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사향고양이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왕이 될 상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사향고양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0.12 17:29
최근연재일 :
2020.11.10 21:2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9,196
추천수 :
282
글자수 :
132,971

작성
20.10.23 16:20
조회
414
추천
16
글자
12쪽

검은 까마귀와 하얀 매

DUMMY

브란의 시신은 야영지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숲속에서 발견되었다. 목덜미에 독침이 꽂혀 있었는데, 소변을 보러 갔다가 습격을 받은 것 같았다.


‘솜씨가 좋군.’


역시 겐드리라는 놈은 상당한 실력자였다. 브란은 한낮 시동이었지만 그래도 기사에 준하는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자신이 누구에게 공격받았는지도 모른채 죽은 것이다.


‘이런 놈들이 내 목을 노리고 있는 건가?’


한낮 대장장이의 조수였던 자신이 하루아침에 암살자의 타겟이 되었다. 기분이 묘했다.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으나 두렵지도 않았다.


대니는 브란의 시신을 직접 수습하고 있는 에릭을 보았다. 막사 안에서 에릭이 보여준 푸른 검기가 머릿속에서 생생하다. 저런 기사가 자신의 편이 되어주니 든든했다.


‘앞으로도 내편이 되어주면 좋을텐데.’


대니는 아크 성에 도착하고도 에릭이 자신의 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에릭은 죽은 브란의 경악한 눈을 감겨주고 천으로 그의 시신을 감싸 짐마차에 실었다.


“상심이 크겠군.”


대니가 말했다. 에릭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브란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한 것은 에릭뿐이었다. 대니는 브란과 만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리 슬픈 건 아니었다. 용병들 입장에서도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용병들은 애초에 브란을 싫어했다. 브란은 언제나 귀족 행세를 하며 용병들을 무시했으니까. 어떤 용병들은 심지어 잘 죽었다고 뒤에서 시시덕거리기까지 했다.


그리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지만, 모두 브란의 오만함이 불러온 업보였다. 그랬기에 에릭도 그들에게 별다른 제지를 가하지 않았다.


“3년을 제 밑에 있었습니다. 오만한 아이였지만, 그래도 미운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요.”

“정이 많은 편이군. 나는 그대들과 같이 보낸 시간이 짧으나, 그럼에도 브란이 자네를 싫어한다는 건 알 수 있었네.”


에릭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기사를 꿈꾸는 이들 중에 왕시해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기 마련입니다.”

“브란은 확실히 오만했군. 자네 같은 사람을 3년이나 봐놓고 고작 그런 단어에 휘둘려 사람을 판단하다니.”

“고작···은 아니지요.”


에릭이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봐도 15살 같지 않군. 말과 행동에서 경험이 느껴져.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실제로 대니는 기분이 나쁘지 않을만한 농담으로 위로를 건넸다. 덕분에 에릭은 잠시 슬픔을 잊을 수 있었다.


“시신은 어떻게 할 거지?”


대니가 짐마차를 보며 물었다.


“우선 성으로 가져가 간단한 장례를 치른 뒤, 루윈으로 보내야겠지요.”


루윈은 브란이 속한 가문의 이름이었다. 루윈 백작은 북부에서 아크 공작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


아크 공작은 20년전, 북부의 대영주가 된 이후부터 루윈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서로의 자식을 시동으로 교환해서 기사로 키워주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브란은 백작의 몇 번째 자식이지?”

“오남이었습니다.”

“루윈은 후계자가 정해졌나?”

“네, 보통은 장남이 자연스레 후계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아크 공작 전하가 특별한 거죠.”

“그래? 그럼 적어도 백작과의 관계가 원수지간으로 바뀌지는않겠군.”


후계자가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기 자식이 죽었다. 분노한 루윈 백작이 에릭이나 아크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다.


“루윈 백작은 자식이 많습니다. 후계자 외에는 그리 애정을 주지도 않는다고 하니 그의 분노를 살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실리를 잘 챙기는 인물.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어 보상을 받으려 할 겁니다.”

“에릭 경, 자네에게 큰 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군.”

“결국, 제가 제대로 지켜주지 못해 발생한 일입니다. 제가 책임져야 할 상황이 오면 받아들일 뿐입니다.”


에릭은 묵묵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감동했다. 빈말이라도 저런 말은 위로가 됐다.


하지만 대니는 에릭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대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에릭이 유치원 선생도 아니고 24시간 내내 시동 옆에 붙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암살자의 실력 또한 수준급이었다. 브란은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었다.


“도련님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을 텐데 말입니다.”


에릭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대니는 분명 관상을 보고 브란에게 위협이 닥칠 거라고 경고했다. 에릭 또한 대니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브란에게 따로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경고를 듣지 않은 건 브란이었다. 적어도 혼자 숲에 가는 일은 없었어야 했다.


숲은 언제나 위험한 곳이니, 적어도 용병 한 명쯤은 데리고 갔었어야 했다.


‘뭐, 녀석과 함께 가줄 용병들이 있기나 하겠어.’


대니는 새삼 브란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

암살자의 습격 이후, 에릭은 경비를 한층 강화했다, 용병들은 오와 열을 맞춰 사방을 경계하며 움직였다.


에릭의 지휘력은 놀라웠다. 자유분방한 용병들을 이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다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게 에릭만의 능력은 아니었다. 용병 대장 카셀이 이끄는 ‘검은 까마귀 용병단’은 원래부터 질서정연하고 단단하기로 유명한 용병단이었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용병 대장 카셀이 있었다.


“동료들이 자네를 많이 신뢰하나 보군.”


대니의 칭찬에 카셀은 어깨를 쫙 폈다. 고작해야 15살짜리의 칭찬인데도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는 ‘검은 까마귀 용병단’에 대한 카셀의 자부심 때문도 있었지만, 마음 한켠에서 대니를 인정했기 때문도 있었다.


카셀은 어젯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대니가 맨몸으로 암살자의 검을 튕겨내던 모습을 말이다.


분명 대니는 15살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덩치가 좋았다. 얼핏 보기에도 몸이 탄탄했고. 하지만 아무리 잘 단련된 몸이라도 사람의 살은 날붙이에 베이고 뚫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니의 살은 마치 강철 같았다.


‘분명 마나를 다룰줄 아는거야.’


용병중에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본적이 없었다. 기사들 중에서도 마나를 다루는 이는 극소수였다. 그 극소수 중에서도 잘 단련된 자들만이 검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의 강기를 두를 수 있다고 들었다.


‘저 소년의 몸에서 마나를 보지는 못했지만.’


보통 강기를 두르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가 보인다고 들었다. 에릭이 푸른 마나를 몸에 둘렀던 것처럼.


하지만 대니의 몸에서는 마나가 보이지 않았다. 그게 약간 의문이었지만, 마나가 아니고서는 맨몸으로 검을 막기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검은 까마귀 용병단은 절대 먼저 고용주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사만큼은 아니지만 제대로 훈련받죠.”

“훌륭하군.”

“저희는 모두 촌놈 출신입니다. 하지만 어중이떠중이는 아닙니다. 저희는 매가 될 수 없지만, 까마귀중 최고는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자리에 모였죠.”

“멋진 생각이네.”


대니의 무심하면서도 솔직한 말에 카셀은 웃음을 터트렸다. 보통의 15살짜리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대니의 눈빛은 사람의 말을 확실히 경청하고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줬다.


기분이 좋아진 카셀이 말했다.


“이번 일이 끝나고도 필요하다면 언제든 저희를 찾아오시죠.”

“그러도록 하지.”


대니는 진심으로 그러리라 생각했다.


용병들은 명예를 챙기는 기사가 아니었다. 그들이 제일 우선으로 하는 것은 돈과 자기 목숨. 그렇기에 상황에 따라 언제든 배신할 수 있는 게 용병이었다. 하지만 검은 까마귀 용병단은 평범한 용병과는 달랐다.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볼 때, 검은 까마귀 용병단은 충분히 경쟁력 있는 상품이었다.


카셀 입장에서도 대니 같은 고용주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다.


우선 대니는 공작의 아들, 돈이 넘쳤다. 봉급이 밀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대니 같이 차분한 인물은 경호하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대니는 브란이나 다른 귀족들처럼 용병을 무시하지 않았고, 자신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면 권위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선 이번 임무를 잘 마무리 하는 게 우선이겠군.”



****

아크 성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주일 정도였다. 경비는 완벽에 가까웠다. 일행은 야영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강행군을 했고, 덕분에 5일을 근처 마을에서 숙박할 수 있었다.


보통 마을 사람들은 용병을 그리 반기지 않았다. 자유분방한 용병들은 꼭 한두명씩 절도, 폭행 같은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하지만 까마귀 용변단의 절제력은 상당했다. 그들중 누구도 마을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야영을 하게 된 날도 전보다 훨씬 경계를 강하게 했다. 그들은 날이 밝기까지 4인 1조로 교대 순찰을 돌았고, 잠을 잘 때도 무장을 풀지 않았다.


에릭은 거의 한숨도 자지 않았다. 사람이 일주일쯤 안 자도 죽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일주일 동안 안 자는 사람은 처음 봤다.


놀라운 건 에릭은 일주일 밤 새우면서도 한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덕분인지 성에 도착하기까지 더 이상의 습격은 없었다.


“솔직히 겐드리가 다시 공격해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니가 말했다.


겐드리는 아크 성의 기사. 자신이 범인인 걸 들킨 이상, 대니가 성에 도착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든 제거하려 들 것이라 생각했다.


“쉽게 처리할 수 없을 거라 판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대니는 곧바로 자신이 순진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겐드리를 목격한 사람은 세사람이었다. 대니와 카셀, 그리고 에릭. 즉, 겐드리가 사건을 덮으려면 세사람을 모두 제거해야 했다.


하지만 대니와 카셀은 그렇다치고, 밤낮 자지 않고 경계하는 에릭을 어떻게 죽인단 말인가?


괜히 또다시 시도했다가 더 많은 증거를 줄수도 있는 일이었다.


차라리 증거가 없는 지금 상황을 이용해 시치미를 떼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이리라.


대니와 카셀, 에릭은 증인이지 증거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막 성에 들어온 대니는 외부인이나 마찬가지, 카셀은 한낮 용병, 에릭은 ‘왕시해자’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즉 세 사람의 증언은 그리 효력이 없는 것이다.


“겐드리는 제 명예를 걸고 어떻게든 죗값을 치르게 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응, 걱정 안해.”

“······그렇군요.”


겐드리는 어차피 목이 잘려 죽을 상이었다. 대니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시야에 아크 성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아크 성은 생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하얀 벽돌로 쌓아 올린 벽은 때가 끼지 않았을 정도로 관리가 잘 되었고, 성 자체도 넓었다.


거대한 성문에는 아크 가문의 상징인 하얀 매가 새겨져 있었다. 성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집사와 시종들이 일렬로 서서 마중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대니의 배다른 형제들과 아크 공작도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는 왕이 될 상이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공지 20.11.11 61 0 -
공지 제목을 '나는 왕이 될 상이다'로 변경합니다 20.11.09 32 0 -
공지 연재시간 변경 공지 20.10.29 50 0 -
공지 연재주기 공지입니다. 20.10.15 420 0 -
26 마법이나 좀 가르쳐 주시죠 +2 20.11.10 102 8 11쪽
25 너의 관상이 보이지 않아 +1 20.11.09 109 7 11쪽
24 망토 쓴 여자(2) +1 20.11.07 155 9 10쪽
23 망토 쓴 여자 +1 20.11.06 185 8 12쪽
22 2년 뒤 +1 20.11.05 213 8 12쪽
21 관상 보러 온 오크와 재회함 +1 20.11.04 251 8 12쪽
20 마저 합시다 그냥 +3 20.11.03 238 12 12쪽
19 악마와 오크 +1 20.11.02 236 8 11쪽
18 증명식(2) +1 20.10.31 288 10 11쪽
17 증명식(1) +1 20.10.30 294 6 11쪽
16 악령은 잡아야지 +2 20.10.29 306 11 11쪽
15 나한테 방법이 있어,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1 20.10.28 327 8 12쪽
14 내 얼굴, 문제 있어? +1 20.10.27 350 11 11쪽
13 안타깝게도 그런 것까지는 모른다. +1 20.10.26 360 12 11쪽
12 하얀 매가 되기 위해 +1 20.10.24 384 13 12쪽
» 검은 까마귀와 하얀 매 +2 20.10.23 415 16 12쪽
10 안타깝게도 너는 아니었군 +1 20.10.22 417 14 11쪽
9 면상 좀 보자 +1 20.10.21 431 12 11쪽
8 뭔가 이상했다 +1 20.10.20 444 9 12쪽
7 당신의 관상은 +2 20.10.19 471 11 12쪽
6 이건 받아가도록 하지 +3 20.10.17 493 18 11쪽
5 떡잎부터 다르다 +2 20.10.16 483 11 12쪽
4 바위처럼 단단하게 +2 20.10.15 484 10 14쪽
3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 20.10.14 508 14 12쪽
2 역시, 관상은 +2 20.10.13 575 13 14쪽
1 '오크 출몰' 같은 기사는 없었다 +2 20.10.13 670 15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