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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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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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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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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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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2)

DUMMY

※※※



흉험한 세상이었다.


도검을 들고 설치는 이가 십리를 걸을때마다 열너덧씩 나오는데, 일신의 무위가 없는 이들은 함부로 나다니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마외도가 난립하는 난세(亂世).


용봉지회의 일 이후로 절정에 달했다. 천주산에서 수많은 정파 무인이 죽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일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숫자의 사파 무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부가 사파 무리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검 좀 쓴다는 무림인들의 행태는 대개 둘로 갈렸다.


죽이고 빼앗거나,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빼앗거나.


그런 세태에 이름 높은 정파들이 분연히 일어났으나 그들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소림의 무승들과 개방의 거지들조차 드넓은 중원 무림 전체를 굽어살피지는 못한다. 제각기의 영역을 보살피기 바쁠 뿐. 현실 앞에서 협행(俠行)이란 허울좋은 단어일 뿐이었다.


청해부터 사천까지의 관도가 핏물로 물든 이유이기도 했다.


“하, 하이고. 감사합니다. 참말로 감사합니다......!”


바닥에 꿇어앉은 노인이 연신 고개를 숙여댔다.


백청색 장포를 걸친 무인들을 향해서였다. 거의 머리를 땅에 박을 기세인 노인의 행태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풋풋했으나 노인의 눈에 그런 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는 길에 무뢰배들이 눈에 들어왔을 뿐입니다.”

“이 양모 아무개가 육십 평생 수많은 상행길을 다녔습니다. 표국마저 불리해지자 전부 내팽개치고 도망쳤는데 구해주신 대협들께 어찌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하......”

“혹 어떤 문파의 대협들이신지라도 알려주신다면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곤륜파입니다.”


녹림에 습격을 받은 상행 뿐만이 아니었다. 무뢰배들이 점거한 마을, 사마외도에게 딸이 납치당한 가문, 관도를 지키다가 크게 부상을 입은 개방의 거지들까지.


“그대들이 곤륜파의 무인들이시오? 소문은 들었소. 본방의 방도가 구명지은(九命之恩)을 입었구려. 개방의 이름을 걸고 필히 보답하겠소이다.”

“마음만 받지요.”

“헛허......그대들이 협(俠)이구려.”


곤륜의 검이 관도를 쓸었다. 청해부터 사천까지 이르는 길. 몇번이나 검을 휘두른지 세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경외와 감사에 찬 눈빛에 어색해하던 백자 배 아이들도 사천에 이를 무렵이 되자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피묻은 여행길이었으나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외려 갈수록 곤륜파의 검은 날카롭게 다듬어지고 있었다. 실전, 그리고 또 실전이었다.


“이거 원, 비무제전에 참가하러 가는건지 아니면 사파 소탕을 나선건지.”


어깨 너머로 비스듬히 검을 걸친 단휘가 중얼거렸다.


막 사파 무리 열을 홀로 베어넘긴 뒤였다. 이제 그의 검은 이미 백연의 기준으로 보아도 쾌검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조용히 답한 것은 옆에서 검을 늘어뜨리고 있던 여자였다.


“단휘 사형은 바라던 일 아닌가요. 이리 무위를 펼칠 수 있는 상황.”

“불평한 적은 없다만.”


픽 웃으며 단휘가 답했다.


“혹시 알아? 이대로 호북에 도착하면 나도 별호 하나쯤 생겼을지.”

“......꿈이 크시군요.”


설향이 중얼거렸다. 시선을 저 너머로 돌리면서였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심한 표정으로 나무 위에 올라선 소년이었다.


“백연이 정도 하면 모를까.”

“사매. 그 기준이면 세상에 별호를 지닌 무인은 거의 없어야 한다고.”


툴툴거리는 단휘의 말을 들으며 설향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을 살핀 백연이 다시 일행을 이끌었다. 녹림의 작은 분채 하나를 괴멸시킨 뒤였다.


그렇게 곤륜의 걸음은 바람에 올라탄 구름처럼 길을 스쳤다. 사마외도의 핏물을 뒤에 붉은 옷자락처럼 남기면서였다. 그와 함께 달도 가득 차올랐다가 다시 기울기 시작했다. 곤륜산에서 내려온지 열흘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더 편할거에요. 사파도 여기에서까지 설치진 못할테니.”


노을이 아스라히 깔린 오후였다. 거대한 성도의 앞에 선 백연이 피곤한 미소를 지었다. 이때껏 어딜 가나 덤벼들던 무뢰배들이 반나절 넘게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구파와 오대세가의 수호 영역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리듯이.


사천(四川) 성도(成都)에 당도한 것이었다.



※※※



사천 성도. 그 번화함과 화려함이 중원 어느 도시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다. 세상의 부가 쌓인다고도 일컬어질 만큼.


그 위세가 섬서 서안과도 맞먹을 정도이다. 혹자에게는 서경(西京)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까지 하는 거대한 도시. 그야말로 광활하다 일컬을만 한 크기였다. 흐르는 물류와 사람의 수가 바다와 같았다. 장강 지류가 도시를 따라 흐르는 덕에 더욱 그러했다.


“별세계 같군. 바깥 관도와는 전혀 다른게.”

“단휘 사형 말이 맞아. 여기는 사마외도의 손길이 뻗치지 못하는 영역.”


백연이 답했다.


여러 이유가 혼재하는 덕이었다. 사천 성도 자체의 험준한 지형도 그중 하나였다. 천혜의 요새라고 불리는 성도의 지형. 수만 군세가 몰려와도 능히 버틸 수 있다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다른곳에 있었다.


“구파중 둘과 오대세가의 일좌가 수호하는 곳이야. 미치지 않고서야 이곳에 발을 들일리가 없지.”


백연의 시선이 도시를 훑었다. 막 왁자지껄한 거리에 들어선 참이었다. 일행과 함께 움직이는데, 칼을 찬 무인 열두엇이 무리지어 다님에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이런 광경이 빈번하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구파의 무인들이 제집 드나들듯 돌아다닐 터. 무림인에 익숙한 도시였다.


“청성(靑城)과 아미(峨嵋).”


지고한 구파 중 둘의 이름.


그리고.


“사천당가(四川唐家)의 도시.”


천하 오대세가의 일좌. 독과 암기의 당가.


독룡 당소하가 소가주로 있는 가문이기도 했다. 그 위세가 성도 안에서는 청성과 아미는 물론이요 무당과 소림조차 아득히 능가한다고.


사천의 왕과 다름없는 것이다. 턱없이 거대한 무력과 금력을 손에 쥐고 있다. 현 당가주가 매우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나, 동시에 압도적인 무위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이런 모든것이 뒤섞였다. 사천 성도는 자연스레 어지러운 바깥 세상과는 다른 곳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난세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만큼은 평화가 깃든 듯한 모습. 전 중원에도 이러한 도시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이곳이 천하에서 제일 안전하지 않겠소?”

“예끼 이 사람아. 숭산의 소림이나 호북의 무당이 있는데?”

“소림은 그 힘을 너무 사방에 뻗고 있소. 무당도 혼자가 아니오? 이곳은 청성파도 그렇고, 아미의 승려들도 수호해주니. 게다가 우리에겐 당가가 있소이다.”


백연의 귀를 스치는 소리였다.


사천 성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화. 의견은 분분했지만 대다수의 결론은 비슷했다. 이곳보다 안전한 곳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리라고.


“당가를 거의 받들어 모시네.”


단휘가 중얼거렸다.


“......당소하가 이렇게 중요한 놈이었나?”

“그걸 이제 알았어?”

“백연이 넌 그걸 알고도 걔를 그렇게 대했냐?”


백연이 피식 웃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리고 난 모두한테 똑같이 해.”


대화 사이에 문득 당소하의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비무제전에 다시 보자며 인사를 나누던 녀석. 지금 성도에 있을까. 시간이 되면 한번 얼굴을 보고 가는 것도 좋을 일이다.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당가의 정문을 두드렸을때 받아주냐는 다른 문제지만.


그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당가? 소가주 독룡께선 이미 칠주야 전에 떠나셨소! 시기를 잘못 잡았구먼, 허허.”


거리를 지나치던 때였다. 사방에서 눈길을 잡아끄는 호객꾼들이 산더미 같았는데, 이리 화려한 도시를 처음 보는 사형과 사저들은 홀린듯이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각자 지급받은 금전을 슬며시 꺼내드는 모습이 그랬다.


백연은 말리지 않았다. 그간 연속된 싸움으로 지쳐있을 사람들이다. 약간의 여흥을 즐기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대신 그 사이에 백연은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귀를 열어두고, 상인들에게 당과를 구매하며 넌저시 던지듯 물어본다.


“그렇습니까? 그럼 당가가 이미 성도를 떠났나 보군요.”

“그건 또 아니오. 외지에서 오셨나 보구려?”

“하하. 산골에만 처박혀 있다 보니......”

“당가 문중은 떠났소만, 가문의 장로들과 주력은 여전히 성도에 있소.”

“예?”


백연이 크게 놀란 듯 반문했다. 실제로도 놀란 참이었다. 당과를 입에 문채로 눈을 깜빡이는 백연의 모습에 늙은 상인이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당가주 천독(千毒)께선 아직 도시에 남아 계신다는 소리요. 이 또한 성도에 사는 민초들을 위함이 아니겠소? 어찌나 감사한지. 그분의 은혜가 하늘과 같소이다.”

“허면 당가주께선 이번 비무제전에 불참하시는 겁니까?”

“그렇진 않을거요. 아마 나중에 합류하실 생각이 아닐까 싶은데. 한낱 상인 나부랭이가 그분의 마음을 어찌 알겠소? 다만 본래도 혼자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시니......”


다른 상인과 이야기 해보아도 들리는 정보가 같았다. 가모와 소가주 당소하, 그리고 당소하의 형제자매들을 비롯한 당가 문중의 대부분은 이미 비무제전을 위해 도시를 떠났다. 하지만 정작 당가주는 동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혼자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서라고?’


우스운 이야기다. 그런 가벼운 이유가 아닐 것이다.


당가주는 철저히 계산적인 사람이라 했다. 당소하 본인이 그리 말했으니 틀릴리가 없다. 가문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움직이는 것 또한 무언가 의중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소가주의 위를 공고히 만들지 않기 위해서인가.’


그런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당소하가 지금 소가주의 자리에 올랐지만, 아직 그 위치가 확고하지 못하다. 이 상황에서 가주와 함께 비무제전같은 공식적인 자리에 입성하면 그것이야 말로 무엇보다 당소하의 자리를 견고히 만들어주는 행위일 것이다.


‘호북에 도착하면 당소하를 만나봐야겠군.’


백연으로써도 중요한 일이었다. 당소하가 소가주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뺏기는 것을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무언가 변수가 있다면 그 또한 대비하기 위해 움직여야 하겠지.


“우선은 슬슬 객잔이라도 들어갈까요.”


남은 당과를 한입에 다 털어넣은 백연이 중얼거렸다.


“그게 좋겠구나. 이러다가 호북에 이르기도 전에 빈털터리가 되겠다.”


운결이 말했다.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있던 사형과 사저들을 끌고 돌아오니 어느새 그들의 손에는 무언가가 한아름씩 들려 있었다.


“저쪽이 객잔인 것 같은데.”


그 사이 하늘이 어슴푸레한 빛을 띄기 시작했다. 사천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가야 했다. 지금도 사방에 돌아다니는 사람에 치이는데, 빨리 잘 곳을 찾지 못하면 기껏 도시에 입성한 보람도 없이 길거리에서 잠들 판이었다.


그러나 예상대로였다. 처음 두차례 들어선 객잔은 이미 방이 꽉 찬 상태였다.


“어렵네.”


또다시 허탕을 치고 나온 백연이 머리를 쓸었다.


조금 전보다는 한산해진 거리였지만 여전히 북적거렸다. 길가 저편에서는 비스듬히 홍등(紅燈)이 올라가고 있는 모습도 눈에 보였다. 기루와 주루가 문을 열고 손님들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만한 대도시에는 완전한 밤이 없다 했다. 그 말이 맞았다.


“주루도 하룻밤 보내기 나쁘지 않은......”


퍼억.


날렵한 손길이 백연의 뒤통수를 쳤다. 돌아보자 소홍이 언제나처럼의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우리, 도문이야.”


그때였다.


“저, 혹시-”


맑은 목소리가 대기를 울렸다. 평범한 음성이 아니었다. 스치듯 귀에 닿았는데, 마치 바람이 마구 몸을 뒤틀며 진동하는 듯했다. 잔잔한 목소리임에도 허공에서 연이은 파문을 일으킨다. 심후한 공력이 실려 있었다.


멀지 않은 길 저편.


대여섯의 무인들이 서 있었다. 허리춤을 따라 비스듬히 걸린 검이 자연스러웠다. 청명한 하늘을 담아낸 듯한 연푸른 도포자락이 어두운 길거리의 불빛을 받아 은은하게 가라앉았다. 이쪽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는 걸음이 더없이 가벼웠는데, 흡사 구름을 밟는 듯한 분위기였다.


갑작스레 허공을 진동시키는 공력에 긴장할 법도 했지만 백연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무인들의 차림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용봉지회에서 본 적 있는 모습이었다. 그땐 가짜였지만.


“청성파?”


먼저 입을 연 것은 유성이었다. 앞으로 나서며 내뱉은 그의 말에 반대편에서 반가운 기색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검룡! 정말로 당신이었군요. 하지만 당신은 폐관에 들어갔다 들었는데......?”


앞서 걸음을 내딛는 청년의 키가 큼직했다. 일행보다 한층 빨리 이편을 향해 다가오는데, 등허리까지 닿는 길다란 머리칼을 대충 묶어 내린 것이 눈에 띄었다. 귀공자 같은 인상과는 반대로 도포 안쪽 팔을 따라 검에 베인듯한 길쭉한 흉터가 엿보였다. 균형잡힌 걸음걸이와 단단한 기세가 어우러져 한층 체구를 크게 보이게 했다.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공력 기파가 짙었는데, 내가기공의 성취가 높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었다. 툭툭 내뱉는 음성에 실린 기운이 강했다.


“청성파 단향목. 적운검(赤雲劍)이라는 별호로 불리는 분이다. 나보다 선배이신데, 일전 문파간의 교류때 두어번 만난 적이 있어.”


유성이 나직히 중얼거렸다.


그때 설명을 뇌리에 새길 새도 없이 단향목이 그들의 앞에 당도했다. 훤칠한 청년의 몸에서 옅은 향이 흩어져 나오는 듯 했다. 무슨 무공을 익혔는지.


“간만입니다. 당신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단향 선배. 오랜만입니다.”

“헌데 옆의 일행은......?”


단향목이 백연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제서야 인지한 듯이.


그럴리는 없었다. 유성을 발견한 순간부터 자신의 기파를 숨기지도 않고 내뿜는 사람이다. 백연을 비롯한 곤륜파의 사람들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어조에서 검룡을 향한 묘한 호승심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것이 주변 사람에 대한 무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구파 무인들 사이에서 간간히 보이는 특유의 자존심과 허세였다.


‘마음에 안들어.’


눈매를 좁힌 백연이 막 대답하려던 유성을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백연이라고 합니다.”

“......호오?”


단향목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백연은 신경쓰지 않고 툭 던지듯이 내뱉었다.


“혹자가 암화(暗火)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익숙한 별호는 아닌지라 입에 담기가 힘들군요.”


직후였다. 단향목이 잠시 멍한 표정으로 눈을 몇차례 깜빡이더니, 이윽고 입을 벌리며 당황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암화? 섬서의 그 암화 말입니까?”

“맞습니다.”


유성이 끼어들었다. 단언하는 그의 어조에 단향목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적잖이 당황한 모습.


‘왜 저러지?’


백연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반응이 요란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주변을 따라 흘러나오던 단향목의 기세가 팍 사라졌다. 뒤이어 청성파의 다른 무인들이 헐레벌떡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그대가 정말로 암화란 말인가? 곤륜파의?”


탁한 중년의 목소리였다. 똑같이 연푸른 도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황급히 달려와 단향목의 머리를 꾹 누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제자를 질책하듯이. 연배로 보건데 단향목보다 한 배분 높은 청성파의 무인인 듯 했다.


백연은 가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에 중년 무인이 숨을 들이키고는 단향목의 머리를 한층 더 강하게 눌렀다.


“이놈아, 고개를 숙여라. 은인이시다!”

“은인이라뇨?”


당황스러웠다. 청성파와 은원을 만들 일이 없었는데. 자연스레 반문부터 튀어나올 수 밖에 없었다.


“저는 아무것도......”

“천주산 용봉지회. 남궁세가의 가주에게 직접 들었네. 우리 아이들을 살해한 흉수(兇手)를 자네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주었다고.”


중년 무인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명백한 후기지수한테 고개를 숙인다. 최고의 예를 표하는 행동이었다. 뒤이어 다른 청성파의 무인들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이 부월검(斧鉞劍) 임지승이 청성파의 장문인을 대신해 은인께 감사를 표하는 바이네.”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용봉지회 당시 청성파 무인들을 죽이고 인피면구로 만들어 뒤집어 썼던 만금장의 흉수들. 전부 백연이 직접 잡아 죽인 기억이 있다. 그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남궁세가의 가주가 직접 청성파에게 따로 언질을 한 모양이었다.


‘남궁유진인가.’


가문의 일만도 처리하기 바쁠 녀석이 백연의 평판까지 신경 써주었다. 고맙다고 말이라도 나중에 전해야 할지. 머릿속에 새겨둔채로 백연이 손을 내저었다.


“이러지 마시지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것 뿐입니다.”

“아닐세. 장문인께서 직접 언질을 하셨네. 암화 그대를 보면 뭐라도 보답을 하고 싶다고.”

“그런......”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하게. 청성의 힘으로 돕겠네.”


고개를 들어올린 임지승의 표정이 확고했다. 그에 정중히 거절의 말을 뱉으려던 백연이 멈칫했다. 그러고보니 필요한 것이 있었다.


“그럼 혹시,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든.”


씩 웃은 백연이 입을 열었다.


“혹시, 알고 있는 객잔 하나 있으십니까?”


작가의말

금일부터 연참대전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공지를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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