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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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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모노케로스
작품등록일 :
2020.05.14 12:56
최근연재일 :
2020.09.11 08:10
연재수 :
19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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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8,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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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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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텔로스를 향해(32)

DUMMY

귀네볼로스가 의자에 앉자 생토니스가 말했다.


"무슨 일이지."


"제 사칭을 한 여자의 최후에 대해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굳이 내가 알아야 하나."


"사이가 좀 더 돈독해져 보자는 의미죠."


귀네볼로스가 미소짓고 말했다.


"이름은 필즈라더군요. 악켄하르트 빈민굴 출신이고 공작님을 덮치려던 이유는 황당하게도 악마가 자신에게 시켰답니다."


생토니스는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귀네가 말하도록 내버려 뒀다. 붉은 머리의 여인이 말했다.


"머리카락을 밀고 이빨을 하나 뽑으니 알아서 술술 불더군요."


귀네는 지하에 만들어둔 자그마한 고문실에서 소리 지르던 필즈를 떠올렸다. 머리카락을 모두 밀어버렸을 때는 울었다. 이를 뽑자 괴성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했다. 마음 같아선 혓바닥을 잘라 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사건을 듣지 못할 테니 혀는 남겨두고 양손의 중지와 검지를 잘라줬다. 귀네볼로스가 말했다.


"그리고 재미난 소리를 했습니다. 악마는 보기와 다르게 조급해하고 있다고요. 약속을 이행 못할까 봐 노심초사한다고."


생토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만난 오데스는 조급해 보이진 않았는데. 귀네가 말했다.


"전 무슨 소리인가 했죠. 발가락을 자른다고 위협하니 그것도 말해줬어요. 절대 핏줄이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죠. 무슨 거래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 뒤론 혼자 오락가락해서 자세히는 모르겠네요."


"거래라···"


생토니스는 환상을 통해 본 거래를 떠올렸다. 다이모니 오데스와 데이슨의 거래. 그러나 두 아들도 아버지가 지독히 고통받기를 원했다. 게라스코가 보여주지 않은 걸까. 그가 모르는 내용인가? 생토니스가 신음하며 고민했다.


귀네볼로스는 생토니스의 고뇌의 탄식을 듣고 만족했다. 자리에서 일어났고 생토니스가 그녀를 배웅했다. 마지막으로 마차에 오르며 귀네가 말했다.


"이 일로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됐으면 하네요."


"친구는 많을수록 좋지."


"조만간 한 번 더 놀러 와도 될까요?"


"편한 대로 하거라."


확답을 들은 귀네볼로스는 만족하며 그곳을 빠져나갔다. 큰 문제점은 없어 보였다. 그놈의 결투 때문에 단명하는 걸 제외하면, 생토니스는 매력적인 신랑감이 확실했다. 다음번에 올 땐 여동생을 데려와 눈이 맞게 만들어야지. 유일한 불안 요소는 카사네라는 계집이었다.


그 사이 둘이 눈이 맞으면 곤란한데. 적당히 눈치라도 줬어야 했나? 귀네볼로스는 혼자 고민하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생토니스는 손님이 많이 남지 않기를 바랬다. 2층 난간에서 배웅하는 걸 지켜보던 알렉스가 계단을 내려왔다. 그가 걷는 소리에 공작이 뒤로 돌아봤다. 알렉스가 다가오며 말했다.


"저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다음번엔 여행 다녔던 이야기를 꼭 좀 해주시죠."


"약속하마."


알렉스도 마차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생토니스가 서재로 돌아갔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눈이 피로했고 지쳤다. 그런데도 뱃골은 배고픔을 호소했다. 그는 무시하며 의자에 기댄 채 잠들었다.


그가 조용히 자는 동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자 문이 열렸다. 카사네였다. 반쯤 열린 문에 얼굴만 내밀고 안을 살폈다. 생토니스가 자는 걸 보곤 발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들어왔다.


코도 골지 않고 조용히 자는 그를 관찰했다. 카사네가 방으로 들어와 그에게 다가갈수록 달콤한 향을 맡았다. 발퀘레디움도 냄새를 맡고 뭔가 이상하다 느꼈다. 사내의 땀 냄새가 달콤할 리 없는데?


카사네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냄새에 이끌렸다. 발퀘는 일부러 카사네의 코를 이용해 냄새를 맡았다. 이번엔 사내의 시큼한 땀 냄새가 났다. 발퀘가 냄새에 집중하자 미세하게 다른 향이 났다. 이건 무슨 냄새지? 처음 맡는 향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재료를 이용해 만든 듯 향이 코를 자극할 때마다, 콧속 털이 쭈뼛하며 세워졌다.


카사네의 다리가 움직이며 어느새 책상에 손을 얹었다. 갑작스레 생선 비린내가 얼굴을 찡그리게 했다. 발퀘가 카사네의 머리에 소리쳤다.


"냄새가 이상해!"


그 소리에 카사네가 놀라서 어깨를 들썩였다. 그 탓에 책상이 조금 흔들렸다. 카사네가 발퀘에게 말했다.


"뭐가 이상하단 거야."


"사내놈이 향수도 안 뿌렸는데 땀내가 달콤하다고? 이상하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왜 계속 냄새를 맡고 싶어지지?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녀가 책상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 오데스가 무슨 짓을 꾸민 거라면 표식이 남을 텐데. 카사네와 발퀘가 주변을 둘러보며 몸을 조금 숙였다.


둘은 어느새 냄새에 이끌려 책상 서랍에 가까이 갔다. 책상 서랍 주위에 다가가 냄새를 맡았다. 카사네는 냄새에 취해 서랍을 열었다. 그 소리에 생토니스가 잠에서 깼다. 자신 옆에 누군가 있음을 깨닫고 눈을 조금 뜨고 곁눈으로 옆을 쳐다봤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카사네가 자신의 서랍에 손을 뻗고 있는 광경을 봤다. 생토니스가 눈을 감고 몸을 뒤척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계속 손을 뻗었다. 생토니스가 하품하며 머리를 돌렸다.


카사네와 생토니스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놀라서 뒷걸음질하던 중 책장에 부딪혔다. 충격에 책들이 흔들렸고 높은 곳에 쌓아둔 책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생토니스가 재빠르게 일어섰다. 조심하라 외치며 왼쪽으로 발을 뻗었다. 그 탓에 책상 서랍에 발이 걸렸다. 생토니스의 몸이 바닥을 향해 급격히 쏠렸다.


카사네는 그것을 보며 손을 뻗으며 앞으로 점프했다. 강렬한 소리와 함께 책장에서 책이 쏟아졌고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카사네는 바닥을 향해 누웠고 그 위에 생토니스가 얹혀 있었다. 그녀의 파인 등에 보이는 피부는 너무나 부드러워 보였다.


카사네는 재빠르게 갑옷으로 몸을 반쯤 가린 덕에 큰 부상은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 아저씨 일단 좀 나와줄래요."


생토니스가 일어서며 말했다.


"고맙구나."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며 말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네."


그녀는 대답을 흐렸다. 대체 왜 편지에 홀린 걸까. 생토니스는 그녀의 드레스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그러던 중 손이 그녀의 다리에 닿았다. 둘 다 피부가 맞닿은 곳에 전기가 통하듯 짜릿했다.


카사네가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그, 손님들이 가셨다길래. 와 본 건데. 무슨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서요."


그녀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서랍을 가리켰다. 쿼커스가 준 편지가 보였다. 생토니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쿼커스 그 양반이 뭔 짓을 한 거겠지."


그는 편지 봉투를 들고 살짝 냄새를 맡았다. 딸기향이 났다. 불길하게 생각하며 그가 서랍에 던져넣으며 말했다.


"그래, 다치진 않았고."


"네. 전 건강한 거 빼면. 시체거든요."


카사네의 양손이 드레스의 부드러운 치마 주위에서 흔들렸다. 생토니스가 천천히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겠구나."


그녀의 방황하는 손과 총잡이의 손이 맞닿았다. 손끝이 그녀의 팔목과 손가락을 지나 손바닥에 닿았다.


"아름다운 손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예쁘긴요."


"예쁘다."


그는 간결하게 답하고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


"그 옷도 잘 어울린다."


그는 말을 끝내고 방을 나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이 알버트와 사르와 함께 하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좀 더 쉬고 저녁 때 보자."


말을 끝내고 생토니스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는 그녀와 있을수록 계속해서 끌렸다. 더욱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떠오르는 데로 시를 읊어주고 싶었다.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마음 한켠으로 이 모든 건 결투 뒤로 미뤄야한다며 거부했다.


넷이 저녁을 함께 먹었다. 알버트는 처음으로 자신의 성을 말했다.


"이제 종종 불러줄 땐 브렉펄트양이라고 불러줘야겠네요."


그 말을 듣고 카사네가 말했다.


"그, 브렉펄트면 혹시 루카리엔이 사람일 때 싸우다가 허리를 다치게 했다는 기사 아니에요?"


"네. 그게 저희 선조 님이에요. 전 그런 괴력 있는 사내는 아니니. 걱정 마세요."


그 얘기를 끝으로 브렉펄트 부부는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며 퇴장했다. 두 사람만 남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고기 써는 소리만 들렸다. 생토니스는 이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카사네도 그렇게 생각하고 둘 다 동시에 이름을 불렀다.


생토니스는 그녀에게 먼저 말하라고 했다. 카사네가 말했다.


"정말 저 예뻐요?"


발퀘가 한숨을 쉬었다.


"고작 묻는 게 그거냐."


생토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요?"


생토니스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그녀의 눈망울을 보곤 입을 열었다.


"나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


생토니스가 칭찬할수록 마음속 깊이 잠잠하던 감정의 수면이 흔들렸다. 발퀘는 그 탓에 그녀의 머릿속에 쏟아지는 생각을 모조리 들었다.


그러나 저녁 이후 둘은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생토니스가 지쳐서 먼저 자러 간 탓이었다.


다음 날 새벽녘에 생토니스는 브렉펄트 부부를 마중해주었다. 그들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것을 보며 자신도 곧 결전을 치뤄야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일은 열차를 타야 했다.


아침을 먹으며 카사네에게 그 얘기를 했다. 그녀는 놀라서 말했다.


"그럼, 저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네요."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생토니스가 말했다.


"원한다면 내가 없는 동안에도 이곳에 있어도 좋다."


카사네는 그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생토니스가 말했다.


"장담컨데 일이 끝나면 가장 먼저 너를 보러오겠다."


카사네가 침을 삼켰다. 입이 바싹 말라버렸다. 이거 싸움에서 이기면 청혼하겠다고 하는 막 그거지? 그거잖아! 발퀘가 그 소리에 짜증을 내며 말했다.


"바보야. 나한테 광물 가져다주기로 했잖아."


카사네가 말했다.


"저한테 그 광물 주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렇다."


생토니스의 간결한 한마디에 카사네의 머릿속 꽃밭은 산산이 박살났다. 헛물켠 내 잘못이야. 자신의 잘못을 혼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은 둘 다 별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생토니스는 자신의 방에 앉았다. 무엇을 해도 먼저 한숨이 튀어나왔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그의 생각을 잠식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의 양손이 떨렸다. 사무치게 외롭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끝날지도 몰랐다. 자신이 한 모든 일이 후회스럽게 느껴졌다. 그럴수록 생토니스는 눈을 감고 선조들이 남긴 글을 되새겼다.


나는 모노케로스다. 괴물 앞에서도 당당했던 위대한 자의 후손이다. 그렇게 뼛속까지 흔드는 두려움에 반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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