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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가위 님의 서재입니다.

루시퍼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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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가위
작품등록일 :
2023.06.15 18:07
최근연재일 :
2023.07.0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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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68

작성
23.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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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DUMMY

학교가기 싫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손잡이를 붙잡고 선 채로 망연히 떠올린다.


군대까지 갔다온 대학생이 '학교가기 싫다' 라니. 남들이 들으면 철이 덜 들었다고 핀잔을 줄 수도 있겠지만, 막상 고등학교에 다닐때보다 더 학교에 가는 것이 싫다.


그렇다고 해서 괴롭힘을 당하기라도 한다거나, 교수에게 찍혀서 얼굴 마주치기도 싫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싫은 것 뿐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일단 들어보면 안다. 나는 서울. 강북 지역에 살고 있다. 그리고 학교는 경기도. 경기도 남쪽에 위치해 있다.


경기도 안에서도 괜찮은 대학들이 꽤 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다니는 대학은 남들에게 이야기를 했을때 그렇게 대단한 반응이 돌아올만한 학교는 아니다.


그러나 학교 수준과는 별도로 등록금은 명문대와 똑같이 받으니, 차마 2류대에 다니는 주제에 비싼 돈 들여가며 자취같은 걸 할 염치가 없어서 통학을 하고는 있는데, 바로 이게 문제다. 강북에서 경기도 남쪽까지 통학하는데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소요되기 때문이지. 통상적으로 편도 1시간 30분에서 2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직선 거리로는 100km남짓 떨어져 있을 뿐이지만, 이 나라의 도로 사정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한 방에 갈 수는 없는 법. 결과적으로 학교까지 왕복 3~4시간이 소요되니 수업이 한두 시간만 편성되어 있는 날에는 수업 시간보다 통학 시간이 더 소요되는 비극이 펼쳐지는 것이다.


오래 걸리는 건 그렇다 치자. 문제는 일찍 출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1교시 수업이 9시부터인데, 만약 1교시부터 수업이 있는 날에는 집에서 7시에는 나와야만 한다. 반면, 자취를 하는 애들은 8시 30분에 느긋하게 일어나서 대충 설렁설렁 씻고 옷을 주섬주섬 입고 어슬렁 어슬렁 나와도 지각을 할 이유가 없다. 등교하다가 옷을 대충입고 슬리퍼를 질질끌며 하품을 하면서 등교하는 자취하는 친구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부러워서 뒷통수를 때려주고 싶을 지경이다.


만약 집 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때 한 방에 학교까지 도착한다면 그나마 괜찮은데, 두 번이나 환승을 해야 한다는 점이 의욕을 더욱 떨어트린다. 결국 통학에 지친 나는 이번 학기에 복학을 하면서 큰맘 먹고 월 8만원짜리 통학 버스를 신청해버렸다.


그 통학버스라는 것을 타면 환승없이 학교까지 1시간만에 안전하게 모셔다 주긴 하나, 문제는 이 통학 버스라는 것이 10곳의 장소에서 운영을 하는데, 그중 제일 가까운 출발 지점이 우리 집에서 지하철로 10 정거장 가까이 떨어져 있다. 그렇다보니 거기까지 이동하는 시간과 환승 시간을 생각해보면 결국 통학 시간은 여전히 1시간 30분정도 걸린다.


게다가 통학 버스라는 건 굉장히 여유있게 출발한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대부분 8시 무렵이다. 1교시 수업 시작하기 1시간 전에 도착해버린다는 말이다. 엄청나게 빨리 도착한 것인데,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만약 9시에 맞춰서 통학 버스가 도착한다고 치자. 그러다 차가 막혀서 1~20분 정도 늦어지면? 통학버스를 믿고 탔는데 1교시 수업에 지각해버리면 큰일이잖아? 여기서 버스를 여러대 운행한다면 8시 도착, 9시 도착, 10시 도착. 이런 식으로 시간대 별로 버스를 운행하겠지만, 문제는 이 놈의 학교가 버스 비용 절감을 위해서 버스를 한 대 밖에 운행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니 당연히 1교시에 초점을 맞추어 운행을 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첫 수업이 3교시나 5교시라 하더라도 무조건 일찍 출발해야만 한다.


복잡한 계산은 집어치우고, 결론만 말하자면 버스를 타기 위해선 최소한 집에서 6시 20분에는 나와야 하는데, 이거야 말로 세익스피어보다 더 심한 비극이다. 난 고 3때도 6시 30분에 일어났단 말이야. 그런데 6시 20분에 출발을 해야 하다니. 이런 경우가 어디있단 말이냐.


그나마 막 복학했던 여름에는 그럭저럭 견딜만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복학하면 정말 열심히 공부 해야지!' 라고 결심했던 '복학빨' 도 현저하게 떨어져가고, 겨울이 되어갈수록 해가 짧아지니···집에서 일찍 나오기가 싫어진다. 6시 20분에 집을 나오면 주변이 어둑어둑하다. 아침에 집을 나섰을때 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것이 대학생이라는 건가.'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막상 1교시 수업은 1주일에 2번밖에 들어있지 않은데, 수업이 늦게 들어있는 날에도 일찍 가야하는 판이니···. 다음 학기부터는 다시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좀비가 소환되듯이 흐물거리는 움직임으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매일 매일 똑같은 등교길. 아무 생각없이 사람들을 따라 지하도를 걷고, 개찰구를 통과한다.


지상으로 이어지는 계단 앞에 도착하자 기온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춥군···.


이것도 아침 일찍 등교하는 것의 슬픔 중 하나이다.


아침에는 춥고, 그렇다고 두껍게 껴입고 오면 점심에는 더워서 견디기가 힘들다.


차라리 12월쯤 되면 두껍게 입고 다니겠것만···. 지금은 빨리 버스에 탈 수밖에. 나는 옷을 싸매고 지상으로 올라간다.


그래도 아직은 한겨울이 아니라서인지 조금은 하늘이 밝아진 상태다.


12월이 되면, 이 시간에도 컴컴할지도 모르지. 생각도 하기 싫다. 난 어둠이 싫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지하철 역에서 통학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까지는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이 역이 통근 버스쪽에서는 제법 유명한 곳인지, 이 시간대에는 우리 학교뿐 아니라 다른 학교나 회사들의 통근 버스들이 많이 서있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면 몇 대나 되는 버스들이 역 바로 앞에서부터 차곡차곡 줄을 서 있다. 왜 다른 역들도 많은데 굳이 여기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차에 타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자동차로 이동하면 10분도 되지 않아 고속도로로 진입할 수 있다. 즉, 시외로 나가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우리 학교 버스는 명문대 버스들처럼 'OO대학교' 라고 큼지막하게 페인팅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디자인 자체도 그냥 일반 시외버스나 고속버스와 아주 흡사하여, 처음에 통학 버스를 탔을때는 대체 어떤 게 우리 학교 버스인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버스는 더럽게 많고, 특징은 없으니 한 번에 구분을 할 수 있을 턱이 있나. 다행히 버스 앞 유리판에 손으로 쓴 글씨로 'OO대학교' 라고 써 있는 A4사이즈의 종이가 꽃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절대로 찾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기사 아저씨가 깜빡하고 그 종이를 꽂아놓지 않는 날도 있기 때문에, 만약 처음 통학 버스를 타고 등교하던 날에 그 종이가 없었더라면 일일히 물어보며 한참을 해맸거나 어쩌면 못 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해보면 오싹하다.


버스를 다른 수송 회사에서 임대하여 사용하는 건지, 버스의 종류도 비정기적으로 바뀐다. 그러니 어느정도 통학 버스에 익숙한 나라도 버스를 찾느라 헤멜 때도 있다. 그나마 암묵적인 룰같은 게 있는 건지 이 차가 정차되어 있는 장소는 매번 같기에 구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버스의 문은 열려 있었지만, 기사 아저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놀랄 일도 아니다. 아마 어딘가 떨어진 곳에서 다른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 아저씨와 담배라도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계실 것이 분명하다. 이 아저씨는 항상 출발 직전에서야 천천히 나타나서 버스를 출발시킨다. 이러니 처음 통학버스를 타는 사람은 헤멜 수밖에.


버스에 올라타서 좌석을 살펴보니 아무도 없었다. 뭐, 대부분 이런 식이다.


적당히 중간쯤 창가쪽 좌석에 주저 앉는다. 시계를 보니 출발까지는 아직 20분이 넘게 남아있다. 이 버스는 그날그날 타는 사람의 숫자가 다르긴 하지만, (1교시가 없는 날에는 통학버스를 타지 않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애들이 제법 있는 것 같다. 일찍 일어나기 귀찮기 때문이겠지. 이 녀석들! 비싼 통학 버스비까지 냈으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타야지!)대략 이용객은 10~20명 정도일 뿐이고(적자라는 이유로 언제 폐선될지 모른다.) 대부분 이 근처에 사는 애들뿐인지, 거의다 아슬아슬한 시간에 도착해서 올라탄다. 출발시간 10분을 남겨놓고서 그때부터 한 명 두 명 올라타는 수준이다. 그러니 비교적 일찍 도착하는 내가 1등으로 올라탈때가 대부분이다. 처음에 이 버스를 탔을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물론 나도 딱 맞춰오고는 싶지만, 집까지 거리가 있기 때문에 잘못 계산했다간 이 버스를 놓칠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지각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


으···. 춥다. 문을 열어놓고 히터를 틀어놓지 않은 버스는 바깥 만큼이나 춥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뿐이다. 잠을 자는 일. 나는 커튼을 치기위해 손을 뻗었으나, 이미 커튼이 쳐져있는 것을 깨닫고 도로 손을 거둔다. 어차피 바깥은 어둑어둑한데 커튼을 왜 치냐면, 막상 학교에 도착할때쯤 되면 밝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귀찮다고 커튼을 쳐놓지 않으면 햇볕때문에 잠에서 깨어나는 일도 종종 있다. 나는 주머니속에 손을 넣고 눈을 감는다. 처음에는 이 통학 시간을 이용해서 공부라도 할까 하고 생각했었는데···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이야 이 버스에 불을 켜놓았지만 사람들이 자리에 모두 착석하고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조명이 꺼져버린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경비 절약을 위해 절전 모드로 해두는 것 같다. 고작 전등비용을 아끼기 위해 조명을 끄다니. 대체 등록금은 어디로 사용되는지 의문이다. 통학버스도 8만원이나 하면서···.


하기야, 어차피 승객의 90% 이상이 쿨쿨 자기 때문에 불을 켜는건 전기 낭비인지도 모르지. 불을 꺼서 자는 건지, 자기 때문에 불을 끄는 건지는 모르지만.


해가 긴 여름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커튼을 걷어봤자 글자를 읽을 수가 없다. 아무튼 근성으로 읽는다 하더라도 눈에 상당히 안 좋을 것이다. 그럴바에야 그냥 커튼을 치고 완벽한 수면실을 만들어 수면 보충을 하는 편이 낫다. 학교까지 가는 1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눈을 좀 붙여두면 남들은 다 죽어가는 피곤한 1교시에 왠만한 지루한 수업을 들어도 거뜬하게 버틸 수 있다. 일찍 일어나면서 밀려오는 피로를 확실하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통학 버스를 이용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 자리에 앉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1시간 30분이 넘는 긴 시간동안 계속 서서 가면 등교하는 것만으로 지쳐버려서 오전 수업은 거의 포기해야 한다고 봐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6시 전에 눈을 뜨는 건 너무 힘들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점점 꿈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아무래도 일찍 일어나서 여기까지 오느라 피곤했기때문에 금방 잠이 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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