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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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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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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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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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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남궁세가

DUMMY

잊어버릴 리가 없었다. 전생에 지겹게 상대해왔던 끔찍한 기운. 음양흑백의 검은색과는 전혀 다른 끈적이는 어둠은 기억 속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지독한 악취였다.


착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얼마 전 하령의 술법에 당해 심상세계에서 다시 한번 마주하고 오기까지 했다. 아주 옅디 옅어 감지하기 쉽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남궁산의 호흡에 섞인 것은 마기였다.


‘침착해야 해.’


백연은 눈을 감았다 떴다. 저 아래 무대에서 말을 잇는 남궁산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믿지 못하겠다 당황할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의 행동을 생각해야 했다.


‘남궁세가의 가주. 검왕(劍王) 남궁산.’


정파 무림세가의 기둥같은 인물로 그 무위가 천하 중원에 이름을 떨친다 했다. 공동파의 현천검제와 더불어 세간에서는 서제동왕(西帝東王)이라 불린다고.


간단하게 말해 괴물이다. 한손으로 여기 앉은 모두를 제압할 수 있는 절대자. 그와 맞붙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아무리 전투가 무공의 고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곤 하나 지금의 자신과 검왕 사이에는 아득한 격차가 있었다.


‘그런 이의 몸에서 마기가 흘러나온다.’


남궁산이 신교, 아니, 마교의 세에 붙었다면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번 용봉지회에는 천하 무림의 후기지수들이 가득 모여있었다. 이곳에 모여든 이들이 전부 죽거나 잡힌다?


‘중원에 심대한 타격이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다.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마교는 빈틈을 노리고 중원에 밀고 들어올 것이다. 마교와 정파의 분쟁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했다. 죽고 죽이는 싸움이 신교대전 이후 백여년간 끊이지 않았다고 들었다. 근래 십여년 사이는 소강 상태라 하지만, 만일 여기 있는 모두가 죽는다면 즉시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백연이 남궁산을 응시하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동시에 기운을 미세하게 끌어올렸다. 산들바람 같은 운연동공의 기운이 몸을 감싸 휘돌며 그의 기감을 더욱 예리하게 다듬었다.


그 사이 아래에 서 있는 남궁산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삼년 만에 개회되는 금번 용봉지회를 남궁세가에서 주관하게 되어 더없는 영광으로 여기고 있으니, 객들은 자신의 집처럼 편히 머물다 가기를 바라겠소.”


‘......그나저나 조금 이상한데.’


기감을 끌어올리던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남궁산에게서 느껴지는 마기. 분명 존재했지만 그 세가 턱없이 약했다. 기운에 더없이 예민한 백연 자신조차도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수준이다. 처음에는 마기에 놀라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이상했다.


‘마기를 쌓는 방법은 두가지인데.’


하나는 처음부터 축기를 할때 심법을 마공(魔功)을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받아들이는 내공이 정순하지 못하고 탁한 기운이 축적되어 몸을 채운다. 내공을 쌓는 속도가 빠르지만 그만큼 주화입마의 가능성이 올라가게 되는 양날의 검이다.


다만, 남궁산이 그랬을 리는 없다. 못해도 수십년간 정파에 몸담아 위업과 명성을 쌓아온 거물이다. 마공을 익혔다면 다른 정파 무인들이 알아채지 못했을리가 없다. 아무리 완벽하게 기운을 감춰도 평시 펼치는 무공에서까지 마기를 전부 감출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마공은 아니야.’


그렇다면 남는 것은 한가지. 이미 완성된 무인의 몸에 타인의 마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기로 체내의 내공이 오염되면 무공의 파괴력이 일순 급진적으로 상승한다. 그렇게 얻어진 힘은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 단점이나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은 더 낮다.


다만 그런식으로 마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결국 중독적인 힘에 취해버려 몸을 망치게 된다는 것이 단점인데.


‘역시 이상해.’


다른 무인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남궁산이?


이미 압도적인 힘을 지닌 무인이다. 더 강한 힘을 탐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그 힘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차라리 극히 희귀한 영단을 섭취하거나 하는 것이 백배 낫다.


“몇가지 사항을 더 알려드리자면 용봉지회의 본 대회는 오늘로부터 나흘 뒤에 시작되오. 그리고 그 전에, 작금 무림에 사파가 날뛰며 준동하고 있다는 것은 여기 모인 여러분들도 잘 아시리라 믿소.”


웅웅 울리는 남궁산의 목소리가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피부에 닿는 숨결같은 무형지기가 거대했다. 그 무공 자체는 마기로 강화되거나 한 것이 아닌 순수한 남궁산의 힘이었다. 가히 재해에 가까운 무력이다.


근엄함과 인자함이 동시에 어려 있는 강인한 검왕의 시선이 후기지수들을 천천히 훑으며 지나갔다.


“그러므로 대회가 시작되기 전 나흘간, 본 검객은 민생을 위해 안휘에 준동하는 사파를 처단하고자 하오. 사파 녹림(綠林)을 비롯한 무뢰배들을 토벌하고, 이번 용봉지회에 참여한 후기지수들의 이름을 드높일 기회라 생각하니 많이들 관심 가져 주기를 바라는 바외다.”


남궁산의 발언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속삭이듯 이야기 하는 목소리들. 상석에 앉아있는 세가와 문파의 후기지수들은 표정 변화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아 무언가 미리 이야기 된 사항인듯 했다.


곁에 앉아있던 단휘도 중얼거렸다.


“민생 안정을 위한 사파 토벌? 명분은 좋은데, 다들 참가 하려나? 위험할텐데.”

“......그러게.”


사파 녹림. 약한 이들이 아니다. 이곳의 후기지수들이 뛰어난 것은 맞지만 사파의 정예들을 상대해 박살낼 수 있을 수준은 아니다. 자칫하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그것이 협행이라 하지만.


그때 남궁산의 입이 다시 열렸다.


“물론, 이번 토벌에 참여한 무인 중 큰 성과를 이뤄내는 이에게는 남궁의 이름을 걸고 사례할 것이외다.”


잠깐 말을 멈춘 그가 인자한 미소를 걸며 말을 잇는 순간, 주변의 무인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에게는, 이 남궁산이 가문과는 별개로 직접 엮어낸 무공 중 하나를 전수해줄 생각이니 부디 다들 긍정적인 고려 있기를 부탁드리겠소.”


일순 모여든 모든 무인들의 시선이 강렬하게 빛났다. 곳곳에 어린 탐욕의 눈길이 대회장 한 가운데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백연은 헛웃음을 지었다.


다른 이도 아닌 검왕이 남궁세가와는 별개로 엮어낸 무공이라 한다. 그 가치가 얼마일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런 것을 이렇게 가벼이 걸어내다니. 한순간에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참가 안할 사람을 찾는게 빠르겠는데.”


작금 무림의 절대자 중 일인에게 가르침을 받을 기회는 흔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에 더해 무공까지 전수받는다 하면 욕심내지 않는 이가 드물 것이다. 목숨이라도 걸 이들이 한둘이 아닐 터.


‘대체 무슨 생각이지.’


은은한 미소를 걸고 있는 남궁산을 바라보며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였다.


“마지막으로 이번 용봉지회에 참가한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이 따르길 빌겠소. 이상으로 이 남궁산은 물러가겠소이다.”


후욱.


걸음 하나 하나에 묵직한 기파가 묻어나는 몸짓이었다. 장포를 펄럭이며 몸을 돌린 남궁산이 대회장을 가벼이 걸어나갔다. 남궁산의 개회사가 끝난 이후 여러가지 행사가 벌어지며 식을 이어나갔는데, 전혀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검왕의 무공이라니. 대체 뭘까?”


곁의 단휘마저도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이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에 백연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궁금하면 사형이 얻어내면 되지. 공적 한번 세울까?”

“내가?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여기 모인 쟁쟁한 후기지수가 몇인데.”

“가능할 것 같은데.”


백연이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뇌룡 이후 특출날 정도로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사람은 없었다. 기껏해야 구파나 오대세가의 일원들이나 좀 괜찮다 해야 할까.


“어차피 구파와 오대세가의 무인들은 남궁산의 무공을 받으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엥, 왜?”

“여기 용봉지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 문파 내에서도 꽤 높은 위치를 차지한 후기지수들일거야. 뛰어난 고수들에게 직접 무공을 전수 받을테니까, 검왕의 무공에 목매지 않겠지.”


드높은 구파와 오대세가의 자존심이 있는데 남궁산의 무공을 받으려 애쓸거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실질적인 경쟁자는 나머지 중소 문파들이 대부분일테고.”

“......그래?”

“응. 뇌룡같은 애들이랑 붙으면 당연히 사형한테 가망이 없겠지만 그건 아니니까.”

“진짜? 그럼 진짜 해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검왕의 무공이라고.”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더없이 신나 보였다. 그것을 바라보던 백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네. 해보는 것도 괜찮지......”


자연스레 말끝이 흐려졌다. 남궁산의 무공. 그것을 얻어내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가 지니고 있던 마기가 자꾸만 걸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조사해 봐야겠어.’


백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상석 저편에 앉은 남궁세가의 일원들. 남궁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개회사만 하고 어디론가 사라진 것인지.


남궁산 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 빈 자리가 보였다. 검을 차고 가만히 앉아있는 앳된 소년을 제외하면 남궁세가의 일원들은 남아있는 사람이 몇 없었다.


“검왕의 무공을 전수 받아서 소홍한테 자랑하면 걔가 난리치겠지? 벌써부터 신나는걸.”

“얻고 말해 얻고. 그리고 무공을 얻어낼 공적이라 하면 최소 녹림 산채의 채주 정도는 격살해야 할걸? 조심해.”

“해보고 안되면 도망가지 뭐. 내가 가장 자신있는 무공이 화신풍이라고.”

“그래. 절대 다치지 말고.”


백연이 중얼거리며 팔짱을 끼었다. 그의 시선이 대회장 위에 벌어지는 행사를 가만히 응시했다. 하지만 생각은 전혀 다른 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남궁산의 마기. 가문 내에 무언가 단서가 있을거야.’


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가장 우선적으로 남궁산이 정말 변절한 것인지, 그 여부부터 확인해야 했다. 목숨과 직결된 일이다. 만일 남궁산이 정말로 마교의 세에 물든 것이라면.


‘안휘를 벗어난다. 당장.’


금원방이고 만금장이고 기다릴 것이 아니었다. 목숨은 건져야 했으니까.


백연의 눈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앞으로 움직일 방법이 마구 떠오르며 섞이고 있었다. 계획이 필요했다.


‘앞으로 나흘.’


본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그가 움직일 시간이었다.



※※※



“호오. 저건 당가의 독룡이 아닌가?”

“여전하군요. 보신경이 더없이 날렵한 것이. 실력이 오히려 한층 늘어난 듯 한데.”

“과연 칠룡의 일좌인가.”


개회식이 끝난 날 오후였다. 남궁세가의 장원에 마련된 연무장. 너나할 것 없이 무공을 수련하기 위해 걸음했는데, 개중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 곳이 있었다.


녹빛 장포를 펄럭이는 독룡 당소하. 그의 신형이 쾌속하게 움직이며 비도를 발출했다. 일반적인 비도보다 한층 무거운 묵빛 비도가 대기를 찢으며 세줄기 선을 그려냈다.


단순한 대련이라 하기에는 너무 날카로운 수였다. 때문에 지켜보던 사람들이 당황해 숨을 들이키는 순간.


카가강!


허공에 한 줄의 검로가 그어졌다. 물 흐르듯 비스듬히 움직인 검이 은빛 검광을 허공에 흩뿌리며 당소하의 비도를 전부 쳐냈다. 세 자루의 비도를 처냈음에도 소리는 한번에 겹쳐 들렸다. 신기에 가까운 검의 움직임이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말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옅은 침묵이 감도는 연무장에서 적막을 깬 것은 당소하의 헛웃음이었다.


“그래도 불꽃 정도는 꺼내주는게 예의 아닌가.”

“아, 미안. 몇 가지 실험해볼게 있어서.”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 당소하가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 몸을 연습 상대로 삼는건 좋지만, 당가 소가주의 체면이라는 것도 있는데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는 당소하. 그의 손바닥에서 가볍게 기파가 일더니 사방으로 튕겨나갔던 묵빛 비도들이 빨려 들어오듯이 날아와 회수되었다. 허공섭물과는 조금 다른 기예였다.


“오.”


백연이 낮게 감탄했다. 방금 전 당소하의 손에서 일어난 기파. 흡산과 발출이 이어지는 구결이었는데, 아무래도 더 상위 무공의 응용인 듯 했다. 그도 보여주지 않고 숨겨둔 수가 있는 것이다.


“헌데 슬슬 구경꾼이 많군.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좋아.”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소하와 잠깐 대련을 하는 사이 몰려든 인파가 많았다. 곳곳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저기 독룡을 상대하는 무인은 대체 누구요? 저런 실력자가 있었다니.”

“이번 용봉지회에 늦게 오셨나 보군요. 저자가 바로 암화입니다.”

“암화? 설마 섬서의 그......”


간간히 들려오는 감탄과 암화라는 별호를 중얼거리는 목소리. 그의 생각보다 그 별호를 아는 사람이 많았다. 섬서에서 일어난 일은 이미 빠르게 퍼져 있었다. 개방이 바쁘게 움직였는지.


“다른 곳으로 가지.”


당소하가 가볍게 기파를 일으키며 몸을 훌쩍 날렸다. 인파 사이로 사라지는 그의 신형을 따라 백연도 기운을 일으켰다.


한달음에 움직이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당소하가 멈춰선 곳은 한 전각의 지붕 위였다.


“좋아. 그래서 갑자기 대련을 요청한 이유는?”


개회식이 끝나고 당소하를 찾아 다짜고짜 대련을 요청한 백연이었다. 단순히 연습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당연히 당소하도 그것을 눈치챈 듯 했다.


백연이 당소하를 응시했다. 눈앞의 소년을 믿을 수 있을까. 사천당가의 소가주. 마교와 관련되어 있을거라 생각되지는 않는 사람이지만, 남궁산의 몸에 마기가 있는 것을 본 이상 불가능은 없었다.


그에 더해 독룡이 그에게 항상 호의적이리라 지레짐작 하는것도 좋지 않다.


‘하지만 선택지가 별로 없어.’


이곳에는 하오문도 없다. 정확히는 금원방의 영역이기에 그를 도울 하오문의 세력이 없었다. 다른 구파와 오대세가는 그와 교분이 없고, 믿을만한 화산파의 검룡은 폐관에 들어 오지 않았다. 달리 믿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잠시 고민을 하던 백연이, 기감을 넓게 펼쳐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검왕의 몸에 마기가 있어.”


담담히 흘린 말. 일순 당소하의 표정이 멍해졌다가 다음 순간 경악섞인 표정을 거쳐 의심 가득한 얼굴로 변했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잘 알고 있어.”


정파의 절대자 중 하나의 몸에 마기가 있다는 말. 위험한 발언이다. 남궁세가의 누군가가 들었다면 명예를 더럽혔다며 생사결을 걸어도 할말 없는 발언인 것이다.


당소하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는 말인가?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말해. 못 들은걸로 해주지.”

“확실해.”


백연이 단언했다. 그에 당소하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나는 기운에 더없이 예민해.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체질이 그렇더군. 덕분에 아까 검왕이 비무장에서 말을 하는 순간 느껴졌어. 호흡에 미미한 마기가 섞여있는 것이.”

“아니, 허어......”

“검왕이 마공을 익힌 것은 아니야. 그랬다면 다른 이들이 모를리가 없으니. 때문에 어디선가 마기를 섭취한 것인데.”


뒤이은 말에 당소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은.”

“몇가지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확실하게 하려면 조사를 좀 해야 될 것 같아.”


당소하가 턱을 매만졌다. 그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평소의 모습보다 바짝 선 기세다. 몰래 술을 마실 때와는 전혀 다른, 명문세가의 소가주 자리에 오른 녀석다운 모습이었다.


“해서, 나한테 이것을 이야기한 이유는?”

“남궁세가를 조사할거야. 남궁산이 내일부터 사파 토벌에 나간다 했지. 장원이 텅텅 빌텐데, 그 사이에 이곳을 몰래 좀 살펴야겠어. 네 도움이 필요해.”


백연의 시선이 당소하를 지그시 응시했다. 당가의 소가주. 혼자서 사천을 돌며 공적을 쌓을 정도로 영특하며, 동시에 칠룡의 자리에 들 정도로 뛰어난 무위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여러가지를 고민하는 듯한 표정. 지금쯤 머릿속에서 많은 것을 고려한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겠지.


이윽고 당소하가 한숨을 푹 내쉬며 품에 손을 넣었다. 어디 숨겨놨었는지 모를 술병을 꺼내든 그가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술이 고픈 날이군.”

“......항상 고픈거 아닌가?”


당소하가 어깨를 으쓱이곤 백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사이 단단해진 눈빛이 백연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래. 내가 무슨 일을 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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