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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A]

만렙 용사는 핵무기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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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유진숙
작품등록일 :
2023.09.03 11:30
최근연재일 :
2023.10.06 13: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979
추천수 :
8
글자수 :
118,856

작성
23.09.2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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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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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화 [팁: 알고 계셨나요?]

DUMMY

[팁: 알고 계셨나요? 이 세상에 용사가 당신 혼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택받은 자들과 힘을 합쳐, 함께 악을 몰아내세요. 모두가 함께 앞으로 나아가면 성공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이 게임은 튜토리얼이 없다.

‘알고 계셨나요?’ 같은 말로 시작하는, 상황에 맞게 뜨는 팁이 전부다.

팁은 평소 ‘목이 마를 땐 물을 마십시오.’ 따위의 별 쓸데없는 것만 알려줬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방금 떠오른 팁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오크 감옥에 갇혀 있는 이 엘프가 내가 찾던 그 용사라는 사실이다.


···설마 지금 내 옆에 있는 ‘부러진 엄니’가 용사는 아닐 것 아니야?


뭐가 그렇게 즐거운 것인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엘프를 향해 검증작업에 돌입했다.


“저기, 잠깐 손 좀 줘볼래?”


[콜드 리딩 lv 1]


‘콜드 리딩(Cold Reading)’. 상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스킬이다.

숙련도가 높으면 눈으로 보기만 해도 충분하나, 스킬 레벨이 1밖에 안 될 땐 반드시 신체 일부분이 상대와 접촉해야만 한다.

레벨이 255나 되는데 어째서 아직도 초급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스킬이 있냐고?

플레이 시간 대부분을 사냥터에서 보냈으니, 전투와 연관성이 떨어지는 스킬들의 상태가 이럴 수밖에.


“그거야 어렵지 않지. 자, 여기.”


철창 틈새로 삐져나온 하얗고 부드러운 손을 마주 잡자, 상대방의 상태창이 금세 떠올랐다.


[캐릭터 정보 확인]


[아이디: 엘다라드 (Eldarad) / 이름: 한여름]

[종족: 엘프]

[클래스: 용사]

[레벨: 16]

[특기: 농사 lv 30, 채집 lv 30, 요리 lv 30, 낚시 lv 30···(더 보기)]


레벨 16. 정말 경악스러운 레벨이 아닐 수 없다.

전투와 전혀 관계없는 특기들의 레벨이, 이 용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하게 할 뿐.

그래도 전혀 문젯거리가 될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여자가 내가 찾던 엘다라드라는 것뿐이다.


“···너 엘다라드 맞잖아. 어차피 이렇게 정체가 들통날 거, 왜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 거야?”

“설마 아직도 내 상태창에 이름이 ‘엘다라드’라고 되어 있어?”

“왜? 여름이라고 불러줬으면 하냐?”

“난 어떤 게임을 하든 무조건 내 이름으로 아이디를 짓는단 말이야. 아이참, 우리엘한테 바꿔 달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말끝을 흐린 한여름은 무언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상태창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엘이 말하던 악마의 용사가 바로 너구나? 라피엘이라···. 악마도 천사만큼이나 이름 짓는 센스가 영 별로네.”

“···이건 내가 스스로 지은 거야.”

“어머, 본의 아니게 실례했네.”

“라피엘(Rapyel). 플레이어(Player)의 철자를 약간 꼬아서 만든 이름이지. 그건 그렇고 널 구하러 왔어.”

“날 구하러 와? 흠, 우리엘이 시킨 건 아닐 테고···. 뭐, 어쨌든 내가 필요하니까 이렇게 먼 길을 온 거겠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야, 그렇지 않아?”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는 걸 보니 역시 너도 용사구나? 아, 조금만 기다려줘. 챙길 것이 좀 있거든.”


소름 돋을 만큼 정확한 자기 객관화.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머릿속이 꽃밭일 줄 알았는데 조금 놀랍다.


한여름이 시간 때울 겸 만든 것으로 보이는 나무 조각상을 포대 자루에 담는 동안, 부러진 엄니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며 협박했다.


“당장 이 문 열어. 피 칠갑한 내 손으로 직접 열기 전에.”

“본부대로 합죠.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냥은 안 됩니다.”


우린 횃불이 환하게 밝히고 있는 결투장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내가 앉아있는 의자 옆, 이름 모를 꽃에서 꽃잎이 하나 떨어진다.

메마른 대지에 뿌리내린 이 꽃은 여기가 살기 좋아서 뿌리내린 것이 아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무모한 짓처럼 보여도 일단 뿌리를 내린 것이다.

지금 내 앞에서 몸을 풀고 있는 부러진 엄니도 그런 존재였다.


“준비···. 되셨습니까?”

“어, 난 아까부터 준비되어 있었지. 그럼 시작할까?”

“그럼···.”


퍽-


부러진 엄니가 오른손으로 내지른 바디 블로우가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가엾게도 내 체력은 1조차 닳지 않는다.

오크들의 전통에 따라 그 어떤 무기도, 방어구도 없이 시작한 맨몸 결투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본때를 보여줘, 족장!”


부러진 엄니가 이 무모한 싸움을 건 이유는 단순하다.

내 손에 맞아 죽으나, 우두머리 자격을 실격하고 부족원들에게 맞아 죽으나 똑같으니까.

압도적인 힘 차이. 하지만, 나는 이 전사를 조롱할 생각은 없다.


뻐억- 우지끈-


내가 날린 카운터가 옆구리에 꽂히자,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부러진 엄니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 순간 결투장을 둘러싸고 있던 오크 무리의 기쁨과 탄식이 섞인 기묘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가볍게 쳤기에 망정이지, 진심으로 후려갈겼으면 지금쯤 놈은 온몸이 조각났을 거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쓰러져있는 부러진 엄니를 일으켜 세워주며, 다른 오크들이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역시 넌 대단해. 레벨 255가 휘두른 주먹을 맞고도 살아있다니. 과연 검은 등줄기 클랜의 우두머리답군!”

“···왜 살려주시는 겁니까?”

“널 지금 죽여서 뭘 하겠어. 괜히 오크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어봐야, 애꿎은 제국인들만 피해를 보겠지. 정말 죽고 싶은 것이 아니면 순순히 열쇠나 내놔.”

“여깄···습니다···.”


# # #


말을 타본 적이 없다는 한여름을 내 앞에 태운 채, 드래곤 게이트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녀를 일부러 내 앞에 태운 것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토바이와 다르게, 말의 엉덩이 쪽은 생각보다 흔들림이 많아 초심자가 타기에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이 깜짝 놀라 갑자기 앞다리를 드는 행동을 했을 때 붙잡아주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런 나의 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무너지는 한여름의 뒤통수가 ‘나 힘들어 죽겠어요.’라고 소리치고 있다.

하긴 그럴 만하다.

나도 말을 처음 탔을 땐,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으니까.


동이 틀 무렵. 지친 허리를 쉬게 해주고 아침 식사 준비도 할 겸, 시냇물이 흐르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 말에서 내렸다. 말에서 어영부영 내려오는 한여름을 받아주며 짐말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휴우···. 죽다 살았네. 이거 홈쇼핑에서 팔던 승마 운동기구랑은 비교도 안 되게 힘든걸?”

“처음엔 다 그래. 타다 보면 차차 익숙해질 거야. 그건 그렇고 땔감을 구해올 테니까, 저기 가방에서 식자재를 꺼내서 손질 좀 하고 있을래? 슬슬 아침밥 먹어야지?”

“좋아. 안 그래도 배가 고팠는데. 뭐가 있나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과연 요리와 채집 스킬 만렙. 필요한 양만큼 땔감을 모아 돌아오자, 내가 챙겨오지도 않은 다양한 식자재까지 깔끔하게 다듬어진 재료들이 먹음직스럽게 다듬어져 있었다. 잠시 후, 루트리가의 고급 식당에서도 먹어보기 힘든 품질의 음식들로 한 상 가득 차려졌다.


한여름은 수저와 앞접시를 건네고서 손가락으로 시냇물을 가리켰다.


“가서 손 씻고 와.”

“···알았어.”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마치고 잠시 차를 한잔 마시며 소화하고 있었다. 이렇게 과식한 후에 곧바로 말을 탔다간 10분도 채 되지 않아 다 게워낼 것이 분명했다.


그레고리 대령이 챙겨준 싸구려 찻잎 말고, 집에서 가져온 고급 얼그레이 홍차를 우려내 한여름에게 건넸다.


“자, 마셔. 소화를 도와줄 거야.”

“으음, 이건 얼그레이잖아? 우리엘이 좋아하던 건데.”

“그 이름이 나온 김에···. 그녀가 너한테 어떤 교묘한 술수를 부렸길래, 이 게임에 참여하게 된 거야?”

“술수? 아니, 난 나 스스로 참여했어.”

“뭐라고? 스스로?”

“길어야 1년 정도 살 수 있는 시한부였거든.”

“···그런 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침대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지. 우리엘이 나타나, 나에게 살고 싶지 않냐고 물으며 이 게임을 추천했어. 그녀가 제안한 클리어 목표는 도저히 깰 수 없는 것이었지만···.”

“잠깐, 깰 수 없다니?”

“난 싸우는 게임에 별 재능이 없거든.”

“···설마 너도 몬스터 1억 3,331만 마리를 잡아야 해?”

“어라? 어떻게 알았어?”

“악마와 똑같은 계약 조건이라니···. 믿기지 않네.”

“우리엘이 그러더라. 룰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나약한 자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


맙소사.

역시 우리엘은 천사가 아니다. 오히려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여자다.

최소한, 선의인지 악의인지는 몰라도 나를 도와주는 마스테마에 비하면 더 악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나에겐 10년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한여름은 20년이나 받지 않았나.

그래봤자 게임 시스템상, 여전히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는 건 변함없지만.


“그래도 나를 끌어들인 마스테마에 비하면 우리엘은 양반이네. 20년이나 주다니. 나는 현실 시간으로 10년밖에 못 받았는데.”

“그렇게 치면 나도 10년밖에 안 돼. 뭐, 덕분에 수명이 더 늘어났으니 나야 불만은 없지만.”

“그 말인즉슨, 넌 시작부터 게임에 빙의했었다는 말이야?”

“병세가 워낙 심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체력도 없었거든.”


비로소 한여름이 16년이란 세월 동안 고작 16레벨에 머물러 있었는지 이해가 간다.

방식이 대단히 뒤틀리긴 했으나, 어쨌든 늘어난 수명.

내가 모니터 앞에서 세월을 낭비하길 거부했던 것처럼, 몬스터나 사냥하며 세월을 낭비하기 싫었던 것이다.

더구나 시작부터 스스로 ‘클리어 불가능’을 전제로 깔고 시작했다면, 더욱 이해되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전후 사정을 알게 된 나는, 한 가지 질문과 함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


“살고 싶지 않아?”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당연하지.”

“그렇다면 나랑 파티를 맺자.”

“피. 너에 관해서 대충은 알고 있어. 레벨 255면 뭐해? 목표치의 반도 못 채웠다면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한데···.”

“그러고 괜히 나랑 파티 맺어봐야, 잡아야 할 몬스터만 두 배로 늘어날걸. 그리고 내 전투력을 이미 알잖아? 괜히 짐이 되긴 싫어.”

“두 배가 되든, 세 배가 되든 상관없어. 이 게임을 깰 방법을 찾아냈으니까.”

“···어떻게?”

“그게 좀 복잡해. 거기에 관해선 나중에 천천히 설명해줄게. 일단은 너와 내가 파티를 맺는 것이 그 시작 지점이라고만 알려주지. 자, 함께 루트리가로 가자.”


고개를 끄덕인 한여름은 흙을 뿌려 모닥불을 끈 뒤, 먼저 말 위에 낑낑거리며 올라탔다. 그녀는 나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좋아. 그 대신 부탁이 하나 있어. 너한텐 좀 힘든 일이긴 한데···. 그 일을 마치면 너를 따라가도록 할게.”


뭐라고? 나조차도 힘든 일이라고?

하지만 설령 그것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할 정도로 무리한 부탁이라고 할지언정.

한여름과 파티를 맺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해내야만 한다.


“말만 해. 뭐가 됐든, 반드시 해내고야 말테니까!”


지금의 나는, 영혼까지 기꺼이 불태울 각오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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