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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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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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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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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운해비영(2)

DUMMY

※※※



이튿날이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무연봉은 사람으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오히려 첫날보다도 사람이 많은 것 같기도 했다.


간단한 이유였다.


곤륜파의 충격적인 선전으로 인한 입소문. 그리고 두번째 날 있을 암화의 대진.


그것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흥미를 가지게 만들었다. 무연봉의 입구에 줄이 길게 늘어선 까닭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인파 사이.


“사람이 많군.”


커다란 흑립(黑笠)을 눌러쓴 유왕이 중얼거렸다. 여전히 나른한 눈매가 사람들을 길게 헤아렸다. 그에 곁에 선 풍백이 한숨을 뱉었다.


“차라리 상석을 요청해서 보시지 그러셨습니까. 선극께 말하면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해주실 것을.”

“아니. 괜찮다.”


유왕의 눈길이 사람들에 가 닿았다.


제각기 수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이곳에 걸음하고 있었다. 상인, 무인, 평범한 민초와 이야기를 찾는 호사가들, 운현의 기루에서 일하다 눈요기라도 하고 쉬러 온 기녀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호흡하고 있다. 쉬이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줄이야 기다리면 되는것 아니겠는가.”

“혹시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곳이? 황궁의 내 침실보다 안전할 듯 싶은데.”

“......그건 거기가 지나치게 위험한 것입니다만.”

“그대는 걱정이 너무 많아.”


유왕의 말에 풍백이 미간을 좁혔다. 당장 어제 그를 불안하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데 저리 말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천뢰시 종리군과 싸우느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마 풍백 자신이 황실에 종속된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물어본 말이었겠지만.


‘만일 진짜로 천뢰시와 겨룬다면.’


풍백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일단 상성부터 안좋았다. 우호법과도 차원이 다른 문제. 염혈신공을 온전히 예열한 우호법도 까다로운 상대이나, 천뢰시는 그를 상회하는 괴물이다.


보통의 활잡이라면 당연히 풍백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어 순식간에 거리를 허용하고 죽을 것이다. 하지만 천뢰시 종리군은 보통의 활잡이가 아니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풍백 자신조차도 전력을 다해 방어해야만 그 화살을 막아낼 수 있을테니.


그것을 뚫고 쉬이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천뢰시의 경공 질주 또한 천하일절.


만일 그런 악조건을 전부 이겨내고 근접전으로 붙는다 해도 근접 박투조차 무지막지하게 강력한 인물이다.


‘그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리 된다고 하면 또 그때는 어찌 방법을 찾지 않을련지. 풍백은 그런 사람이었다.


“다음 분들.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무당파 도인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흑립을 푹 눌러쓴 풍백과 유왕은 사람들을 헤치고 가 경기장의 한쪽 자리에 앉았다.


주변을 경계하며 기파를 휘감고 있는 풍백과 달리 유왕은 나른한 시선으로 이곳 저곳을 훑었다.


“흐음.”

“자리가 불편하셔도 전 모릅니다.”

“그대는 나를 화병의 꽃으로 아는가. 충분히 편하니 걱정 말도록.”


자리에 걸터앉은 유왕이 흑립 아래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을 살피는 눈이 권태로웠다.


“암화의 경기는 언제인지 아나?”

“오후입니다. 조금 뒤에 오셔도 됩니다.”

“그때까지 할 일도 없는데, 전부 보고 가지. 볼만한 대진이 있는가?”

“그거야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큼직한 소식이 아니면 귀를 닫고 살았던 터라.”


풍백이 답했다.


“하지만 주목받는 대진은 있지요. 아마 곤륜파 경기들에 이목이 가장 많이 쏠릴겁니다.”

“호오.”

“암화 앞으로 넷, 뒤로 둘의 대진이라고 하더군요.”


그들의 이름마저도 전부 알고 있는 풍백이었다. 운결이 가끔씩 언급했었으니.


앞에서부터 청율, 연비, 이결, 연청이 먼저 대진을 치르고, 암화의 순서가 지난 뒤 무진과 선아라고 했던가. 각각의 외양도 대충은 알고 있는 풍백이다.


‘쓸데없이 친숙한데.’


피식 웃음을 흘린 풍백이 경기장 무대를 가늠했다. 오늘은 첫날과 달리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경기. 벌써 무인들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음, 공손가의 여식인가.”


그때 중얼거리는 유왕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의 시선은 무대에 올라온 여검객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에 풍백이 반문했다.


“누군지 아십니까?”

“공손세가의 공손월이다. 전번 비무제전에 뇌룡에게 패배했지. 구봉(九鳳)의 일익에 드는 인물인데.”

“처음 듣습니다.”

“그래? 의외군. 상대는 언가의 언중천인가 본데. 시작부터 권검(拳劍)의 대결이라. 나쁘지 않은 짜임새다.”

“......잘 알고 계십니다?”

“저 옆은 양가장 소장주 양휘겸이다. 산서에서 이름께나 날리는 후기지수다만. 일전 다른 대회에서 본 적이 있지. 양가창법(楊家槍法)의 초식을 상당히 제대로 익혔더군.”


줄줄 흘러나오는 설명이 빨랐다. 풍백은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대회라 하심은?”

“북경에서 산서는 가깝지. 나들이 다녀오기 좋지 않겠나.”


태연히 내던지는 말이었지만 풍백은 그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북경에서 산서로 직진하면 산맥을 무려 세개를 넘어야 한다. 전혀 가깝지 않다. 나들이 다녀오기 좋은 거리도 아니고.


“오, 황보세가(皇甫世家)의 황보진도 있나. 상대는 독고세가(獨孤世家)의 소가주 독고무휼이군.”


그저 단순히 경기를 구경하러 왔다기엔 지나치게 자세히 알고 있었다. 풍백은 곁에서 헛웃음을 지었다.


“강호 무림에 그리 관심을 두신줄은 몰랐습니다.”

“어릴적 가끔은.”


유왕이 경기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입을 열었다. 마침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언가의 권법과 공손세가의 검격이 충돌하는 모습이 경쾌했다.


“그대가 부러웠지. 어느날 군문을 등지고 훌쩍 떠나는 모습이 그리 가벼워 보였다. 나름 내게 무공도 가르쳐 주었던 사람이니, 그 행적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수가 없었고.”

“......”

“강호 무림에 검성이라는 별호가 떠돌았던가. 그 명성과 위업이 어린 눈에 동경의 것으로 찾아왔었던 기억이 있다.”


천하를 오시하는 괴력난신들. 강호 무림은 협의지심(俠義之心)을 기치로 삼는다 들었다. 어두운 황실에 염증이 난 유왕에게는 별세계로만 보였다. 지금에 와서야 무림도 그렇게 살아가는 일은 드물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그 관심은 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몇번은 소림이나 무당으로 투신할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었다만. 결국 그리 하지는 못했다.”

“머리를 박박 민 재후님을 보았다면 즐거웠겠군요. 아쉽습니다.”

“뭐, 그것과는 별개의 이유도 있다.”


유왕이 사람들을 가늠하며 중얼거렸다.


“세력 구도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니.”


풍백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유왕은 여러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했다. 어쩌면 위험한 상황들까지도.


이름 있는 후기지수들을 전부 알아보는 것 또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인가. 유사시에 누가 힘이 되어줄만한지 파악해놓는 것은 유왕의 말대로 중요한 일이니 말이다.


“그 아이를 몇차례 더 만난다 했지?”


여상히 물어오는 음성이었다. 풍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통해 그 무공을 다듬으려 할테니 말입니다.”

“스스로를 담금질하는군.”

“그런 것 같습니다. 본래 위를 향해 도전하는 것으로 성장하는 재능입니다. 쏟아붓고 절박한 상황에서......”

“그대처럼?”

“......비슷한 부분이 있긴 하지요.”


유왕이 흑립을 매만졌다. 이어지는 목소리가 태연했다.


“그때 아이와 대화를 조금 나누고 싶군. 괜찮겠나.”


풍백이 미간을 좁혔다. 백연과 유왕의 대화?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까. 잠시 고민하듯 저울질하던 풍백이 이윽고 천천히 답했다.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닌듯 합니다. 백연에게 직접 물어보시지요.”

“알겠다.”


그때쯤 경기장의 위에서는 승부가 결정나고 있었다.


한켠으로 밀려난 언중천이 무릎을 꿇으며 공손월의 검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묵직한 양가창의 초식이 상대의 어깨를 스치고 허공에 붉은 핏물을 점점이 흩뿌렸다. 황보진의 장법이 벽력성 같은 굉음을 일으키며 독고무휼의 검을 날려버리는 모습까지.


화려한 예선의 경기가 줄지어 이어졌다. 유왕은 그 위에 시선을 둔 채로 입을 다물었다. 풍백은 그의 곁에 앉아 가만히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번 호위 일은 짧게 끝나지는 않을 듯 했다.



※※※



오전은 바람처럼 흩어져 사라지고 금새 해가 중천에 이르렀다. 신시 초(申時:오후 세시)였다. 경기장에 앉은 사람들에게는 충격의 연속인 시간이기도 했다.


차례대로 청율부터 연청까지. 한번의 압도적인 승리와, 한번의 어렵지 않은 승리, 그리고 두 번의 아슬아슬한 승리를 쟁취한 곤륜파였다.


그러나 전날만큼 충격섞인 반응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예선 첫날의 사연승으로 곤륜파가 그 저력을 보여주었기에 자연히 사람들의 기대가 높아진 상태였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연승은 주목할만한 업적이었다. 구파와 오대세가가 참여하기 시작하는 본선도 아닌 예선에서, 이리 한 문파의 압도적인 선전이 일어난 적이 있었던가.


“여덟 번. 여덟 번이네. 이젠 장난이 아니야!”

“흥. 예선이니 가능한 일이지. 좀 더 지켜봐야......”

“자네는 구파중 하나가 예선에 참가한다 해도 저리 팔연승을 거둘거라 생각하나?”


서로 나누는 대화들이 많았다. 제각기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며 갑론을박 하거나, 곤륜파의 무공을 분석하고 있는 모습.


“검이 예(銳)를 기반으로 쾌(快)를 엮어냈네. 특히 일격 일격이 위협적이고 망설임이 없는게, 살검(殺劍)을 근원으로 삼는듯 해.”

“청해가 어떤 곳인지 생각하면 그럴만 하지 않겠소.”

“하지만 방어초식도 그 뿌리가 깊어요. 중(重), 강(强), 유(柔)의 성질을 담아냈는데.”

“연원은 알기 어렵지만, 그 구결에 담긴 고민이 적어도 수십년에 걸친 고검(古劍)임이......”

“어쩌면 백여년 전의 무공을 되찾은 것이 아닌지.”

“과거의 명문거파.”


제각기 나누는 이야기가 달랐다. 해석하는 바도 달랐다. 곤륜파가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무공에 대해 타인에게 무언가 선보이려 한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무공에 대한 토론은 무림인들의 크나큰 즐거움을 담당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목소리들은 결국 전부 하나로 귀결되었다.


“크게 보면 세가지 검일 것이다. 불꽃을 뿌리는 패도적인 공격검초, 수기를 기반으로 한 것 같은 면면부절의 방어검초, 그리고 다양한 검격 묘리들을 모아놓은 듯한 기초 검법.”

“기초가 맞아요, 천 오라버니? 아무리 봐도 파괴적이었는데......”

“가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으니 확실하지 않겠느냐.”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하던 제갈혜가 이윽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암화는 역시 불꽃이겠죠?”


바로 암화가 사용하는 무공에 관한 호기심이 그것이었다.


물론 대다수는 그의 별호를 알았고, 섬서의 소문도 알았기에 적화검류가 암화의 절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 문파에 무공은 여럿 존재하기 마련이나, 각각의 무인이 특색으로 내새우는 절기는 존재했으니까.


어둠속의 불꽃이라는 별호는 직관적이었고 명료했으며, 금안나찰의 목을 벤 화염이라는 소문은 그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곳에 있는 무인들 중, 종남파와 화산파의 극소수의 무인을 제외하면 암화가 불꽃을 다루는 모습을 실제로 본 사람은 별로 없었음에도 그랬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은 머릿속에서 암화가 불꽃을 휘두르는 모습을 실제처럼 그려낼 수 있었다.


곤륜파의 다른 무인들이 선보인 적화검류에 화려함을 배로 더하고, 파괴력을 늘리고, 검룡의 매화처럼 흩날리는 화염의 폭풍을 더해주면, 그것이 암화의 무공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그렇게 사람들의 기대감은 점차 쌓이고 쌓여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덟번의 승리를 거쳐, 마침내 찾아온 암화의 순서 앞에서였다.


“다녀와라.”


무대 아래였다.


피곤한 눈매를 매만지며 앉아 있는 백연에게 무진이 말했다.


“박살내주고 와.”

“너무 박살내진 말고.”


도현이 덧붙였다. 백연보다 외려 상대를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 그에 백연이 피식 웃었다.


“빨리 끝내고 올게. 피곤하기도 하고.”

“......괜찮아? 그러게 어젯밤에 일찍 안자고 뭐한거야.”


선아의 핀잔이었다. 뒤이어 한마디씩 던지는 사형들의 목소리를 한귀로 흘리며 백연이 웃음을 지었다.


“연습하고 있는게 있어서 말이야.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자령안은 다들 잘 쓸 수 있지? 이번 경기는 안법으로 봐둬.”


그의 말에 사형들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갑자기 한껏 진지해진 그들이 몸을 바로 세워 앉았다.


그들의 사제가 저리 말한다는 것은, 지금부터 보여줄 것이 앞으로의 수련과 연관이 있다는말과도 같다. 어쩌면 새로운 무공을 가르쳐 줄지도 모른다는 소리.


진지해질 수 밖에 없었다. 백연이 당연히 승리하겠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천차만별. 여유가 있다면 항상 그들에게 뭐라도 더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소년이다.


“하나도 안 놓치고 볼게.”

“집중하고 있으니까 다녀와.”


도현과 설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백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여줘.”


나직한 소홍의 음성에 생긋 웃어준 백연이 걸음을 옮겼다. 어제와는 달리 열의가 넘쳐 보이는 무당파의 무인이 그를 맞이했다.


“올라가셔도 좋습니다. 건투를.”

“감사합니다.”


저벅.


소년의 걸음이 계단을 스쳤다. 조용히 무대 위로 올라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악-


귓가가 탁 트이는 듯한 요란한 소음이 사방을 휩쓸었다. 무대 아래에서는 먹먹하게 들려오던 함성이 허공을 가득 채우며 그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었다.


“후우.”


소년이 숨을 가다듬었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소음 속에서 문득 과거의 기억이 스쳤다. 백연의 몸으로 처음 겪었던 제대로 된 싸움.


버릇없던 사형들을 혼내준 장난같은 주먹다짐 이후 옥수에 내려갔었더랬다. 그때 백야주루의 지하에서 거력부와 합을 겨뤘었는데.


그때도 무대 위였다. 선명한 기억이었다. 연약한 몸으로 있는 힘을 다 짜내어 거력부를 참살했던 날.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리 고강하다 하기 어려운 적이다. 허나 당시의 백연에게는 목숨을 건 전투였다.


그 뒤로 꽤나 빠르게 강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했다. 더욱 더 벽을 깨고 스스로를 끌어올릴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그저 비무제전 우승 같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보신경, 검법, 신공들......’


지금 취해야 한다. 전부 취해서 그의 것으로 만들고, 곤륜의 무공을 엮어내야 한다. 시간이 여유롭지 못했다. 예기치 못한 위기는 언제나 찾아오기에.


“모용(慕容)의 천상이라 합니다. 암화의 위명은 익히 들었지요. 한수 배우겠습니다.”

“곤륜의 백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눈앞에 선 바른 인상의 청년을 마주하며 백연이 여상히 검을 늘어뜨렸다. 여휘를 뽑아든 그의 손아귀에 흐린 빛이 깃들었다.


오른발을 반 보 앞으로 놓은채로.


삐이이-


시작음이 울렸고, 다음 순간 백연은 지체하지 않고 끌어올리던 기파를 그대로 내뿜었다. 찰나지간 전개한 용형보가 소년의 뒤편에 번뜩이는 백광을 길쭉하게 새겼다.


한순간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부터 모용천상의 코앞까지.


새하얀 번갯불이 실타래처럼 분분히 허공을 물들이며 흩어졌다. 어느 순간 모용천상의 앞에 환영처럼 나타난 백연이 진각을 밟음과 동시였다.


콰르르릉!


우렛소리가 뒤늦게 귀를 저몄다. 눈을 부릅뜬 모용천상이 검을 휘두르며 대응하려 했다. 자연스레 풀려나오는 방어초의 끝자락에 은하수같은 별빛의 잔상마냥 점점이 매달린 빛이 눈에 띄었다.


그 방어초를 권장법으로 조기에 끊어낼 수도 있었지만 백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여휘를 휘둘렀다.


간극 속에서 검끝의 백광이 수직으로 휘어지며 모용천상에게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정확히 방어초의 정중간을 향해서였다.


쩌어어엉!


직후 귀청을 찢을듯한 굉음과 함께 모용천상이 이를 악물며 신음소리를 뱉었다. 검격 경파가 서로 부딪히며 산산조각나 허공으로 흩어진다.


백연의 압도적인 선공이었다. 그러나 막혔다. 그것을 알아챈 즉시 모용천상은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검을 휘둘렀다. 유일한 기회였기에.


깔끔한 반격초가 횡격으로 펼쳐졌다. 모용가 유성검법(流星劍法)이었다.


별자리를 옮겨놓은 것 같은 검격이 백연의 몸을 양단할 것인 양 휘둘러졌다. 그때였다.


화아아악!


허공에 흩어지던 검격 경파가 찰나에 한곳으로 휘어들었다. 환상처럼 땅 위로 걸음을 스치는 백연의 몸을 향해서였다.


직후 유성검법이 소년의 몸을 반으로 가르고.


“무슨......!”


경악성과 함께 사방에서 숨을 훅 들이키는 소리가 울렸다. 아주 잠깐이나마 백연이 검격에 당한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검을 휘두른 모용천상은 천천히 표정을 굳혔다.


피륙음도, 검날에 저항하는 감각도 없었다. 그의 검이 스치고 지나간 것은 소년의 잔영같은 환상이었다. 흐르듯 움직인 그림자.


“운해비영(雲海飛影). 이런 느낌이구나.”


뒤이어 들려오는 음성이 한없이 투명했다. 모용천상이 재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 자리에는 눈썹을 내리깐 소년이 시선을 비스듬히 늘어뜨리고 있었다. 벼락을 손에 쥔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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