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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용사는 핵무기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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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유진숙
작품등록일 :
2023.09.03 11:30
최근연재일 :
2023.10.06 13: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970
추천수 :
8
글자수 :
118,856

작성
23.09.23 13:25
조회
35
추천
1
글자
12쪽

8화 루트리가 대학

DUMMY

그레고리 대령.

처음 만났을 때 소령이었던 그는, 어느새 제국군의 핵심 인력이 되어 있었다.

이 남자의 역할은 내가 북쪽으로 원정을 떠날 때마다, 사냥에 필요한 물품을 챙겨주는 것.

군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진 자세히 모르지만, 최소한 나에겐 그런 존재였다.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는 그레고리 대령을 향해,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넸다.


“이런 곳에서 다 보네, 그레고리 대령. 잘 지냈나?”

“대령이라니요. 이 계급장을 보십시오. 이번에 ‘레바테인 프로젝트’의 책임자를 맡아 준장으로 진급했습니다.”

“출세했네. 우선 진급 축하하고. 저기, 우리엘?”


내가 하던 말도 끊고 급히 우리엘을 찾은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레고리가 찾아온 기회에, 그녀에게 진짜 하녀가 하는 일이 뭔지 체험시켜줄 생각이다.

무슨 목적으로 우리 집에서 이러고 있는 것인지 몰라도, 이왕 이렇게 된 거 뼛속까지 철저히 부려 먹어주겠다.


“예, 주인님.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할까요?”

“어? 그래···. 아, 응접실에 가는 김에 여름이에게 방도 안내해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참, 손님 접대는 어떤 식으로 하면 좋겠습니까? 식사 준비를 할까요?”

“그럴 필요까진 없고 차나 한잔내오면 좋겠는데···.”

“알겠습니다.”


우리엘은 나에게 슬그머니 윙크한 뒤, 한여름을 데리고 먼저 저택으로 들어갔다. 어딘지 모르게 이 천사에게 놀아난 기분이 들었으나, 일단 그레고리와 대화를 다시 이어 나갔다.


“참,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지?”

“진급 축하하신다고···.”

“아, 맞아. 진급 축하해. 근데 프로젝트 책임자라니? 난 널 발탁한 기억이 없어.”

“그럴 수밖에요. 이건 황제 폐하께서 직접 지시하신 일이니까.”

“루스베리온 황제가? 우리가 영 미더운 모양이군. 감시자를 붙이다니.”

“감시자? 그럴 리가요. 폐하께선 저에게 용사님을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왜 하필 너야?”


한두 푼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가 아닌데다가, 무기 개발 사업이니 군인이 참가하는 것까진 알겠다.

왜 하필 그레고리 대령 아니, 준장인가?

이런 일을 할 사람은 제국군에 넘친다. 대령에게 억지로 별을 달아주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란 말이다.

이런 나의 의구심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인지, 그레고리는 자신의 약력을 간단하게 읊기 시작한다.


“에버가드의 취약점을 개선했던 공로를 인정받아 발탁되었지요. 장성에 간이역을 설치하여 루트리가 중앙역과 연결하는 일도 제가 했습니다. 또 알고 계셨는지 몰라도, 황궁을 보호하는 트와일라잇 요새.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위대한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레바테인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제 대표작의 자리가 바뀌겠지만요.”

“네가 그 일들을 모두 해냈다고?”

“입대 전에 토목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토목공학이라···. 어느 대학?”

“루트리가 대학입니다.”

“거긴 제국 최고의 대학이잖아. 이것 보게? 내 생각보다 더 똑똑한 친구였네?”

“하하, 여러 사정 때문에, 결국 졸업은 못 했지만 말입니다. 아! 대학교 하니까 생각났는데, 제가 1학년 때···.”


# # #


우리엘은 시원한 상그리아가 담긴 병과 잔을 챙겨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잔에 칵테일을 적당히 붓고 갖가지 과일을 정갈하게 얹어서 그레고리 준장에게 건넸다.


“여깄습니다, 장군님.”

“고맙네.”

“괜찮으시다면, 뒤에 계신 신사분께도 한잔 내올까요?”

“어떻게 하겠나, 콜린 중령?”


콜린 중령.

이 남자에 관해선 아는 바가 없다.

드래곤 게이트에서 내가 못 봤거나, 이번에 프로젝트 책임자를 맡으면서 새롭게 배정된 것일 거다.


“근무 중에 음주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아직 해가 이렇게 짱짱하지 않습니까?”

“그거 어째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네.”


콜린이라는 군인은 좋게 말하면 깐깐하고, 나쁘게 말하면 눈치가 없는 사람이다.

중령이 대령을 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상대는 무려 준장이다.

그런데 지금 그레고리한테 뭐라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것인지, 그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닙니다, 장군님. 저는 장군님의 전속부관으로써···.”

“그만. 들었지, 우리엘? 이 신사분께선 괜찮다고 하는군.”

“···모쪼록 적당히 드셨으면 합니다.”

“나도 대낮부터 고주망태가 될 생각은 없어.”


그레고리는 이 하극상 아닌 하극상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로 한 것 같았다. 그는 별다른 말 없이 검붉은 빛의 상그리아 한 모금을 들이켰다.


“흐음, 맛이 꽤 좋군. 수제로 만든 물건인가 본데···. 한데 라피엘 님.”

“어?”

“이렇게 큰 저택에 하녀가 저 아이 하나입니까?”

“아직은.”

“너무 가혹하신 것 아닙니까? 집이 워낙 커서, 빗자루질만 해도 하루 만에 다 못 끝낼 것 같은데.”

“그게···.”


그레고리의 질문에 속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하인이 최소 백 명은 필요할 것 같은 이 저택을, 우리엘 혼자 관리할 수 있는 건 마법의 힘 덕분이다.

하지만, 마법을 쓰는 하녀?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으나, 그레고리는 콜린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냥 넘어가기로 한 모양이다.


“뭐, 나름대로 사정이 있으시겠죠. 주제넘게 끼어들진 않겠습니다.”

“···그래서 날 찾아온 이유가 뭐지?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잖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그레고리 준장이 어깨 너머로 손을 뻗자, 뒤에 있던 부하가 서류철 하나를 건넸다. 검은색 하드커버가 덧씌워진 그 서류철은 그의 손을 거쳐 나에게로 무사히 도착했다.


- 루트리가 대학 교수 명단 (마도학, 마공학, 연금술 분야)


“이건?”

“거기 적혀있는 대로 루트리가 대학에 소속된 교수들의 명단입니다. 제국, 아니 인류 최고의 석학들이 모두 거기에 적혀있습니다.”

“마도학, 마공학, 연금술이라···. 레바테인 프로젝트에 참가할 연구자들을 뽑아가라는 말이겠네.”

“정확합니다. 말씀하신 ‘핵무기’ 같은 어마어마한 무기를 만들려면, 한 두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누가 있나, 어디 한번 볼까?]

[→ 그런 일이라면 마스테마가 더 적합하지 않아?]

[미친놈처럼 그냥 가만히 있는다.]


“왜 나한테 이걸 맡겨?”


[설득 실패]


“잘 아시지 않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마족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마스테마 님께서 겨우 보안 인가가 된 것도, 라피엘 님을 봐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와서야. 어디 프로젝트가 무사히 완료나 되겠나?”

“제국 행정부가 지시한 일이니, 저 같은 일개 군인이 어쩌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아무리 장군이라 할지언정, 제국 행정부 앞에선 일개 군인일 뿐.

까라면 까는 것이 군대다.

그러나 그레고리는 나름대로 합리적이면서 융통성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염려하진 마십시오. 적절한 때를 기다렸다가, 마스테마 님께도 자문을 구할 테니까요. 오늘은 한 두 사람만 뽑으시면 됩니다.”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번거롭게 그럴 바에, 나중에 마스테마를 데리고 한꺼번에 처리하면 안 될까?”

“안 됩니다. 상부에서 오늘 반드시 책임급 연구원을 한 명 이상 정해서 오라고 했습니다.”

“아휴, 알겠어. 그럼 한번 가보자고.”


# # #


[루트리가 대학]


제국뿐만 아니라 변방의 소왕국까지, 학문의 길을 걷는 모든 이들이 동경하는 곳.

황제의 여동생 아멜리아 R. 루스베리온이 총장이기에, 그 어떤 대학보다도 많은 지원을 받는 최고의 교육기관.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학교, 그 이상의 위상을 가진 대학이다.


아멜리아는 대학교 정문 앞에 버선발로 마중 나와 있었다. 그녀는 그레고리와 콜린의 경례를 오른손으로 받고서, 나에게 황실 예법에 따라 우아한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물었다.


“라피엘 님.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즉위식이 거행되는 날 이후로 처음 뵙네요?”

“세월이 빠르긴 빠르네. 네가 벌써 이렇게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니.”

“후후, 용사님은 어째 하나도 안 늙으셨네요?”

“평소에 슬라임 크림으로 관리하거든.”

“농담도 참···. 그나저나 대충 무슨 일인지는 오라버니에게 들었어요. 제국 최고의 브레인들을 찾고 계신다면서요?”

“맞아.”

“괜히 제가 졸졸 따라다니면, 여러모로 불편하시겠죠?”


잘 알고 있네.

교수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총장이 옆에 있으면 그들이 얼마나 숨이 막히겠나.

더구나 아멜리아는 단순한 총장이 아니다. 무려 황제 다음의 권세를 자랑하는 제국의 이인자다.

아, 물론 나는 빼고.


“편하게 둘러보고 싶어.”

“알겠어요. 어쨌든, 명단에 있는 교수들에게 모두 휴강하고 연구실에서 대기하라고 했어요. 원하시는 때에 찾아가서 편하게 만나면 될 거예요.”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편의를 봐줘서 고마워.”

“라피엘 님이라면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그레고리 장군, 용사님을 잘 보필해드리도록.”

“명에 따르겠습니다. 아멜리아 공녀 전하.”


아침부터 이어진 면담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대기에 흩뿌려져 있는 마나가 어쩌고저쩌고. 머리를 하도 썼더니 끔찍한 허기가 몰려온다.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콜린이 사온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덕분에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와, 손에 묻은 마요네즈를 혀로 핥으며 그레고리에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할게. 명단에 있는 사람들 다 만나봤지만, 딱히 인상적인 사람이 없더군.”

“그렇습니까? 하지만, 아직 다 만나보신 것은 아닙니다.”

“뭐? 아직도 남았다고?”

“명단의 맨 뒷장을 다시 한번 살펴봐 주시겠습니까?”


잘 찾아보니, 서류철 맨 뒷장에 종이가 한 장 더 있었다. 빈 종이로 오해할 만큼 텅 빈 그 마지막 페이지에,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이 상단에 홀로 적혀있었다.


“이 교수 이름은 어째서 혼자 덜렁 여기 있는 거지? 종이 아깝게.”

“융통성 없는 누가 서류 작업을 거지같이 해서 말입니다.”

“흐음, 뭔가 이렇게 해놓으니까 어쩐지 기대가 가는데? 최종 보스 같잖아?”

“···다 드셨으면 가실까요?”


다른 교수들과 달리, 마지막 남은 교수의 연구실은 캠퍼스의 후미진 곳에 있었다. 작은 1층 집처럼 생긴 연구실 문을 그레고리가 두드리자, 안에서 조교처럼 보이는 여자가 나왔다.


“무슨 일이세요?”

“여기 교수님을 만나러 왔는데, 안에 계시는가?”

“오늘은 몸이 아파서 출근하지 않으셨습니다.”

“음? 그럴 리가···.”

“전하실 용건이 있으시면 제게 말씀해주세요. 전달해드리죠.”

“아니야. 뭔가 착오가···.”

“착오는 그쪽에서 하신 거겠죠.”


조교의 무성의한 응대에, 화가 난 그레고리가 화를 버럭 내었다.


“지금 네가 마주하고 있는 분이 누구인지 모르나? 제국의 챔피언, 라피엘 님이시다!”

“그래서요?”

“그래서요? 당장 네 지도 교수를 우리 앞으로 데려오라는 말이지! 이건 명령이다.”

“아까 못 들으셨나요? 교수님은 몸이 아파서···.”


여기서 화를 내봤자 이곳의 주인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됐어, 그냥 가자고. 어이, 우리가 왔다 갔다고만 그녀에게 전해줘.”


길길이 날뛰는 그레고리를 데리고 얌전히 돌아서려던 때였다.


“꺅!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여자 비명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어떤 여자가 빵 봉투를 들고 경악하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드디어 기대하던 최종 보스를 만날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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