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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A]

만렙 용사는 핵무기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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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유진숙
작품등록일 :
2023.09.03 11:30
최근연재일 :
2023.10.06 13:0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972
추천수 :
8
글자수 :
118,856

작성
23.09.27 13:05
조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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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3화

DUMMY

[타이가 와이번]

[종류: 드래곤]

[레벨: 102]


[남은 체력]

[♡♡♡♡♡ 1% ♡♡♡♡♡]


쓰러진 와이번의 목덜미를 발로 꾹 밟고서, 놈의 미간을 아스칼론으로 가리켰다.


“여름아, 여기야. 여길 맞추면 단숨에 해치울 수 있을 거야.”

“이거 완전 쩔받는 기분이네.”


스으윽- 푱-


[레벨업! 이제 엘다라드의 레벨은 ‘17’ 입니다.]


쩔의 효과는 대단했다.

겨우 16레벨밖에 되지 않는 용사에게, 와이번은 아주 좋은 경험치 공급원이었다.

곧바로 레벨업을 한 것도 모자라, 넘친 경험치가 지금도 천천히 차오르고 있다.


한여름은 와이번의 머리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와아! 레벨업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와이번은 원래 100레벨 정도는 되어야 잡을 수 있는 몬스터야. 그러니 네가 한 번에 레벨업해도 이상한 것 없어.”

“이 기세라면 100레벨 정도는 나도 우습게 찍겠는데?”

“그렇지. 쉬엄쉬엄 사냥한다고 해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이야···. 사실 말로만 들어서 실감이 잘 안 났었는데, 직접 이렇게 보니까 정말 강하다, 너?”

“어때? 이제 좀, 날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말해 뭐해? 이렇게 콩고물이 우수수 떨어지는걸?”


한여름을 데리고 다니는 건, 비단 파티 시스템의 제약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를 어느 정도 성장시켜놓아야, 후에 잔당들을 처리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핵폭탄을 터뜨린다고 한들, 직접 제거해야 할 몬스터가 조금이라도 남을 것이 분명하다.

레바테인 프로젝트의 기한을 3년으로 잡은 것도, 다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와이번의 시체를 치우는 제국군 병사들의 입에서 입김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지상을 내려다보니, 어느새 땅은 잿빛의 포드졸(Podzol) 토양으로 변해있었다. 조금씩 밀려드는 한기에, 한여름을 실내로 밀어 넣으며 아스칼론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이제 거의 다 왔나 보다.”

“그러게. 좀 춥네.”

“어제 산 털 달린 코트 있지? 어서 가서 입어. 아, 덤으로 받은 방한용 레그 워머도 같이. 내가 마법사가 아니라서, 냉기 저항까진 못 걸어주겠다.”


# # #


[우르사그라드 공항 앞]


잿빛 땅의 공항 앞의 풍경은, 루트리가의 그것과 많은 부분이 다르다.

마공학의 은총을 받은 탈것은 보이지 않고, 콧구멍에 고드름이 열린 말들만 남아 거친 콧김을 뿜을 뿐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슬라베스카의 기술력이 제국에 비해 열등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마왕군에 의해 육로가 끊겨, 사실상 섬이 되어버린 이 왕국은 모든 자원을 왕실에서 통제하고 있다.

만성적인 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이곳에서, 고작 택시 따위에게 낭비할 마나석은 없었다.


한여름은 맨 앞에 있는 주인 없는 마차의 말에게 다가가, 코에 붙은 고드름을 떼고 녀석의 얼굴을 살살 어루만졌다.


“어우 춥겠다, 너.”

“히이잉.”

“옷이라도 하나 해서 입혀주지···.”

“푸르르륵.”


말의 투레질 소리에 어디선가 나타난 마부가, 쓰고 있던 우샨카를 고쳐 쓰며 퉁명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어디 가쇼?”


어디 가냐고 물어봐 놓고 우릴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말에게 소금을 먹이는 마부에게 목적지를 알려주었다.


“회색 광장으로 갔으면 하는데?”

“타쇼.”


대단히 불친절한 사내였으나, 말을 모는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금방 우릴 목적지까지 데려다준 마부에게 요금을 내고, 네모반듯한 화강암이 깔린 광장에 내렸다.


[회색 광장]


슬라베스카를 대표하는 명소인, 이곳의 이름이 회색 광장인 데에는 나름의 설정이 있다.


과거, 슬라베스카엔 제국 편입을 놓고 대립하는 백군과 흑군이 있었다.

혼란스러운 정국 가운데, 설상가상 마왕군의 침공까지 받아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 광장은 그때 당시 ‘어머니의 땅’을 지키자는 일념 하나로 뭉쳤던, 흑백연합의 상징물로써 세워진 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나야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기로는 그렇다.


나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들은 한여름이 하품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동안 사냥하기 바빠서 이쪽 세계에 대해선 잘 모른다더니, 설명이 거의 박사님 수준인걸?”

“어릴 때 속독학원에 다녔었지. 예전에 스토리를 빠르게 스킵하다, 언뜻 본 것이 기억나서 말해준 것뿐이야.”

“그나저나, 예후디엘이라는 천사는 어떤 사람일까? 우리엘이랑 판박이려나.”

“우리엘이 유독 특이한 성향이 아닐까 싶은데···. 뭐, 만나보면 알 수 있겠지. 슬슬 가보자.”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메모지에 적혀있는 주소를 따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빵은 1인당 800g, 소금과 설탕은 각 25g, 80g. 고기와 생선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150g이다.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배급표를 제출한 뒤 수령하도록.”


회색빛의 롱코트를 입은 슬라베스카의 장교가, 가득 쌓인 물자들 앞에서 확성기에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꽤 질서정연하게 이어지던 배급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이건 1인분이잖습니까? 예?”


피곤함에 절은 여공이 의자에 앉아 서류를 작성하는 장교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따졌다. 그녀 못지않게 몹시 피곤해 보이는 장교가, 안경을 한번 고쳐 쓰며 반쯤 쉰 목소리로 설명했다.


“혼자 오지 않았나? 그러니 1인분만 주는 것이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분명 배급표가 두 장일 텐데요! 저희 집엔 저 말고 아들이 하나···.”

“그러면 그 아이에게 직접 배급표를 들고 오라고 해.”

“직접 오라고요? 올해 겨우 4살이 된 아이인데요···.”

“저번 주부터 급격하게 늘어난 부정수급 때문에, 상부에서 특별히 지시한 일이다.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몸이 아픈 아이라, 이런 추위에 조금만 노출되다간 병세가 악화될 겁니다. 제발 한 번만 사정을 봐주세요, 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안경을 벗은 장교는 펜을 내려놓은 손으로 검지와 엄지를 ‘V’자로 만들어, 눈가를 한번 훔치고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가 뒤에 있는 병사에게 끌어내라는 손짓하려는 순간이었다.


“자, 여기 배급표. 내 몫을 여기 이 여자에게 줘.”

“···응?”


여공의 뒤에 서 있던, 목도리를 한 다른 여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녀는 손에 쥔 배급표를 흔들면서, 당황한 표정의 장교에게 닦달했다.


“난 안 받아도 되니까, 내 몫을 합해서 2인분으로 주라고.”

“정말 그래도 괜찮나? 그랬다간 일주일을 통으로 굶어야 할 텐데?”

“상관없으니까 내가 해달라는 대로 해줘.”

“···본인이 원한다면야. 어이, 여기 이 사람에게 2인분으로 주도록 해.”


대기 줄을 빠져나온 여공은 자신에게 배급품을 양보한 여자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덕분에 살았어요. 이걸 어떻게 사례해드려야 할지···.”

“도움이 되었다면 그걸로 됐어.”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가 받은 것을 좀 나눠 드릴 테니···.”

“아니, 됐다니까 그러네. 어서 가봐.”


원래부터 척박한데다가, 무역로마저 제한되어 열악한 식량 사정을 자랑하는 슬라베스카.

생존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이 땅에서, 저 정도의 선행을 베풀만한 존재는 천사밖에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여름을 불렀다.


“저 여자가 바로 예후디엘일 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만약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에 준하는 존재겠지. 어디 한번 확인해볼까.”


등 떠밀리듯 떠나가는 여공을 지나쳐, 목도리를 한 여자에게 다가갔다.

우리엘이 인간 나이로 한 10살 정도 더 먹고, 머리를 기르면 이렇게 생겼을까?

그녀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딱 이렇게 요약할 수 있었다.


홀쭉해진 배를 쓰다듬고 있는 예후디엘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리 나라도, 여기서 더 굶었다간 큰일 나겠는데···.”

“예후디엘, 맞지?”

“꼴을 보니, 이곳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린 루트리가에서 왔어.”

“어쩐지. 그런데 내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고 왔을까?”

“우리엘이···. 아, 아니. 여기서 식품 사업을 하는 어떤 남자가 알려줬어.”

“···우리엘?”


예후디엘이 경멸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우르사 강물보다도 더 차가운 그 눈빛에, 덩달아 옆에 있는 한여름이 바짝 움츠러들었다.


“아, 안녕? 우리엘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

“우리엘, 그 쌍년이 나에 대해 뭐라 그러든?”

“···어?”

“실패자? 언약 파기자? 달박이?”

“으, 으···. 그런 말까진 안 했었는데···.”


예후디엘은 우리엘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피해망상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우리엘로부터 그녀를 비하하거나 무시한다는 느낌을 전혀 못 받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후디엘의 중용을, 내게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쪽에 가까웠다.


자기 혼자 열받아 하는 예후디엘 앞에서, 난처해하는 한여름을 대신해 대화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만 몰아세워. 왜 엄한데다 화풀이하고 그래? 여름이가 너한테 뭐라고 했냐?”

“여름? 그런 이름의 엘프는···. 아, 인제 보니 너희들 용사였구나? 빙의 때문에 단번에 알아채지 못했어.”

“빙의된 걸 용케 맞췄네? 무슨 차이가 느껴져?”

“이래 봬도 난 개발자야. 모를 수가 없지.”

“아하···. 근데 뭔가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만, 우리엘은 너한테 그렇게 적대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어.”

“푸,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워낙 감정 표현이 없는 꼬맹이니까, 그 썩을 꼬마!”


어째 우리엘을 대하는 태도가, 악마인 마스테마보다도 거칠다.

도대체 우리엘과 어떤 악연이 있길래,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불같이 타오르던 예후디엘의 분노가, 차가운 강바람에 좀 식었다는 점이다.

우리엘을 지칭하는 표현이 ‘쌍년’에서, 무려 ‘썩을 꼬마’로 승격하지 않았나.


“···한데, 달박이는 또 뭐야? 그런 단어는 난생처음 들어봐.”

“음, 거기에 대해선 설명이 좀 필요하겠네.”

“으···. 추워···.”


한여름에게 이곳의 추위란, 적응하기 어려운 혹독한 시련인 것 같다.

최고급 방한복을 잔뜩 입혀줬는데도, 저리 벌벌 떨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예후디엘이 목도리를 풀어, 두 손 모아 뜨거운 입김을 불어 넣고 있는 그녀에게 매주었다.


“그건 그렇고 여기가 좀 춥지? 아깐 다짜고짜 화내서 미안해. 내가 좀 다혈질이라.”

“어라? 아니야.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목도리 고마워···.”

“그러게. 여긴 해를 거듭할수록 더 추워지는 거 같냐.”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자세한 이야기는 거기서 해줄게.”


반지하 형태인 예후디엘의 집은 온갖 청사진과 계산식이 적혀있는 종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녀는 멋쩍은 미소와 함께, 그것들은 한곳에 치우며 난로에 불을 지폈다.


“조금만 기다리면 따뜻해질 거야.”

“실내에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데. 괜히 우리 때문에···.”

“아냐, 아냐. 손님을 그런 식으로 대접할 수는 없지. 자, 그래서 무슨 일로 날 찾아왔다고?”

“네가 성능 좋은 미사일을 개발해줄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왔어. 네가 이 분야에 있어서 최고 권위자라던데?”

“우리엘이 정말 그랬단 말이야?”

“내가 뭐 하러 거짓말을 하겠냐. 아까 오면서도 말했지만 우리엘은···.

“으흥, 귀여운 녀석. 그렇다면 잠깐 내 소개를 먼저 하도록 할까?”


슬쩍 입꼬리가 올라간 예후디엘이 칠판을 가리고 있던 막을 힘껏 젖혔다. 칠판에는 비어있는 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림과 글씨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아, 달박이가 그런 뜻이었구나···.”


그 어지러운 칠판의 내용을 살펴보고 나서야, 그녀가 자신을 스스로 ‘달박이’라고 지칭한 이유를 마침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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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23.09.26 27 0 13쪽
11 11화 피바람은 우르사 강물을 마신다 23.09.25 35 0 13쪽
10 10화 뜬금없는 변심 23.09.24 33 0 13쪽
9 9화 23.09.23 33 0 12쪽
8 8화 루트리가 대학 23.09.23 3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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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 [팁: 알고 계셨나요?] 23.09.21 36 0 12쪽
5 5화 23.09.20 4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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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23.09.18 10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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