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에스에프 님의 서재입니다.

수상한 발령장을 지닌 말단 포쾌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에스에프
작품등록일 :
2023.10.20 06:03
최근연재일 :
2023.12.10 12:19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8,570
추천수 :
55
글자수 :
157,207

작성
23.11.11 19:57
조회
200
추천
1
글자
10쪽

18. 거지가 숫자 열 개만 알면 되지, 글자를 꼭 알아야...

DUMMY

18. 거지가 숫자 열 개만 알면 되지, 글자를 꼭 알아야...


거지 마을


“대낮에 이게 뭔 짓이지? 왜 거지 떼처럼 나와서 앞길을 막아?”


갈 길은 바쁜데 시간이 또 지체되자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거지라니! 이놈이 누구보고!”

“장로님, 우리 거지 맞는뎁쇼?”

“이놈아 걸개(乞丐)지, 거지는 무슨.”

“그게 더 지저분하게 들립니다요. 장로님.”

“걸개방의 품위가 있는 법. 주둥이 다물어.”

“...”


“거지같은 소리하지 말고 용건만 간단히!”


바쁜 사람 놔두고 늙은 거지와 젊은 거지가 시시콜콜 말장난이라니 기가 찼다.


“이 도둑놈이 큰소리치기는!”

“도둑놈? 하... 이 구역 물이 안 좋군. 누구는 변태라 하지 않나, 거지같은 놈들은 포쾌더러 도둑놈이라 하지 않나.”

“킁! 우리 물건을 훔쳐갔으니 도둑놈이지 이놈아! 그럼 거지라 부르냐!”


“...무슨 물건 말입니까? ...영감님.”


서로 화만 돋우니 두서없이 말이 길어지고 소중한 시간만 축나고 있어 성질을 죽였다.


“흠흠, 네놈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그것... 어라? 없네?”


“...그럼 가도 되죠? 순후야 가자.”

“예. 형님.”


있지도 않은 물건을 들먹이며 도둑놈이라고 몰아붙이니 대꾸할 필요도 없었다.


“어, 자, 잠깐!”

“또 뭐요?”


고약한 냄새 풍기는 몸뚱이로 자꾸 들이미니 다시 슬슬 열불이 올라왔다.


“이놈아, 육모방망이 어디 숨겼어?”

“형방 창고에 잔뜩 있으니 찾아오시오. 공짜로 몇 개 줄 테니.”

“그거 말고 네놈이 갖고 다니는 거 있잖아.”

“흑뇌곤?”

“그래 그거 말이다. 이놈아.”


“?? 장로님... 이름이 다른데 우리 꺼 아닌 가 봅니다.”


젊은 거지가 쑥대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놈이 그날 자세히 봤다며?”

“그게 모양은 분명한데. 이름은 잘...”

“너 까막눈이냐?”

“예. 그런뎁쇼.”

“이 거지 놈이, 그걸 자랑이라고 주둥이 힘주며 말 하냐!”

“아니, 거지가 숫자 열 개만 알면 되지, 글자를 꼭 알아야 합니... 어어... 장로님! 저놈들 도망갑니다요!”

“이놈이! 거기서지 못해!”


“몽둥이 맛보려면 강도현 형방으로 찾아오쇼. 난 바빠서 이만 갑니다.”


결국 순후를 옆구리에 끼고 경공을 펼쳤고 일화도 뒤를 따랐다.


우왕좌왕하는 거지들이 침을 튀기며 욕하는 걸 뒤로한 채로...


***


월하봉루


“못 들어갑니다.”

“강도현 포쾌라고 신분을 밝혔는데, 왜 안돼?”

“당신 같은 사람이 올 자리가 아니오. 돌아가시오.”

“...그럼 안에 있는 사람이라도 불러줘.”

“누구 말입니까?”

“여주옥.”

“여 총상 말입니까? 그분은 오늘 무척 바빠서 절대 안 됩니다.”


커다란 눈알을 부라리며 ‘네깟 놈이 그분을 어떻게 알아’ 라는 표정을 드러냈다.


“이 자식이!”


-퍽퍼퍽!


봉양방에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바람에 흙먼지로 온몸이 엉망이고 시간도 한참이나 지나 맘이 급했는데 일행의 꼬락서니를 본 경비무사가 트집을 잡으니 결국 손발이 먼저 나갔다.


“들어가자.”


“잘했어요. 오라버니.”

“예. 형님.”


일화와 순후도 문 앞에서 계속되는 언쟁에 지쳤는지 세 명의 경비가 대자로 뻗었는데도 주먹질을 말리지 않았다.


비록 늦었지만 총상대회에 참관해 여 낭자를 응원해야 했기에.



-웅성웅성


“아, 하던 거 계속 하시오. 나는 강도현 포쾌 장총창인데 정문이 소란스러워 깔끔하게 정리하고 오는 길이니 걱정들 마시고.”


총상대회 투표를 진행하던 사람들은 입구 쪽이 소란스럽자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포쾌라는 말에 사소한 공무를 집행하는 거라 생각하며 다들 관심을 끊었다.


실내에는 그야말로 양주뿐만 아니라 이곳 강소성과 인접 성을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실력자는 물론 제국의 권력자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감히 어느 누가 겁 없이 소란을 일으킬 건가하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단지 몇몇 사람들만 익숙한 목소리에 당사자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은 생각했다.


저놈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고.


여주옥도 그중에 한 명이었는데, 늦게 서야 도착한 장 포쾌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투표의 예상결과가 박빙이라 긴장과 불안으로 초조했는데 오늘 총상대회에 장 포쾌마저 보이지 않자 걱정이 커졌다.


그나마 오늘 투표장의 분위기가 뜻하지 않게 상당히 우호적이라 일말의 기대로 불안감은 줄어들었지만, 오전에 보이지 않던 장 포쾌가 나타나자 맘이 가벼워지며 얼굴빛이 상기되었다.


‘분명 장 포쾌님이 눈을 찡긋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늦게라도 그가 나타나자 일말의 불안감도 싹 달아나는 여 총상이었다.



“자 그럼 투표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조용~


“이번 양주 총상대회에서 대총상 후보로 지명된 당수화 총상과 여주옥 총상의 결선 투표결과, 총 20표 중 12표를 득표한 여주옥 총상이 8표를 득표한 당수화 총상을 제치고 대총상에 선출되었음을 공표합니다.”


“오! 축하합니다.”

“와! 여 총상이 이겼다.”

“대단하군.”

“처음으로 여성 대총상이 탄생했군.”


“...”

“...”


투표결과에 대한 명암이 선명하게 갈리며 환호와 박수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변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으니 승자 측에서는 더욱 반응이 열렬했다.


“곧이어 여주옥 대총상 선출 축하연이 이층에서 있을 예정이오니 귀빈들께서는 모두 자리하시어 맘껏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띵띠딩♬ 띠리링♪

-디딩딩♬ 띵띠디♪


흥겨운 선율이 흘러나오며 관료들과 신사들, 염상과 대상인들, 그리고 토호(토착 호족), 방파, 방회의 대표자들이 거들먹거리며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봉양방에서 한바탕 격전을 치르고 온 일행에겐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음악이었지만...


이제 본격적인 사교의 장이 열릴 테니 금력을 가진 자는 돈을 뿌릴 것이고 권력을 가진 자는 힘을 뽐낼 것이고 청탁과 알선이 발 달린 짐승처럼 공공연히 돌아다닐 것이다.


그러려고 총상대회를 핑계 삼아 다들 불나방처럼 모여든 것이니.



“여 총상, 아니 이젠 대총상이군. 축하하오.”

“장 포쾌님, 감사해요.”


-스윽


“!”


손을 내밀며 축하 인사를 건넸건만 살포시 안겨오니 순간 당황했다.


...금방 떨어지긴 했지만.


“저 먼저 올라가 볼게요.”

“그, 그러시오.”


불청객에다 사소한(?) 사고까지 쳤는지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일화, 순후와 함께 구석진 자리에 있었는데 여 낭자가 이층으로 가다말고 잠시 들러 스스럼없이 포옹을 해오다니 상인이 아니라 무림세가의 여식인가 싶었다.


그 덕분에 꿀꿀하던 기분이 싹 달아나며 쾌청한 하늘빛이 되었지만.


“...같이 잤네.”

“?”


“형님, 기보는 어디 갔습니까?”


부러운 듯 쳐다보던 순후가 일화의 억측을 무시하고 온종일 보이지 않는 막내를 걱정했다.


“전직이 양상군자(도둑)인데 봄날 같은 오늘, 맘껏 돌아다니라고 했다.”


황궁보고까지 들락거렸던 기보인데 보란 듯이 큰 물고기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낚시꾼처럼 손발이 근질근질할 터 올가미를 매어두기보단 그냥 내버려 뒀다.


지금은 예전처럼 남의 집 물건이나 소지품을 뒤지는 철딱서니 없는 짓은 안 할 테니 그런 기보를 믿었고.


“그렇군요. 그런데 봉양방 봉공이랑 무슨 말씀을 한 겁니까?”


비파를 들고 음공을 펼친 두 여인은 우리가 그곳을 떠나기 전 봉양방의 봉공이라고 그들의 신분을 밝혔다.


“봉양방을 맡아 달라기에 못 하겠다 했지.”


월아 봉공이 말하길 봉양방은 우리의 추측과 달리 비운의 여인들이 모인 쉼터라고 말하며, 장쾌들이 저지르는 악질 인신매매가 진회하 변의 양방(揚幇) 세력과 연결되어 원망이 자자하다고 했다.


자연히 언젠가 손봐줄 살생부 명단에 그들을 올렸지만.


“예? 오라버니에게요? 그럼 그 여자와도 같이 잤어요?”

“?? ...일화야, 아무리 남녀관계라도 자는 것만으론 모든 것이 해결 안 된다.”

“그러니까 잤다는 거예요? 안 잤다는 거예요?”

“오늘 첨 봤는데 무슨 소리야? 그 여자 나이가 얼만데, 40대 후반이라고!”

“그런데 왜 자기들이 만든 방파를 오라버니에게 홀라당 넘겨요?”

“!”


짐작은 했지만 일화가 막무가내로 잤니, 안 잤니, 하는 건 결국 속사정을 말해 달란 것이었다.


“그건... 어머니가 그곳 출신이라서 그랬던 거야.”


그러니 결국 지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밖에 없었고 굳이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

“...”


“하하하, 둘 다 표정이 왜 그 모양이야. 다 지난 일이라 나는 괜찮아.”

“형님, 그럼 혹시 진회팔절(秦淮八絶)...”

“그래, 그러니 나도 황궁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고 월아 봉공도 나를 공자님이라 부른 거지.”


진회팔절이란 양주수마 출신으로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최고의 미녀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녀들은 급격한 신분상승을 했지만 대부분 말로가 비참했다.


“...오라버니 미안해요.”

“괜찮다니까. 맘속 응어리가 좀 더 풀리면 언젠가 술자리에서 마저 말해줄게. 오늘은 즐거운 날이니 우리도 이층에서 맛있는 음식이나 배불리 먹자. 말단 포쾌 주제에 언제 이런 귀한 음식을 먹어보겠어. 안 그래?”

“좋아요. 오라버니. 오늘 배터지게 먹고 죽어요. 순후, 너도 그럴 거지?”

“으, 응. 그럴게. 형님. 저도 맘껏 먹겠습니다.”


“그럼 우리도 가자.”


괜찮다고 했지만 괜히 물어봤나 싶었기에 과장된 말과 달리 표정이 어두운 두 사람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수상한 발령장을 지닌 말단 포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매주(토,일) 3~4회를 연속으로 올립니다. 23.10.29 45 0 -
공지 양주성 외곽 지도 23.10.22 86 0 -
공지 양주성 지도 23.10.22 145 0 -
공지 무림일괴 성원에 감사드리며 23.10.21 277 0 -
28 28. 서산보의 소북방과 맞서려면 모든 게 부족했다. 23.12.10 131 1 10쪽
27 27. 타구봉법의 투로를 자신의 애병에 직접 새겨놓았는데... 23.12.03 152 2 11쪽
26 26. 천하삼대절진이라기에 소림이나 무당처럼... 23.12.02 149 2 10쪽
25 25. 거지들이 돈이 많아서 이곳에 총타를 지었을까? 23.11.26 149 1 10쪽
24 24. 섬뜩한 핏빛으로 물든 돛이 검은 밤하늘에 펄럭이자 23.11.26 153 2 10쪽
23 23. 분수아미자는 수중전을 벌이거나 배의 바닥을 뚫는... 23.11.25 172 2 14쪽
22 22. 내가 싹 다 지워 버리면? 23.11.19 198 1 14쪽
21 21. 낭창거리는 창대의 시퍼런 창날이 사방팔방에서... 23.11.18 166 1 14쪽
20 20. 그들에게 은 반냥의 값어치는 어마어마했다. 23.11.18 214 1 14쪽
19 19. 호주방과 쌍벽을 이루는 소금밀매업자로 보유한 선박이... 23.11.12 234 1 12쪽
» 18. 거지가 숫자 열 개만 알면 되지, 글자를 꼭 알아야... 23.11.11 201 1 10쪽
17 17. 격전이 벌어진 공간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며 23.11.11 215 1 11쪽
16 16. 옷만 벗기지 않았지, 다 보여주는군. 23.11.05 265 2 14쪽
15 15. 한때 마교라 부르던 마기라니... 23.11.04 262 2 14쪽
14 14. 그, 그놈은 설산은묘! +2 23.11.04 256 2 13쪽
13 13. 그 뭉클한 느낌이 이 뭉클한 것이었네. 23.10.29 311 3 14쪽
12 12. 그게 바로 나다! 23.10.28 288 2 13쪽
11 11. 흥! 초랑, 그놈은 이령이 만취독... 이런, 젠장! 23.10.27 330 1 12쪽
10 10. 이거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군. 23.10.26 360 1 16쪽
9 9. 춘풍에 매화만발이 아니라 동풍에 설화분분 23.10.25 352 2 16쪽
8 8. 10대 빈객 칠성검 손설추 +2 23.10.22 342 2 10쪽
7 7. 흑뇌곤 23.10.22 357 1 13쪽
6 6. 쥐꼬리가 호랑이 꼬리처럼 느껴지니 그런 것이지 23.10.21 389 1 15쪽
5 5. 가만... 제 1이면 2, 3도 있다는 말인가? 23.10.21 433 1 15쪽
4 4. 일단 맞고 시작하자! 이 뒷골목 잡놈들아! 23.10.20 494 2 16쪽
3 3. 직속상관 정 포두 +2 23.10.20 554 5 13쪽
2 2. 이년? 미쳐? +3 23.10.20 664 6 12쪽
1 1. 프롤로그(수상한 발령장) +4 23.10.20 735 6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