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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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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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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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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적화(赤花) (3)

DUMMY

한순간 검신에 맺힌 핏물이 강렬한 화기로 인해 삽시간에 메말라 사라졌다. 화신풍 보법과 함께 내친 검격이었다. 어느새 백연은 금안나찰의 뒤편에 서 있었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애송이가.”


금안나찰이 짓씹듯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에 강렬한 분노가 어려 있었다. 천천히 뒤돌아 마주한 금안나찰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직전까지 백연의 검격과 힘을 겨루던 그의 오른손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팔을 날려버리려 했는데.’


숨겨둔 한 수를 사용했음에도 무지(拇指:엄지 손가락)를 제외한 손가락 네개를 잘라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무인, 특히 권사에게는 치명적인 부상이다.


‘역시 호신기가 약해.’


본신의 강력한 공격 무위로 약점을 감추고 있었으나, 방금 전 같이 일격을 꽂아 넣을수만 있다면 상해를 입히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적화검류의 검격은 그의 외공을 뚫어내기에 충분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찢어 죽여주마.”

“할 수 있으면.”


쿠웅.


진각을 밟는 금안나찰.


그에 한발 앞서 백연이 몸에 기운을 일으켰다. 잠시 말을 나누는 동안 뭉쳐놓았던 기파를 한번에 터트리듯 운용했다. 급격한 가속. 금안나찰의 코앞에서 진각을 밟으며 멈춰섰다. 동시에 보법의 반탄력을 받아 종으로 검격을 내쳤다. 삼원검의 일격이 가속을 받아 묵직한 파괴력을 담은 채 금안나찰의 정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흐읍!”


금안나찰이 기합성을 넣으며 오른 주먹을 뻗었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주먹의 표면을 따라 희끄무레하게 빛나는 호신기가 다시금 피어올랐다. 한순간에 여러겹의 호신기가 다중으로 중첩되며 앞을 가로막는다.


부상당한 손을 뭉툭한 방패마냥 써먹는 것이다. 그러나 백연은 신경쓰지 않았다.


‘벤다.’


쩌엉!


검이 주먹과 부딪히며 대기를 찢는 소리를 내었다. 호신기를 반쯤 부수고 들어간 검격. 백연은 기다리지 않고 검파에 경력을 더욱 불어넣었다. 내공으로 강화된 팔의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쩡! 쩌정!


이격을 내친 백연. 삼격은 종이 아닌 횡으로 휘둘렀다. 옆에서 짓쳐 들어오는 왼손 권격이 무시무시했다. 나선으로 휘감긴 경파. 금안나찰 특유의 주먹에서 나오는 거대한 파괴력이 검과 부딪히며 손아귀를 아릿하게 만들었다.


한순간 밀려나며 옆으로 회전한 백연이 다시금 보법을 내치며 따라붙었다. 검끝에 매달린 불꽃이 점차 시야 사방을 채워나갔다. 검신을 따라 연이어 폭발하는 진기가 부족한 근력을 채워주며 검에 속도를 더했다.


휘두르는 자신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쾌검이다. 하나하나 받아치며 사이에 공격을 꽂아넣는 금안나찰의 무위가 고강했다.


‘어쩌라고.’


백연이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그의 눈에서 피어오른 붉은 기운이 한층 강해졌다. 눈을 뜨겁게 달궈오는 감각. 점차 시야를 따라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새로운 안법 구결의 징조였다.


‘필요없어.’


뇌리가 점차 뜨겁게 달아올랐다. 머릿속 백회혈(百會穴)이 작열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손이 생각에 앞서 움직였다. 상대의 공격을 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본능에 가까운 영역. 혹자는 무아(無我)라 부르는 경지였다.


순간 짓쳐 들어오는 금안나찰의 권격. 휘감긴 경파를 상대로 검을 펼쳤다. 순식간에 아홉번 꺾어 내친 검로를 타고 불길이 일제히 피어올랐다. 유성이 펼쳐냈던 초식인 매화구변. 그것을 찰나에 재현한 아홉 갈래의 불꽃이 주먹을 막아서며 역으로 회전했다. 나선 경파를 상쇄하기 위한 역회전. 계산하에 이루어지는 출수가 아니다.


‘좀 더.’


캉! 카각! 카앙!


검이 뻗어나가고,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대기를 타고 피어나는 불티가 적양공의 불꽃인지 주먹과 검이 맞부딪혀 나는 불티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검신이 주먹의 옆면을 스치며 금안나찰의 팔뚝을 노리고 베어들어간다. 동시에 금안나찰의 권격이 백연 자신의 오른 어깨를 스쳤다. 찰나의 실수와 빈틈. 이어지는 공방 속에서 상대의 공격을 허하고 말았다.


퍼억!


살갗이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어깻죽지를 타고 날카로운 고통이 일었다. 감각을 타고 밀려들어오는 고통의 크기를 바탕으로 부상을 평가했다. 뇌리에서 고통과 생각을 분리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전장에서 감각에 붙들리면 살아남을 수 없다.


‘오른쪽 삼각근 파열. 혈맥도 부분적으로 뜯겨나갔다.’


근맥의 손상. 오른팔로 무공을 펼치기 어렵다.

즉시 허공에서 검을 놓으며 몸을 반바퀴 돌렸다. 검을 바꿔잡는 순간마저 공격의 일부로 활용한다. 짧은 순간 일으킨 화신풍의 보법. 금안나찰의 옆구리로 파고들며 왼손으로 허공에 뜬 검을 잡아채 그대로 휘둘렀다.


푸욱-!


손끝에 느껴지는 둔탁한 감각이 선연했다. 검격이 살갗을 파고든 것이다. 하지만 얕았다. 상대를 끝장낼 정도의 치명상이 아니라면 의미 없었다.


“감히 네놈이!”


그럼에도 효과는 있었다. 어느새 머리를 광인처럼 흩날리는 금안나찰이 눈에서 형형한 빛을 뿌리며 권격 연타를 날렸다. 흥분한 것이다. 주먹에 휘감긴 나선 경파가 흔들리고 있었다. 백연은 물러서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카각!


허공에서 얽혀드는 주먹과 검의 소리가 요란했다. 나선 경파 사이로 파고든 백연의 불꽃이 기파를 상쇄했다. 상대의 공격에 적응하고 있었다. 흩어지는 공력 여파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에 금안나찰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어가는 것이 보였다.


“반드시 죽이고 가야 하겠군.”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나직한 뇌까림. 새삼스러울 것 없는 다짐이었다. 계속해서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인듯 했다.


“짖는것만 요란하네. 개라서 그런가?”


말과 함께 땅을 박찼다. 선공권을 가져온다. 상대적으로 무공 수위가 밀리는 상황에서 수세에 몰리면 뒤집을 수 없다. 눈을 희번덕거리는 금안나찰. 별호를 연상시키는 외양으로 권법을 펼쳐온다.


“놈!”


기합성과 함께 뻗어지는 주먹. 대기를 움켜쥐는 듯한 손짓과 함께 모여드는 기파가 보였다. 회전하는 경파가 이번에는 자의를 가진듯이 각기 꿈틀대었다. 본 적 있는 공격. 천월의 매화검법을 짓이긴 육합권 뇌명이다.


기파의 범위가 넓었다. 피하면 공세 여력을 가져올 수 없었다.


‘오른쪽을 내준다.’


뇌리를 스치는 생각과 동시에 발끝의 불꽃이 왼편으로 일어났다. 밤을 타고 한줄기 불꽃이 꼬리를 일으키며 이어졌다. 비스듬히 달려드는 걸음. 오른편을 완전히 권격 여파가 미치는 범위에 내주며 왼손의 검에 불꽃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 또한 팔에 진기를 집중시켰다. 내주는 만큼 가져간다. 원형을 그리며 금안나찰의 손가락을 잘라낸 극한의 쾌검식. 검신을 타고 억눌린 화기가 중첩된다. 금안나찰의 손에서 권격이 발출되는 순간, 백연의 검도 허공을 갈랐다.


적화검류. 화륜(火輪).


검신에 쌓여있던 화기의 중첩이 연속해 터져나가며 가속했다. 불꽃의 꼬리를 남기며 그려진 원형의 검격이 금안나찰의 오른편 가슴을 격했다. 몸의 옆구리와 어깨를 타고 격렬한 통증이 느껴지는 동시였다.


‘상완 우측 골절 다수. 근맥은......’


잠시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밀려오는 통증이다.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볼살을 깨물었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감각이 순간 정신이 바짝 들게 해주었다.


눈 앞에 가슴을 따라 깊은 자상이 새겨진 금안나찰이 보였다. 광기 어린 샛노란 눈을 번뜩이며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 이차로 밀려오는 권격 연타를 검으로 한번 걷어내며 화신풍을 펼쳤다. 권격에 실린 힘이 한결 약해져 있었다.


“크아아아!”


괴성을 내지르는 금안나찰. 순간 눈에 모습이 스쳤다. 예측과도 같은 감각이었다. 주먹에 모여드는 막대한 기파가 감각적으로 인식되었다.


본디 찰나에 이어졌을 공격이다. 그러나 백연에게는 시간의 흐름이 엄청나게 길게만 느껴졌다. 불꽃으로 작열하는 듯한 백회혈. 고수들의 싸움에서는 다른 시간이 흐른다. 찰나를 수십, 수백으로 늘여 사는 것이다. 전생 검귀가 약관을 넘어서야 도달했던 경지였다.


‘내 발을 묶으려 하는데.’


정신없이 불타는 것 같은 뇌리 속에서도 금안나찰의 의도가 선명히 보였다. 거칠게 모여드는 기파, 그 속에 중첩된 내가중수법의 묘리가 엿보인다.


타인이 일으키는 기파의 묘리가 어찌 눈에 환히 보이는거지.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으나 뒤로 넘겼다. 그러면서 전신에 운연동공의 바람을 둘렀다. 지금은 적양공의 불꽃보다 가벼운 바람결이 더 필요했다. 의지와 동시에 줄기줄기 풀려나오는 바람결이 전신 세맥을 따라 흩어지며 몸을 휘감았다.


“육합 괴산.”


괴성 섞인 목소리가 들리며 금안나찰의 주먹이 대지를 내리치는 순간, 백연의 걸음이 땅을 박찼다. 발뒤꿈치를 타고 일어난 바람이 소년의 신형을 가벼이 위로 떠밀었다. 일순 공중에 떠오른 날렵한 신형. 대지를 격하는 괴산의 여파가 한줌도 닿지 못하는 위치였다.


그 순간. 금안나찰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 입가에 걸린 웃음. 그의 주먹이 모여들며 권격을 준비했다.


‘빌어먹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기의 수발 속도. 허공에 뜬 이상 놈의 권격을 피할수가 없었다.


잡았다.


놈의 입이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동시에 늘어진 시간 속에서 금안나찰의 양 주먹에 회전하는 경파가 걸려들었다.


피하지 못하면, 받아친다.


그대로 검파를 비틀어 쥐며 적양공의 불꽃을 다시 일으켰다. 발바닥 용천혈을 따라 내뿜는 불꽃. 허공에서 일으킨 기파가 몸을 앞으로 가속시켰다. 동시에 적화검류의 구결이 물결처럼 흘러나왔다. 이어지는 모든 움직임이 검격이었다. 매화검법을 보고 자아낸 적화검류는 흑랑의 움직임을 보고 자유로움을 담아 구결의 끝을 맺었다. 천변만화에 어울리는 검법이라 할 수 있었다.


의식이 구결과 합치된 순간, 온몸을 비틀며 힘을 실어 검을 휘둘렀다. 검로를 따라 펼쳐지는 붉은 불꽃. 한줄기 붉은 선이 된 검이 금안나찰의 권면과 마주쳤다.


쩌엉-!


일순 깨지는 듯한 소리가 사방을 휩쓸었다. 동시에 검신을 따라 실려있던 기운이 급격하게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폭발과 같은 화염이 사방을 휩쓰는 가운데 허공에 떠오른 검날의 은빛 섬광이 눈에 띄었다.


검이 반으로 부러진 것이었다.


즉시 몸을 움직였다. 주먹과 검이 맞닿은 반탄력을 이용해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오른손을 뻗었다. 손아귀에 휘감겨 드는 부러진 검날. 예리한 날붙이가 손바닥을 파고 드는 감촉이 선연했다.


‘한번 더.’


검을 붙잡은 그대로 몸을 회전시켰다. 재차 일으킨 적양공의 불꽃이 이제는 온몸을 휘감았다. 몸이 불덩이에 휩싸인 듯했다.


동시에 불꽃 너머로 보이는 샛노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놈의 왼손이 한껏 뒤로 당겨져 있었다. 여기저기 자상이 그어진 왼팔. 모여드는 기파가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느껴졌다. 저것이 금안나찰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직격 당하면 틀림없이 죽는다.


“끝이다!”


찰나에 섞여들어오는 금안나찰의 고함. 백연은 생각을 버렸다. 그와 함께 두 조각으로 나뉜 검이 제각기 한줄기 불꽃의 선이 되어 허공을 내갈랐다. 그 자신이 하나의 화염으로 된 검격이 된 것 마냥.


“육합(六合) 붕권(崩拳)!”


그러나 금안나찰의 주먹이 반 호흡 더 빨랐다. 다중으로 중첩된 나선의 경파. 권격의 범위를 줄이고 극히 한점에 파괴력을 집중시킨 거대한 일격이 허공에 뜬 소년을 향해 짓쳐 들어왔다.


죽음의 해일이었다. 그 순간 주변의 모두가 뇌리에 소년의 죽음을 담았다. 피할 수 없는 일격. 그 극한에 달한 권격이 백연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키잉-!


소년의 상체를 따라 눈을 아리게 만들 정도의 새하얀 빛이 일었다. 동시에 그의 온몸을 따라 복잡한 형태의 문양과 함께 빛나는 글자가 허공에 떠올랐다. 그것을 마주한 금안나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더없는 경악을 담은채로.


“성화방주!”


하령이 새겨주었던 술법진. 허공에서 일어난 시리도록 새하얀 빛이 사방을 뒤덮으며 금안나찰의 권격을 집어삼켰다. 완전히 흩어진 놈의 권격. 한줌의 기파도 남지 않은 주먹을 향해 백연이 왼손을 휘둘렀다.


서걱!


한줄기 화염이 놈의 왼 손목을 격하며 지나갔다. 다음 순간 방어 없이 활짝 열린 금안나찰의 목덜미. 오른손에 들린 검 조각으로도 충분했다. 타오르는 적양공의 불꽃이 부서진 검신에서 이지러졌고, 붉은 화염의 궤적이 거인의 목을 사선으로 그어냈다.


푸확!


바닥에 떨어지듯 구르며 착지한 백연. 이윽고 그의 뒤편으로 머리 잃은 거인의 시체가 천천히 쓰러져 내렸다.



※※※



검파를 쥔 유성이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이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손길에 의해 멈춰섰다.


“사숙조!”

“안된다.”


창백한 얼굴. 혈도를 짚어 잘려나간 어깨에서 나오는 피를 멈춰놓았으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극심한 충격으로 인해 쓰러질 것 같은 외양을 하고서도 꼿꼿이 서서 다가오는 궁도 몇몇을 격살하는 모습이 드높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습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야 저편을 따라 밤을 수놓는 불꽃이 번뜩였다. 검로를 따라 이지러지는 불꽃의 향연. 처음 보는 검법이지만, 한눈에 보아도 상승의 무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강했다. 위태롭게 싸우고 있는 소년의 몇 배에 달하는 덩치. 거인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주변의 경파가 짓이겨지고 대기가 흔들린다. 강대한 힘이었다. 그에 맞서 아슬하게 움직이는 백연의 움직임이 너무나 약해 보였다.


“제가 도움을.”

“방해다.”

“하지만!”


그에 천월이 눈을 부릅떴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소년의 모습. 명백히 밀리는 무공 수위에도 겉으로는 대등하다 싶을 정도로 맞서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목숨을 내던지며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끼어들면 저 녀석은 네 안전을 신경쓰기 시작할 것이다. 가지 마라.”


유성은 이를 악물었다. 검파를 쥔 손이 바르르 떨렸다.


“검룡이 무엇이고 화산의 기재가 무슨 의미입니까. 눈 앞의 적을 상대로 싸우지도 못할 만큼 약한 것을......!”

“유성아, 보아라.”


유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천월을 바라보자, 그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네가 약해서 싸우지 못한다 생각하느냐.”

“......아니란 말입니까.”

“저 아이의 성취는 같은 연배라면 천하에 둘도 없을 수준이다. 허나 당장의 무공 수위가 너보다 드높다 할 수 없다. 허면 어찌 저런 싸움이 성립 되겠느냐.”


천월의 눈이 싸움을 훑었다. 발현되고 있는 안법이 소년과 거인의 공방을 눈에 담았다. 오른 어깨를 내주고 반격하는 백연의 검격. 몸을 아끼지 않는다. 동시에 뿜어내는 기운은 짙은 살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검격에는 지극히 차가운 움직임만이 존재했다.


“천하 구파와 오대세가를 통틀어 우리 화산의 검은 가장 특이하다 평가받지. 저 아이의 싸움을 눈에 잘 담거라. 무엇이 보이느냐.”

“......죽음을 배제하고, 감정이 짙은.”

“그렇다. 두려움을 치워두고 살기만을 일으킨다. 감정은 내공에 담아 내치면서도 출수는 냉정하다. 저 모습을 마음에 담아두거라.”


그 순간, 금안나찰이 진각을 밟았다. 거친 기파가 사방을 휩쓰는 것과 동시에 백연의 신형이 공중에 떠올랐다. 이어지는 일련의 검격. 부서진 검을 잡고 소년이 휘몰아치는 화염으로 화하는 것과 동시에 금안나찰의 주먹이 강대한 기파를 휘감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소년의 몸에서 퍼져나오는 백색 빛무리. 이어지는 두줄기 불꽃의 검로가 눈에 선명했다.


“저것이, 자하(紫霞)의 의념과 다르지 아니하니.”


쿠웅!


거인의 거체가 쓰러지며 땅이 울렸다. 바닥에 구르듯 착지하는 소년. 그것을 보며 천월이 나직이 뇌까렸다.


“저 아이는 이미 노을에 닿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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