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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의 서재

일해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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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
작품등록일 :
2018.04.09 23:01
최근연재일 :
2019.09.10 13:00
연재수 :
160 회
조회수 :
69,707
추천수 :
1,397
글자수 :
635,868

작성
18.04.29 18:29
조회
697
추천
18
글자
8쪽

27. 놀라운 만남 (1)

DUMMY

호세가 눈을 뜨자 제일 먼저 들린 것은 데이지의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그렇다고 저렇게 두들겨 놓으면 어떻게 해!”

“호세 군의 집념이 발휘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집념 좋아하시네! 맞기 싫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그런 거지!”


차오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데이지에게 변명했다.


“용족의 무예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도움을 주려고···”

“그럼 말로 하면 되지, 설명하면 더 금방 깨달을텐데!”

“무술은 직접 체득하는···.”


차오는 말을 더 하려다 거의 울먹이기 까지 하는 데이지의 표정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호세는 데이지에게 자신이 괜찮다는 말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곧 엄청난 통증이 찾아왔다.


“으윽!”

“호세!”


데이지가 달려와 호세의 몸을 살폈다. 몸 여기저기에 붕대와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호세는 몸을 더듬으며 아픈 부위를 찾았다. 방패를 쥐었던 팔과, 넘어졌을 때 부딪혔던 가슴팍이 문제였다.

에밀리아와 대장은 호세의 몸을 중요한 화제로 생각하지 않는지 그저 힐끗 보고 말 뿐이었다.


“호세, 아프지 않은 부위에 힘을 줘서 움직이렴. 가만히 있으면 근육통이 심해 질 거야.”


에밀리아가 책과 펜을 놓지도 않은 채 조언했다. 호세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하고 작게 대답했다.


“네에···.”

“망할 꼬맹이, 기사단의 체력 단련을 보면 거품을 물겠군. 저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애송이가 몸으로 배운 것에 비하면 값싸지.”

“대장까지!”


데이지가 화난 얼굴로 대장에게 소리쳤다. 대장은 귀찮은 듯 귀를 후비며 말했다.


“기껏 해야 며칠 정도 가는 타박상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말을 마친 대장과 에밀리아는 다시 공부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호세는 조금 서운하면서도 이해가 되었다. 그들은 분명 자신보다 훨씬 심한 상처와 고통을 봐 왔으리라.


“크흠.”


차오가 헛기침을 하면서 호세에게 다가왔다. 미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많이 아프십니까. 나름 조절한다고 했는데, 마지막에 호세 군이 이겨 내는 모습을 보고 저까지 들뜬 모양입니다. 교관 실격이군요.”


차오가 호세의 멍든 곳을 주물러 주었다. 호세는 찌릿한 고통에 신음을 내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차오 씨가 없었으면 방법조차 몰랐을 텐데요. 다음 번엔 더 잘할 자신 있어요. 그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차오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몸이 다 나으면 말이죠.”


데이지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호세의 팔을 꼬집으려다가 그만두고, 결국 팔을 툭 치는 것으로 끝냈다. 호세는 머쓱한 얼굴로 데이지에게 말을 건넸다.


“고마워, 데이지. 걱정 해 줘서,”

“멍청이.”


데이지는 호세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뒤돌아 실험실로 돌아갔다. 호세는 미안한 얼굴로 뒷모습을 눈으로 쫒았다. 데이지의 귀가 유난히 빨개 보이는 것 같았다.


“어차피 오늘은 골골거릴테니, 집으로 돌아가라. 차오가 데려다 줄 거다.”


차오는 호세의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어린 아이를 안는 것처럼 호세를 들었다. 호세는 스스로 걸을 수 있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차오는 ‘오늘은 제가 호세군을 보호하겠습니다’ 따위의 말을 하며 절대 내려놓지 않았다. 덕분에 호세는 남는 붕대로 얼굴을 가리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은 다른 업무를 주지.”


문으로 향하는 호세를 향해 대장이 넌지시 말했다.


“어쩌면 오늘 고생한 보상이 될지도 모르겠군.”


의미심장한 대장의 말에, 호세는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지만 온몸이 격하게 휴식을 원하고 있었으므로 알겠다는 대답만 했다.



저택으로 돌아온 호세의 몰골을 보고, 코무앗은 놀란 표정을 짓다가, 호세가 저택에 처음 왔을 때 먹은 죽을 내왔다. 호세는 따뜻한 죽이 뱃속에 스며들자 기분 좋은 하품을 하며 숙소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호세를 안고 있는 차오가 걸어가는 것이었지만.


“오늘은 푹 쉬십시오.”

“감사합니다, 차오 씨.”


차오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숙소의 문을 닫았다. 거대하고 푹신한 침대에 파묻힌 호세는, 이젠 점차 희미해지는 고통 사이에서 달콤한 어둠으로 끌려들어갔다.



다음 날, 호세가 꽤 가벼워진 몸을 기뻐하며 부서로 향했다. 차오는 오늘 일족의 행사가 있어 출근하지 않는다고 했다. 덕분에 호세는 오래간만에 혼자 걷는 출근 길의 기분 좋은 생소함에 두리번거리며 부산한 향기를 음미했다. 왕궁의 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도 익숙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데이지를 미아로 착각한 첫 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마법공학실험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에밀리아는 방금 훈련이 끝났는지 상기된 얼굴로 수건을 쥐고 나타났다. 땀을 흘린 몸을 씻은 모양이었다. 좋은 냄새에 짧은 헛숨을 삼킨 호세는 에밀리아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인사했다.


“안, 안녕하세요!”

“안녕, 호세. 몸은 괜찮니?”


에밀리아가 가까이 다가와 호세의 멍든 자국들을 이리저리 살폈다. 등을 약간 덮은 긴 은발에서 풍기는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자 아찔함을 느낀 호세는 한걸음 물러서며 빠른 속도로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에밀리아는 다행이라고 말하며 머리를 마저 말리러 돌아갔다.


호세가 멍하니 에밀리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본관의 문이 쾅, 하고 열렸다. 호세는 화들짝 놀라 뒤를 바라보자, 대장이 손에 찻잔을 들고 뚱한 얼굴로 들어오고 있었다.


“노상방뇨하다 들킨 취객 같은 표정을 하고 있군. 애송이.”


호세는 그의 말에 얼른 표정을 털어내듯이 얼굴을 저었다. 푸르르 소리와 함께 잠깐 흘렸던 목 뒤의 식은땀이 더 차갑게 식는 듯 했다.

이윽고 데이지가 하품을 하며 실험실에서 나왔다.


“집에 돌아가지 않은 거야?”


호세가 놀라 묻자, 데이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욕실로 들어가는 데이지는 어제보다 한 뼘은 더 자란 것처럼 보였다.


“아, 대장. 어제 말하셨던 업무는 뭔가요?”


대장이 차를 호로록 마시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기억났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파견 업무다. 네가 좋아할만한.”


데이지가 얼굴을 수건에 문지르며 다시 나타났다. 에밀리아와 똑같은 향기가 나서 호세는 얼른 다시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그러나 향기는 사람의 기억 속에 망치로 때린 못처럼 빠르게 박히는 법이었다. 호세는 떠올렸던 생각을 지우려 재차 물었다.


“제가 좋아하다뇨?”

“데이지의 지인이 근무하는 모양이니, 가서 서류를 받아오도록. 네 공무원 등록 처리도 해야 하니.”


호세는 곰곰히 생각했다. 공무원 등록 처리를 하는 부서라면?


“왕국행정부!”


호세가 소리치자 데이지는 시끄럽다는 듯이 정강이를 걷어찼다. 호세는 윽 소리를 내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제일 일하고 싶었던 부서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바보. 왕국행정부가 별건가 뭐. 우리가 훨씬 대단한데.”

“그건 맞아.”


호세가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데이지는 호세의 표정이 재미있었는지 노려보던 시선을 내리고 작게 웃었다. 대장은 빨리 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이미 그의 눈은 책으로 향한 뒤였다.


“따라와. 왕궁의 심장으로 데려다 줄게.”


데이지가 웃으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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