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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고양이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왕이 될 상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사향고양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0.12 17:29
최근연재일 :
2020.11.10 21:2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9,226
추천수 :
282
글자수 :
132,971

작성
20.11.03 21:20
조회
238
추천
12
글자
12쪽

마저 합시다 그냥

DUMMY

“나는 크루가의 친구다! 공격을 멈춰라!”


대니는 빙마의 골통을 뚫은 뒤 오크들을 향해 외쳤다.


하얀 늑대 위에 올라탄 오크들은 일제히 대니쪽으로 석궁을 겨누고 있었다.


‘통하려나······’


통하지 않으면 다시 한 번 대니에게 화살 세례가 쏟아질 예정이었다.


혹시 그런 상황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서 유슬리를 멀찍이 떨어트려 놓기는 했지만.


오크의 숫자는 대략 100. 저들과 싸워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아무리 몸이 단단해도 포박당하면 그만 아닌가? 또 저들이 타고 있는 하얀 늑대들을 보니 왠지 불쾌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전생에서 만난 크루가의 말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그의 말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오크가 오른팔을 들었다. 그러자 오크들이 일제히 사격을 멈췄다.


우두머리는 다른 놈들보다 덩치가 두 배는 큰 늑대를 앞으로 몰았다.


부하들보다 아래어금니가 두 배는 커 보였고 덩치도 컸다. 검은 머리를 길게 땋아 양갈래를 한 게 대니의 시선에서는 별로 어울리진 않았다.


“글글, 그 망할 주둥이로 감히 크루가님의 이름을 씨부리다니, 뭐? 친구라고? 너네 은발 새끼들은 양심이 없는 건가?”


우두머리가 그르렁거리며 위협했다. 역시, 녀석의 반응을 보니 아크 가문과 사이가 안 좋나 보다.


아크 가문은 북부의 맹주지만, 군림한 지 20년밖에 되지 않았으며 아크를 인정하지 않는 북부 세력이 꽤 있다는 말을 검은 까마귀 용병단에게 들은 기억이 났다.


오크가 그런 북부 세력 중 하나이리라.


“그래? 꽤 오래된 일이지만, 크루가가 자기 이름을 말하면 잘 대접해줄 거라고 그러던데?”


대니가 말했다. 그러자 오크들이 대니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대화를 주고받더니 자기들끼리 껄껄대기 시작했다. 아마 비웃음이리라.


“그래, 크루가님을 엿먹인 너희 은발 새끼들한테는 확실히 대접을 해줘야겠지.”


우두머리가 왼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오크 열 마리가 늑대를 몰고 앞으로 튀어나와 대니를 포위했다.


대니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어차피 저 화살은 그의 몸을 뚫지못한다. 겁먹을 이유가 없었다.


대니는 옛 추억을 떠올리듯 여유롭게 말했다.


“크루가가 내 방에 찾아와 그림 두 장을 내밀었지. 관상을 봐달라고 말이야. 둘 중 누가 왕이 될 상인지 물었어.”


이 말에 우두머리 오크의 붉은 눈이 커졌다.


방금 대니가 한 말은 오크들만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말이다.


‘설마···’


족장 데스크는 그제야 대니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봤다. 오크 입장에서 인간의 얼굴은 다 거기서 거기라 구분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 그림 속 얼굴을 외우기 위해, 대족장 크루가와 함께 어울리지도 않는 밤샘 공부를 한 적도 있었다. 그때가 언제였나··· 10년을 훌쩍 넘긴 과거의 이야기였다.


“네놈, 어디서 왔나?”


설산에 오기 전에는 아크 성에 있었고, 성에 오기 전에는 시골 마을에 있었다.


하지만 오크가 그런걸 묻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대니는 이해하고 있었다.


“지구. 내 전생은 그곳이었다. 그리고 그 지구로 크루가가 찾아왔었지.”

“···!”


오크들이 또다시 자기들의 언어로 쑥덕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웃음이 목적이 아니었다.


오크들의 태도가 점점 변하고 있었다.


대니는 솔직하게 말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지금, 몇 살이지?”


우두머리 오크가 물었다.


“15살. 이곳에서는.”

“나이에 맞지 않게 풍채가 좋구나. 인간치고는 말이다. 그래 설사 네 말이 사실이더라도, 아직 변하는 건 없다. 우리는 너를 대접해줄 수 없다.”

“아크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이번에는 대니가 물었다. 하지만 오크는 바로 답변해주지 않았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나는 15년 동안 시골 마을에서 고아로 자랐다. 성에 들어온 지는 고작 한 달밖에 안 됐어.”

“······거짓말이면 큰 어금니 부족 족장 데스크의 이름을 걸고 네놈의 심장을 어금니로 뚫어주마.”

“······오크들은 자기 이름 거는 걸 좋아하는구나. 크루가도 그러던데. 자기 이름을 걸고 관상만 봐주면 곧바로 방을 떠나겠다고 말이야.”

“이름에는 영혼이 들어 있다. 오크들은 그렇게 믿는다.”


데스크는 잠시 고민하는 듯 보이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대족장님은 아크 성 첨탑에 갇혀 계신다.”

“······? 어째서?”

“어째서냐니. 그야 비열한 네 아비의 짓이지.”


데스크가 이를 아득 갈며 분노했다.


“벌써 15년도 더 된 일이지. 네게 관상을 보고 돌아온 크루가님은 곧장 아크 성으로 향했다. 은발머리가 왕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우리는 아크를 돕고자 했다. 즉, 아크과 동맹을 맺기 위해 대족장님이 단신으로 가신 거였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따라가야 했어.”


데스크는 갑자기 침통한 표정을 짓더니 그륵그륵 울먹이다 눈물을 삼켰다.


“동맹 제안을 하러 갖는데 되려 붙잡혀 버렸단 말이군.”

“그렇다. 나는 그 비열한 인간을 용서할 수 없다.”


그렇군, 그래서 사이가 안 좋은 거였구나. 크루가가 아크 성에 있다는 사실은 좀 놀라웠다. 그 오크 놈에게는 물어보고 싶은 게 꽤 많았다. 나중에 만나러 가야겠다.


‘그런데, 이해가 안 돼.’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두 가지 있다.


“내가 왕이 될 운명이라는 것과 너희들이 아크에 협조하는 것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계시다. 우리가 믿는 신으로부터 다음 왕이 거대한 악을 막아낼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 그리고 두 장의 그림을 받았지.”


‘그게 크루가가 나한테 보여준 그림인가 보군.’


별 시답잖은 계시 때문에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가? 우스운 일이었지만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이 세계에서 운명의 힘은 유효했다. 대니의 관상이 백발백중으로 맞아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 신의 힘이라는 것도 이곳에서는 충분히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두 번째 의문이 있다. 아크 공작은 왜 굳이 자기 가문과 협력하겠다는 대족장 오크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나?


15년 전이면 아크 가문이 북부에 군림한 지 5년밖에 안 된 시기. 지금보다 훨씬 입지가 불안했을 것은 자명했다.


그러니 자신의 편이 되겠다는 북부의 부족이 있으면 환영해야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인데······


아크 공작이 이런 당연한 사고 흐름도 안 될 정도로 멍청한 인간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고 데스크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아마 크루가와 공작 사이에 무슨 오해나, 개인적인 갈등이 발생한 것이리라.


“아무튼 우리는 대족장이 풀려나기 전에는 절대 네게 도움을 주지 않을 거다.”


데스크가 말했다.


대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오크의 심정도 충분히 납득이 됐다.


“도움을 주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굳이 싸울 필요도 없지.”

“······”

“아직은 가문 내의 내 입지가 좁아 이렇다한 조치를 취해 줄 순 없어. 하지만 내게 권한이 생기면 크루가를 풀어줄 걸 약속하지.”

“인간의 말은 믿을 수 없다.”

“내 전생의 이름과 지금의 이름을 모두 걸고 맹세하지.”

“······알겠다. 기대하지.”


오크들은 어떤 면에서 기사보다 다루기 쉬운 것 같았다. 이름만 걸면 저렇게 믿어주니. 물론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대니는 속으로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휘이이휘이


데스크가 요상한 휫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부하들이 떠날 채비를 했다.


[아쉽군. 저놈들 맛 좋은 놈들인데.]

“닥쳐, 겐드리.”


겐드리가 입맛을 다셨다. 대니는 혹시나 오크들이 들을까봐 겐드리의 칼자루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저놈은 네 거다. 네가 처리했으니.”


데스크가 빙마쪽으로 고갯짓하며 말했다. 오크들이 하얀 늑대들을 몰아 눈밭을 달렸다. 그들의 모습이 흩날리는 눈에 가려 더는 보이지 않게 됐을 때였다.


[나 이놈 먹어도 되지?]


겐드리가 빙마쪽으로 검은 연기를 꾸물꾸물 뻗으며 물었다. 대니는 뒤쪽을 바라보았다. 유슬리는 저 멀리서 뒤돈 채 서 있었다.


대니의 말을 잘 듣고 있었다.


“빨리 먹어.”


대니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겐드리가 검은 연기를 빙마의 전신에 펼쳤다. 3미터짜리 시체가 자취를 감추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꺼억, 잘 먹었다.]


겐드리의 검신이 일순간 붉게 빛났다. 이번에는 확실이 검신이 검붉어진 게 티가 났다.


‘먹으면 먹을수록 검신이 붉어지나보군.’


“빨게지면 뭐 더 좋아지는 거 있냐?”

[아니, 그냥 멋있잖아.]

“······”

[그것보다 네 과거 잘 들었어. 생각보다 흥미롭더군.]


겐드리가 낄낄댔다. 어쩌면 이 녀석한테까지 과거사가 까발려진 건 실수일지도 모르겠다.


‘뭐, 큰 상관은 없겠지.’


대니는 그렇게 생각하며 유슬리 쪽으로 걸어갔다. 유슬리는 하얀 늑대 가죽으로 만든 봇짐을 꼭 감싼 채, 몸을 말고 있었다.


이 늑대 가죽이 오크 눈에 들어왔으면 곱게는 안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유슬리 이제 뒤돌아봐도 돼.”

“헉, 대니! 어떻게 된 거야? 괜찮아?”

“어, 뭐, 잘 해결됐어.”


그때였다.


이번에는 또 수십 개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설산에서도 잘 미끄러지지 않게 잘 무장된 말을 탄 기수들이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기수가 든 깃발에 걸려 있는 건 하얀 매의 문장. 수십 대의 기병과 이백 명이 넘는 보병이 진영을 갖추고 있다.


가장 선두에 있는 건 아크 공작과 에릭이었다.


“괜찮나?”

“괜찮습니다.”


자식들을 발견한 공작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공작이 여태껏 지은 표정 중에 가장 인간적인 표정이었다. 대니는 그 사실이 꽤 흥미로웠다.


“한데, 왜이리 병사들을 데리고 오신 겁니까?”

“망할 오크 녀석들을 봤다. 그들이 자신의 영역을 넘어 이 설산으로 넘어온 이상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어.”


대니는 공작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봤다. 세상에 완벽한 얼굴을 가진 사람은 없다.


냉철하고 능력만을 중시하는 공작이라도 그렇지 않은 면모가 얼굴에 남아 있는 것이다. 공작의 와잠이 눈에 들어왔다. 눈밑 살인 와잠은 자녀운을 나타낸다.


공작의 와잠에 난 흉터. 저게 공작과 오크의 갈등을 심화시킨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증명식은 나중으로 미루자꾸나. 둘다 어서 마차에 타거라.”

“괜찮습니다.”

“응, 무슨 소리냐?”


공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크들은 전부 물러났습니다. 증명식 그냥 계속 이어서 하죠?”


대니의 말에 아크의 병사들이 모두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대니 입장에선 귀찮게 증명식을 한 번 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상황 설명을 해준 뒤, 대니와 유슬리는 하얀 늑대 다섯 마리를 더 잡아(큰 어금니 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증명식을 통과했고, 이백이 넘는 군대는 헛걸음을 해야 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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