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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의 서재

일해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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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
작품등록일 :
2018.04.09 23:01
최근연재일 :
2019.09.10 13:00
연재수 :
160 회
조회수 :
69,722
추천수 :
1,397
글자수 :
635,868

작성
18.04.17 18:00
조회
892
추천
17
글자
8쪽

15. 차오의 저택(2)

DUMMY

식사를 마친 호세는 뜨뜻한 고기 냄새가 밴 옷을 기분 좋게 킁킁대며 식당을 다시 두리번거렸다. 천장에는 형형색색의 전등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차오는 산책하는 강아지처럼 기웃거리는 호세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집 구경을 시켜드리지요. 어차피 한동안 호세 군이 머무를 테니까요.”


차오가 일어나자 호세도 덩달아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갑자기 무거워진 배가 움찔하면서 거세게 항의했으나, 트림을 거하게 한 호세는 개의치 않고 차오를 따라갔다. 식당을 지나가는 데만 해도 시간이 꽤 걸렸기 때문에, 이렇게 큰 집은 생전 처음 보는 호세는 입을 헤 벌리고 계속 사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식당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자, 거대한 나무가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나무 근처에선 몇몇의 용족들이 밀짚모자를 쓰고 열매를 따거나 뿌리를 캐고 있었다.


“정원 겸 과수원입니다. 과일이나 채소를 재배하지요. 저기 캐고 있는 것은 아까 드셨던 나리미입니다. 나무의 뿌리를 채취하는 것이지요.”


호세가 지나가자 일을 하던 용족이 이상한 동작을 취했다. 그들이 양손을 손등이 보이게 교차하여 차오에게 보여주자, 차오도 똑같은 동작으로 응대했다.


“방금 그건 뭘 하신 건가요?”

“아, 용족의 인사법입니다. 용의 날개를 의미하죠.”

“용의 날개?”


호세가 의아한 목소리로 묻자, 차오는 인자하게 호세를 바라보며 설명했다.


“용족의 옛 선조들은, 모두 날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기도 하고요. 모든 종족은 그들을 우러러봤다고 하지요. 그러나 그들이 교만이 하늘 끝에 닿은 어느 날, 날개가 모두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몸의 색깔이 달라지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자신과 다른 색의 용족과 싸우고 싶어지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그 이후 용족들은 서로의 영역을 정해가며 다투고 있지요. 물론 전설일 뿐입니다만.”


호세가 옛이야기를 듣는 소년처럼 눈망울을 반짝거리자, 차오는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촌뜨기 소년에게 용족의 전설이란 세상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 이야기처럼 가슴 두근거리는 것이었다. 숲처럼 우거진 길을 지나며 호세는 머리 위를 스치는 나무를 냉큼 피하고는 연이어 차오에게 물었다.


“아까 일족의 수장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나이가 제일 많으신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나이가 많다고 수장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용족의 수명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성장이 끝난 이후 노화가 느리기 때문에, 보통 인간이 쇠약할 나이에도 강인한 모습을 유지한다. 호세는 시험을 위해 종족학을 공부했을 때를 떠올렸다. 호세는 그렇다면 어째서 차오가 수장인지에 대해서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혹시나 실례가 될지 몰라 입을 다물고 있었다. 차오는 호세의 기분을 눈치챈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용족의 수장을 선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부족마다 방식이 다르고, 매우 내부적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제가 거기에서 선발되었지요.”


호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렇게 큰 집에 사는 사람들이 바깥 주변인들에게 함부로 비밀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호세와 차오는 농장을 지나, 연무장을 둘러보았다.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용족들이 서로의 무예를 겨루고, 체력을 연마하고 있었다. 용족 특유의 몸을 울리는 기합소리가 들렸다. 창과 창이 부딪히는 소리에 기합이 더해지자, 호세는 마치 전장에 온 것 같은 섬찟함을 느꼈다.


몸을 부르르 떨며 긴장을 풀어낸 호세는, 순간 아랫배가 아파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오랜만에 먹은 고기가 문제인 모양이었다. 호세는 살살아파오는 배를 문지르며 곤란한 표정으로 차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차오는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의 일족이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중한 모습의 차오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위압감이 있었으므로, 덕분에 호세는 금방이라도 배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호세는 헛숨을 자꾸 삼키다, 결국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아, 연무장 입구에 있습니다.”


차오는 짧게 대답하더니 다시 수련의 풍경에 집중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차오는 무엇인가 잊어버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아차 싶은 얼굴이 되었다.


“화장실이 어떻게 생겼다고는 말을 안 했군.”


이미 호세의 모습은 사라진 뒤였다.


차오를 떠난 호세는 배를 움켜쥐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뛰었다가는 금방이라도 내장이 쏟아질 것 같았으므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재빨리 걸었다. 다행히 입구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얼른 뛰어가 화장실 표시가 되어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호세는 얼어붙고 말았다. 화장실의 입구는 거대한 용족의 얼굴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이기 때문이었다. 호세는 핼쑥한 얼굴로 필사적으로 하체에 힘을 집중시켰다. 최악의 순간은 막을 수 있어서,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이를 악물고 안으로 들어갔다. 얼굴은 흡사 죽으러 가는 사람의 표정이어서, 용족의 입으로 걸어가는 사람에게 매우 잘 어울리기는 했다.


화장실의 내부는 일반적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호세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일을 마치고 나왔다. 방금까지 지옥의 끄트머리에서 허우적대다가,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의 표정은, 고기를 먹을 때의 그것과 닮았다. 호세가 손을 씻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무엇인가 쿡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뒤를 바라보자 창끝이 호세의 코를 겨누고 있었다. 호세는 사색이 되어 창을 쥐고 있는 대상을 바라보았다. 호세의 키보다 한 뼘쯤 작은 용족이었다.


“넌 뭐냐!”


작은 용족의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호세가 그대로 묻고 싶은 말이었다.


“저, 여기서 지내게 된 사람인데요···.”

“거짓말 마라! 연무장은 일족에게만 허락된 것인데, 너처럼 외부인이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어!”

“진, 진짠데···.”


호세는 울상이 되어 양손을 들었다. 창이 코끝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자, 호세는 다시 화장실에 들어오기 전의 표정이 되었다.


“그의 말이 맞다, 코하투.”

“칸!”


코하투라고 불린 꼬마 용족은 손등을 교차시켜 인사를 하고 창을 거뒀다. 빠르게 차렷 자세가 된 코하투를 보며 호세는 구원 기사단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물론 그들이 훨씬 여유롭긴 했지만.


“매우 예외적인 경우긴 하지. 허나 내 허락을 받고 출입한 손님이다. 사과 드리도록 해라.”

“실례했습니다!”


코하투가 넙죽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호세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호세 군은 제가 초청한 손님입니다. 코하투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말을 편하게 하셔도 좋습니다.”

“어, 그러니까, 미안해, 코하투.”


코하투가 고개를 다시 숙이고, 호세가 어쩔 줄 몰라하자, 차오는 호세를 데리고 나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러고 보니 정말로 처음이군요. 인간을 저희 집에 묵게 한 것이 말이죠.”

“예에?”

“제 집에 찾아오신 분들은 대부분 묵을 필요가 없으셨기 때문에···.”


호세는 금방 이해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장을 비롯한 매우 높은 직위의 사람들만이 이 집을 방문했으리라. 그러고 보니, 구원 기사단에 이어 붉은 용족의 저택이라니, 자신에게 찾아온 순간이 꿈이 아닌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허벅지를 살짝 꼬집은 호세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파서 다행이었다.


“뭔가 표시를 할 필요가 있겠군요. 대장에게 여쭤봐야겠습니다.”


호세는 대장이라는 말에 다시 흠칫 놀랐다. 단어를 들은 것만으로도 몸이 반작용처럼 반응했다.


“내일 함께 가죠. 오늘은 이만 숙소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차오의 인자한 웃음을 마주하며, 호세는 내일이 오지 않기를 소망했다.


작가의말

드디어 자유연재하던 분량이 끝났습니다. 앞으로는 매일 저녁 8시에 글을 업데이트 할 생각입니다.


늘 제 글을 봐주시는 분들에게 말로 다 하지 못할 감사함을 느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 완연한 봄이 오고 있습니다. 마음도 따뜻한 하루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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