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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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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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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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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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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예선(6)

DUMMY

검을 놓쳤다고 해서 비무가 중단되는 일은 없었다.


비무제전이 추구하는 바였다. 가능한 실전처럼.


백여년 전의 신교대전 이후 정파는 언제나 마교와 크고 작은 소요전을 벌여왔고, 몇십년 전에는 정마대전에 가까운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악귀나찰처럼 달려드는 마교의 무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싸움에 익숙해져야 한다. 뒷짐을 지고 격식을 차리며 싸우는 정갈한 대련으로는 불가능했다. 비무제전이 한쪽의 승복, 아니면 한쪽이 전투불능에 이르렀다고 판단되거나 또는 죽을때까지 치뤄지는 까닭이기도 했다.


헌위 또한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그가 해남파의 사해비천풍(四海飛天風)을 전력으로 전개하며 몸을 비튼 이유였다.


콰아아!


거친 파도같은 기파가 일었다. 흔들리듯 낭창하게 미끄러진 헌위의 신형이 자리에서 반바퀴 휘돌며 소홍에게 날렵하게 접근했다. 찰나지간 검격 권역을 지나치며 품으로 파고드는 몸놀림이 재빨랐다.


왼발을 축으로 돌고, 오른발로 진각을 찍어 돌진해 다시금 위로 올려치는 장법.


이어지는 무공 연계가 지극히 간결했다. 아래에서부터 솟구치는 장법을 본 소홍은 빠르게 뒤쪽으로 도약하며 좌수로 낙안권(落雁拳)을 흩뿌려 받아쳤다.


파악!


주먹과 손바닥이 부딪히고, 공중에 훌쩍 떠오른 소홍이 허공에서 한바퀴 뒤로 구르며 조금 떨어진 자리에 착지했다. 그러나 이어져 들어오는 연격은 없었다.


장법을 내치고 재빠르게 뒤로 물러난 헌위는 어느새 바닥에 나뒹굴던 검을 다시 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암화가 예선에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한번 만나보길 고대하고 있었소만.”


숨을 모아 천천히 내쉰 헌위가 피가 뚝뚝 흐르는 오른손을 무복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왼손으로 검을 쥔 채였다.


그의 말에 소홍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일합에 지고 싶어서?”


담백한 음성이 울렸다. 상대를 비꼬거나 하는 오만에 빠진 음성이 아니었다. 그저 사실을 여과없이 말한다는 듯한 평이한 태도. 본래였다면 불같이 화를 냈을 헌위였으나 지금은 그저 숨을 그러모을 뿐이었다.


“방금전의 일로 본인이 오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소.”


곤륜파의 무인과 붙는다는 것을 아까 확인했을때, 암화가 아니였기에 아쉬워했던 그였다. 곤룬파 무인들 중 이름께나 날리는 사람은 암화 백연밖에 없었으니까. 다른 이들의 실력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적당히 상대해 승리를 챙겨가려 했는데.


한합만에 그 생각이 깨졌다.


“적화검류를 꺼내게 만들어보라 했지. 최선을 다하겠소.”


화악-!


헌위의 자세가 바뀌며 기도가 일변했다. 왼손으로 검을 쥔 헌위가 허리를 곧게 펴고는 중단세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반수검(反手劍)이오. 모든 해남파 검법의 뼈대이자 기둥이지. 지금부터......”

“입으로 싸우게?”


소홍이 헌위의 말을 잘랐다. 검을 느슨하게 감아쥔 소년이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기파를 발끝에 휘감은 채로.


“검으로 말해.”


말한 직후였다. 소홍은 상대가 움직이길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새 발바닥 아래 켜켜이 쌓아둔 바람이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한순간 소년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전진했다.


발 아래 바람의 파도를 탄듯이.


동시에 경기장 위에 미세하게 굴러다니던 먼지들의 방향이 일제히 뒤바뀌었다.


보법 화신풍. 공간을 장악하고, 간합을 가져오는 것에 특화된 보법이다. 바람이 쌓일수록 더욱 더.


이미 첫번째 걸음을 내딛은 직후 잔존한 경파 자락을 발치에 휘감은 것이었다. 기다란 끈으로 경기장 위를 뒤덮듯이. 자연히 다음 움직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번에는 아주 찰나동안 헌위의 균형을 미세하게 뒤트는 것으로 그 효용을 드러내었다.


“무슨 움직임이 사마외도(邪魔外道)의 것 마냥......!”


휘릭!


반수검이라 말했던가. 요상한 방향으로 휘어진 헌위의 검격이 경기장 위를 스치듯 질주하는 소홍의 사선으로 베어져 들어왔다. 검날이 기묘하게 기울어진 것이 정석적이지 않았다. 정직한 방어를 펼친다면 받아내기 어려울 검격.


입으로 욕지거리를 뱉으며 검을 내치는데, 그 기세가 파도처럼 강렬했다. 허나, 동시에 헌위의 하체는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만큼 미세하게 무게중심이 뒤틀려 있었다.


오로지 소홍만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가 의도적으로 행한 짓이었기에.


‘힘은 안돼.’


단순히 힘으로 맞대는 검격은 부족하다는 것은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정면으로 검을 맞댄다면 소홍은 무진과 단휘는 물론이요, 설향이나 연비와 비교해도 힘에서는 밀리고 말 것이다.


타고난 것이 그랬다. 키도, 몸집도, 근력도 전부 어느 시점부터 자라지 않았다. 살수로써는 재능이나, 무인으로써는 아니었다. 강한 근골은 그 자체로 무인의 장점이 되니까.


다만, 그 대신 소홍은 다른것에 강점이 있었다.


오른발로 진각을 밟으며 검을 가볍게 찔러넣는다. 허나 그 방향이 헌위의 몸을 향해서가 아니었다. 뱀처럼 구부러져 들어간 소홍의 검끝이 사선으로 꺾여들어오던 헌위의 검면을 정확히 후렸다.


휘릭, 텅!


맑은 소리와 함께 베어들어오던 검격이 스치듯 비껴나갔다. 본래라면 받아치기는 어려웠을테지만, 무게중심이 뒤틀린 상황에서는 달랐다. 저리 된 이상 아주 조금의 힘만 실어줘도 본래의 검로(劍路)에서 쉬이 벗어나기 마련.


귓가에 예리한 칼날이 스치는 것 같은 섬뜩한 감각이 지나쳤다. 그러나 소홍은 개의치 않고 그대로 파고들었다. 왼발을 축 삼아 반바퀴 회전하면서였다.


어느새 찔러넣었던 검을 회수하며 횡격으로 내치는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헌위도 쉬이 당해주지는 않았다. 튕겨나간 검을 번개같이 당겨 회수하며 소홍의 검격 앞에 방어초를 끼워넣는다.


그 반응 속도와 힘, 예리함 모두 뛰어난 무인의 것이었다. 공격한 것이 파훼되고 역공을 당했음에도 뛰어난 방어초를 펼치는 모습이 그랬다. 제대로 먹혀들어간다면 한번에 소홍의 공세를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


“막았......음?”


횡격으로 무섭게 잘라들어오던 검이, 문득 꽃잎처럼 흩어졌다. 헌위는 자신이 내친 방어초에 걸려드는 감각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허초?’


헌위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그제서야 땅에 닿을듯이 자세를 낮춘 소홍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함께 우하단에서부터 사선으로 치고 올라오는 검격도.


피잇!


찰나지간 헌위가 억지로 몸을 비틀었다. 동시에 그의 오른 어깨에 화끈한 감각이 스쳤다. 황급히 보법을 펼친 헌위가 어깨의 통증을 무시하면서 왼편으로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허나 소홍은 그가 회복할 틈을 주지 않고 따라붙었다. 오른손에 느슨하게 쥔 검을 연속해 휘두르면서.


챙! 채앵! 쩌엉!


검광이 번뜩일때마다 귀청을 울리는 소음이 터져나왔다. 전부 지극히 짧았다. 소홍의 검이 결코 길게 힘을 겨루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외려 가면 갈수록 속도를 더하는 쾌검과, 동시에 어느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허초와 변초의 향연.


‘우하단? 우상단? 좌중......’


황급히 검을 틀어 간신히 연격을 막아낸 헌위가 구르듯 뒤로 물러났다. 찰나지간 호흡을 벌기 위해 각법을 차올리면서였다.


파악!


허공에서 북터지는 소리가 나며 각법 여파가 퍼져나갔다. 강렬한 기파가 실린 공격에 소홍이 검격을 끊으며 잠시 물러나게 만들 정도였다.


“하아, 하.”


그 사이 뒤로 굴러 재빨리 거리를 벌린 헌위가 소홍을 노려보았다. 어느새 정갈했던 청년의 머리칼은 풀어져 흩어져 있었고, 검격에 베인 어깻죽지에서는 핏물이 새어나와 무복을 진하게 적시고 있었다.


반면, 소홍은 여전한 무표정으로 헌위를 응시하고 있었다. 호흡도 별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투명하리만치 새하얗던 뺨에 열기로 인한 옅은 홍조가 새겨진 것을 제외하면 그랬다.


“검이, 사이하군.”


호흡을 몰아쉬며 내뱉는다. 감정이 실린 음성에 소홍이 반응했다.


“그쪽이 할말?”


방금 소홍이 파훼한 검격. 반수검이라고 들은 해남파의 무공은 지독한 살검이었다. 검날을 기울이고, 부러 좌수(左手)로 펼치는 것부터 그러했다. 본디 무인들은 기본적으로 우수검에 익숙하기 마련인데, 갑자기 좌수검을 상대하게 되면 처음에는 당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 당황이 목숨을 앗아갈 때도 많다.


목숨을 건 실전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검이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상대를 해하기 위해 구도가 짜여 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나, 저쪽에서 사마외도 운운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청해는 사마외도의 땅이라더니.”


그러나 이미 헌위의 귀에 소홍의 말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검을 치켜들며 제 할말만 하는 모습이 그랬다. 어느새 공대도 놓아버린 말투로.


“본래는 아껴두려 했건만, 이 자리에서 보여주지. 남해삼십육검(南海三十六劍)이다.”


말하며 온몸에 기파를 휘감는다. 묵직한 기세를 뿜어내는 헌위의 모습을 보며 소홍이 호흡을 뱉었다.


“너무 시끄러워.”


자연스레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검을 왼손으로 바꿔잡으면서였다. 한순간 그것을 마주한 헌위의 눈이 살풋 커졌다.


소홍은 태연히 검을 쥐며 감각을 가늠했다.


“좌수검. 기본이야.”


덧붙이는 목소리가 봄바람처럼 가냘펐다.


“곤륜에서는.”


백연은 검격을 내치는 와중에도 우수와 좌수를 바꿔가며 검격을 펼치더랬다. 그 모습이 가히 검에 미친 검귀(劍鬼)와도 같았다. 그에 비하면 소홍 자신이 펼치는 것은 어설프지만.


‘전부 배웠으니까.’


생각을 삼키며 소홍이 걸음을 내딛었다. 화신풍 바람 조각을 발끝에 이은채로.


화아아악-!


한순간 소년의 신형이 공간을 격하듯 전진했고, 동시에 반응한 헌위가 섬전같은 속도로 검격을 내쳤다. 그러나 어느새 그 앞에 다다른 소홍의 눈에서는 어느새 자색 안광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동시에 소홍이 쾅-하고 진각을 내리찍자 바람이 부풀어 오르듯 터져나왔다. 화신풍으로 그러모은 바람 바람결이 한번에 흩어져 나온 것이었다.


자령안으로 검로를 읽음과 함께 보법 여파로 간섭했다. 바람결에 헌위의 상체가 떠밀리며 검격 궤적이 또다시 미세하게 틀어졌다. 그와 함께 꽃잎처럼 흩어진 소홍의 오른손이 헌위의 왼손목을 거세게 후려 검격을 단번에 파훼하고.


동시에 헌위의 코앞에 파고든 소홍이 여상한 손놀림으로 검을 휘둘렀다. 기묘하게 기울어진 검날이 번뜩이며 허공을 잘라내었다.


파악!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일었다. 그리고 잠시 두 사람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소홍의 검은 헌위의 목덜미 앞에 우뚝 멈춰서 있었다. 예리하게 일어선 날이 살갗에서 한뼘도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 서늘한 기파를 흘렸다.


“......반수검을?”

“아니. 형(形)만 비슷한거야.”


소홍이 담담히 답했다. 직후 헌위가 입매를 일그러뜨리더니 중얼거렸다.


“졌소.”


소홍이 가볍게 검을 거두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제서야 먹먹하게 가라앉았던 주변의 소음이 느릿하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직 대전이 끝나지 않은 양 옆의 경기장에서 병장기가 맞부딪히는 소리. 진각의 진동과 고함. 객석에서 울리는 감탄과 갖가지 감정들의 울림까지.


그러나 소홍은 여전히 안법을 일으킨채로 시선을 돌렸다. 무대 아래 저편에 다같이 모여앉아 있는 소년 소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곤륜파 아이들이었다.


그 중 가장 앞에 앉아 턱을 괴고 그를 쳐다보는 소년이 있었다. 생긋 웃음짓는 백연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소홍은 입가에 미소를 걸어냈다.


직후.


[해남파의 헌위 대 곤륜파의 소홍의 대전은, 소홍의 승리로 끝났음을 알리겠소.]


우우웅-


무당검선의 묵직한 음성이 사방을 울렸다. 비무제전 예선의 첫 승자가 나왔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름이었다.



※※※



일대 파란이 일었다.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커다랬다.


소홍이 가벼운 걸음으로 경기장에서 내려가고, 피가 나올만큼 입술을 깨문 헌위가 한참이나 그 위에 가만히 남아있다 터덜터덜 내려간 뒤에도 그랬다.


감탄이나 경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것은 예상을 어느 정도 벗어났을 때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소홍? 소홍이 대체 누구요?”

“마지막에 헌위가 펼친 검격을 봤나? 해남파 남해삼십육검이야. 절초를 펼치려 했는데, 검을 끝까지 뻗어보지도 못하고 봉쇄 당했어.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당장 곤륜파의 장문인께서 어디 계신지 수소문 해라. 구중상회의 회주가 한번 뵙고 차 한잔이라도 나누고자 한다고......”


예상을 벗어난 것도 모자라, 아예 일어날 것이라고 상정조차 해본적이 없는 상황.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도.


소홍이 이길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극히 소수의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해남파는 나름 규모가 있는 문파였고, 그 세력도 약하지 않다. 특히 싸우는 방식이 극히 까다로우며 그중에서도 헌위는 일전 비무제전때 뛰어난 성적을 거둔 무인.


어느 방면에서 보아도 소홍의 승리는 이변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경기의 내용은 그 결과보다도 더욱 충격적이었다.


“압도? 아니, 압도라 하기에도 이상했소. 차라리 그보다는......”

“기묘하게 싸우던데.”

“마치 잘 다듬어진 살수를 보는 것 같기도 했소이다.”

“움직임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네. 제대로 무공을 겨뤘으면 헌위가 이겼을만도 한데.”


제각기 방금 자신이 본 것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논평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어떤 공방이 오갔는지도 쉬이 알아채지 못했으니까.


반면.


“......헛소리들 하는군. 제대로 겨루면 뭐라? 시종일관 깔끔하게 박살냈는데, 버러지들은 눈도 버러지인가.”

“다 네놈같은 안법을 가진게 아니다만.”


객석의 위였다. 높은 자리에 걸터앉아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던 당소하와 팽악이었다. 직전 소홍과 헌위의 경기에 대해서 논하는 중이었는데, 아직 끝나지 않은 다른 두곳의 경기에는 신경을 하나도 쓰지 않고 있었다.


“안법의 문제가 아니지. 그냥 인정하기 싫은거다. 저 조그만 녀석이 해남파 놈을 찍어눌렀다는걸.”

“그건 부정할 수가 없겠군.”

“애초에 불꽃은 꺼내게 만들지도 못했잖나.”


팔짱을 낀 팽악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검 정도는 받아봐야 정신이 확 들텐데 말이지.”

“흐음. 네놈이 처맞아봐서 하는 이야기인가?”

“그 검법은 상승무공이다. 불꽃, 파도 둘다.”


팽악은 당소하의 말에 퉁명스레 답하면서도 부정하지 않았다. 당소하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오호단문도의 초식이 적화검류의 불꽃 한자락에 찢겨나갔을때 얼마나 당황했던가. 그 뒤로 오랜 기간 그 형태와 기세를 복기했다.


지금에 와서는 그 장점과 단점을 줄줄 읊을 정도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놀라운 검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뭐, 검법 이전의 문제였으니 말이다.”


당소하가 말했다.


“소홍이라. 백연이 말하길 유독 독특한 방향성으로 무공을 발전시키는 사형이라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군.”

“보통 담대한게 아니야. 감정 동요가 없나?”

“모르지. 하지만 첫번째 검격 파훼......”


당소하가 소홍이 내려간 자리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처음 반수검을 파훼하던 소홍의 움직임이 다시 재연되는 중이었다. 보법 여파로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려 힘을 줄이고, 정확히 검격의 힘이 뻗어나오는 점을 검끝으로 찔러 공격을 끊어내는 신기(神技).


극히 섬세한 감각과 속도, 그리고 침착함과 담대함이 없으면 불가능한 기예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당소하가 단언했다. 그의 말에 팽악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는 전혀 상극이군.”

“그렇겠지. 네놈은 몸뚱아리가 전부고, 저기는 몸뚱아리만 없으니.”

“네놈은 혀가 독이다. 재수없는 꼬맹이나 너나 아주 끼리끼리 잘 어울려.”


쯧, 하고 혀를 찬 팽악이 이윽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확실히 비슷하다. 저 싸움 방식은 익숙하지 않나.”

“그래. 백연과 가장 닮은듯 한데.”


당소하가 동의했다. 분명 소홍의 움직임은 백연과 매우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그 싸움 방식 자체가 그랬다. 백연 본인도 일전 당소하에게 몇번 언급한 적이 있었다. 소홍은 그런 활용도 면에서 단연코 독보적인 사람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저 안법. 자령안이라고 했지? 저것까지 가르쳤을 줄은 몰랐군.”

“저것. 괴랄한 공능이다. 그때도 저 안법 덕에 목숨을 건졌으니.”


팽악이 과거를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그가 알기로 자령안은 투로를 예지에 가깝게 인지시켜주는 감각의 무공. 그를 통해 금원방주와의 싸움을 진두지휘했던 백연이다. 저런 신공을 벌써 타인에게 전해줄 수 있다니.


“저놈만 배웠을리는 없겠지.”

“그야 당연할거다. 단휘는 아마 익혔을 것이고, 나머지도 가능성이 높지.”


답한 당소하가 아래로 시선을 던졌다. 저 멀리, 경기장 아래 너머에 모여있을 곤륜파의 무인들과 백연.


“......정말 전부 괴물들을 만들려 하는건가.”


백연이 어디까지 주변 무인들을 강하게 만들어 놓았을지가 궁금했다. 앞으로 오늘 하루동안 남은 세 번의 곤륜파 무인들의 대진.


첫날의 인상으로 많은것이 결정된다. 과연 이 시험대에서 곤륜파는 얼마나 많은것을 거머쥐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전부 이길지도 궁금하군. 심지어 마지막은 형산파 송엽이다. 놈은 강해.”

“그야 간단한거 아닌가? 안봐도 뻔하다.”

“뻔하다니. 어디가......”

“당연히.”


팽악이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어느새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곤륜파의 전승(全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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