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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말랑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김말랑
작품등록일 :
2021.11.04 17:43
최근연재일 :
2021.12.12 19:53
연재수 :
1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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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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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글자수 :
61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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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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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DUMMY

59화




방호석은 그래도 나에게 침대가 있는 곳이 아닌, 대련장으로 불리는 구석으로 가서 낡아빠진 모포를 던져 주었다.


“여기가 네가 잘 곳이야.”

“······.”

“뭐, 불만있어? 그럼 나가!”


으름장처럼 놓은 말에 나는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던져준 모포를 받았다. 언제 빨았는지도 모르게, 땀 냄새가 모포에서 고약하게 풍겼다. 이거라도 덮어야겠다는 생각에 구석으로 가서 모포를 덮었다.

형광등의 조명이 나의 시선을 방해했다. 눈을 감아줘, 번쩍거리는 조명에 사람들이 아령을 들면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을 견뎌 낼 수 있었다. 너무 잠이 급했다. 도망쳐 나온 순간부터 제대로 자본 적이 없었다. 나는 바로 눈이 감겼다. 딱딱한 매트리스의 바닥이 푹신한 침대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나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나는 몸을 비틀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어제 보았던 방호석이었다. 방호석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쓰레기를 보는듯한 표정으로 나의 몸을 발로 건들였다.


“일어나라고.”


그의 신경질적인 말에, 나는 눈을 바로 뜨며 모포를 걷었다. 모포를 움직이는데도, 냄새가 났던 것인지 방호석이 코를 한 손으로 틀어막았다.


“정신머리는 있네.”


나를 보며, 그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리고서는 내가 일어나서 모포를 정리하는 것을 본 뒤에 방호석은 짜증내는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따라와.”


그를 따라, 다른 곳으로 들어갔다. 대련장이라고 불리는 곳, 그 위의 계단을 올라가자 정말 쓰러질 것 같은 방이 나왔다. 대련장의 위층이었다. 대련장은 그래도 구색은 갖추고 있었지만, 그 위는 더 열악한 환경이었다. 여기서 먹을 것을 해결하는 듯, 기름때가 얼룩진 프라이팬과 냄비들이 보였다.

한겨울에도 파리가 듬성듬성 보일 정도였다. 깨진 유리창 뒤로 바람을 맞으며, 방호석은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가 네가 훈련할 곳이야.”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훈련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 아무것도 없는···.”


방호석이 나에게 무엇을 던져주었다. 본능적으로 받은 나는 내가 받은 내용물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찢어져 가는 수건이었다. 아니, 수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낡고 해졌으며, 얼룩이 잔뜩 묻어져 있었다. 거의 걸레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게, 너의 일이야.”

“이건 뭔데요?”

“네가 해야 할 아침 일과. 전체 다 쓸고 닦아. 다 청소했으면, 대련장으로 와서 다시 닦아.”

“그게 전부에요?”

“어. 오늘까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내가 직접 알려주지. 기대하라고.”


방호석은 으름장을 놓으며, 그렇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거미줄이 보일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어떻게 닦는지도 몰랐다. 그냥, 그저 걸레를 움켜쥐고 그 자리에서 멈추어섰다.

어디를 청소해야 하는지, 어디를 닦아야 하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나는 걸레를 든 손으로 싱크대 쪽으로 갔다. 먹을 것을 담은 접시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안에, 이상한 냄새도 났다.


“윽.”


나는 코를 막았다. 썩은 악취였다. 코를 틀어막고, 싱크대에 있는 물을 틀었다. 그래도 물은 나오는 모양. 졸졸 나오는 물에다가 나는 손을 가져다 대었다.

얼음장과도 같은 차가운 물에 몸을 움츠렸다.


“포기하면 안돼.”


처음 온 길이었다. 기회였다. 더 이상 마지막의 기회는 없다. 나는 그만큼 절박했다. 여기가, 나의 처음 발판이라면, 오히려 잘해야 했다. 지금 앞에 있는 것, 하나하나.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생활이었다.



다행히 세제는 있었다. 낡아빠진, 수세미를 집어 들었다. 이게 과연 얼마나 썼을지도 모르는. 세제를 수세미에 묻히자, 거품이 나왔다. 거의 찢어질 정도로 바들거리는 수세미를 집어 들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끝냈나?”


얼마나 흘렀을지 모르겠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차가운 날씨였다. 해가 천천히 떠서, 위로 내리쬐는 시간동안. 나는 싱크대에 계속 서서 머물렀다. 키가 겨우 닿을 정도로, 억지로 무너져가는 받침을 만들어 놓고 나서야, 겨우 마무리를 지었다.


“휴우-.”


땀방울이 송골송골 이마에 맺혔다. 나는 만족한 듯, 앞을 바라보았다. 깔끔하게 닦인 싱크대의 때들은 사라지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보였다. 햇빛에 반사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충분히 만족했다.


“다음은···.”


나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총체적 난국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의 양.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의 쓰레기더미. 싱크대 옆에서부터, 천천히 쓰레기들을 주워 담았다. 청소는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최선혜가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조금 거든 것이 다였다. 그 경험이라도 없었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린 바보였을지도 몰랐다.


“시작해야지. 이제.”


나는 손바닥을 소리 나게 맞닿았다. 차가운 물의 파편이 나의 옷과 얼굴에 튀겼다.




**




“얘 데리고 가서, 전반적인 일들을 알려주고, 훈련 시키도록 해.”


형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나 역시 여기서 겨우 빌붙어 있는 상태였다. 형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여기서 살아남기도 힘들었다. 이곳은 보이지 않는 전쟁터였다. 몸을 키우기 위해 운동에만 전념하는 곳이었다.

그만큼 쌓여있는 근육만큼 스트레스 해소들이 없었다. 그들은 결투 대용으로, 약자들을 공격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이들의 전통이었다. 게다가, 신입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자리가 잡힌 이들은, 신입식으로 그들을 피떡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는, 잡일을 시킨다. 방호수도 어느 정도 아는 눈치였지만, 이 정도일 줄 모르겠지. 나의 형은 잘 오지 않으니까.

나 역시, 형의 이름이 없었으면 이미 피떡이 되어 불구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오지만, 금방 나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아마, 형은 훈련이 고되다고 생각하겠지만, 여하튼.


‘얜 또 뭐야?’


형은 스트레스 푸는 용도로 데려오는 친구 같지는 않았다. 나도 여기서 어린 축에 속했지만, 더 어린 친구였다. 아끼는 듯, 나를 불러놓고 꼬마에게 말을 거는 것이 질투가 날 정도로.


‘선아? 이름도 웃겨.’


나는 비웃었다. 그리고 그가 얼마 버티지 못할 것도 알았다. 운동하는 이들은, 처음에는 건드리지 않는 듯했다. 아마 방호수가 직접 데려온 인물이니까. 처음에 간을 보는 거겠지. 얼마나, 보호하는지. 그 보호는 하루도 안되어서 끝날 것이었다.


잠자리도 운동하는 구석에 몰아주었음에도, 그는 잘 자고 있었다. 생활력이나, 배짱에 대해서는 이미 인정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이 생활을 적응하는데 한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으니까.


쓰지 않는 창고 같은 곳에서, 나는 걸레를 던져주며 그에게 청소를 시키라고 명령했다. 아무도 건들지 않는 곳이라서 쌓인 먼지만 족히 일 년은 넘은 세월일 것이었다. 그러니까, 거의 불가능한 일. 아마 포기하거나, 도망쳤겠지. 나는 속으로 미소를 띄었다. 형의 안목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똑바로 안···.”


깨진 유리창의 문을 열며,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꼬마가 뒤를 천천히 돌아보며 웃었다.


“이딴···.”


아침에 봤던, 그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리되어 있었다. 손에 닿지 않는 천장을 제외하면, 나머지가 모두 정리되어 있었다. 분명, 청소같은건 해보지도 않는 나이 일줄 알았는데.


“······.”


입을 다물어 버렸다. 게다가, 웃음은 뭐란 말인가.


‘오히려 여유를 부리고 있어?’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나를 엿맥이려는 행동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미간을 잔뜩 굽혔다.


“너, 너···.”


말이 막혔다. 분명, 생각해놓은 시나리오들이 있었다.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아 꺼지라고 하는 말들. 울먹이며, 살려달라고 하는 말들. 아니면 나에게 오히려 대들며, 이딴 게 훈련이라는 반응들. 그게 아니라, 이런 반응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여기 위는 키가 안 닿아서···.”


선아라고 직접 이름을 지은 꼬마는 썩어가는 걸레로 천장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됐어. 내려와.”

“네.”


선아는 걸레를 정리했다. 낡아빠진, 그딴 걸레쯤은 버려도 되었다. 하지만, 구태여 말하기는 싫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먼저 큼지막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짧은 다리로 타다닥, 소리를 내며 선아 역시 나의 뒤를 따라왔다.


대련장 안, 나이는 어렸고 서열은 형 덕분에 어느 정도 잡혔다.

여긴 서열의 세계였다. 서열은 보통 힘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서열은 항상 결투로 시작된다. 대전에서 가장 많이 이긴 사람이, 서열이 가장 높았다. 그가 하는 일은 훈련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은 차례차례 잡일을 도맡았다. 가장 서열이 낮은 사람이 훈련보다는 잡일을 했다.

나는 그 계급 쪽에서도 아마 낮은 편에 속해있었지만, 형의 덕분에 그런 잡일은 안 해도 되었었다. 시선을 돌려, 링을 바라보았다. 흔히 보던 복싱장의 링처럼 자그맣게 만든 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름들은 지금의 서열을 나타내었다. 맨 위에 있는 이름부터 밑에 있는 이름까지. 나는 익숙하게 링 옆에 있는 글러브를 선아에게 던졌다.


“껴.”

“네?”

“끼라고.”

“네.”


글러브를 던지자, 선아의 몸을 맞고 튕겨난 글러브를 주워들은 선아는 주섬주섬 꼈다. 아마, 작은 손에 불편함이 있겠지만, 그것을 신경 쓸 내가 아니었다.


“덤벼.”


링의 줄을 고개숙여 통과한 나는 글러브를 낀 손을 까닥거렸다. 보호구는 사치였다. 여기는 진짜 몸으로 부딪히는 곳이었다. 나는 선아에게 지옥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지금 너무 기고만장해있었다. 내가 보기에 아직 현실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글러브를 낀 두 손을 부딪치며, 몸을 살짝 뛰어 스텝을 밟았다. 여기에서 받은 훈련이라는 것은 정말 몸으로 부딪히는 것뿐. 위에 있는 서열이 가장 높은 사람에게 맞으면서 배운 스텝이었다.


선아는 천천히 링 안으로 들어왔다. 모든 게 신기한 것인지, 주위를 둘러보다가 내가 뻗은 글러브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걸 글러브끼리 맞닿으면 시작이다.”

“아, 네.”


아직 밝은 표정의 선아를 짓누르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자존심은 회복될 것이다. 선아가 조심스럽게 글러브를 맞닿았다. 나는 바로 오른쪽 어깨를 뒤로 잔뜩 젖혔다. 이게, 지금까지 배운 펀치.


팟-


빠르게 앞으로 몸을 숙이며 달려나갔다. 선아의 얼굴이 그대로 보였다. 그리고 오른쪽 어깨가 살짝 뒤로 젖혀졌다. 팔에 잔뜩 힘을 실었다. 그를 날리고 싶은 그 마음 그대로 나는 주먹을 길게 뻗었다.


퍽!


글러브에 맞은 둔탁한 소리. 살과 두꺼운 글러브가 만나는 소리는 경쾌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선아는 맞고 비틀거리며, 제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일어나!”


일어나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나는 오히려 선아를 닦달했다. 정통으로 맞았다. 지금의 1위가 나에게 꽂은 펀치를 기억했다. 아마, 그 한 방을 맞고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다. 비틀거리며, 쓰러졌었다.


“일어나라고!”


그 순간이었다. 나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선아는, 얼굴을 손으로 훔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런 거군요.”


선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의 글러브를 바라보고, 그다음 나를 응시했다. 나의 눈에 갑자기 공포감이 곁들어졌다.


“이걸로 치면 되는 건가요?”

“덤벼.”


나는 구태여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저, 선아를 노려볼 뿐.


“그럼 가겠습니다!”


선아는 달려오며, 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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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73화 21.12.02 1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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