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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복 님의 서재입니다.

스파르타의 반역자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복복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9
최근연재일 :
2022.06.16 17:45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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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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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글자수 :
218,136

작성
22.05.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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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δ (3) - 전사로의 길

DUMMY

“네가 어떻게 여기엘···”


우물거리는 드라콘티우스의 모습은 영락없이 그 옛날, 소심했던 때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 앞에서 헬레네가 키득거렸다.


“신기하다. 옛날엔 내 턱밑에 간신히 오는 키였는데 어느새 나보다 훨씬 커졌어.”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 여기 들어온 지 벌써 몇 년이나 됐어.”

“그렇긴 하네? 어디 보자~”

“하, 하지마···”


헬레네가 발돋움하여 드라콘티우스의 머리 끝을 만지려 하자 그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뒤로 뺐다.

둘의 모습을 본 텔레마커스가 뭔가 알겠다는 듯 히죽거리며 끼어들었다.


“여~ 아가씨, 안녕? 난 텔레마커스라고 해.”

“안녕하세요. 헬레네에요. 드라콘티우스랑 동네 친구였어요.”

“그래 그래. 난 아고게 친구지. 이 녀석이랑 전부터 잘 알던 사인가 봐?”

“조금요.”


마지막 말은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헬레네의 얼굴은 밝았다.

그녀는 여전히 못 믿겠다는 듯 드라콘티우스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네가 아고게에 갔단 얘길 들었었어. 설마 했는데 진짜 여기서 볼 줄이야. 나 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거든.”

“그런데 헬레네 아가씬 왜 여기 있는 거지? 아고게 훈련소는 스파르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말이야. 절대 여자 발로 산책 나올 거리는 아니거든.”

“어머? 무시하시는 건가요? 이래 봬도 올림피아에 출전하려고 열심히 훈련 중이랍니다.”

“진짜?”


녀석의 눈이 품평하듯 위 아래로 빠르게 움직였지만 허리에 손을 얹은 헬레네는 당당하게 그 시선을 마주했다.


헬라스에선 여자들의 외부활동을 철저히 금하고 있었으나 오직 스파르타만은 예외였다.

건강한 출산을 위해 몸의 단련을 장려했고 자연히 활동하기 편하게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간출한 옷들을 입고 다녔다.

앙숙인 아테네는 문란한 풍조라며 비난했지만 스파르타는 오히려 남자들의 축제인 올림피아 경기에 여자를 보내 호성적을 거두며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곤 했다.

단련된 육체 덕분에 스파르타에 미인이 많다는 것은 헬라스 남자들 사이에 은근 퍼져 있는 괴소문 중 하나였다.


“햐~ 확실히 그런 몸이면 올림피아 나가 볼만해. 남자들이랑 겨루려고?”

“그럼요. 못할 게 뭐 있어요.”

“그래 그래, 응원할게. 둘이 더 할 얘기 있어? 나 빠져 줄까?”

“돼··· 됐어, 임마.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아는 분을 따라왔어. 여기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누구?”

“데미트리우스.”


순간 턱하고 말문이 막혔다.

당황한 텔레마커스가 친구의 눈치를 보며 눈알을 굴리자 그녀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너 혹시 몰랐니? 우리 집은 옛날부터 데미트리우스네랑 아는 사이야. 우리 아버님이랑 데마라투스님이 친한 관계시거든. 곧 에포로이가 되실 데마라투스님 알지?”

“···알지. 워낙 자주 들은 이름이라서.”

“어흠··· 그, 근데 말이야.”


답답했는지 텔레마커스가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그렇다고 해도 아가씨가 여기까지 오기엔 좀 그렇지 않아? 데미트리우스랑 그렇게 친한 사인가?”

“음··· 아버님께선 나중에 맘에 들면 같이 살아보라고 하시긴 하네요.”


드라콘티우스는 갑자기 발목을 삐끗해 휘청거렸고 오묘한 표정으로 킥킥대는 헬레네에게 텔레마커스가 다급히 물었다.


“그, 그럼 아가씨도 그럴 맘이 있으니 여기까지 온 거고?”

“글쎄. 그건 뭐··· 그때 가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걘 좀 싸가지가 없지만 에포로이의 아들이고 가문도 좋고 얼굴도 미남이고 또~”

“그렇지만 남자란 게 그것만이 다가 아니잖아.”

“혹시 저한테 구혼하시려는 건가요? 왜 그런 걸 물어보세요?”

“아니··· 그게··· 그러니까··· 내가 어쩌려는 게 아니고···”


그 입담 좋은 텔레마커스가 말을 더듬는 광경은 보기 드문 진귀한 모습이었다.

동시에 드라콘티우스의 얼굴도 어두워져 갔지만 헬레네는 마치 이 상황을 즐기듯 빙글빙글 웃고만 있었다.


대화가 이어지질 못하고 한참 침묵이 흐르자 결국 그녀는 손을 들어 작별을 고했다.


“그럼 나 이제 가볼게. 데마라투스님이 오시면 데미트리우스랑 따로 만나야 하거든.”

“어··· 음··· 그래···”

“몸 조심하고 다음에 또 봤으면 좋겠다. 열심히 훈련하렴.”

“그, 그래··· 잘 가.”


그녀의 황금빛 머리칼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텔레마커스는 곁에 있던 녀석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어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다.”

“잘도 아니겠다. 그런데 왜 하필 데미트리우스랑이야?”

“···나도 그 녀석이랑 관계 있다는 건 몰랐어. 여기 오기 전에 난 친구란 게 없었으니까.”

“저기 하나 있었네. 너더러 동네 친구라고 하잖아.”

“······”


복잡한 심경에 침묵하는 소년의 어깨를 텔레마커스가 툭 쳤다.


“하여간 별나. 하필 눈을 줘도 임자 있는 녀석한테 주냐? 그것도 데미트리우스 쪽을?”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라고.”

“예~ 예~ 왜 아니시겠습니까. 하여간 앞길 험난할 테니 고생 좀 하셔.”

“아니라니까!”

“네~ 네~”


투닥거리며 개구멍으로 도로 들어오는데 멀리서 이중 나팔 소리가 들렸다.

다음 훈련이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오? 드디어! 야야, 빨리 가보자. 드디어 우리한테 우라크를 보여줄 모양인가 봐.”


신이 난 텔레마커스가 화제를 바꿨기에 드라콘티우스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친구 몰래 헬레네가 사라져 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주 간만에 그간 잊고 있던 따사로웠던 감정이 다시금 떠오르고 있었다.


******


“제군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다.”


레오니다스와 소년들은 사방이 가로막힌 밀폐된 방안에 모여들었다.

방이라기보단 일종의 실내 훈련장으로 횃불을 키지 않으면 한줌 빛도 들어오지 않아 단체 체벌실로 이용되던 곳이었다.

별로 인상 좋지 않은 곳이었지만 소년들의 눈엔 생기가 넘쳤다.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들 눈빛이 좋군. 그렇게 ‘놈’을 보고 싶은 건가?”

“그렇습니다, 에이렌!”

“좋아. 과연 스파르타의 미래를 책임질 용사들답구나.”


언제부턴가 그의 말투가 변했다는 걸 소년들은 알고 있었다.

나중에 반드시 저놈을 죽인다 맹세했건만 그것이 무력하게 수시로 체벌 받아 몸에 채찍자국이 가득해진 그들이었다.

허나 무수한 훈련을 거쳐 제법 전사라 자처할만한 실력이 갖춰지자 레오니다스는 이전보다 훨씬 격을 갖추어 소년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우리 손에 죽을 때가 다가오니 살려고 아부하는 거다 떠들어댔으나 소년들의 수가 줄어들 때마다 젊은 에이렌의 입술이 검게 터져있던 걸 알던 드라콘티우스는 거기에 동참하지 않았다.


“이제 잠시 횃불 몇 개를 끄겠다. 제군들은 이걸 잘 보도록.”

“···?”


어두운 가운데 그가 보인 것은 자루에 담긴 흙이었다.

먼저 바닥에 흙을 뿌려 평평히 만든 후, 품속에서 바짝 마른 나뭇가지 같은 걸 꺼냈다.

그리고 황당한 말이 덧붙여졌다.


“이것이 우라크다.”

“???”

“못 믿겠나? 이게 바로 우라크다. 그 옛날부터 매년 헬라스의 모든 도시를 공격해 오는 저주받은 괴물들. 바로 그 우라크 말이다.”

“···뭔 미친 소리지.”


신중하지 못한 단어 선택이었지만 그 정도 무례함은 목숨을 걸고 오늘까지 살아남은 소년들에게 허용해 줄 만한 권리였다.

그리고 그 ‘우라크’라 주장하는 것이 흙 위에 심겼다.


“봐라.”


심어진 ‘우라크’ 위에 물을 뿌리자 비쩍 마른 나뭇가지가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자라나 잎을 피우고 꽃을 맺었다. 허나 다음 순간 그런대로 볼만했던 관상용 식물이 갑자기 흉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도··· 도대체 뭐지 이게?”

“말로만 듣던 마술사의 짓인가?”


마술이라 불러도 할말이 없을 정도로 그것의 변화는 급격했다.

일그러진 ‘그것’이 흙 바닥에 줄기를 펼쳐 땅을 기는 뱀처럼 기어갔고 다섯 갈래로 자라난 그것은 양 팔과 양 다리, 그리고 흉한 머리통의 골격이 되었다.


다들 입을 벌리고 있자니 레오니다스가 낮게 중얼거렸다.


“이것의 정체가 뭔진 모른다. 하지만 이게 바로 우라크다. 땅에서 자라나 인간을 공격해 오는 기이한 괴물들. 그리고 이놈들은···”

“그우우우우··· 그아아아아!”


이제 완전히 자라난 우라크의 머리통이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분노의 고함을 지른 순간, 레오니다스의 발이 그 머리를 짓이겨버렸다.


“이놈들은 인간을 보면 미쳐버린다.”

“!!!”

“인간의 냄새만 맡아도 굶주린 늑대처럼 광분하는 것이 바로 이놈들이다. 이유는 모른다. 소문에 의하면 우라크는 인간만 주변에 없다면 죽은 듯 움직이지도 않는다고 한다.”

“맙소사··· 대체 어쩌다 이런 괴물이 생겨난 겁니까, 에이렌?”

“그건 누구도 모른다. 아무도 아는 자가 없다. 그러나 이제 제군들도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머리가 박살 난 우라크는 여전히 꿈틀댔지만 급격하게 시들어 썩어가고 있었다.

죽을 때조차 마술 같은 그 꼴에 소년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우라크는 마치 들에 피는 들풀과도 같다. 씨를 말리거나 미리 제거할 방법조차 없는 것이지. 산을 태울 것인가? 들을 전부 갈아 엎을까? 그러면 땅에서 자라나는 풀들을 전부 없앨 수 있나?”

“······”

“설사 그렇게 했다고 치자. 그럼 우린 뭘 먹고 살아가나? 엘바가, 헤일로타이들이 배를 두드리며 좋아하겠군. 할 일이 없어졌다고 말이다.”


소년들을 깨달았다.

우라크와의 싸움은 영원한 것이란 걸.

들에 자라나는 풀들이 적으로 돌변한다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놈들과 싸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이 때문에 모든 폴리스(도시 국가)가 호플리테스(중장 보병)를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스파르타는 헬라스 최강의 전사들을 반드시 길러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린 그 누구도 믿지 않으니까.”


젊은 에이렌의 비장한 얼굴이 소년들을 향했다.


“우리 스파르타가 있는 지역은 헬라스에서 가장 많은 우라크가 출몰한다. 우리가 막지 못하면 헬라스 전역이 우라크떼로 뒤덮일 것이고 인간은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우릴 돕지 않는다. 다른 폴리스 놈들은 우릴 하찮게 보니까. 우라크의 진정한 무서움도 모르고 말이다.”

“······”

“여기서 본 것은 바깥에 발설하지 않기 바란다. 이 괴물과의 싸움이 영원할 것이란 건 최근에야 알려진 사실이니까. 그리고 이제 너희들에게도 진정한 시험의 때가 올 것 같군.”


시들어버린 우라크는 이제 마른 뱀가죽 같았다.

그걸 손가락으로 집어 들어올리며 레오니다스가 근엄하게 말했다.


“실전이다. 곧 우라크가 공격해 오는 때가 온다. 그때 너희들은 처음으로 놈들과의 전쟁에 동원될 것이다. 이번에 살아남는다면··· 그때야말로 너흰 진짜 스파르타의 전사로 불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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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시간 및 컨셉 22.05.13 46 0 -
40 ι (1) - 페리클레스 22.06.16 32 2 12쪽
39 θ (5) - 아르콘의 조카 22.06.16 21 0 13쪽
38 θ (4) - 아르콘의 조카 22.06.14 19 0 13쪽
37 θ (3) - 여신의 도시, 아테네 22.06.14 16 0 12쪽
36 θ (2) - 다마스테스의 침대 22.06.13 28 1 10쪽
35 θ (1) - 다마스테스의 침대 22.06.13 18 1 12쪽
34 η (5) - 다마스테스의 침대 22.06.12 20 1 12쪽
33 η (4) - 아테네를 향하여 22.06.12 19 1 11쪽
32 η (3) - 왕자와 암살자 22.06.08 21 1 11쪽
31 η (2) - 왕자와 암살자 22.06.08 22 1 11쪽
30 η (1) - 대지를 달리는 배 22.06.07 23 0 12쪽
29 ζ (5) - 대지를 달리는 배 22.06.07 28 0 12쪽
28 ζ (4) - 도시의 이방인 22.06.06 41 1 13쪽
27 ζ (3) - 스파르타를 떠나다 22.06.06 99 1 13쪽
26 ζ (1) - 추방령 +2 22.06.03 36 1 11쪽
25 ε (5) - 추방령 +2 22.06.03 32 2 12쪽
24 ε (4) - 전사로의 길 22.06.02 33 1 13쪽
23 ε (3) - 전사로의 길 22.06.01 26 0 13쪽
22 ε (2) - 전사로의 길 22.05.31 29 1 13쪽
21 ε (1) - 전사로의 길 22.05.30 29 1 12쪽
20 δ (5) - 전사로의 길 22.05.30 28 2 11쪽
19 δ (4) - 전사로의 길 22.05.27 30 1 12쪽
» δ (3) - 전사로의 길 +2 22.05.26 36 2 11쪽
17 δ (2) - 전사로의 길 +2 22.05.25 39 2 12쪽
16 δ (1) - 잔혹한 시험 22.05.24 30 1 14쪽
15 γ (5) - 잔혹한 시험 22.05.23 33 1 12쪽
14 γ (4) - 잔혹한 시험 22.05.21 34 1 11쪽
13 γ (3) - 모의전 22.05.20 36 2 13쪽
12 γ (2) - 모의전 22.05.19 3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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