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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용사는 핵무기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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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유진숙
작품등록일 :
2023.09.03 11:30
최근연재일 :
2023.10.06 13: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967
추천수 :
8
글자수 :
118,856

작성
23.10.02 13:05
조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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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7화

DUMMY

두려움에 벌벌 떠는 고블린 노예들이 횡설수설하며, 손가락으로 아무 곳이나 가리켰다.


“떠나기 전에 미리 ‘보급품’을 사러 간다며 나가셨어요! 저, 저쪽이요!”

“이 기회에 ‘하얀 공포’를 잡으러 간다며 나가셨어요! 이, 이쪽이요!”


서로 말이 엇갈린 고블린들은, 이번엔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주인님은 하얀 공포를 잡으러 갔어! 이 거짓말쟁이!”

“무슨 소리! 주인님은 보급품을 사러 나가셨다니까? 이 협잡꾼 같으니!”


서로 악다구니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아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둘 다 아가리 다물어. 시끄러워 죽겠으니까.”

“헙!”

“으헙!”


레프가 재주껏 ‘사회화’라는 것을 잘 시켜놓았다 한들, 그것만으로는 고블린의 천성을 거스를 수 없다.

분명히 똑같은 말을 들었을 텐데, 왜 둘의 말이 다른가.

이건 놈들의 거짓말을 좋아하는 고약한 성격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고.


“자, 우선 보급품을 사러 갔다고 주장하는 저쪽이.”

“저쪽이? 저요?”

“그래 왼쪽에 있는 너. 네 이야기부터 한번 들어보자.”

“주인님은 보급품을 사러 가신다고 했어요. 가방까지 챙겨가셨다고요.”

“지금은 새벽이야. 이 시간에 장이 열리는 게 말이 돼?”

“말이 왜 안 됩니까요? 참고로 체르레시야에는 시장이 없습니다요. 개개인들한테서 구매하는 거지. 먹고 살기도 힘든 여기 주민들이 밤이고 낮이고 가려가면서 장사하겠습니까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슬라베스카의 자원 사정이 열악해지면서, 일반적인 의미의 시장은 사라진 지 오래다.

왕실에서 직접 운영하는 왕립 시장들을 빼면, 나머지는 암시장의 형태에 가까웠다.

그렇다 쳐도 이건 너무 엉뚱한 이야기다.

새벽에 컵라면과 소주를 사러 편의점에 가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급작스럽게 보급품을 사러 간다고?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고블린이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입을 마구 움찔거렸다.


“아, 아으···.”

“이쪽이.”

“옙!”

“이번엔 네 말을 한번 들어보자.”

“저 녀석이 한 말은 싹 다 거짓말이에요! 주인님은 하얀 공포를 잡으러 간다고 하셨다고요!”

“하얀 공포는 또 뭐야?”

“여기서 남서쪽에 있는, 검은 숲에 사는 겁나게 큰 흰곰입니다요!”

“···곰?”

“저번에 그 곰한테 우리 친구들이 넷이나 죽었거든요? 주인님께서 저흴 위해 복수하러 가신 것이 분명합니다요.”


[서브 퀘스트 발견: 한 입으로 두말하기]

[○ (선택) 마을을 수색하십시오.]

[○ (선택) ‘검은 숲’의 폭군, ‘하얀 공포’를 쓰러뜨리십시오.]


“그렇단 말이지?”


고블린들의 입에 조용히 입마개를 다시 씌웠다.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쓴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되돌려놓아라.’라고 배웠기 때문이었다.


“읍! 읍!”


잠시나마 느껴본 자유로움을 아쉬워하는 고블린들을 뒤로한 채, 계단을 통해 한여름의 방으로 올라갔다. 문손잡이를 움켜잡다가, 이번에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손을 오므렸다.


똑- 똑-


“여름아, 자니?”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자고 있는 거겠지.

남들 보기에 상당히 불순해 보이긴 하지만, 방문 가까이 귀를 갖다 대본다.


“아파요···. 이제 그만···.”


희미하게 들려오는 한여름의 목소리가, 옅은 신음과 끙끙 앓는 숨소리에 뒤섞여 들려온다.


빠각- 끼익-


“여름아!”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잠겨있는 문고리를 부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는 땀을 한 바가지 흘린 한여름이, 괴로운 표정으로 누워있었다. 놀란 가슴에 달려가, 그녀를 비스듬하게 일으켜 세웠다.


“어휴, 이 땀 좀 봐! 설마 아까 탈영병들이랑 싸울 때 심하게 다친 건가?”

“으···. 어디야, 여긴···.”

“정신 좀 차려봐!”

“너 여기서 뭐 해? 숙녀 방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는···.”

“···자고 있던 거였냐?”


말을 들어보니, 한여름은 그저 잠꼬대하고 있던 것뿐이었다.

정말 다행이다.

졸였던 마음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크게 한번 몰아쉰다.

이렇게 놓고 보니 우리엘보다 내가 더 그녀의 수호천사처럼 보이네.


침대에 걸터앉아, 내게 비몽사몽 한 눈빛을 보내고 있던 한여름이 길게 하품했다.


“하암, 오밤중에 무슨 급한 일 있어? 문고리까지 부수고 쳐들어와선···. ”

“아, 그게. 레프가 사라졌어.”

“레프? 그 고블린 노예상?”

“그래. 혼자서 괴물 곰을 사냥하러 나간 것 같아. 그 NPC가 죽기 전에 빨리 가서 도와줘야 해.”

“그 남자가 죽어버리면 퀘스트 진행이 힘들어질 테니까? 끄응, 자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


서둘러 사냥 준비를 마친 한여름을 데리고, 마을의 남서쪽에 있는 검은 숲을 향해 출발했다.


# # #


[검은 숲 입구]


거무튀튀한 냉기를 내뿜는 숲 앞에서, 아까 어느 약초꾼에게서 구매한 온기의 포션을 한여름에게 건네주었다. 체르레시야의 숲은 독성 식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내뿜는 것처럼, 외부 칩입자를 막기 위해 냉기 피해를 일으키는 물질을 뿜어내기 때문이었다.


“자, 이거 마셔. 냉기 저항력을 일시적으로 올려줄 거야.”

“넌 안 마셔?”

“난 냉기 저항이 상당히 높으니까 괜찮아.”

“역시 255레벨은 확실히 다르네.”

“그건 그렇고, 아까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아냐? 악몽이라도 꾼 거야?”

“가끔 이렇게 병원에서 치료받는 꿈을 꿔.”

“넌 16년이나 여기서 살았잖아. 그런데 아직도?”

“응. 이제는 그게 꿈이라는 걸 이젠 잘 알지만, 생생한 고통에 나도 모르게 몸부림칠 때가 있어.”

“그것참 힘들겠네.”

“이젠 적응되어서 괜찮아. 다음 날 약간 피곤함을 느끼는 것 말고는···.”


씁쓸한 미소를 짓던 한여름은 온기의 포션을 벌컥 들이켰다. 그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아직 3분의 1 가량 남은 포션병을 그대로 인벤토리에 넣어버렸다.


“으윽, 맛있는 포션은 못 만드나? 맛이 뭐 이래?”

“남기지 말고 마셔.”

“우웩, 이따 더 추워지면 마저 마실게.”

“그러지 말고 지금 다 마셔. 레프를 찾는 일이 금방 끝날지 어떨지 모르니까.”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시면 안 될까요, 의사 선생님?”

“···그렇게 맛이 없나? 마실만 하지 않아?”

“전혀? 누렁이도 이런 건 거를걸?”


단호한 표정으로 부인하는 한여름을 보며, 앞장서서 걷던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흡.”

“뭐가 웃겨?”

“아니, 다른 게 아니라. 16년이나 여기서 살아온 너보다, 내가 포션을 더 잘 마시는 게 웃겨서.”

“그거야 당연하지. 난 약이라면 질색이니까.”

“아, 아? 그렇구나. 생각해보니까 그렇겠네. 넌 거의 평생을 병원에서 지냈다고 했지?”

“그러고 보니까 우리 아직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거 같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너에 대해서 거의 모른다고 봐야겠지. 넌 현실에서 뭘 하고 살았어?”

“나? 나야 뭐 평범했지. 남들처럼 대학 가고 군대 갔다 오고 그러다가 마스테마한테 꼬여서 이 게임을 하게 됐고···. 참, 이럴 때가 아니야. 레프를 찾으러 가야지.”

“맞다. 어서 서두르자.”


# # #


[검은 숲 깊은 곳]


울지 말렴. 자꾸 울면 숲에 사는 큰 늑대가 물어간다.


슬로베스카 어머니들이 떼를 쓰는 어린아이들을 겁줄 때 흔히 하는 말이다.

그만큼 여긴 곰 못지않게 늑대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 된 영문인지, 이때까지 단 한 마리도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놈들은 하얀 공포에게 잡아먹혔거나, 먹이 경쟁에서 패배하고 얼어 죽었을 것이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한여름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눈썹에 붙은 얼음을 털어냈다.


“아하, 그렇구나. 예전부터 느끼던 거지만···. 이 게임은 뭐랄까, 현실 같아.”

“덕분에 편하게 왔지, 뭐. 근데 여름아.”

“응?”

“견딜 만해? 내 옷이라도 벗어서 줄까?”

“아냐, 됐어. 아까 네가 준 포션 효과도 아직 남았고, 슬슬 이곳 추위에 조금씩 적응되고 있으니까.”

“그러냐···. 아, 근데 분명 여기 어디일 텐데···. 그 아까 썼던 스킬, 다시 한번 더 써볼래?”

“잠시만 기다려줘.”


[추적술 lv 16]

[▶▷▷▷▷ 10% ▷▷▷▷▷]


한여름은 전투 스킬에 있어서는 영 꽝이었으나, 의외로 이런 상황에서 도움 될만한 스킬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사냥에 쓰는 추적술로 하얀 공포를 찾게 시킨 것은, 놈을 찾아내기만 하면 레프를 찾는 일은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입을 벌릴 정도로 고도로 집중한 한여름이, 오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있을 때였다.


“크와아앙!”


맹수가 내지르는 특유의 낮고 울리는 포효에, 몸이 가볍게 떨렸다.


이 떨림은 레벨이 255인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의 DNA에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위계질서가, 세포 하나하나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훈련과 경험은 본능을 얼마나 잘 억누르게 만드느냐 싸움이지, 그것을 완전히 지우는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이 정도 기백을 내뿜는 것을 보니, 하얀 공포라고 불리는 괴물 곰의 것이 틀림없었다.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곧 크고 깊은 동굴이 나타났다. 통로가 일정한 높이로 뚫려있고, 발톱 자국이 사방에 나 있는 이곳은 결코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이 아니었다.


흰 털이 듬성듬성 붙어있는 거친 벽면을 보며, 한여름을 불러 손가락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여기에 레프가 있을 거야.”

“앗, 저기 봐!”


무언가를 발견하고 나를 앞질러 간 한여름이, 시퍼런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넓은 안쪽으로 뛰어갔다. 그녀를 뒤따라가니, 반송장이 따로 없는 레프가 쓰러져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레프(NPC, Lv 29)]

[남은 체력]

[♡♡♡♡♡ 4% ♡♡♡♡♡]

[상태: 출혈, 빙결, 골절]


“허억···. 허억···. 다, 당신들은···.”


얼마나 여기에 오랫동안 이러고 있었던 걸까.

레프는 입이 얼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너무나 인간다운 실수를 한 그에게, 훈계할 생각으로 곁에 쪼그려 앉는다.


“야, 내가 분수 넘치는 짓 하지 말라고 경고했지?”

“끄윽···.”

“그건 네가 진짜 힘이 아니라, 내가 떠나면 회수될 힘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어?”

“···하, 하지만···. 라, 라피엘 님께서 아직 떠나지···.”

“이 멍청아! 이건 네 발로 날 떠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 진짜 사람 미치게 하네. 내가 이럴까 봐 그렇게···.”


쓰러진 레프를 사정없이 몰아세우는 나를 가로막은 것은 한여름이었다.


“그만 좀 해! 지금 그런 잘잘못을 따지고 있을 때야?”

“뭐야? 이 녀석. 지금 잠이 오나?”

“쇼크로 기절한 거잖아! 어서 치료를 해야 해!”

“그, 그래. 네 말이 맞아. 이럴 때가 아니지.”

“내 인벤토리에서 내가 지금부터 부르는 약초들을 찾아서 꺼내줘.”


내가 응급처치에 필요한 각종 약초를 찾는 동안, 한여름은 약간 남은 온기의 포션을 레프의 입에 흘려 넣었다. 그러자 그의 ‘빙결’ 상태가 깜빡거리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어디선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짐승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우리가 하얀 공포를 추적하고 있던 것처럼, 놈도 우릴 추적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거대한 두 눈이, 점점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여름아, 넌 레프를 마저 치료해. 저놈은 내가 맡을 테니까.”

“아, 알았어!”

“그리고 이건 잠깐 빌릴게.”


팽팽해지는 활시위.

활을 쓰는 것이 대체 얼마 만이던가.


그러나, 이내 난 활시위를 조용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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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23.09.30 24 0 13쪽
14 14화 23.09.28 26 0 13쪽
13 13화 23.09.27 32 0 13쪽
12 12화 23.09.26 27 0 13쪽
11 11화 피바람은 우르사 강물을 마신다 23.09.25 35 0 13쪽
10 10화 뜬금없는 변심 23.09.24 33 0 13쪽
9 9화 23.09.23 33 0 12쪽
8 8화 루트리가 대학 23.09.23 34 1 12쪽
7 7화 23.09.22 30 0 12쪽
6 6화 [팁: 알고 계셨나요?] 23.09.21 36 0 12쪽
5 5화 23.09.20 44 0 13쪽
4 4화 23.09.19 62 0 12쪽
3 3화 ...하피? 23.09.18 94 1 12쪽
2 2화 23.09.18 102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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