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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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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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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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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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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무극(無極)(2)

DUMMY

※※※



쏴아아-


파도인듯, 바람인듯, 혹은 옅은 웃음 같기도 한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점차로 푸르게 물드는 시야 가장자리가 느껴진다.


푸른 빛.


청휘가 남긴 옷자락이다. 백연은 그리 생각했다. 이 옷자락을 엮어낸 태청신공마저도 그 녀석의 손길이 묻어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선아도, 청율 사숙도......’


다른 많은것도 함께 담겨있다. 호신기 성라기단부터가 그의 사형들을 위해 만든 것인데, 이제 거기에서도 한걸음 더 나아갔다.


그 자체로써 백연이 만나온 인연들을 전부 한자리에 엮어낸 듯한 무공.


‘부드럽다.’


처음 느낀것은 그런 감각이었다. 온몸을 감싸고 휘도는 호신강기의 자락이 물결치며 흔들리고 있는데, 분명히 그에게 넘어왔어야 할 충격이 하나도 없었다. 푸른 파문을 그리며 흩어지는 호신강기가 온전히 권격 여파를 흡수한 까닭에.


찰나 획득한 당가 기예와 여태껏 그가 인지한 호신강기의 묘리들을 엮어 구축한 방어였다. 눈앞의 권역 묘리마저 강탈했는데, 그 결과로써 나타난 공능.


내가중수법은 물론, 그에게 전해지는 모든 발경력 여파를 흡수해 무마한다. 권마의 압도적인 일격이 내리꽂혔음에도 소년이 한발자국도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이기도 했다.


그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짧은 순간 소년은 자신이 입은 진기의 옷자락에 대해 파악했다.


‘크게 세 가지군.’


앞의 공능이 첫째.


둘째는 진기 수발 속도의 증가였다. 지금 이 순간, 올려치는 백연의 검신에 둘러지는 뇌광의 속도가 여태와도 차원이 달랐다. 그와 함께 진기의 형태와 밀도조차 더욱 높아졌는데, 종합하면 하나로 축약할 수 있는 내용.


모든 내공 운용력이 증가한다. 그 밀도가 높아지고, 형태가 조밀해지며 속도가 빨라진다.


찰나지간 눈을 부릅뜨고 그를 내려다보는 권마의 좌수 상박(上膊) 전체를 일거에 베어낼 정도로.


투쾅!


철을 끊어내는 듯한 굉음과 함께 뼈까지 일거에 베였다. 저잣거리 삼재검법을 펼치듯 그어낸 일검은 어느새 옥룡천강(玉龍天剛)의 초식으로 화해있었고, 뇌룡이 승천하는 듯한 일검은 한순간 권마의 팔을 통째로 잘라 그를 외팔이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것도 찰나였다.


권마는 절단된 팔이 몸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그것을 오른손으로 붙잡았다. 동시에 그것을 절단면에 밀착시키며 적안을 따라 흉포한 기세를 일으켜 압도적인 재생의 공능을 극한까지 발휘.


찰나지간 그의 왼팔에서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근맥과 뼈까지 달라붙으며 잘려나간 일이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원래대로 복구된다.


그 뒤로 남은것은 검로(劍路)를 따라 희게 피어오르는 연기 뿐이었다. 잘려나간 단면에서 뿜어져 나온 핏물이 순간적인 마찰열을 이기지 못하고 증발한 탓이었다.


동시에 백연은 펼쳐질 반격초를 대비하듯 권마를 또렷이 응시했으나, 돌아온 것은 무저갱처럼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알지 못하겠다. 내 권역에서 어찌 호신강기를 펼칠 수 있는 것이지?”


백연은 태연히 그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것은 나의 영역이니까.”


초월에 이른 권마의 무공 근간을 이루고 있는 수라진결.


그 잿빛 권역을 파훼하는 것은 안된다. 백연은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영역 내에서 진기를 발출하는 것은 더 알아볼 것도 없이 불가(不可).


초월자들은 각기 그 자체로써 온전한 까닭인데, 다른 무인의 영역 내에서의 법칙을 멋대로 고쳐쓰는 것은 격의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초월에 이른 천독조차도 궁주에게 만천화우를 펼치기 위해 독무로써 공간을 벌리고 진기를 뻗어내는 방식으로 회피했을 정도니까.


허나.


‘같은 권역끼리 충돌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순히 권마의 권역 내에서 진기를 발출해 호신강기를 두르는 것이 아니라, 백연 자신의 육신 주위에 영역을 생성. 그로부터 비롯된 권역을 엮어낸다.


즉, 그가 두른 성라청휘극(星羅淸輝裓)은 그 자체로써 백연을 보호하는 호신강기이자 권역과도 같다는 의미.


그렇게 생성된 권역은 독립된 공간으로 작용하며 이뤄진다. 결국 지금 이 순간, 백연은 궁주의 수라진결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소년이 인지한 세번째 공능이었다.


파스슷-


허공에 불티가 솟아오른다. 푸른 옷자락에 닿은 회색 권역이 조금씩 밀려나기를 반복한다. 백연의 말을 듣자마자 그것을 알아차린 궁주의 눈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그 찰나에 권역을 엮어냈다?”


뒤늦게 불가해(不可解)를 본듯 중얼거리던 음성이 뒤바뀌었다.


그 또한 초월의 영역에 이른 무인. 단박에 백연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다. 백연이 수라진결 자체를 파훼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엄청난 양의 진기를 쏟아부어 형성한 푸른 별무리로, 충돌하는 권역의 경계를 밀어내며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백연을 내려다보는 권마의 입매가 느릿하게 열린다.


“이제는 알겠다. 네 자질은 대종사의 것이군. 감히 나돌아 다녀서는 안될 힘이다.”

“......”

“허나 헛되다. 어린 육신이 지녔다기엔 축기량이 놀랄만큼 많지만, 그것은 유한하며, 또 극도로 빠르게 소진될테니. 그러나 이대로 칠주야를 싸워도 나는 온전하다.”

“무슨 칠주야씩이나.”


반각이면 충분한데-하고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였다. 간합을 재던 소년의 시야 사각에서 별안간 흰색 장포가 우뚝 솟아올랐다. 동시에 낡은 송문고검이 밤하늘 달빛마냥 구붓하게 일그러지며 낙하.


콧김을 뿜어낸 권마가 등뒤에도 눈이 달린것 마냥 왼팔꿈치를 쳐올리며 떨어지던 검날을 크게 후리는 것과 동시에, 백연이 전진했다.


그 순간이었다.


쩌엉!


굉음과 함께 송문고검을 후려쳐 방향을 바꾼 권마가 그대로 상체를 꺾으며 회전. 거대한 육신을 무게가 없는 것 마냥 다루며 숙이더니, 막 내뻗어지고 있는 백연의 검면을 한 손가락으로 퉁-소리와 함께 튕겨내며 이를 드러낸다.


“그 검법의 공능, 이해했다. 방어불능의 검초인가. 유달리 날카롭게 파고든다.”


백연은 그 음성을 무시하며 검파를 비틀어 쥐었다.


온전히 펼쳐 적중할때마다 권마의 육신을 저항없이 가른 분광뇌풍검. 이제 와서 그 공능을 들킨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겠지.


상관 없었다. 이대로 반각. 끝까지 상대해 몰아붙이면 그만일 일이니.


‘공격으로 이끌어야 한다.’


성라청휘극을 엮어냈지만, 방어만 해서는 버틸 수 없다.


찰나지간 튕겨나갔던 소년의 검이 크게 반원을 그리며 되돌아온다. 동시에 눈썹을 꿈틀 움직인 권마가 주먹을 쥐며 움직였고, 백연은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순간 푸른 별무리와 잿빛 권역이 충돌하며 서로를 잠식. 그 틈새에서 벼락처럼 엮어진 검법이 일곱차례 사선으로 그어졌고, 동시에 권마의 주먹이 번뜩이며 찰나지간 일곱번의 타점을 만들어냈다.


쩌저저저저저정!


순식간에 허공에서 굉음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수라진결의 권역 탓에 내공 경파의 파문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를 대신해 일어난 한줄기 바람이 화악-몸을 부풀리며 터져나왔다.


‘이제 맞지 않으려 하는건가?’


간극 속에서 백연은 권마의 대응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검선과 그의 검을 육신으로 맞아가며 일격을 적중시키는 것을 우선시하던 권마의 근접 박투가, 이제는 최대한 직격을 피하는 것으로 변한 형태.


그의 검법 공능을 의식한 탓으로 보였는데, 소년에게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차라리 이게 더 익숙하다.’


맞아가며 끊임없이 재생하는 괴물은 상대할 기회가 별로 없는 인외의 괴력난신이었으니까.


허나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궁주는 초월자였다.


찰나지간 칠성섬뢰(七星閃雷)를 펼쳐 극한으로 가속한 백연이 회전하며 여휘를 회수. 압도적인 가속의 여파로 달아오른 검신을 재차 상단세로 그어내려는 순간 권마의 주먹이 먼저 짓쳐들어왔다.


‘너무 빠른......!’


찢어진 간극 속에서였다. 일곱번 내친 주먹은 어느새 비틀려 올라오며 활짝 열린 백연의 가슴께를 격하고 있었는데, 타점이 하나가 아니었다.


극도로 짧은 순간 세번 똑같은 궤적으로 가속한 권마의 주먹이 백연의 가슴에 직격.


콰아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길쭉하게 늘어나며 일그러지더니, 다음 순간 백연의 신형은 협곡의 벽면에 날아가 처박히고 있었다. 비틀려 무너지는 회색 벽면을 따라 명멸하는 푸른 별무리. 호신강기와 돌벽이 충돌하며 길쭉한 금이 쩌억 갈라졌고, 소년의 육신은 바위 두엇을 부수고도 벽면을 주욱 그어내다 아래로 낙하했다.


“커헉......!”


죽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성라청휘극 덕분이었다. 가슴께를 따라 일렁이는 호신강기의 표면이 직전 권격을 받아낸 여파로 물결처럼 파문을 그려낸다. 내가중수법 여파는 단 한점도 호신강기 안으로 파고들지 못했는데도, 그저 주먹의 물리적 압박감 만으로도 숨이 잠시 턱 막혀오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팔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마른 기침을 뱉어낸 백연이 고개를 쳐드는 순간, 저편에서 삽시간에 큼직해지는 잿빛 인영이 눈에 들어온다. 거한의 신형이 벼락처럼 가속해 소년의 코앞에서 진각을 내리찍었다. 그와 함께 휘둘러지는 거대한 손바닥.


재빠르게 튕기듯 구르며 일어난 백연이 검을 내치는 것도 동시였다.


파가가가가각!


거친 소리와 함께 소년의 검이 뱀처럼 권마의 팔을 돌려깎았다. 그의 오른 팔뚝부터 상박까지 껍질을 벗겨내듯 깊은 검상이 수십개 일어났다. 잿빛 피부가 쩍 갈라지며 뼈까지 드러나는 모습.


하지만 그 상처가 재생되는 것에 걸린 속도는 극히 찰나에 불과했고, 다음 순간 백연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손바닥을 온전히 감당해야 했다. 이미 내친 여휘를 회수할 시간도 없이 왼손으로 펼쳐낸 낙안권이 권마가 대충 털어낸 손바닥과 충돌했고.


파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땅거죽이 움푹 내려앉았다. 소년의 발치를 따라 대지가 쩌억 갈라지며 발끝이 땅속으로 가라앉는다.


그와 함께 다시금 푸른 별무리가 물결친다.


동시에 권마가 입을 열었다.


“그 호신강기, 진기 소모가 막대하다. 앞으로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궁금하군.”


백연은 말없이 궁주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쓸데없이 눈이 좋은데.’


옳게 보았다. 성라청휘극의 세가지 공능은 막강하다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고, 동시에 초월자의 권격을 정통으로 맞고도 견딜법한 강도도 보유했다.


무공이란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신공을 몸에 두른 대가는 간단했다.


압도적인 진기 소모량.


푸른 별무리로 권마의 권격 한번을 감당할때마다, 전력으로 여뢰를 펼친것과 비슷한 양의 내공진기가 빨려나간다. 왠만한 내가기공의 고수들도 쉽사리 여러번 감당하기 힘든 양인데, 지금의 백연은 아직 몸에 내공을 쌓은지 일년여밖에 지나지 않았다.


‘여러 방식으로 축기량을 어마어마하게 늘렸다곤 해도.’


계속해서 받아내긴 어렵다. 소년은 생각했다.


눈앞의 괴력난신의 주먹을 앞으로 딱 세 번 정도 더 감당할 수 있겠다고.


“칼질도, 옷자락도 천하에 이름을 새길 정도지만 전부 조금씩 미진하다. 네겐 세월이 부족했군.”


이를 드러낸 궁주의 이야기였다.


이제는 진심으로 백연에게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듯 보이기도 했는데, 그에 더 신경쓸 여력은 없었다. 마침 무당검선이 궁주의 옆에서 나타난 찰나다. 홀연히 지상으로 떨어진 듯 움직인 노검객의 수염이 구름처럼 흔들리는데, 어느새 초월성이 엿보이기 시작하는 보신경이었다.


“어린 아해만 그리 괴롭히면 쓰나. 늙은이를 두고.”


끌끌-혀를 차며 낡은 송문고검을 나무토막마냥 대충 휘두르는 것이 찰나. 소년은 검기 한터럭도 발출되지 않는 노검객의 검신에 압도적인 진기가 웅웅거리며 잠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직전 협곡을 부순 일검(一劍) 만월에 준하는 양.


알아채는 순간 백연은 뒤로 걸음을 박찼고.


콰아아아아아아앙!


대기가 크게 진동했다. 찰나지간 반응한 권마가 올려친 권격과 충돌한 태극검의 여파. 자욱한 분진이 시야를 가리며 후욱 퍼져나간다. 그 속에서 흐릿하게 일렁이는 검격과 잿빛 권역이 눈에 엿보인다. 한순간 번뜩이는 궤적 수십여개가 분진 속에서 교차.


쩌저저저정!


연이은 굉음이 벽력탄마냥 터져나오고, 뒤이어 분진을 뚫고 훌쩍 뛰어오른 검선과 권마의 신형이 이지러진다.


“늙은이. 네놈의 검은 위협이 되지 못한다.”

“암화의 검이 노부의 것보다 날카롭긴 하네만, 천하의 궁주에게도 그것이 그리 위협적으로 느껴졌나 보군?”


태연하게 말을 엮어내는 노검객. 하지만 검놀림은 그 정도로 여유롭지 못했다. 백연보다는 조금 더 능숙했지만 권격을 전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검선의 태극검은 분광뇌풍검과 달리 궁주의 육신을 끝까지 파고들지 못하는 까닭도 있었다.


그것은 검법 공능의 차이 때문이었는데, 권마 또한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이용하고 있었다.


“네놈은 마지막이니.”


쩌억.


한순간 그의 복부를 찔러들어오는 검선의 일격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며 펼치는 금나수. 송문고검을 휘어쥐며 움직이는 동작이 큼직하다. 노검객의 보신경 움직임을 한순간 봉쇄하며 권격을 올려치는 순간, 검선의 면장이 그와 충돌했다.


파아아앙!


정면 힘싸움은 단연코 압도적인 권마. 권격 여파만으로 노검객의 신형은 훌쩍 뒤로 날아가며 나뒹굴었고, 그 순간 대지를 박찬 권마가 백연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너를 우선하겠다.”


순간 그의 코앞에서 정지하며 쳐든 주먹 끝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일었다. 잿빛 권격의 간합 속에서 허공이 찌그러지며 휘어졌다. 압도적인 힘이 모여든 여파.


자령안으로 백연은 그 일격을 미리 읽었다. 동시에 소년은 짧은 찰나 고민을 거듭했고.


‘한번 감당하고 간다.’


발끝을 뒤로 빼며 푸른 옷자락과 함께 여휘를 휘둘렀다.


콰콰과과과광!


직후 굉음과 함께 소년의 신형이 뒤로 날았다. 시야 가장자리가 흐릿하게 일그러지더니, 바닥을 퉁기듯 구른 소년은 어느새 물가에 날아가 검을 땅에 박으며 간신히 착지했다.


허나 이번에는 잿빛 거한이 즉각적으로 따라오지 못했다. 번쩍 들어올린 백연의 시선에 손목께를 붙잡고 있는 궁주의 모습이 들어왔다. 찰나지간 완전히 절단당한 좌수를 붙잡아 재생하며 입매를 비트는 모습이 흉포했다.


‘이제 두번.’


권격이 떨어지는 찰나, 성라청휘극으로 방어를 갈음하고 일검을 내친 까닭이었다. 그를 통해서 아주 짧은 시간을 벌었다. 그로써 소년은 잠깐이나마 수라진결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 검을 쥘 수 있었고.


키이이이잉-


기묘한 울림과 함께 백연의 검이 희게 물들었다. 검신을 따라 줄기줄기 새어나오는 벼락이 분분히 튀어오르며 한없이 예리한 검기(劍氣)를 형성.


‘절반 정도 지났나.’


스스로의 시간을 감각한 소년이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일렁이는 장강의 물결을 향해서였다.


파아아아아아앙!


거센 물보라가 튀어올랐다. 강대한 검기가 가르고 들어간 수면 속. 얕은 물가에 잠겨 있던 독들이 일제히 깨져나간다. 그와 함께 수면을 따라 투명한 액체가 뭉클 올라오기 시작했고.


“......후우.”


소년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찰나 저릿하게 피부를 저며오는 감각을 느끼면서였다.


시간은 정확하게 계산했다. 이제부터 남은것은 반의 반각.


“검선 어르신!”


백연의 외침과 함께 저편 멀리서 일어난 노검객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꺼내어 입에 무는 것이 보였다. 그는 알아서 독에 대처하리라. 아마 정화의 공능이 있는 법보를 문 것이겠지.


“수작을.”


그 순간이었다.


어느새 육신을 완전히 수복하고 나타난 권마가 그대로 주먹을 내친다. 그에 힘겹게 몸을 비튼 백연이 순간 일곱번 검을 그으며 주먹의 방향을 비틀었고.


쿠구구구궁-!


틀어진 권격이 대지를 격하며 둔중한 진동을 퍼트렸다. 쩌억 갈라지는 대지의 틈새와 함께 소년의 의식이 가속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의식이 수렴한다. 눈앞의 거한을 온전히 눈에 담는다. 사방 모든 감각이 일점으로 수축하고, 그로써 자령안의 공능이 극한의 극한까지 확장.


온통 자색으로 물든 눈으로 소년은 거한의 움직임을 ‘앞서’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모든것이 급박하게 흘러간다.


쩌저저저저저정!


찰나를 수백으로 쪼갠 순간에도 허공에서 수십개의 타점이 튀어오른다. 푸른 옷자락 너머로 붉게 피어오른 불티들은 금새 잿빛으로 화해 녹아내린다. 한 호흡에 협곡의 저편까지 질주하며 내달린 신형들이 교차했다가 다시금 흩어지고, 일격 일격마다 쩌억 갈라지는 대지가 가히 압도적인 보법 여파를 감당하다 못해 한뼘씩 내려앉는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시야 속, 별안간 치솟은 검선의 태극검이 낭창하게 휘어지며 짓쳐들어오던 권격 궤적을 틀어 백연의 사선을 지켜주고, 찰나지간 질주한 소년이 오초식 벼락을 권마의 머리 위로 떨구며 통째로 팔이 짓이겨질 뻔한 검선을 구해낸다.


이미 절세의 영역이라 불릴 위치에 도달한 두 무인이, 초월의 위에 오른 괴력난신을 상대로 극한까지 합을 엮어낸다.


어느새 안법으로 보아도 흐릿하게만 보일 인영들의 궤적이 교차하며 뒤틀린다.


콰아앙!


길쭉한 투로의 궤적이 협곡의 벽면을 쓸고, 멈춰가는 것 같던 붕괴가 다시금 크게 일어나며 거대한 돌과 바위들이 장강의 물결 위로 낙하한다. 큼직한 물보라가 파도마냥 일어나는데, 튀어오르는 물방울들 사이로 잿빛 권역과 푸른 별무리, 백색 장포가 뒤섞이며 질주한다.


그렇게 어느 순간 합을 감당하다 못한 낡은 송문고검이 커다란 울림을 엮어내었고.


파캉!


굉음과 함께 수십의 철조각들이 하늘로 비산했다. 직후 눈을 부릅뜬 노검객이 허탈한 듯 입가에 미소를 짓는 순간, 푸른 별무리가 노검객과 잿빛 거한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출렁이는 푸른 옷자락.


이제 한층 흐릿해진 푸른 빛무리를 두른 소년이 찰나지간 권마의 주먹을 베어내고, 허리춤에서 순백의 검을 뽑아들며 여휘를 노검객에게 던져주는 것까지가 모두 쪼개진 간극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고맙네.”

“잘 들겁니다.”

“이것도 신검(神劍)이로군?”


송문고검 대신 여휘를 쥔 노검객이 흐린 미소를 지으며 검을 휘둘렀다.


그와 함께 다시금 쪼개진 사고가 가속. 모든 시야에 잿빛 권격이 순간순간 현현했고, 여휘와 천마의 검이 번뜩이며 그것을 받아내기를 반복한다.


그리 합을 나누며 백연은 간극의 틈새에서 생각했다.


‘통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압도적인 속도로 움직이던 권마의 형상이 점점 인지의 영역으로 수렴한다. 자령안으로 수십의 예측을 거쳐서야 간신히 반응할 수 있던 일격들이 이제 선명한 궤적으로 화해 나타난다.


명백히, 느려지고 있었다.


육신의 속도뿐만이 아니었다. 이 순간 허공을 따라 짓쳐오는 권격 궤적에 실린 힘. 그리고 찰나 찢겨나간 허벅다리가 재생되는데 걸리는 시간까지도.


계속된 연전과 만천화우를 비롯한 수많은 무공을 감당한 여파일까, 아니면 당소하의 독이 작용하기 시작한 탓일까. 아니면 그 모든 것 때문일까.


‘어느 것이던.’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 소년의 감각이 약속된 시간이 끝나감을 알리고 있었으니까.


‘조금만 더......’


그리 생각하며 검을 내치던 순간이었다. 압도적인 기세로 짓쳐오던 권격을 향해 검초를 짜내는 것이 숨쉬듯이 자연스러웠는데, 별안간 시야가 탁 트였다.


“......!”


그와 동시였다. 소년은 미친듯이 달아오른 상단전 통찰로 즉각 회전하며 몸을 돌렸고, 검선의 바로 뒤에 선 거한을 마주했다.


치이이이이익-


육신 전체를 따라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보신경으로 대기를 짓쳐나간 여파. 달궈진 육신이 뜨거운 열기를 훅 불어낸다. 거한의 신형이 한순간 극도로 가속한 까닭이었다.


“여기까지다. 귀찮은 늙은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이 보인다. 맹화를 한계까지 이끌어내 가속한 듯한 모양. 길게 뽑아내는 숨결이 흉포했는데, 지금 이 순간 검선의 목을 쥐어뜯을듯 떨어지는 손아귀도 그러했다.


그것을 인지한 즉시 백연은 생각하지 않고 걸음을 내딛었다.


화아아악!


한순간 흐릿한 광풍이 일었다. 다음 순간 소년은 검선의 등 뒤, 권마의 앞에 서 있었고.


“그럴 것 같더군.”


담담히 말한 권마가 찢어진 간극 속에서 좌수로 거대한 장법을 발현. 소년의 복부에 잿빛 장심(掌心)을 얹어냈다. 반응할 새도 없이 압도적인 힘이 실린 손아귀 아래에서 푸른 옷자락이 회광반조마냥 시리게 명멸.


쩌저저저저저정!


찰나지간 수십의 불티와 파문을 일으키더니, 곧바로 몸이 텅 비는 듯한 감각과 함께 성라청휘극의 마지막 빛이 사라졌다.


그의 옷자락이 감당할 수 있는 세번의 일격.


전부 소진했다. 이 순간 압도적인 탈력감이 온몸을 휩쓸었는데, 눈앞의 잿빛 거한은 그것을 알아차린 듯 간극 속에서 주먹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이런......!”


늙수레한 음성이 귓가를 스침과 동시에 검선이 쥔 여휘가 번뜩이며 시야 사선을 갈랐으나, 권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권격을 엮어내었다. 찰나지간 그의 어깻죽지를 반쯤 가르고 들어가 박힌 검선의 일격을 무시하면서였다.


“괴겁(壞劫). 묵강권(墨鋼拳).”


그와 함께 여태껏 한번도 본적 없는 묵빛 기운이 그의 주먹을 따라 현현. 한순간 주변을 감싸고 있던 수라진결의 잿빛 영역마저 그의 권격을 감싸고 휘어들었다. 그것이 움직이는 순간 대기를 따라 유리가 깨진듯이 연이어 일어나는 투명한 실금들이 찰나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초월자로써의 궁주가 지금까지의 백연 자신과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꺼내든 적 없는 일격초. 항거불능의 즉살(卽殺)을 위한 신공절학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그 순간.


키이잉-


기묘한 소리가 귓가를 저미는 것과 동시에, 소년이 감각하던 모든것이 일순 지워졌다.


[무량(無量).]


그와 함께 불현듯 눈앞에 솟아난 인영에게서 흘러나온 한없이 메마른 목소리가 낙엽처럼 떨어지며 귓가를 쓸어내린다. 그것은 단 두마디에 불과한 의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결(無缺)했다.


[만독(萬毒).]


그와 함께 사방의 대기가 별안간 묵직하게 짓눌리는 듯한 감각이 일었고.


거대한 죽음의 유성마냥 떨어지던 권마의 주먹이, 백연의 코앞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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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천살문 +6 24.06.01 2,092 5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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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휴식 +9 24.05.28 1,996 63 16쪽
271 검흔(3) +7 24.05.27 2,053 60 16쪽
270 검흔(2) +8 24.05.24 2,172 67 20쪽
269 검흔 +9 24.05.23 2,072 64 15쪽
268 천라방(2) +6 24.05.22 2,098 59 16쪽
267 천라방 +6 24.05.21 2,072 61 15쪽
266 천독(3) +7 24.05.20 2,024 62 15쪽
265 천독(2) +7 24.05.18 2,172 58 18쪽
264 천독 +7 24.05.17 2,043 64 15쪽
263 무극(無極)(3) +10 24.05.16 2,079 64 19쪽
» 무극(無極)(2) +6 24.05.15 2,103 62 22쪽
261 무극(無極) +10 24.05.14 2,102 65 20쪽
260 권마(拳魔)(5) +8 24.05.13 2,106 61 17쪽
259 권마(拳魔)(4) +9 24.05.11 2,189 63 18쪽
258 권마(拳魔)(3) +8 24.05.10 2,035 63 15쪽
257 권마(拳魔)(2) +6 24.05.09 2,067 60 16쪽
256 권마(拳魔) +6 24.05.08 2,152 64 16쪽
255 서주(4) +6 24.05.07 2,175 64 16쪽
254 서주(3) +7 24.05.06 2,149 65 14쪽
253 서주(2) +7 24.05.03 2,472 66 17쪽
252 서주 +7 24.05.02 2,406 64 17쪽
251 푸른 별(9) +7 24.05.01 2,219 6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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