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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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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모노케로스
작품등록일 :
2020.05.14 12:56
최근연재일 :
2020.09.11 08:10
연재수 :
194 회
조회수 :
13,590
추천수 :
382
글자수 :
708,088

작성
20.08.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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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텔로스를 향해(34)

DUMMY

생토니스는 가죽 포대를 보고 자신이 주문했던 피를 떠올렸다. 그 귀한 걸 잊었군. 생토니스가 옆을 보며 말했다.


"중요한 걸 상기 시켜주어···"


옆에 있던 헤파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생토니스가 두 번 눈을 깜빡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기차역을 나오자 한 사내가 그에게 다가왔다.


키가 컸고 안색은 좋지 않았다. 그가 먼저 말했다.


"검은 판초, 모노케로스 가문에서 오신 분 맞으십니까?"


"그렇다. 넌 누구냐."


"저는 번개 치는 바위 가문의 로치라고 합니다."


생토니스가 적대 가문이란 말을 듣고 얼굴을 찡그리며 째려봤다. 사내는 생토니스의 표정을 보고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데이슨의 자식이 나에게 무슨 볼일이냐."


"전언입니다. 결투를 위한 준비가 끝나지 않았으니 이 틀 정도 저희 집에서···"


생토니스가 콧방귀를 뀌었다. 로치는 그의 태도에 말을 멈췄다. 고개를 떨구고 눈길을 피했다. 그는 웅얼거리며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생토니스가 말했다.


"지금 나보고 원수의 집에 묶으라고 권유하는 게냐."


로치가 천천히 끄덕였다. 생토니스는 그의 대답에 호통치고 싶었다. 그의 소극적인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로치 자신도 해괴한 소리인지 잘 알았다. 그렇기에 생토니스의 반박에 대답하지 못했다. 로치는 쭈뼛거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한숨을 쉬고 싶은지 코로 깊게 숨을 모았다.


로치는 이 모든 걸 내퍙개치고 싶었다. 어차피 모노케로스는 질 게 뻔했고 데이슨은 승승장구하며 후손들을 겁박하겠지.


그는 자신의 비밀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오직 최고의 대장장이에게 모든 걸 물려준다고 했다. 로치가 보기엔 거짓말이었다. 그의 밑에서 가르침을 받던 중 도망치면 목숨을 앗아갔다. 그 누구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오래전 단테라 불린 사내가 남긴 글 떠올렸다. 이곳에 들어온 자 희망을 버려라. 로치는 그 말대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타올라야 할 희망을 저버렸다. 로치가 말했다.


"당신이 오지 않으면 데이슨이 절 죽일 겁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가 듣던 듣지 않던. 언젠간 일어날 미래였다. 생토니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죽인다고? 고작 사람 하나 데려오지 못한 게 무슨 죄인가. 생토니스가 말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되나."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일어날 일이죠. 거절하는 거로 알고 전 죽으러 가겠습니다."


로치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여 인사를 했다. 그 검은 돌덩이에 맞아 죽을까? 오래전 함께 도제로 들어온 데이빗이란 친구를 떠올렸다. 그 데이빗은 데이슨의 말에 토를 달았단 이유로 눈앞에서 맞아 죽었다. 그때부터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지만, 때는 늦었다.


그는 쓸쓸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이 별거 없는 대장장이의 삶이 끝날 시간이 왔을 뿐이다.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걸어갔다. 눈물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그는 마을 번화가를 지나쳐 마을 중심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오래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은 대장장이들의 집이 즐비했다. 그중 흙으로 벽을 쌓은 오래된 집이 보였다.


그는 터벅거리며 나아갔다. 이제 곧 삶이 끝난다. 고통이 얼마나 지속될까. 데이빗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는 데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보다 짧기를 바랬다. 불구덩이에 자신을 집어넣지 않기를 바랬다. 그는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젊은 하녀가 그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바깥엔 잘 다녀오셨나요?"


"네. 바구니를 든 걸 보니. 나가시려나 보군요."


"물건 좀 사 오라고 하시네요."


"그럼 다녀오세요."


로치가 말을 끝내고 주위를 봤다. 철을 두들기는 소리를 제외하고 고요했다. 마당에 어떠한 식물 한 포기도 보이지 않았다. 황야와 다르지 않았다.


회전초가 그의 발치로 굴러왔다. 얇은 나뭇가지가 둥근 형태를 유지했다. 로치는 애꿎은 회전초를 발로 차고 벽돌을 깔아 만든 길을 따라 걸었다. 마당에 일직선으로 뻗은 돌길은 현관으로 직행했다.


현관 입구와 낮은 턱 사이의 벽 위에 모루와 망치가 그려진 나무판이 흔들렸다. 문을 두드리고 로치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카펫을 깐 복도가 보였다. 다섯 명이 넓게 퍼져 걸어도 자리가 남을 정도로 거대한 복도였다. 왼편으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돌계단이 보였다. 계단 옆에는 식탁이 보였다. 하녀들이 분주하게 음식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녀들의 음식은 더울수록 소금기가 많이 낀 음식을 많이 냈다. 프레첼과 같이 짭조름한 음식들이 자주 나왔다. 아침과 점심땐 일을 해야 하니 술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다. 그 탓에 좋은 안주를 눈앞에 두고 침을 삼켜야 했다.


몰래 술을 마시다 걸리면 어떻게 됐더라. 술잔으로 두들겨 맞던가? 로치는 잠시 식탁을 쳐다봤다. 한 하녀가 그를 보곤 미소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하녀의 눈치를 보며 식탁 위에 올려둔 프레첼을 하나 집어왔다.


"로치씨. 하나 드실래요?"


"아니요 괜찮아요. 바로 데이슨에게 가야되거든요."


아쉽다는 듯 하녀는 프레첼을 식탁으로 돌려보냈다. 하녀가 식당으로 돌아갔다. 로치는 복도를 따라 길게 걸어갔다. 계단을 지나 창고 문을 지나갔다. 길게 뻗은 복도 끝의 방문 앞에 섰다. 로치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문 앞에 섰던 첫날을 떠올렸다.


데이슨이란 불멸의 대장장이에게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니. 이런 큰 명예가 어딨냐며 들뜬 아버지가 먼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란 소리에 문을 열었다. 데이슨은 의자에 기대어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형식적인 악수를 하고 아버지께서 자신의 아들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데이슨은 로치에게 다가왔다. 손을 잡고 아직 자라지 않은 팔과 근육을 만져보고 말했다.


"어린아이치곤 괜찮군. 정말 내가 스승이 되어도 좋나? 자네도 알겠지만 난 험하게 가르치거든."


아버지가 답했다.


"강철은 언제나 혹독함을 버티고 단단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데이슨은 만족하여 큰 소리로 웃었다. 그렇게 데이슨의 제자가 되었다. 그때 애원했어야 했는데. 명예라는 이름의 허세 가득한 자가 아닌. 한평생 모루 앞을 떠나지 못

한 아버지께 교육받고 싶다고 서럽게 울었어야 했는데···


문을 두드렸다. 데이슨이 말했다.


"들어와."


데이슨이 짧게 말했다. 문을 열자 데이슨이 왼손에 술잔을 들고 오른손 검지로 탁자를 두드렸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봤던 오케스트라의 합창을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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