 30살에 죽는 것도 충분히 단명한 삶이었다.


증명식 때 부하에게 뒷통수 맞는다는 건 그냥 대니가 지어낸 얘기였다. 하지만 유슬리가 정말 단명한다면 그 이유는 그의 부하 때문일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 하지만 내 관운이 좋다며? 나는 아직 작위를 제대로 받지도 못했는데, 벌써 위기가 찾아오는 건 이상하잖아!”

“유슬리,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어. 너는 아크 가문의 삼남이야. 그 자체가 엄청난 운을 타고났다는 뜻이라고.”

“······”


엄밀히 따지면 그건 부모운에 가까웠다. 하지만 부모운과 관운을 떼어놓고 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고. 지금 대니는 목적을 위해 적절히 포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15년 동안 고아로 자랐기 때문에 알 수 있어. 공작의 자식으로 태어날 수 있는 운은 다른 평민들이 평생 얻을 운보다 뛰어나단 걸. 네가 책을 이렇게 많이 읽을 수 있는 것도 다 공작의 자식으로 태어난 덕분이야. 날 봐, 이제 와서 글을 배우고 있잖아? 평민들은 책을 접할 기회조차 없어.”

“···그건, 그래.”


설교할 목적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유슬리의 의문을 어물쩡 넘겼으니 됐다.


유슬리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럼 지금 성 안에 나를 노리고 있는 부하가 있다는 얘기잖아?”

“겐드리.”


드디어 이 이름을 꺼냈다.


“뭐? 겐드리 경 말하는 거야?”


유슬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니는 유슬리에게 겐드리의 정체를 얘기해 주었다. 그가 대니와 에릭을 습격했다는 사실과 악마와 결탁 했다는 사실. 그가 아크 가문에 잠복한 타 가문의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것까지도.


“겐드리 경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유슬리. 네 부하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람 보는 눈을 길러야 해. 앞으로는 부하들을 무조건적으로 맹신하지 마. 그들이 설사 기사라 할지라도 말이야.”

“혼란스러워.”


유슬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느 정도 대니의 말을 믿는 눈치였다.


좋게 말하면 사람을 잘 설득하는 사람, 나쁘게 말하면 최고의 사기꾼들은 보통 99가지 진실에 1가지 거짓을 섞어 사람을 속인다. 좋게 말하면 99가지 진실에 1가지 거짓을 섞어 설득한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보통 희대의 사기꾼이나 정치인이 되거나, 뛰어난 작가가 된다.


대니는 뛰어난 작가 정신을 발휘하여 유슬리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겐드리의 목적은 아크 가문의 후계자 후보들을 견제하는 것일 확률이 높아. 증명식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고립된 상황에서 치러진다는 사실 알고 있지?

겐드리에게 이보다 좋은 찬스는 없을 거야. 어떤 수를 써서든 우리를 죽이려 할 걸?”

“아버지께 당장 말씀드려야 해!”

“아버지는 확실한 증거 없이는 움직이지 않으셔.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잖아. 애초에 브란에 관한 건은 에릭 경이 이미 보고했어. 공작 전하도 겐드리를 경계하곤 있겠지. 하지만 겐드리는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다시 우릴 죽이려 들 거야. 어제 암살자를 시켜 나를 죽이려 했듯이 말이야.”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아니라 대니였지만. 대니는 굳이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해 유슬리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좀 나빠 보이긴 하네.’


하지만 대니는 착해지기 위해 아크 가문에 들어온 게 아니었다. 그는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라면 위선도 얼마든 부릴 것이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건, 겐드리는 절대 유슬리 아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크 가문에도 말이다. 겐드리를 하루 빨리 제거하는 일은 유슬리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대니,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걱정 마. 증명식 전에 겐드리를 보내버릴 거니까.”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

“응, 나한테 방법이 있어. 하지만 이건 유슬리 네가 도와줘야 성공할 수 있는 작전이야.”

유슬리가 마른 침을 삼켰다.


“······뭔데?”



****

“거참, 쉽지 않은 놈이군.”


겐드리는 하얀 성벽 위에 걸려진 자칼의 얼굴을 보며 상념에 빠졌다.


-무슨 수를 써서든 그놈만은 제거해라. 네 목숨을 버려서라도!


너무 가혹한 명령이었다. 겐드리는 어떻게 해서든 대니를 죽여야만 했다.


‘그녀석이 그렇게 위험한 존잰가? 확실히 비범하긴 했지만.’


여태껏 아크 가문 밑에서 조용히 정보만 빼내오는 게 겐드리의 임무였다.


결전의 때가 다가오면 암살 임무가 내려올 수도 있다는 예상은 했었다. 각오도 되어 있었고.


하지만 아직 왕은 죽지 않았고. 왕의 자리를 두고 다투게 될 결전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서자 놈의 등장 때문에 이런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겐드리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어찌 됐든 그는 ‘그분’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일주일 뒤, 증명식 때 끝낸다.’


가능하다면 그 전에 끝내는 게 더 좋고.


이미 그는 의심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크 공작이 아무리 물증이 있어야 움직이는 인물이라도, 심증은 어느 정도 자신에게 향해 있으리라.


겐드리는 하루빨리 그 서자 꼬맹이를 죽이고 이 성을 탈출하고 싶었다.


아무리 목숨을 바쳐서라도 임무를 완수하랬지만, 진짜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너는 목이 잘려 죽을 상이다.


그 서자 새끼가 했던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겐드리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는 심란한 마음으로 연무장으로 향했다. 유슬리 아크의 검술 지도 시간이었다.


연무장에 내려갔는데, 웬일인지 유슬리가 보이지 않았다.


유슬리는 애초에 몸이 허약해서 검술에 재능도 없었고, 검을 배우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도 시간에 빠진 적은 없었다.


‘귀찮게 하는군.’


겐드리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유슬리라면 자기 방으로 올라갔어.”


창고에서 나온 대니가 말했다. 겐드리는 겸연쩍은 눈으로 대니를 쳐다보았다.


“지금은 검술 지도 시간일텐데, 어째서······”

“자꾸 나랑 자기를 비교하더라고. 내 검술 재능 때문에 기가 잔득 죽었더라. 겐드리, 네가 가서 좀 달래줘.”


대니의 평온하면서도 거만한 말투에 겐드리의 눈이 꿈틀거렸다.


-너는 목이 잘려 죽을 관상이다.


대니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목이 잘려 죽는건 네가 될 거다 이 애송아.’


“감사합니다, 도련님.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겐드리는 굳은 얼굴로 유슬리의 방으로 올라갔다.


“겐드리, 기분 안 좋아 보이네. 싸웠어?”

“40살 먹은 아저씨랑 싸워서 뭐해.”

“크크크, 보통 반대 아니야?”


뒤늦게 창고에서 나온 사미라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뭐 아무튼 시작하자고. 네가 사온 거 잘 배분해뒀어. 어서 몸에 달아.”


사미라의 손에는 마법의 모래가루가 담긴 주머니가 잔뜩 있었다.


대니의 얼굴이 방금 나간 겐드리보다 더 굳었다.


‘이러다 근육돼지가 되겠어.’


사미라와의 훈련 때문에 점점 몸이 우락부락해져 가고 있는 대니였다.


****

“유슬리 도련님?”

“들어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겐드리가 유슬리 아크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째서 연무장에 나오시지 않은 겁니까?”

“의미가 없다는 걸 아니까.”


유슬리 아크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연습해도 늘지 않을 거란 거 너도 알잖아. 나는 애초에 몸 쓰는 일에 재능이 없어. 테오도르 형님처럼 말이야. 그렇다고 마법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도련님.”

“나는 보나마나 증명식에서 떨어질 거고, 갑자기 굴러들어온 그 서자 놈은 보란 듯이 통과하겠지. 이제 됐어.”

“오, 도련님.”


‘의욕 없는 멍청이.’


겐드리는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유슬리 쪽으로 다가갔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이 눈에 띄었다. [악마 사전]이었다. 왕국은 ‘악마’와의 계약을 금기시 하기 때문에 당연히 악마를 소환하는 연성진 같은 내용을 포함이 안 돼 있었다.


그저 악마의 종류에 관해 서술한 사전이었다.


“왜 이걸 보고 있습니까?”

“악마와 계약이라도 하고 싶어서.”


예상치 못한 말에 겐드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련님, 증명식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내년이 있습니다. 기회는 다시 옵니다.”

“그리고 또 떨어지겠지. 나랑 나이가 같은 서자 친구는 승승장구할 거고. 그 꼴을 보면 어머니가 뭐라고 하겠어.”

“그렇다고 해도 악마와의 계약은 금기시 된 일입니다. 미친왕의 전례를 잊으신 겁니까?”

“안 들키면 그만이잖아. 그리고 미친왕은 애초에 너무 많은 걸 원했어. 불로불사. 그걸 얻는 데에 대한 대가는 상상만 해도 가늠이 될 정도잖아.”

“······정말 그 정도로 간절하신 겁니까. 도련님.”

“응. 소환진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야.”


유슬리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겐드리는 그게 분함에서 오는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써먹을 수 있겠는걸?’


유슬리 아크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면서 대니 아크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겐드리는 속으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도련님, 제 지도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도움이 못 돼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라도 도련님을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

"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유슬리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진짜네. 이걸 넘어오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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