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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고양이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왕이 될 상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사향고양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0.12 17:29
최근연재일 :
2020.11.10 21:2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9,225
추천수 :
282
글자수 :
132,971

작성
20.11.10 21:20
조회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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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1쪽

마법이나 좀 가르쳐 주시죠

DUMMY

대니는 시종의 손에 술잔을 쥐여주었다. 시종의 손이 덜덜 떨렸다. 대니는 그런 시종의 손을 단단히 잡아 술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내 시종에게 무슨 짓이냐?”


식탁보 왼쪽에 앉아 있던 백작이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키며 분노했다. 하지만 대니는 여전히 시종의 손을 붙잡은 채 놓지 않았다.


“나, 나리.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니에게 말하는건지, 백작에게 말하는 건지. 시종은 흔들리는 동공을 주체하지 못하며 말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면 마셔보면 될 것 아니냐?”


대니가 시종의 입으로 술잔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 그건.”


시종은 본능적으로 술잔으로부터 고개를 쭉 뺐다.


‘역시나’


미간이 푸른 건 언제나 일을 만든다는 증거였다. 시종의 푸른 이마와 케이샤의 시퍼렇다 못해 보란 입술. 이 두 기색만 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히 보였다.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고 있구나.”


대니의 말에 시종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꼭 다물었다.


방금 전까지 대니를 노려보던 사람들도 침묵이 길어지자 시종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술 안에 뭐가 들어 있나? 말하지 않으면 강제로 마시게 하겠다.”


대니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 그건······”


시종이 난감한 듯 신음을 흘리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니도 시종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백작이 뚱뚱한 몸으로 뒤뚱뒤뚱 걸어와 시동의 멱살을 잡았다.


“케, 케엑.”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시종의 목 주위가 붉게 물들었다. 시종이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리고 백작의 시종의 입에 술잔을 들이밀었다. 시종은 필사적으로 술을 뱉어내려고 했지만 백작은 거대하고 살찐 손바닥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꿀꺽


삼키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시종의 눈동자에 절망의 기운이 감돌았다.


“아, 안돼······”


시종은 금방이라도 비명을 지를 것처럼 입을 크게 벌렸다. 하지만 시종은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더니, 시종의 눈과 콧구멍에서 핏줄기가 줄줄 흘러내렸다.


실로 끔찍한 장면이었다. 시종은 꺽꺽거리다 피를 토하며 바닥에 엎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누군가는 침묵했고, 누군가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케이샤는 소름이 돋은 듯 몸을 떨었다. 만약 아무 생각 없이 시종이 건넨 술을 마셨다면 지금쯤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는 건 그녀였을 것이다.


“경비병! 뭐하고 있나? 어서 와서 시체를 치워라.”


백작이 소리 질렀다.


“연회는 끝이다. 모두 방으로 돌아가!”


머뭇거리던 사람들이 백작의 말에 하나둘 로비를 빠져나갔다. 병사들이 빠르게 달려와 시체를 들쳐맨 채 사라졌다.


주변이 조용해질 동안 백작은 흰 카펫을 흥건하게 적신 피웅덩이를 내려다봤다. 피를 바라보는 백작의 눈동자에 묘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


뭐, 그래봤자 살에 파묻혀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고개를 든 백작이 케이샤에게 다가갔다.


“괜찮느냐, 케이샤?”


백작이 케이샤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했다.




케이샤가 백작의 손을 쳐냈다. 거의 경기를 일으키는듯한 몸짓이었다.


“켄타우로스에, 암살 시도까지. 짧은 시간 내에 너무 많은 일을 겪으셨습니다.”


존이 황급히 케이샤 곁으로 다가왔다.


“피곤하셔서 그런 겁니다. 일단 방에서 쉬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존은 그렇게 말하며 수습했지만, 대니가 보기에 아까 케이샤의 몸짓에는 백작에 대한 분노가 섞여 있었다.


백작은 씁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호킨스, 방으로 데려가거라.”

“넵, 잘 모시겠습니다.”


존은 케이샤를 부축하며 로비를 빠져나갔다. 이제 로비에 남은 건 대니와 백작, 피로 흥건한 바닥을 닦는 집사들 뿐이었다.


백작이 매서운 눈빛으로 대니를 노려봤다. 대니는 케이샤의 목숨을 구해줬다. 감사해도 모자를 판에 저 눈빛은 뭐란 말인가.


관상을 읽을 수 없으니, 쉽게 추측할 수 없었다.


‘길게 상대해서 좋을 게 없겠군.’


대니는 태연한 얼굴로 백작에게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로비를 빠져나갔다.


****

로비를 나온 대니는 곧바로 케이샤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방앞에 다다른 대니는 조용히 노크했다. 방문이 살짝 열렸다. 그 틈으로 케이샤의 푸른 눈이 보였다.


“들어오세요.”


대니인 걸 확인한 케이샤가 문을 열어줬다.


“고마워요. 또 도움을 받았네요.”


케이샤가 힘없이 말했다.


대니는 케이샤의 얼굴을 살폈다. 미간이 전보다 하얬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입술의 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점이었다. 당장은 신변의 위협이 없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당신이 쓰러졌으면 제가 범인으로 몰렸을 겁니다. 그래서 돕기 싫어도 도울 수밖에 없었으니 고마워할 필요 없습니다.”


대니의 말은 사실이었다. 만약 그 자리에서 케이샤가 죽었다면, 옆에서 같이 술잔을 부딪치려던 대니가 범인으로 지목됐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시종이 범인이라는 걸 알 수 있겠지만, 대니는 이미 백작에게 미운털이 박힌 상태였다. 그리고 이 시대의 인간들은 그만큼 논리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됐을 말이었다. 케이샤는 자신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대니의 배려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가 옅게 미소 지었다.


“짐작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대니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배후를 알아내야 한다. 그게 이 방을 찾아온 목적이었다.


케이샤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공포의 감정과 동시에 분노의 감정이 어려 있었다.


“역시, 있나보군요.”


케이샤는 배후가 누군지 짐작하고 있었다. 아까 로비에서의 반응을 보고 눈치챘다. 그리고 아마 배후는······


케이샤가 침대 위에 앉더니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망할 아버지. 그 사람이 분명해요.”


역시 배후는 루윈 백작이었다.


아까 로비에 루윈 백작의 반응은 충분히 수상했다. 시종이 왼쪽을 바라보자 황급히 달려와 입막음을 했고, 대니가 그녀를 구했음에도 오히려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루윈 백작은 왜 자기 자식을 죽이려고 하는 건가?


케이샤와 백작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대니도 관상으로 봐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사이가 안 좋다고 해도 자식과 부모사이 아닌가?


자기 자식을 암살할 정도로 원한 쌓일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백작의 자식이 몇 명이었는지 아세요?”


케이샤가 말했다.


“11명이에요.”


대니는 케이샤가 왜 그런 말을 꺼내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지금 남은 건 저를 포함해서 3명입니다.”

“유감입니다.”


어린 아이의 사망률이 높은 시대였다. 젊은 나이에 죽는 일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귀족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그들은 의식주가 부족한 일도 있었고, 전염병에 노출될 확률도 적었다. 또 치료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마법사를 고용할 재력도 있었다.


확실히 11명중 8명이나 죽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어쩐지 약혼식에 모습을 드러낸 루윈 가문의 사람이 없다 했더니······


“그런데 내게 왜 그런 말을 해주는 겁니까?”

“미친왕 이야기 알고 계십니까?”

“라그리엔 가문의 마지막 왕 말입니까?”


케이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왕은 악마에 홀려 자기 가문 사람을 모두 제물로 바쳤다고 하죠. 자신의 자식도 포함해서 말이요.”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백작이 악마에 홀렸다는 말인가요?”

“그래요. 제가 두 눈으로 봤어요. 백작이 둘째 오빠를 집어삼키는 걸 말이에요.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바뀌셨어요. 이제 아버지는······ 인간이 아니에요!”


왜 백작의 관상을 읽을 수 없는지, 이제야 의문이 해소됐다.


‘너, 알고 있었냐?’


대니는 허리춤에 찬 겐드리의 칼자루를 꾹꾹 눌렀다. 겐드리는 침묵으로 그 사실을 인정했다.


“그럼 백작이 당신을 죽이고 저를 범인으로 몰아가려 했다는 거군요.”



케이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범인으로 몰면 약혼식도 파기되고, 아크와의 사이도 안좋아질텐데.”

“악마의 생각을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케이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대니의 의문에 대해 같이 고민해 주었다.


“어쩌면 이 사건을 빌미로 아크와 등을 질 생각이었던 건지도 몰라요.”


케이샤가 말했다.


“백작의 오랜 꿈이 북부의 맹주가 되는 거였어요. 라그리엔 가문이 몰락했을 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라테온이 권력을 잡으면서 무산됐다고 들었어요.”


아크의 가장 큰 협력자인 루윈이 돌아선다면 아크 입장에서도 손실이 크다. 케이샤가 이제 알겠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저를 죽이고 당신을 몰아간 뒤, 명분을 챙겨 아크와 전쟁을 벌이려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눈에 띄게 성의 병사들이 많이 주둔하고 있어요.”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당신은 서임식을 받기까지 계속 여기 있을 거잖아요. 앞으로도 계속 위험할 거예요.”


케이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대니가 물을 따라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걱정마시죠.”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죠? 우리 둘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에요.”

“우리가 떨어져 있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겁니다.”


대니를 몰아가려면 대니와 케이샤가 함께 있을 때 대니를 죽여야 한다.


“그리고 저는 금방 서임식을 받을 겁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대니가 큰 공적을 연달아 세운다면 아무리 백작이라도 서임식을 내려줄 수밖에 없으리라.


“그때가 되면 함께 아크로 가죠.”


대니가 말했다. 현실적으로 백작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니에게는 명분이 없었다. 그리고 명분이 있다고 해도 백작은 루윈의 우두머리였다.


대니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대니가 할 수 있는 건 하루빨리 서임식을 받아 이곳을 벗어나는 것. 그리고 그녀를 데려가는 것 뿐이었다.


“굳이 저와 결혼하지 않아도 됩니다. 형식상으로만 그렇게 하고 나머지는 편한대로 하시죠.”


대니의 말에 케이샤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녀는 대니의 무뚝뚝한 친절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대니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 대신 마법을 조금 가르쳐주세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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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망토 쓴 여자(2) +1 20.11.07 156 9 10쪽
23 망토 쓴 여자 +1 20.11.06 186 8 12쪽
22 2년 뒤 +1 20.11.05 213 8 12쪽
21 관상 보러 온 오크와 재회함 +1 20.11.04 252 8 12쪽
20 마저 합시다 그냥 +3 20.11.03 238 12 12쪽
19 악마와 오크 +1 20.11.02 238 8 11쪽
18 증명식(2) +1 20.10.31 289 10 11쪽
17 증명식(1) +1 20.10.30 296 6 11쪽
16 악령은 잡아야지 +2 20.10.29 307 11 11쪽
15 나한테 방법이 있어,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1 20.10.28 329 8 12쪽
14 내 얼굴, 문제 있어? +1 20.10.27 350 11 11쪽
13 안타깝게도 그런 것까지는 모른다. +1 20.10.26 362 12 11쪽
12 하얀 매가 되기 위해 +1 20.10.24 385 13 12쪽
11 검은 까마귀와 하얀 매 +2 20.10.23 418 16 12쪽
10 안타깝게도 너는 아니었군 +1 20.10.22 417 14 11쪽
9 면상 좀 보자 +1 20.10.21 432 12 11쪽
8 뭔가 이상했다 +1 20.10.20 444 9 12쪽
7 당신의 관상은 +2 20.10.19 472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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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시, 관상은 +2 20.10.13 575 13 14쪽
1 '오크 출몰' 같은 기사는 없었다 +2 20.10.13 672 1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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