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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젠 님의 서재입니다.

과거를 살다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대체역사

피아젠
작품등록일 :
2017.05.28 12:40
최근연재일 :
2017.08.26 02:09
연재수 :
78 회
조회수 :
21,875
추천수 :
186
글자수 :
295,652

작성
17.08.07 01:09
조회
123
추천
0
글자
7쪽

63

잘부탁드립니다.




DUMMY

"잘 돌아왔어."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미누타가 소집한 회의실에 들어가자 지친 얼굴의 미누타가 나를 맞아주었다. 다른 장수들도 살짝 고개를 끄덕여 나를 환영했다. 단 한 명만 빼고.


"무서워서 도망친 줄 알았더니, 돌아왔네?"


지무의 비아냥을 무시한 나는 자리에 앉아 어젯밤 내 나름대로 생각한 계획을 이야기했다.


"원래 있던 곳에 갔다왔어요. 병원에 있더라고요.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현실의 몸은 잠들어 있어요. 우리는 꿈을 꾸고 있는 거예요. 신기하게 현실과도, 다른 사람과도 이어진 꿈을요."


그들로서는 영문모를 소리였지만 다행히 동료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다들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돌아가는 방법을 아니까, 다들 저랑 같이 돌아가요. 가족들 보러 가요."


희소식이라고 생각하고 말했지만 회의실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은 내가 이야기를 꺼내기 전보다 훨씬 어두워져있었다.


"우리도 알고 있어. 여기 있는 동안 현실의 몸은 잠을 자고 있다는 거. 전에도 너랑 비슷한 능력을 가진 동료가 있었거든."


미누타가 감정이 최대한 절제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옅은 떨림이 그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줬다.


"시간도 같이 흐르고 있어요. 제가 있던 두 달은 저쪽에서도 두 달이었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여기서 생활하지만 현실에 있는 우리 가족은 이유도 없이 쓰러져서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우리를 간호하면서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어요."


"제일 중요한 순간에 사라졌다가 돌아와서 한다는 말이 겨우 그거냐? 한심한 새끼."


"지금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에요."


지무가 짜증내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나는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지무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더 없이 차분했다.


"너나 이성적으로 생각해. 우리가 돌아가면 여기 있는 전사들은 다 어떡할 건데? 고려 새끼들이 군대를 이끌고 쫓아오는데 가족이 걱정하니까 돌아가자고? 그게 부대를 지휘했던 놈 입에서 나올 말이야?"


"그럼 전투가 끝나면 돌아가는 걸로 해요. 언제까지 여기서 살 수는 없잖아요."


지무의 어른스러운 말투에 반말을 하기 어려워졌다.


"돌아가고 싶으면 너나 돌아가.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나랑 같은 의견이니까."


지무의 말을 듣고 회의실을 훑었지만 나와 눈이 마주친 동료들은 모두 내 눈을 피했다. 흥분했던 내 시선이 움직이는 동안 나는 내 옆에 구오무가 앉아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갑자기 창피함과 미안함이 나를 둘러쌌다.


"방금 한 말은 통역 안 했어요."


코코아의 말에 내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세어나왔다.


"같이 온 부족원들한테 말할 수 있어? 가족을 보러 돌아가겠다고? 전쟁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못하잖아. 생각을 하고 살아. 각오 없이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회의는 지무가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끝을 맺었다. 그 모습으로 미루어보건데 지무의 말대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자 태양에 데워진 바람이 내 볼을 스쳤다. 여기도 우리가 있던 곳과 같은 현실이었다.


"왜?"


이제는 쉬운 한국어는 어느 정도 사용하게 된 구오무가 내 옆을 나란히 걸으며 물었다.


"다."


만약 지무의 말대로 내가 구오무와 도담 사람들에게 가족을 보러 돌아간다고 하면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차라리 배신자라고 손가락질 하면 마음 편히 떠날 수 있겠지만,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나를 안아주며 배웅하는 그들의 모습이었다. 나와 함께 있는, 함께 했던 그들 모두 이곳에서 만난 나의 새로운 가족이었다.


"생각이 짧았네."


내 말을 이해한 건지 힘 없는 내가 안쓰러워 보인 건지 구오무가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저기."


구오무에게 고맙다고 말하려던 나를 부른 건 인위였다.


"잠깐 얘기 좀 하자. 둘이서."


구오무를 먼저 보내고 평야가 한 눈에 보이는 커다란 바위 위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지만 분위기상 먼저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그때 니가 사라진 전투에서 능력을 너무 많이 썼나봐. 이제 능력이 안 써져."


그녀가 바위 위에 앉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지쳐보였다.


"아까 회의할 때 했던 얘기."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회의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떠벌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숙였던 고개를 들자 그녀가 감정없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아챌 수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어떻게 하면 돌아갈 수 있는데?"


"네?"


"아까 그랬잖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막상 방법을 물으니 말이 잘 안 나왔다. 사실 방법 자체가 너무 과격했다. 하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내 대답을 기다려줬다.


"여기서 죽으면 돼요. 우리 능력으로 회복 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죽으면."


"하."


내 말을 들은 그녀가 작게 웃었다.


"그러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원래 세계로 못가게 막아왔다는거네."


예상치도 못한 그녀의 반응에 움찍했다. 치유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지만 죽음으로 현실에 돌아가려던 동료들을 여기에 머물게 한 것도 그녀였다. 안 그래도 힘들어보이던 그녀의 얼굴에 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근데 아까 하실 얘기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자신이 만든 심연으로 빠져들어가는 그녀를 막기 위해 얼른 주제를 돌렸다. 달조차 자취를 감춘 밤처럼 검은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나를 향했다. 평소에는 제대로 본 적도 없는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내게 되게 중요한 사건처럼 다가왔다.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줘."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지만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그녀는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인위이기 전에 인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던 여인의 검은 눈동자가 살과 뼈로 둘러진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바람과 함께 어디서 시작된 건지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내 귓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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