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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의 서재

일해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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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
작품등록일 :
2018.04.09 23:01
최근연재일 :
2019.09.10 13:00
연재수 :
160 회
조회수 :
69,705
추천수 :
1,397
글자수 :
635,868

작성
18.04.16 21:29
조회
907
추천
18
글자
7쪽

14. 차오의 저택(1)

DUMMY

호세가 눈을 뜨자 익숙한 갑옷이 보였다. 구원 기사단의 것과는 다른, 특유의 무늬가 새겨진 갑옷. 붉은색 기운이 어른거렸다.


“호세 군, 정신이 듭니까?”


호세는 입을 열어 대답을 하려 했으나, 입이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 들어 다시 입을 닫았다. 모래를 한 움큼 집어 목구멍까지 밀어 넣은 것 같은 고통이었다. 목 깊숙한 곳에선 비릿한 쇠 맛이 났다.


“따듯한 물을 좀 마시도록 할까요. 호흡하는 법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호세는 차오가 건넨 물을 천천히 마셨다. 적당히 뜨거운 기운이 목을 타고 들어가 위를 데웠다. 뜨거운 기운이 지나간 목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호세는 숨을 들이쉬려다 따가운 목 때문에 기침을 뱉어냈다. 차오가 얼른 물을 더 가져다주었고, 호세는 새끼 새처럼 조용히 물을 받아 마셨다.


“갑자기 무리한 운동을 시켜서 미안합니다. 대장의 명령이었거든요.”


호세가 이불에 흘린 물을 정성스럽게 닦아주며 차오가 나직히 말했다. 호세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차오는 따듯한 웃음을 지었다.


“여기는 제 집입니다. 호세 군은 하루 가까이 주무셨고, 벌써 다시 저녁이군요. 대장이 내일 호세 군이 출근하면 호되게 일을 시키겠다더군요,”


호세의 표정이 다시 모래를 삼킨 얼굴로 변했다. 차오는 호세의 반응이 재밌있는지 작게 웃었다. 용족 특유의 그르렁거리는 웃음소리였다. 호세는 그 소리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식사를 해야겠지요.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합니다. 걸을 수 있겠어요?”


호세가 다리를 움직이자 근육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몸 전체가 두드려 맞은 듯이 삐걱거렸다. 차오는 호세가 잘 일어설 수 있게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호세는 시시각각으로 끔찍한 표정을 지으며 간신히 일어섰다. 실내화엔 차오의 갑옷과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차오의 손에 이끌려 호세가 도착한 곳은 식당이었다. 긴 식탁이 한 줄로 나란히 정리된 공간은 호세의 방이 스무 개는 더 있어야 비슷한 크기가 될 것 같았다. 중간엔 꽃이 마련되어 있었다. 잘 정돈된 걸로 보아, 마법공학실험부의 화분처럼 차오의 손길을 받았을 것이라 호세는 직감했다.


“앉으시지요, 호세 군.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는 요리로 준비했습니다. 근육 손실을 막아야 하니까요.”


호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단백질이라면, 고기를 말하는 것일까? 호세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염치없는 생각이지만, 고기를 먹어 본 지 꽤 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입안에 침이 고여서 목이 다시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호세에겐 고통보다 식욕이 먼저였기 때문에 신경 쓰이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같은 가족으로 보이는 붉은 비늘의 용족이 큰 그릇을 들고 나타났다. 차오는 웃음을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주방장인 코무앗입니다.”

“반갑소. 칸의 동료라고 들었소.”


코무앗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호세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코무앗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당황하며 얼른 자신의 넙죽 인사했다. 차오는 웃으며 호세의 몸짓에 대답했다.


“칸은 제 칭호입니다. 일족의 수장을 의미하죠. 붉은 칸 차오. 용족의 맨 앞의 이름은 색, 둘째 이름은 직업이자 칭호, 마지막 이름은 이름입니다. 이쪽은 붉은 케르 코무앗. 주방장이라는 뜻입니다.”

‘일족의 수장이라고?’


호세는 놀라면서도 흥미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코무앗은 소개가 끝나자 가져온 큰 그릇을 호세 앞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사슴 고기로 만든 죽이오. 당근, 양배추, 그리고 용족의 요리에 주로 사용되는 나리미라는 향신료를 넣었는데,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군.”

“나리미는 호불호가 심한 향신료이기 때문에 고민했습니다만, 경험하는 게 좋을 듯 해서 넣었습니다. 정 못 먹겠으면 다시 만들 테니 걱정 말고 드세요, 호세 군.”


호세는 코무앗의 풍채 좋은 모습을 흘낏거리며 무슨 일이 있어도 남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뚜껑을 열자 고기 특유의 냄새와 뜨거운 기운이 호세의 얼굴을 때렸다. 호세는 얼른 크게 냄새를 맡은 다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도 모른 채 숟가락을 들었다. 숟가락에 담긴 죽은 하얀 김을 모락모락 내며 윤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호세는 목이 아픈 것도 잊고 몇 번이고 호호거리며 식힌 다음, 입으로 가져갔다.


“음! 으음!”


호세의 입에 뜨거운 기운이 퍼지고, 잘게 썬 채소나 고기가 입에서 서로의 위치를 주장하는 것이 혀로 느껴졌다. 고기는 씹을 새도 없이 사라졌고, 짙은 육향의 여운 사이로 살짝 덜 익은 채소가 잔잔한 식감으로 씹혔다. 끝맛은 호세가 처음 느껴보는 상쾌하고 톡 쏘는 향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코무앗이 말해주었던 나리미라는 향신료였고, 호세는 용족의 향신료 맛이 퍽 즐겁게 느껴졌다.


‘나는 용족과 잘 통하는 건가?’


호세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헤실거리는 얼굴로 죽을 먹고 있자, 코무앗은 만족한 얼굴로 흥, 하고 콧김을 내뿜더니 주방으로 다시 사라졌다. 차오는 호세가 죽을 다 먹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물론 호세도 맛있는 죽 덕분에 차오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호세에겐 조금 많은 양이었으나, 따듯한 기운이 뱃속으로 들어가자 숨었던 허기가 뛰쳐나왔던 까닭에 결국 전부 해치웠다.


호세가 부른 배 덕에 쌕쌕대며 숨을 쉬고 있자, 코무앗이 다시 나오더니 호세의 머리통만 한 달콤한 빵을 후식으로 가져왔다. 호세는 목이 언제 아팠냐는 듯이 빵을 먹었지만, 결국 위장의 한계에 굴복하고 포크를 놓았다.


“남겼구만 그래.”


코무앗이 어느새 호세의 옆으로 다가와 언짢은 목소리로 말을 툭 던졌다. 호세는 화들짝 놀라 다시 손을 빵으로 가져갔지만, 이미 코무앗이 그릇을 가져간 뒤였다.


“다음에는 남기지 마시오.”


코무앗이 투덜거리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차오는 곤란한 표정으로 웃었다.


“코무앗은 음식을 다 먹어주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지요, 호세 군. 다음에는 미리 적게 준비하라고 말해놓겠습니다. 용족과 인간의 위장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겠군요.”

‘용족과 잘 통하기는 무슨···.’


호세는 턱끝 까지 차오른 과식의 여운에 계속 숨을 쉬었다.


‘에밀리아가 가르쳐준 코로 마시고 입으로 내쉬는 호흡법을 이런 자리에서 사용할 줄이야.’


호세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차오는 차를 마시며 호세가 숨을 고를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고 느꼈다. 간만에 호세의 위장으로 찾아간 고기가 소화되는 것이 느린 까닭이었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차오는 호세의 위장이 무척 작다고 생각했다.


‘데이지랑 비슷하게 먹는군.’


호세는 열두 살짜리와 식사 대결에서 시작도 전에 패배했다. 코무앗이 한심하게 쳐다볼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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