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불명 (2)
도봉구 한일병원을 다녀온 후 며칠 뒤,
준식이 다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형사 이진호로부터 다시 한번 연락을 받는다.
[아.. 김준식씨? 저 도봉경찰서에 이진호 입니다. 자꾸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형사님. 뭐가 좀 나왔나요?]
[네. 오늘 노민우씨 부검 결과가 나왔는데요. 그게......사망한지 20일 정도 되었다고 하네요......]
[결과가 이상하네요.. 분명히 저랑 통화를 했다고 말씀 드렸잖아요......그리고 저도 그때 크게 대화를 나눈 게 없어요......뭐라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없겠네요......민우 부모님이나 형제들한테 물어보시는 게 빠를 듯한데요..]
[그게......노민우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일가 친인척 없이 혼자 지내왔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조사 중이고요......현재로선 유일한 지인이 김준식씨 밖에 없습니다.]
[........]
순간, 말문이 막혀버리는 준식이다.
그는 긴 한숨을 내뱉고 다시 입을 연다.
[근데......저도 거의 20년 만에 갑자기 연락을 받아서......민우에 대해서 아는 게 전무해요......그나저나......제 폰 번호를 알려준 사람이 있을 텐데......]
[예......바로 그겁니다. 혹시 김준식씨 중학교 동창 중에 특히 2학년 때 같은 반 이였던......친구들 중에 김준식씨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있나요?]
[글쎄요······지금 연락하고 있는 중학교 친구들이 대부분 3학년 때 친구들이라......]
준식은 잠깐 생각을 하다가
[보자......2학년 때도 같은 반 이였던 친구가......잘 모르겠네요······제가 한번 친구들한테 연락해서 확인해보겠습니다.]
[예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준식은 사무실로 돌아와 잠시 생각에 빠진다.
20년 만에 연락 온 옛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
그의 폰에 있는 연락처는 자신뿐.
누가 준식의 연락처를 알려줬을까?
준식은 자신의 폰에 있는 연락처를 천천히 내려보며 살펴보다가 친구 `김태우’에게 전화를 건다.
[웬일이야? 김원장.]
폰 너머로 들려오는 친근한 목소리.
[뭐 좀 물어볼게 있어서······]
[뭔데?]
[혹시 노민우 라고 기억나? 우리 중학교 동창이었는데······]
[노민우? 2학년땐가 3학년땐가 그런 애가 있었는데······ 네 짝꿍 아니었어?]
[맞아. 맞아......내 짝 이였지......태우 네가 2학년 때도 나랑 같은 반 이였구나······ 아무튼 그 노민우 있잖아......걔 얼마 전에 죽었어......]
[아이고······어쩌다가······]
[정확한 건 모르겠는데 살해된 거 같다고 하네······]
[뭐? 살해? 정말?]
준식은 태우에게 최근 며칠간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천천히 설명해준다.
[불쌍한 놈. 그나저나 어떻게 네 연락처를 알고 연락 했을까? 그리고 통화날짜랑 사망일자도 안 맞고.. 좀 이상한데?]
[그렇지? 뭔가 이상해······]
[그래서 내가 도와줄게 뭔데?]
[태우 너 나랑 같이 내일 경찰서 좀 가자..]
[아......내가 왜...... 귀찮아......]
[야 그래도......친구인데......억울한 죽음을 밝혀줘야 되지 않겠어? 뭐 현재로선 큰 도움은 주지 못하겠지만..]
[휴······뭐 알겠다......토요일이고 하니......한번 출두해 주지.. 내일 아침 아홉 시까지 너네 집 앞으로 갈게.]
[그래. 고맙다.]
하루가 지나고 도봉경찰서.
준식과 태우가 탄 차가 주차장에 빠르게 들어온다.
[속도 줄여. 여기 경찰서야······]
[그까짓 벌금 얼마나 된다고······]
태우는 준식의 충고를 무시하고 능숙하고 빠른 속도로 정확하게 주차를 한다.
[그래. 다시 정리하자면, 살해된 시체가 나왔는데 거기서 나온 유일한 연락처가 바로 너고, 너는 그 번호로 전화를 받았고, 전화를 한 사람은 노민우 이고, 그런데 시체는 통화시점보다 한 참전에 살해됐다는 거고, 근데 네가 시체를 확인했을 때 노민우 같았다 이거지?]
[그렇지.]
[골 때리네······이거······담당 형사랑 얘기를 좀 해봐야겠는데······]
준식과 태우는 차에서 내려 도봉경찰서 강력계로 향한다.
[반갑습니다. 이진호 형사입니다.]
강력계 입구에서 진호가 반갑게 두 사람을 맞이해준다.
[네. 잘 지내셨죠? 여기 이 친구가 말씀 드린 제 친구 강태우 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형사님. 강태우 입니다.]
태우가 능글능글하게 진호에게 인사를 건넨다.
[네. 반갑습니다. 강태우씨. 두 분 자리에 앉으시죠. 커피 괜찮으시죠?]
[네. 좋죠. 커피..]
진호가 능숙하게 믹스커피를 뜯어 종이컵에 붓고 뜨거운 물을 받아 두어 번 휙휙 저어 태우와 준식에게 건네준다.
[밖에 날씨가 참 덥죠?]
[네. 이제 완전한 여름이네요.]
[역시 더운 여름날에는 뜨거운 커피가 최고죠······]
태우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훅훅 불며 씩 웃는다.
[일단 유감스럽지만, 친구분인 노민우씨가 살해당했습니다. 현재 경찰은 전력을 다해 살해범을 추적하고 있으며 수사에 협조 부탁 드립니다.]
[예......예..]
진호는 서류파일을 넘기며
[일단 김준식씨..]
[네.]
[중학교 2학년 때 노민우씨와 같은 반 이였고, 또 강태우씨 역시 같은 반 이였죠?]
[네. 맞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분들 중에 현재 김준식씨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 사람은 강태우씨 뿐인가요?]
[네 맞습니다. 여기 이 친구 밖에 없습니다.]
진호는 고개를 돌려 태우에게 묻는다.
[그럼 강태우씨는 노민우씨랑 연락을 해오고 있었습니까?]
[아니요.. 중학교 때도 걔랑은 별로 안 친했는데요. . 여기 준식이도 3학년 와서 친해졌어요......]
[후......]
진호는 난처한 듯 한숨을 짓는다.
[이것 참......수사에 갈피를 못 잡겠네......]
듣고 있던 태우가 입을 연다.
[형사님......신원이 밝혀졌으면 거주지도 알 수 있을 것이고......거주지 중심으로 탐문 수사를 하는 게......]
[그게......노민우씨는 거주지 파악이 안됩니다. 주민등록상 주소는 이미 다른 분이 거주 중 이고요......그게 노민우씨 중학교 2학년 때 거주지인데......그 이후로는 집 없이 떠돌아 다닌 거 같아요......]
[집 없이 떠돌아 다녔다고요? 말도 안돼......]
[노민우씨는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자퇴하였고......그 이후는 전혀 파악이 안되고 있습니다. 뭐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했을 수도 있을 텐데.. 일정한 직업이 아니라......파악하기 힘들고......지금 현재 유일한 연결고리가 김준식씨와 강태우씨 두 분밖에 없습니다..]
[하..]
태우가 기가 막힌 듯 웃는다.
[그럼 저희가 연결고리인 동시에 용의자일 수도 있겠네요..]
[일단은 그렇게 되겠지만, 제가 따로 김준식씨를 조사해 본 결과. 좋은 직업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부모님도 유명하신 분들이고......뚜렷한 살해동기가 없어요......강태우씨는 하시는 일이?]
[변호사 입니다.]
[아......]
진호는 놀라운 듯 태우를 쳐다본다.
[뭐 두 분이 용의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두 분밖에 연결되는 부분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시지 마세요. 두 분이 노민우씨를 살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사계획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뭐.. 이렇다 정해진 건 없지만, 일단 가장 큰 초점은 노민우씨가 왜 20년 만에 김준식씨에게 전화를 했느냐 입니다. 그 번호를 어떻게 알았으며, 또한 통화 날짜와 사망 추정 일자가 상이한 점도......]
[제가 변호사를 하면서 이런 사건 많이 봐왔는데요.. 미안한 얘기지만, 이런 류의 사건은 대부분이 미결종료 나더라고요. 형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시고 계실 텐데......]
[그래도 해볼 때까진 해봐야죠······]
[사명감이 남다르시네요.]
[직업 특성상 어쩔 수 가 없네요.]
진호는 한정된 정보를 조금 더 물어보다가 더이상 얻을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사를 서둘러 끝마친다.
준식과 태우는 짧게 인사를 나누고 경찰서 복도를 빠져 나와 경찰서 주차장 쪽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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