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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가위 님의 서재입니다.

루시퍼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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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가위
작품등록일 :
2023.06.15 18:07
최근연재일 :
2023.07.09 21:14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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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68

작성
23.07.0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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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DUMMY

9승 3무 8패.


스코어만 놓고 보면 간신히 이긴 것 같지만, 사실은 이쪽의 계산대로 진행된 것이니 완승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게임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지만,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검은 정장의 남자는 딱딱한 말투로 우리의 승리를 선언하고는 1차전이 끝났으니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 점심 시간까지 대기하고 있으라며 우리를 방에서 내쫓아버린다. 1승에 대한 기념으로 상장이라도 주길 바랐던 것은 아니지만, 이래가지고선 이겼다는 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뭐, 할 것도 없으니 점심 시간까지 잠이나 자볼까?"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광채는 침대에 벌렁 누워버린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이상하게 피곤했던 지라 나도 그를 따라 침대에 눕는다. 일단 하루 종일 게임을 해야 하고, 다음 종목이 뭔지도 모르니 최대한 체력을 지켜두는 게 좋겠지.


누워서 지금 상황에 대해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도무지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이거야 원, 월드컵 조별 리그 1차전이 끝났을때보다 더 긴장감이 없군.


혹시, 내가 크게 착각을 하고 있는 건가? 예를 들어서, 이것은 모두 비밀리에 제작중인 TV방송국의 프로그램이고, 그렇기때문에 보안을 철저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발상은 어떨까?


안 돼. 안 돼.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왜 자꾸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려 들고 있지? 점점 머리가 어떻게 되어가는 것 아닐까?


"잠깐, 저 좀 볼까요?"


그때 옆자리의 여자가 내게 말을 건다. 뜻밖이군.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는데···.


"뭐지?"


일단 몸을 일으킨다. 그러자 그녀는 문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밖에서 이야기 하자는 뜻인가? 침대에서 일어나자 그녀는 따라오라는 말도 없이 문 밖으로 나가버린다.


"이야. 제법인데? 언제 그런 사이가 된 거야?"


밖으로 따라나가는 나를 향해 광채가 히죽거리며 말한다. 잠이나 잔다더니 반응도 빠른 녀석이다.


대응할 기운도 없어서 나는 그저 고개를 흔들며 밖으로 나간다.


복도로 나가보니 그녀는 말도 없이 휘적 휘적 걸어가고 있었다. 정말 나를 부른 건 맞긴 한지 의문이 떠오를만한 상황이다.


복도 끝까지 걸어간 그녀는 주저없이 커피 자판기의 버튼을 누른다. 처음부터 여기로 올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돌아다녀도 괜찮은 건가? 방에서 대기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건물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에요. 안 그랬으면 벌써 사람이 와서 막았거나 방송으로 주의를 주었겠죠."


그녀는 복도에 촘촘하게 설치되어 있는 CCTV를 가리키며 말한다. 하기야, 문제있을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주의를 주기라도 하면 그때 돌아가면 되는 일이니까.


커피가 다 나온뒤 그녀는 컵을 뽑아들고, 내게 내민다. 나는 영문도 모른채 받아든다.


"마셔요."


"뭐? 그쪽은?"


"전 커피를 안 마시거든요."


나 마시라고 뽑아준건가? 곤란한 일이군. 그리고 난 아메리카노는 별론데 왜 하필···. 게다가 자판기 커피니까 그냥 맛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블랙 커피겠지.


커피를 안 마시면 율무차도 있고, 레몬차도 있고, 홍차도 있는데···굉장히 호화로운 자판기로군. 어쨌든 다른 것도 많은데 말이다.


"우선 앉죠."


그녀는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맨 윗단에 주저앉는다. 나도 일단 그 옆에 앉는다. 대체 용무가 뭘까? 상상도 되지 않는군.


"특별한 일 때문에 부른 건 아니에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아니···뭐···."


"나는 그쪽이랑 협력을 하고 싶어요."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말해왔다. 나로서는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협력이라니? 우린 어차피 같은 조잖아."


"아니오. 그런게 아니라···. 이를테면 같은 조 내에서 한 번 더 팀을 만들자는 거에요."


"왜 그런 짓을···."


"아까는 다행히 의견이 쉽게 일치되었지만, 앞으로 게임을 반복하다보면 좀처럼 의견을 통일하지 못하거나 좋은 의견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럴때 협력 관계의 사람이 있다면 훨씬 수월하게 의견을 내세울 수 있죠. 물론 우리가 내놓는 의견이 모두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왕좌왕하며 시간만 보내는 것 보다는 어느 한쪽으로 의견을 좁히는게 훨씬 효율적일거에요."


"음···."


일리는 있는 말이다. 아까의 상황만 생각해봐도 팀플레이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 애초에 이렇게 급조된 팀에서 완벽한 팀웍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럴바에는 가장 머리 좋은 사람을 중심으로 원톱 진형을 갖추는 게 더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휴대폰에 있는 지갑 어플을 보셨죠?"


"아. 봤어. 그 10억원이라고 써있는 그것 말이지?"


"네. 왜 그런 어플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 글쎄?"


그렇게 생각해보니 그렇다. 왜 만든 걸까? 이런 걸 주최한 놈들이 필요도 없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번거로운 일을 할 리가 없는데···.


"아마 게임 도중에 돈이 오가는 일이 생길 거에요."


"돈이 오간다고?"


"이걸 보세요."


그녀는 주머니 속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낸 뒤 지갑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킨다. 친숙한 10억원의 화면이 나타났고, 그 상태에서 버튼을 조작하자 메뉴 화면이 떠오른다. 그 메뉴 중에는 [이체] 라는 버튼이 있었다.


그 버튼을 터치하자 잠시 로딩 화면이 나타나더니 내 이름이 표시된다.


"뭐지? 이건."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이름을 터치한다. 그러자 '얼마를 이체하겠습니까?' 라는 문구가 표시된다.


"봤죠? 이 기능을 이용하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돈을 보낼 수 있어요. 그렇다는 것은 게임 도중에 돈이 오가는 일이 생긴다는 말이겠죠."


"그렇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죠. 게임 도중에 돈을 사용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돈을 쓰려 들지 않으려는 사람이 나올 거에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 만약 돈을 사용하게 될 일이 생긴다면 둘이 같이 부담하자는 말이로군. 이를테면 지갑을 공유하자는 거겠지."


"정답이에요.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도 있을 테고요."


"좋아. 일단은 찬성이야. 터무니 없는 금액만 아니라면야."


어차피 이 여자가 쓸데없는 용도로 돈을 쓸 것 같진 않고, 무엇보다 이 조별 리그에서 돈을 사용해야 하는 게임이 나타날 경우 서로 돈을 쓰지 않으려 들면 그대로 추락할 수도 있다.


그녀의 제안 자체는 모두 다 마음에 든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그런데 왜 나한테 이런 제안을 하는 거지? 나도 아까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잖아?"


왜 나를 선택한 것일까? 내가 제일 의지가 될 만하다고 판단한 거라면 그야 기쁘겠지만, 그런 것 치곤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만약 랜덤으로 선택한 거였다면. 그저 아무나 상관없는 거였다면 좀 실망스러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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