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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의 서재

일해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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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
작품등록일 :
2018.04.09 23:01
최근연재일 :
2019.09.10 13:00
연재수 :
160 회
조회수 :
69,710
추천수 :
1,397
글자수 :
635,868

작성
18.04.30 13:15
조회
683
추천
19
글자
7쪽

28. 놀라운 만남 (2)

DUMMY

왕국행정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왕궁이 큰 까닭에, 호세 혼자였다면 몇 번이고 헤맸을 게 분명한 비슷한 길들이 분홍 머리 앞으로 펼쳐졌다. 지나가는 복도에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류를 바삐 훑으며 걷거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호세는 자신이 정말로 왕궁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아직 멀었어?”

“조용히 하고 따라와. 왕궁 구경 시켜 줄 겸 천천히 가는 거니까.”


데이지의 말에 고마움을 느낀 호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왕궁 곳곳에는 작은 정원이나 쉴 수 있는 뜰이 마련되어 있었다. 긴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은 호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우리는 제복 안 입어?”

“응. 대장이 싫어하거든. 재미없다고.”


제복을 입어보고 싶은 호세는 조금 시무룩해진 표정이 되었다. 데이지는 호세를 힐끗 보더니 곧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우리도 있긴 하니까, 실망하지마. 엄청 화려한 걸.”

“우리 부서 제복은 다른 부서랑 달라?”

“대장이 멋대로 바꿨지. 어디에 있어도 알아보게 만든다면서.”


호세는 제복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장의 생각이 반영된 옷이 예상되는지 인상을 작게 찌푸렸다. 분명 해골 따위의 공포스러운 문양이 그려졌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마족보다 더 검은색이거나.

호세는 마법공학실험부 제복의 모습을 궁리하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떠올라 물었다.


“그러고 보니, 왕궁행정부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했지? 누군지 물어봐도 돼?”

“아, 맞다.”


데이지는 빙글 돌아 호세와 눈을 마주치며 대답했다.


“네드 글렌이라고 알아?”

“당연하지! 왕궁 행정부 최연소 합격자잖아? 열 여섯 살에 합격했고, 그것도 다른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공부해서 말이야! 나도 그 사람을 보면서 꿈을 키웠는걸.”

“그 사람이 그리핀 고아원 출신인 건 알아?”

“정말? 고아원에서 자랐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 지금 보러 가는 거야.”


호세는 네드 글렌이 데이지와 같은 곳에서 자랐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그리핀 고아원엔 뛰어난 사람을 배출하는 특출한 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데이지는 네드만큼 유명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뛰어난 인재였다. 호세는 자신이 데이지와 제법 친해졌다는 사실이 괜시리 자랑스러워졌다. 게다가,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경했던 네드 글렌까지 만날 수 있다니. 차오의 꼬리에게 얻어맞은 보람이 있었다.

데이지는 호세의 초롱초롱한 눈에 피식 웃으며 계속 걸었다. 곧 있으면 도착이었다. 호세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왕국행정부에.


데이지의 느긋한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공간은 호세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넓었고,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서류를 만들거나, 회의를 하는 모습은 누군가 호세가 상상했던 공무원의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네드!”


데이지가 짧게 이름을 부르자, 동그란 안경을 쓴 밝은 금발의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손에는 서류 뭉치가 잔뜩 들려있었다. 초록빛이 감도는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데이지와 호세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데이지! 무슨 일이야?”

“저번에 우리 대장이 부탁했던 개발품 등록 인증 서류랑, 여기 멍청하게 서 있는 사람 공무원 등록 좀 하려고.”


네드는 안경을 한 번 치켜 올리더니 호세에게로 눈을 돌렸다.


“이 분은?”

“이번에 마법공학실험부에 새로 들어온 호세. 인사해!”


초록색 눈이 다시 동그래졌다.


“마법공학실험부?”

“안, 안녕하세요···. 그, 소문을, 아니, 소식을, 그러니까···.”

“네 이야기를 많이 들었대, 네드. 존경한대나봐.”


네드는 찬찬히 호세를 훑어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호세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네드의 손을 잡았다. 데이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 호세의 정강이를 걷어찰 준비를 했다. 호세는 위험을 감지했는지 슬쩍 다리를 뺐다. 데이지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살짝 호세의 옆구리를 찔렀다. 움찔한 호세는 여전히 기쁜 눈빛으로 네드를 바라보고있었다.


“반갑습니다. 네드 글렌이라고 합니다. 왕궁에 오신 걸 환영해요.”

“감사합니다···. 제가 꿈에 그리던 모습이에요.”

“왕궁 행정부 말씀이신가요?”


호세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표정이에요.”

“그럼요.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답니다.”


말을 꺼내는 네드의 표정은 뿌듯해 보이면서도 조금 지친 기색이었다. 데이지는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며 호세를 밀쳐냈다.


“업무만 확인하고 갈거야. 네드, 이 바보한테 공무원 등록 안내 좀 해줘. 난 서류 받아서 올게.”


데이지가 건너편 책상으로 향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법공학실험부의 발명품에 대한 내용인 것 같았다.


“저를 따라 오시겠어요?”


자신의 책상으로 안내한 네드는, 종이를 꺼내 호세에게 건넸다.


“여기에 소속, 이름, 주소를 적으시고, 부서장의 도장을 받아오시면 됩니다. 그럼 공무원 확인 패를 드리지요. 지금까지는 임시 확인 패를 사용하셨죠?”


호세는 네드의 말 대로 임시 확인 패를 가지고 있었으나, 대부분 차오와 함께 출근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었다. 오늘 차오가 함께 가지 않아 보여준 것이 첫 사용이었을 만큼. 그래도 호세는 공식적인 확인 패를 받는다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일은 힘들지 않으신가요?”


호세는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 힘들죠. 그만큼 보람도 있답니다. 호세 님은 어떠세요? 마법공학실험부···, 데이지에게 들은 대로라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호세는 네드 앞에서 윗통을 벗어 붕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사람을 싫어한다던 대장의 서슬 퍼런 눈빛을 떠올리고 곧 그만두었다. 소문이라도 났다간, 온 몸이 붕대로 감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좋으신 분들이 계셔서 괜찮아요!”


호세는 말하고 데이지의 눈치를 살폈다. 데이지는 아직도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데이지는 잘 하고 있나요?”


네드가 또 다시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녹색의 미소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럼요. 누구보다 잘 하고 있어요. 만난지 얼마 안 됐지만, 깜짝깜짝 놀란다니까요. 가끔 제가 한심스러워 질 정도로 말이에요. 말도 저보다 훨씬 잘하고, 성숙하게 대화할 줄도 알고. 외모만 빼면 어른 같아요.”


네드는 호세의 손을 잡았다.


“호세 님, 아니에요.”

“네?”


네드는 데이지를 한 번 돌아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데이지는 아직 어리다는 걸 잊지 말아주세요.”


문득, 그의 목소리에는 무엇인가 쓸쓸한 구석이 있다고 호세는 생각했다.


작가의말

일찍 올려보는 실험 중입니다. 


실험은 중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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