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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복 님의 서재입니다.

스파르타의 반역자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복복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9
최근연재일 :
2022.06.16 17:45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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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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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글자수 :
218,136

작성
22.05.2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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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δ (2) - 전사로의 길

DUMMY

두 소년, 아니 이젠 제법 덩치가 커져 소년이라 부르기 힘든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했다.

손에는 끝이 뭉툭한 나무창이 들려있었고 곧이어 호기롭게 도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드라콘티우스. 이번에 지면 몇 패지?”

“그딴 거 셀 필요 없어, 텔레마커스. 이번에 내가 이기면 서로 동률이거든.”

“오호, 자신 있어? 전엔 내가 전부 봐줬던 거 알지?”


드라콘티우스는 능숙하게 한 바퀴 창을 돌려 상대를 겨누었다.

그 동작엔 이미 수천, 수만 번에 걸쳐 얻어낸 노련함이 깃들어 있었다.


“전혀 모르겠는데.”

“짜식이··· 임마, 딴 건 몰라도 창으론 넌 나한테 안돼.”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그들 주변엔 이미 구경꾼들이 몰려 있었다.

이젠 제법 장성한 티가 나는 소년들의 체격은 이전과 몰라보게 부쩍 커져 있었다.


“···핫!”


텔레마커스의 창이 찔러 들어왔으나 드라콘티우스는 능숙하게 그걸 쳐내며 상대의 목을 노렸다.

그러나 회전하던 상대의 창 자루가 그 공격을 튕겨내며 역으로 드라콘티우스의 옆머리가 노출되었다.

허나 그 순간, 그는 자기 창을 허공에 던지고 몸을 낮춰 달려들었다.


“엇?!!!”


상대의 허리를 양팔로 붙잡은 드라콘티우스가 허공에 몸을 날렸고 텔레마커스는 공중에서 돌팔매처럼 한 바퀴 회전하곤 바닥에 그대로 내리 찍히고 말았다.


“으헉!”


외마디 비명과 동시에 대자로 쓰러진 녀석의 눈 앞에 두 개의 손가락이 멈춰 서 있었다.

그걸 겨눈 소년의 눈에 도사린 살기가 소름을 돋우자 텔레마커스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금은 익살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내 승리. 이걸로 이제 동률이지?”

“얌마, 이건 창술 겨루기라고! 제발 그놈의 팔레(레슬링) 좀 쓰지 마.”

“어쨌건 이기기만 하면 될 거 아냐. 머리가 너무 굳으셨군, 텔레마커스 선생.”

“너한테 창술 가르쳐주지 말걸 그랬어. 이젠 내 턱밑까지 따라온 놈이 에이렌이 쓰는 팔레까지 그대로 따라 해? 젠장할···”

“배울게 있으면 빨리 배워야지. 아니면 훔쳐내던가, 킥킥.”


손을 내밀어 녀석을 일으키자 주변 아이들이 피식거리며 자기들끼리 내기한 걸 계산했다.


“이번엔 드라콘티우스가 이긴다고 했지? 오늘 네 검은 국은 내 거야.”

“썅~ 멍청한 텔레마커스. 저번엔 이기더니 이번엔 아주 제대로 넘어갔네. 혹시 니들 서로 짠 거 아냐?”

“야이씨~ 그렇게 자신 있으면 네가 드라콘티우스랑 싸워봐! 이기면 내일 저녁 전부 줄게.”


텔레마커스가 버럭 역정을 내자 그 녀석은 잠깐 머리를 굴리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싫다. 저 자식은 한번 붙으면 다음에 더 강해져서 나타나잖아. 이 아고게에서 상대하기 제일 까다로운 놈이랑 내가 왜 싸워? 네 저녁? 그냥 내일 마을에 내려가서 뭐 훔쳐먹고 말지.”

“썅! 그러다 걸려서 채찍이나 신나게 맞아라. 아주 뒤질 때까지!”

“야, 채찍 맞는다고 뒤질 놈은 이미 벌써 다 뒤졌다. 그딴 게 아직 살아있으면 여기가 아고게냐?”


살벌한 얘기들이었지만 이젠 일상의 농담일 뿐이었다.

함께했던 아이들 중 상당수가 다신 볼 수 없게 되어버렸고 그때마다 흘린 눈물은 다 말라버려 더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이젠 우는 법조차 잊어버렸단 말이 더 정확했다.

울 기운이 있으면 어디 훔쳐먹을 음식은 없나 어슬렁거리게 된 그들이었으니까.


투덜대며 어깨를 주무르는 텔레마커스와 함께 식당으로 가고 있자니 누군가 띠꺼운 말투로 빈정거렸다.


“너흰 아직도 그딴 장난질이냐? 시간 낭비 말고 나중 일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

“왜 또 시비야, 데미트리우스.”


금발의 데미트리우스는 재수없던 인상 그대로 성장해 있었다.

탄탄한 체격에 잘생긴 호남이 되었지만 그 엿 같은 면상은 여전했다.

그러나 이젠 그 못지 않게 키가 커진 드라콘티우스는 그저 차갑게 대꾸했다.


“저리 꺼져, 데미트리우스. 드디어 이 녀석이랑 동률이 됐는데 기분 잡치지마.”

“그러니까 그딴 병신 같은 짓이나 즐길 때가 아니라니까? 이제 드디어 우리 아버지가 에포로이(집정관)에 오르시게 됐어. 그때가 되면 너희 뒤통수가 근질근질 할 걸?”

“또 아버지 얘기냐? 넌 정말이지 꾸준하구나. 아고게도 아버지더러 대신 와달라고 하지 그랬냐.”

“어디 계속 그렇게 씨부려봐라. 머리 나쁜 너희 놈들은 진짜 힘이 뭔지 몰라. 에포로이를 적으로 돌리고 이 스파르타에서 언제까지 무사할지 두고 보자고.”

“역겨운 자식 같으니라고.”


바닥에 침을 뱉은 텔레마커스의 얼굴엔 경멸이 떠올라 있었다.


“레트라(법도) 앞에 모든 시민은 평등한데 지위를 가지고 협박을 해? 넌 스파르타인의 긍지도 모르냐?”

“병신. 넌 세상 사는 법도 모르냐? 텔레마커스, 너도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언젠가 내 발 앞에 엎드려 그 동안 죄송했다고 싹싹 빌게 될 테니.”

“미친 새끼. 훈련 중에 내 손에 죽지 않게 몸이나 사려.”


뱀 같은 혓바닥을 놀리며 녀석이 드라콘티우스에게 나불거렸다.


“조금 잘 나가는 것 같으니 자기 신분도 잊어먹었나 본데. 넌 어차피 군인이 될 수 없어. 기억하냐, 이 수치스런 놈아?”

“그래, 잘 기억하고 있으니 아가리 싸물고 면상 좀 치워. 악튀온 앞에선 항상 닥치더니 내 앞에선 혀에서 올리브 기름이 뚝뚝 떨어지네.”

“그, 그것도 이제 곧 끝이야. 아버진 에포로이가 되는 게 확정되었으니 더는 원로들 심기 안 건드리려 조심할 필요가 없어. 너 같은 놈이 이 복잡한 정치 관계를 알기나 해?”

“그래, 난 모르겠다. 그러니 너 떠받들어주는 놈들이랑 소꿉장난이나 하러 가라, 버러지 같은 자식.”


소년들이 성장하는 동안 그들 사이엔 데미트리우스와 악튀온, 두 패거리가 생겨 있었다.

데미트리우스는 아버지 이름을 팔며 자기 세력을 만들었고 실제로 가끔 위험한 훈련에 열외 되자 그의 편은 점점 늘어났다.

그게 진정 스파르타인 다운 일인가, 하는 물음은 둘째치고 생존에 유리한 걸 이용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생각을 가진 아이들은 대부분 그쪽에 섰다.

악튀온은 딱히 무슨 특혜 받는 건 없었지만 특유의 카리스마와 독보적 실력 덕분에 자연히 추종 세력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드라콘티우스와 텔레마커스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부류였다.


바닥에 침을 뱉고 자릴 뜨니 뒤에서 지랄 개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볍게 씹어주고 식당으로 향했을 때, 입구 옆에 건장한 체격의 소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여, 글립투스.”

“어··· 어··· 그래, 드라콘티우스. 안녕.”

“넌 뭐 하러 이런 새끼랑 말을 섞냐.”


텔레마커스는 이번에야말로 가래침을 끓어 올려 바닥에 투왁 뱉곤 어깨로 녀석을 밀치고 지나갔다.


“더러운 배신자 면상을 보니 오늘 검은 국 맛은 더 더럽겠네.”

“······”


옛날엔 녀석의 가슴팍에도 못 오는 키였지만 부쩍 성장한 드라콘티우스는 이젠 그와 같은 눈높이에서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글립투스는 고개를 떨군 채 그를 쳐다보지 못했다.


“미안해, 드라콘티우스. 매번 볼 때마다 면목이 없다.”

“됐어. 너희 아버지가 옛날부터 데미트리우스네랑 친했다며. 그 녀석 편을 안 들면 너희 집이 난처해질 테니 별 수 없지.”

“그, 그래···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래도 저 자식은 독사 같은 놈이란 걸 기억해. 필요 없어지면 언제든 뒤도 안보고 버릴 녀석이라고.”

“알고 있어. 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가···”


고개를 흔들며 걸어나가는 글립투스를 소년은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좀 더 어렸을 때는 이런 복잡한 사정 따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허나 머리가 커지면서 보이는 것들은 그저 긍지 높게만 살아가기엔 이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점차 깨우쳐주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자 국을 들이키던 텔레마커스가 혓바닥을 내밀며 인상을 찌푸렸다.


“또 독이야. 젠장, 저번 식사에 섞여 나온 지 일주일도 안 지났다고.”

“그래도 혀 잘 돌아가는 거보니 견딜만한가 보네. 그냥 먹어.”

“에붸베베~”


지난 수년간 훈련을 거친 덕에 소년들은 독에 내성이 생겨있었고 이후로도 이렇게 기습적으로 음식에 독이 섞여 나오곤 했다.

찌릿한 혓바닥을 흔들며 식사를 하던 텔레마커스가 불현듯 뭔가 생각났는지 히죽 웃었다.


“소식 들었냐? 드디어 우리한테 ‘녹색 들돼지’ 실물을 보여줄 모양이야.”

“설마 우라크 말이야?”

“그래, 그 초록 괴물딱지들. 드디어 이 몸의 손에 놈들의 피가 뿌려질 날이 왔다고.”


헬라스의 골치거리이자 가장 큰 위협인 우라크들.

사실상 각 폴리스(도시 국가)들이 군사력을 키우는 이유는 반 이상이 이 괴물들의 습격 때문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정 계절, 특정 시기에 도시를 공격해 오는 이 저주받을 괴물들은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어디선가 나타나 계속 덤벼들었다.

그 정체에 대해 여러 가지 소문이 많은 실로 괴이한 놈들이었다.


“자 기다려라. 이 텔레마커스의 이름이 우라크 학살자로 헬라스 전역에 퍼질 날이 오는 거야.”

“마치 전엔 뭘 많이 죽여봤다는 듯이 말하네.”

“동물이야 많이 죽여봤지.”

“토끼나 뱀? 그래, 뱀은 쪼끔 위험하다 쳐줄게. 근데 네가 그거보다 더 큰 거 잡아는 봤냐?”

“···아니.”


머리를 긁적이는 텔레마커스를 보며 드라콘티우스도 혀를 찼다.


“그간 우리가 받은 훈련은 실전에 가까웠지. 덕분에 맹수건 우라크건 만나면 어떻게 싸울지 머릿속엔 들어있어. 하지만 그걸 실전에서 펼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란 말이야”

“호오~ 이번에도 본질 뚫어 보기냐? 그 철학자짓 좀 이제 그만하시지.”


그렇게 독이 든 음식을 삼키며 떠들고 있는데 갑자기 바깥이 시끌시끌해졌다.

무슨 일인가 싶자 그쪽에서 달려온 녀석 하나가 소릴 쳤다.


“데미트리우스 아버지야. 또 면회를 왔어. 먹을 걸 잔뜩 가지고 말이야.”

“빌어먹을. 여기 아고게는 맞나? 우린 일년에 한번 면회하기도 힘든데 저 자식은···”


아니나 다를까 의기양양한 표정의 데미트리우스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드라콘티우스와 텔레마커스를 보며 코웃음 친 녀석은 패거리를 몰고 식당에 자릴 잡더니 이내 만찬을 벌이기 시작했다.


마음은 아니꼬와도 몸은 정직한 법.

독 섞인 음식을 억지로 채워 넣은 배가 지랄발광을 했고 향기로운 냄새를 견디지 못한 둘은 식당을 박차고 나와 숙소 뒤쪽에 있는 개구멍으로 향했다.

그곳은 훈련소 바깥과 연결된 둘만의 비상도피처였다.


“옘병, 저 망할 새끼! 제우스한테나 따먹혀라!”


텔레마커스가 옆에 있던 풀을 뜯어 입안 한 가득 쑤셔 넣자 드라콘티우스가 핀잔을 주었다.


“그거 먹을 수 있는 거냐?”

“몰라. 뒤지진 않겠지.”

“배고플 때 먹는 녀석들을 가끔 봤는데 좀 알아보고 먹어.”

“남이사!”


역정 내는 녀석 곁에서 입맛만 다시고 있는데 돌연 훈련소 저편에서 누군가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거길 유심히 바라보던 텔레마커스가 멍하니 한마디 했다.


“···여자다.”


한낮의 따듯한 바람에 나부끼던 금발을 갈무리한 그녀가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까이 오던 그녀를 본 드라콘티우스도 입이 점점 크게 벌어졌다.

기억에 있던, 아니 사실 마음 한구석에 늘 사라지지 않고 있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너 설마··· 얘, 나 기억나니?”

“어?··· 어··· 음··· 그래.”

“이름도 기억해? 나 헬레네야.”


금발의 미녀는 아프로디테 신전에 있는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듯 눈부셨다.

그 미소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 일깨웠다.


“널 여기서 볼 줄은 몰랐어. 정말 오랫만이네, 바보 드라콘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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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의 반역자가 되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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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ι (1) - 페리클레스 22.06.16 32 2 12쪽
39 θ (5) - 아르콘의 조카 22.06.16 21 0 13쪽
38 θ (4) - 아르콘의 조카 22.06.14 19 0 13쪽
37 θ (3) - 여신의 도시, 아테네 22.06.14 16 0 12쪽
36 θ (2) - 다마스테스의 침대 22.06.13 28 1 10쪽
35 θ (1) - 다마스테스의 침대 22.06.13 18 1 12쪽
34 η (5) - 다마스테스의 침대 22.06.12 20 1 12쪽
33 η (4) - 아테네를 향하여 22.06.12 19 1 11쪽
32 η (3) - 왕자와 암살자 22.06.08 21 1 11쪽
31 η (2) - 왕자와 암살자 22.06.08 22 1 11쪽
30 η (1) - 대지를 달리는 배 22.06.07 23 0 12쪽
29 ζ (5) - 대지를 달리는 배 22.06.07 28 0 12쪽
28 ζ (4) - 도시의 이방인 22.06.06 41 1 13쪽
27 ζ (3) - 스파르타를 떠나다 22.06.06 99 1 13쪽
26 ζ (1) - 추방령 +2 22.06.03 36 1 11쪽
25 ε (5) - 추방령 +2 22.06.03 32 2 12쪽
24 ε (4) - 전사로의 길 22.06.02 33 1 13쪽
23 ε (3) - 전사로의 길 22.06.01 26 0 13쪽
22 ε (2) - 전사로의 길 22.05.31 29 1 13쪽
21 ε (1) - 전사로의 길 22.05.30 29 1 12쪽
20 δ (5) - 전사로의 길 22.05.30 28 2 11쪽
19 δ (4) - 전사로의 길 22.05.27 30 1 12쪽
18 δ (3) - 전사로의 길 +2 22.05.26 35 2 11쪽
» δ (2) - 전사로의 길 +2 22.05.25 39 2 12쪽
16 δ (1) - 잔혹한 시험 22.05.24 30 1 14쪽
15 γ (5) - 잔혹한 시험 22.05.23 33 1 12쪽
14 γ (4) - 잔혹한 시험 22.05.21 34 1 11쪽
13 γ (3) - 모의전 22.05.20 35 2 13쪽
12 γ (2) - 모의전 22.05.19 3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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