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용족의 축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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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의 앞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용족은 호세보다 두 뼘은 더 컸다. 차오와 거의 비슷한 덩치였다. 용족은 수군거리며 호세를 바라보았다.
“비무는 성인식의 대상만이 신청할 수 있어요···.”
코하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덩치 큰 용족이 목걸이를 덜렁거리며 호세의 앞으로 다가왔다. 호세는 흐릿한 시야로 고개를 들어 얼굴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콧김이 닿았다.
“무례한 손님이시군.”
호세는 여전히 고개를 가누기 어려운 듯 좌우로 갸웃거리고 있었다.
“술을 마신 상태라 그런 것이니, 너무 신경쓰지··· 윽!”
코하투가 덩치의 손에 밀려 넘어졌다. 바닥에 부딪히기 직전, 어느새 차오가 다가와 코하투를 받쳐주었다.
“칸!”
“후룸바, 형제와 같은 일족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칸. 마침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손님과 비무를 하게 해 주십시오.”
“안 됩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시는 분을···.”
코하투가 간절하게 말했다. 그러나 차오는 망설이지도 않고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좋다, 후룸바. 비무를 허가한다.”
주위에서 구경하던 나머지 용족들이 다시 수군거렸다. 성인식에 참여한 인간은 가끔 있었으나 용족이 인간과 겨루기를 하는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칸!”
코하투가 다급히 외쳤다. 그러나 호세는 주위의 소리에 신경 쓰지 않는 듯 비틀거리다가 주위에 굴러다니는 장작을 후룸바에게 던졌다. 그리고 자신은 술통의 뚜껑을 들더니 방패처럼 쥐었다.
“날 한 번이라도 때리면 네가 이긴 거야, 이···,”
호세는 다음 말을 고민하다가, 좋은 표현이 생각난 표정으로 크게 소리쳤다
“애송아!”
후룸바는 기분이 몹시 상한 듯 씩씩 대며 장작을 집어들었다. 호세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차오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흥미롭게 관찰했다. 후룸바는 성큼성큼 걸어와 장작을 높게 쳐들고 호세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호세는 재빠르게 한 걸음 물러서더니, 앞쪽으로 떨어지는 장작을 뚜껑으로 힘껏 쳐냈다. 나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리고, 후룸바의 장작이 구경꾼들의 발치에서 굴러다녔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튀어나왔다. 눈썰미 좋은 몇몇 용족은 호세의 움직임이 용족의 무예인 것을 빠르게 눈치챘다. 그들은 그제야 어린 인간을 손님으로 들인 차오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워와.”
호세가 뚜껑을 쥔 손을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후룸바는 당황한 표정으로 허겁지겁 장작을 주웠다. 호세는 다시 뚜껑을 쥐고 이번엔 자신이 덩치 큰 용족의 앞으로 다가갔다. 첫 공격에 실패한 후룸바는 호세를 유심히 살피다가, 술기운에 비틀거리는 것을 틈타 옆구리 쪽으로 장작을 힘껏 휘둘렀다.
그러자 호세는 차오와 함께한 훈련에서 배웠던 것처럼 꼬리를 힘껏 반대쪽으로 뻗어 반동을 실었다. 꼬리부터 튕겨져 나온 강한 힘이 실린 술통의 뚜껑이 장작을 받아냈다.
쾅-!
호세가 들고 있던 술통 방패가 반 쯤 갈라졌고, 후룸바가 들고 있는 장작이 산산조각 났다. 저릿한 팔을 잡은 후룸바가 말을 더듬었다.
“이게, 이게 무슨···.”
“꼬리를 써야지. 짜식아.”
호세가 콧김을 흥, 하고 내뿜고는 말을 내뱉었다.
“코하투, 괴롭히지 마. 사과 해.”
그리고 들고 있던 뚜껑을 툭 던졌다. 구경꾼들은 재미있는 상황에 환호를 질렀다. 붉은 용족은 승자의 무예를 칭송하는 일족이었다. 후룸바는 이미 붉었지만 더욱 붉어진 얼굴로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사라졌다.
차오는 호세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대단하시군요, 호세 군. 이제 방패를 쓰는 데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무예에도 재능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호세는 대답하지 않고 옆구리에 양손을 올린 채 고개를 당당하게 끄덕였다. 차오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고 계속 말했다.
“나쁜 아이는 아닙니다만, 또래 중에 덩치가 제일 커서 골목대장을 하던 녀석입니다. 이번 기회로 덩치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알았겠지요.”
코하투는 눈을 반짝이며 호세를 바라보았다. 영웅을 보는 것처럼. 구경하던 용족들이 호세에게 다가와 용족의 인사를 건넸다. 호세도 손등을 교차해서 내밀었다.
“용족의 무예를 배우시다니. 설마 칸을 투하쿰으로 섬기신 겁니까? 대단하시군.”
“몸집은 작지만, 용족이라고 해도 되겠어. 꼬리도 있고 말이야.”
“칸이 인간 제자를 두셨구만 그래.”
말을 쏟아내는 용족들 가운데, 앞줄에서 구경하던 한 용족은 호세가 대견한 나머지 등짝을 두들겨댔다. 차오의 말로는 후룸바의 철딱서니를 고민하던 그의 어머니라고 했다. 단단한 팔에 담긴 힘은 호세의 등줄기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호세는 헤실헤실 웃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차오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호세를 숙소로 데리고 갔다. 호세는 다른 용족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고, 그들도 웃으며 호세를 배웅했다.
다음 날, 머리가 깨지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일어난 호세는, 자신이 이미 출근할 시간을 넘겨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겁지겁 준비하자, 문이 열리며 차오가 들어왔다.
“일어나셨군요. 몸은 괜찮으십니까? 어제 과음하신 것 같던데.”
‘한잔 뿐이었지만.’
차오는 뒷말을 삼키고 들고 있던 시원한 차를 호세에게 건넸다. 호세는 벌컥거리며 달짝지근한 맛이 도는 청량한 차를 마셨다. 일어났을 때 보다 속이 조금 진정됐다. 울렁거림이 줄어들자 호세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출근! 저 출근해야 해요!”
“대장께 미리 말씀을 드렸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일주일 동안 출근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씀 드리는 김에, 호세 군이 오늘 늦으실 것 같다고 했습니다.”
미리 말했음에도 분명 눈을 이글거리며 화를 낼 대장을 생각하며 호세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물론 차오가 말을 해 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대장이 찾아왔을지도 몰라···.’
그리고 자신은 분명 사형을 선고받았으리라. 호세는 남은 차를 마셨다. 모자란 수분이 몸 곳곳에 퍼지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맑아지자 호세는 이번엔 다른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제 제가 행패부리진 않았나요?”
차오가 웃음을 터뜨리자, 호세는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눈알을 굴려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히 차오는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시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으으···. 죄송합니다.”
호세는 머리를 싸매고 사과했다. 차오는 괜찮다며 어깨를 다독여 주었지만,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제 슬슬 출근 하시지요. 저도 돌아가 보아야 합니다.”
“아, 네! 감사해요.”
차오는 호세의 겉옷을 가져다 준 뒤 축제가 한창인 광장으로 향했다. 어제 술을 그렇게 마셔 놓고도 멀쩡한 건 용족이 술이 아주 강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호세는 그렇지 않았다. 때문에 아직 살짝 울렁거리는 배를 잡고 어기적거리며 마법공학실험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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