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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A]

만렙 용사는 핵무기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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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유진숙
작품등록일 :
2023.09.03 11:30
최근연재일 :
2023.10.06 13: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983
추천수 :
8
글자수 :
118,856

작성
23.09.20 14:15
조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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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13쪽

5화

DUMMY

오크에게 붙잡힌 사람을 구하시오.

이런 종류의 퀘스트는 이미 수천만 번 넘게 더 해본 것이다.

환히 빛나는 레바테인을 등불 삼아, 지도를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나아갔다.


“으윽···. 누, 누구냐!”


소리가 나는 방향에는 덫에 다리가 걸려 피를 흘리고 있는 사냥꾼이 있었다. 내게 활을 겨누고 있는 그를 안심시킬 요량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대답했다.


“도와주러 온 사람이니까, 그 활부터 좀 내려놓지?”

“어, 인간이잖아? 살았다. 이봐, 여기야! 다리가 오크들의 덫에 걸려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어···.”


함정 해체는 레인저의 전공이지만, 해체술을 어깨너머로 배운 나도 이런 조잡한 수준 정도는 눈 감고도 풀 수 있었다.


[함정 해체술 lv 5]

[▶▶▷▷▷ 20% ▷▷▷▷▷]


한창 함정 해체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옆에 꽂아놓은 성검의 빛에 비춘 사냥꾼의 얼굴이 어딘가 익숙했다. 이마가 넓고 눈코입이 몰려있는 남자. 그리고 다리에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데도 레바테인의 영롱한 자태에 시선이 뺏긴 모습. 인제야 이 자가 누구였는지 명확하게 기억났다.


좀도둑 게르베스. 오죽하면 내가 일개 NPC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겠나.

게르베스는 한때 나의 열렬한 추종자를 자처했던 남자다.

이 열성적인 시종이 나를 따라다니며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기회를 틈타 성검을 훔쳐 달아났고, 제국군에게 붙잡혀 추방된 이후로는 그의 생사조차 모르고 있었다.


성검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게르베스는 나의 시선을 느끼고 황급히 얼굴을 돌렸다.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검을 가진 남자. 그도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이었다.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 게르베스는, 교수대에 목이 걸린 사형수 같은 표정으로 나의 현명한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덫을 해체한 후, 그가 안전해질 때까지 도와준다.]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고 가던 길 간다.]

[도와주되, 딱 필요한 만큼 조치한다.]


현재, 주어진 세 가지 선택지 앞에서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둔다. 내가 인간 말종도 아니고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처음부터 내 마음은 처음과 마지막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해체 중···]

[▶▶▶▶▶ 50% ▷▷▷▷▷]


그래, 결정했다.

고심 끝에 내린 나의 최종 결론은 이것이었다.


[→ 도와주되, 딱 필요한 만큼 조치한다.]


원수를 사랑하라지만, 성자도, 뭣도 아닌 내게 그 정도의 아량과 인정은 없다.

천사라는 작자도 자기 용사를 내버려 두고, 여유롭게 홍차나 마시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그러겠나.

대충 걸을 수 있을 정도만 응급 처치를 마친 뒤, 챙겨온 물과 식량을 조금 나눠줄 생각이다.

굳이 여기서 내 손으로 확인 사살까지 할 필요는 없다.

추방되어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형벌일 테니까.


[해체 완료]

[▶▶▶▶▶ 100% ▶▶▶▶▶]


[서브 퀘스트 완료: 덫에 걸린 사냥꾼]

[● 덫을 해체하십시오.]

[● (선택) 사냥꾼이 기력을 찾게 도와주십시오.]

[○ (선택) 오크가 돌아오기 전에 안전한 곳까지 그를 호위하십시오.]


비틀거리며 힘겹게 일어난 게르베스에게 응급 처치 도구와 한 끼 분량의 물과 식량을 건넸다. 일을 마치고 말에 올라타려는데, 어리둥절한 얼굴의 그가 나를 붙잡았다.


“저, 저기···. 라피엘 님.”

“감히 내 이름을 입에 올리다니. 못 본 새에 얼굴이 꽤 두꺼워졌구나?”

“앗···. 그···. 전설의 용사님.”

“설마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달라는 소린 아니겠지? 너도 양심이 있으면 그딴 소린 안 할 거야, 그렇지?”

“그게 아니라···. 묻고 싶은 것이···. 어째서 저를 도와주신 겁니까? 저는···.”

“불천지원수라고 할지언정,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지. 아무리 그래도 난 용사니까.”

“···역시 용사님은 대단하신 분이시군요. 성검 레바테인의 진정한 주인이라 불릴 만하십니다···.”

“쳇. 여전히 듣기 좋은 말만 하는군.”

“하하···. 아, 맞아. 도와주신 답례를 어서 하지 않으면···.”

“됐어.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네가 줄 수 있는 보상이라고 해봐야···.”


잠깐만.

그러고 보니 엘다라드가 블러드 락 지역에 있다는 것만 알지, 어디에 있는진 모르고 있었다.

우리엘이 그렇게 자세한 위치까진 모른다고 했었으니 말이다.

혹시나 모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게르베스에게 한 가지 물어보기로 한다.


“너 이 근처에서 살고 있나?”

“예. 추방되고 나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3년 전에 이곳에 자리를 잡아···.”

“그런 자세한 이야기는 관심 없어. 혹시 여기서 엘다라드라는 여자를 본 적 있나?”

“엘다라드?”

“나와 같은 용사인데···.”

“아, 이름이 엘다라드셨구나···. 며칠 전에 저에게서 필요한 물건을 좀 사셨습니다. 금발의 긴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엘프 용사 말씀하는 것 맞으시죠?”


엘프 용사? 이 세상에 그런 용사도 있나?

엘프라고 하면 주로 원거리에서 활을 쏘면서, 용사를 보조하는 든든한 조연 느낌 아닌가?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일단 대충 내가 찾는 사람이 맞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니, 맞아야겠지. 흠, 그녀가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기억하고 있어?”

“방향뿐만 아니라, 어느 오크 무리를 상대하러 갔는지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데?”

“신비로운 겉모습과 다르게, 말이 꽤 많은 분이시더군요.”

“게르베스. 너에게 답례할, 덧붙여 나에게 속죄할 기회까지 한꺼번에 주도록 하겠다.”

“그, 그것이 정말이십니까? 알겠습니다! 다시는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좋았어. 다리가 엉망이긴 해도 말 정도는 탈 수 있겠지?”


# # #


블러드 락의 남쪽에 있는 화산지대.

거무튀튀한 흑요석들이 솟아있는 여긴 ‘검은 등줄기 클랜’이라고 불리는 오크 집단이 살았던 곳이었다.

왜 과거형으로 말했냐 하면, 언젠가 한 번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흑요석 토템을 보아하니, 잡초같이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오크답게 무리를 다시 복구한 모양이었다.


그나마 내게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렇게 늘어난 몬스터는 내 목표치에 추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한때 이런 시스템을 악용해보려고 했던 적도 있었으나, 돌아다니며 새로운 적을 찾는 것에 비해 효율이 너무 떨어지기에 금방 관뒀었다.


오크 냄새가 진동하는 협곡 입구 앞에서, 게르베스가 흑요석 토템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마 저 안에 있는 녀석들 소행일 겁니다. 엘프 용사님께서 분명, 제게 ‘최근 다시 준동한 검은 등줄기 클랜을 물리쳐달라는 촌장님의 부탁’을 받았다고 하셨으니까요.”

“전투 스킬도 없다면서 왜 그런 부탁을 받아서···. 어쨌든 이렇게 찾아서 다행이야.”

“용사님께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다행입니다.”

“네 역할은 이 정도면 충분해, 게르베스. 타고 있는 말은 그냥 줄 테니까 돌아가.”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혼자서 괜찮으시겠냐고?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아, 아니요···.”

“여기서부턴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할 테니까, 기회를 줄 때 곱게 꺼지도록.”

“아, 알겠습니다. 그럼 용사님의 무운을 빌도록 하겠습니다. 이만.”


[다시 복구한 ‘검은 등줄기 클랜’의 본거지]


이 근처에서 구하기 힘든 목재 대신 돌을 깎아 쌓은 번듯한 집들과 각종 조각상. 오크 촌락은 예전에 내가 보았던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상태였다. 인간들의 그것과 비교하면 한없이 조악하고 열등한 수준이었으나, 오크치고 이 정도면 꽤 훌륭한 편이었다.


후두둑-


나의 발길질에 무너진 집의 돌 굴러가는 소리에 붉은 피부의 오크들이 몰려왔다. 젊은 오크들은 각기 둔기나 이가 빠진 검 같은 무기들을 챙겨 나를 포위한 채 으르렁거렸다.


“인간! 겁을 상실했구나. 감히 우리 클랜의 본거지로 쳐들어와?”

“크르르. 인간 고기 구경 못 해본 지 오랜데, 간만에 포식하겠구나.”

“요리사! 어서 솥에 물 올려! 신선한 인간 고기를 금방 갖다줄 테니까.”


혈기 넘치는 근육질의 어린 몬스터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눈치다.

하긴 그거야 그렇겠지.

이런 외진 곳에서 나고 자란 놈들은 여태껏 레벨 255의 용사를 만나볼 기회가 없었을 테니.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핏덩이들을 앞에 두고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도 저렇게 도전심과 모험심이 넘치던 시절이 있었는데.


“웃어? 웃음이 나오나, 인간?”


나의 웃음이 가진 의미를 잘못 이해했는지, 젊은 오크들이 더욱 미쳐 날뛰며 거세게 위협하던 때였다. 무리 속에서 덩치 큰 오크 한 마리가 젊은이들의 어깨를 헤치며 나의 앞까지 다가왔다. 머리끝까지 흥분한 젊은 놈들이 순순히 길을 비키며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보아, 우두머리 정도 되는 위치에 있는 오크인 듯싶었다.


오른쪽 엄니가 부러진 그놈은 무리의 웅성거림을 손가락 하나로 제압하고 나와 마주 섰다. 검을 꺼낼 필요도 없는 상대. 주먹을 들어 싸울 자세를 취하려는데, 부러진 엄니가 갑자기 내 앞에 바짝 엎드렸다.


“파괴의 전쟁 군주, 멸망의 전조, 악마를 거느리는 자, 엄니를 부러뜨리는 자 그리고 위대하신 절멸자이신 라피엘 님이시어! 미천한 제가 감히 이렇게 인사를 올립니다.”

“넌 뭐야?”

“젊은 놈들은 당신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이 두 눈으로 본 적이 있기에···.”


아까 내가 여길 쑥대밭으로 만든 적이 있었다고 했나?

지금 나에게 이렇게 절을 올리는 오크는 그때 내가 미처 처리하지 못했던 놈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게임을 해봤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어린 인간형 몬스터를 죽여본 적은 없다.

그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결국 검을 뽑지 못하고 그대로 물러났던 결과물이 바로 여기에 있다.

몬스터를 어리다는 이유 하나로 살려준다. 제국 사람이 봤으면 아마 나를 미친놈 취급했을 것이다.


“···많이 컸네. 부러진 엄니.”

“제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라피엘 님께서 현재 이런 곳에서 싸울 수준을 아득히 넘어갔다는 것 정도는 감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야. 너흰 내 수준에 전혀 어울리지 못해.”

“그런데 대체 여긴 왜 돌아오신 겁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 최근에 너희들을 해치우겠다고 덤벼든 엘프 여자 하나 있었지?”

“···그걸 어떻게?”

“그건 네가 알 필요 없고. 그 여자 아직 살아있지? 그, 왜. 너희들 그런 거 좋아하잖아. 붙잡은 적을 전시하듯 가둬놓는 거. 지금 어디 있어?”

“···따라오십시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부러진 엄니를 따라 마을 안쪽의 동굴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내부를 밝히는 횃불을 따라 10분 정도 밑으로 내려가니, 철창 속에 갇혀 있는 여성 엘프를 만날 수 있었다.


이쪽 세상의 엘프는, 어린아이조차도 오크 정도는 능히 상대할 수 있는 전투력을 타고 난다.

그러므로 철창 너머에 있는 이 엘프는 그저 겉모습만 엘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여자가 바로 내가 찾던 그 용사가 맞는 것 같았다.


“엘다라드, 맞지?”


나의 물음에 철창 가까이 다가온 엘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닌데?”


상대의 성의 없는 대답에 없던 기운도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아니면 당연히 이 여자가 내가 찾던 사람이라고 지레짐작해버린 탓일까.


“게르베스, 이 개자식! 다음에 만나면 가만 안 두겠어!”


그러나 실망하기엔 아직 이른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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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23.09.20 4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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