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18화
똑똑-
“감독님. 저 운열입니다.”
“어, 복덩이 왔냐? 들어와라.”
송오창 감독은 이운열을 흐뭇하게 맞이했다.
불과 2주 전, 박대민, 박승준을 꺾고 개인리그 우승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살인적인 스케쥴을 모두 소화해내면서도 고승률을 유지하는 명실상부한 팀의 에이스이기 때문이다.
이운열은 익숙한 몸짓으로 믹스커피를 한 잔 타고는 소파에 앉았다.
할 얘기가 있다는 뜻이었다.
“말해 봐.”
시원시원한 성격의 송오창 감독답게 바로 본론을 요구했다.
감독의 이러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이운열은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눈에 들어오는 친구가 하나 있어요. 종족은 프로투스고요.”
송오창 감독이 눈을 빛냈다.
어지간히 잘해선 이운열의 눈에 들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얼마나 잘하길래 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와? 리플레이 있냐?”
선수 발굴은 감독의 기본 소양 중 하나.
송오창은 적극적으로 물었다.
“네, 메일로 보내놨어요. 한 번 보세요.”
“아직 소속팀은 없는 거지?”
아무리 잘한다 해도 팀이 있다면 말짱 꽝.
이운열이 직접 이야기를 꺼낼 정도면 실력은 보장 된 거나 마찬가지. 그러니 더욱 소속팀이 있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 송오창이었다.
그런데, 이운열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마 없을 거예요.”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라도 있는 거야?”
“네, 팀 서포트를 받고 있다기엔 실력이 좀 애매했거든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난다 긴다하는 연습생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주지 않는 편인 이운열이다.
그런데, 잘한다면서도 애매하다는 평을 하다니.
송오창은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잘한다는 거야, 못한다는 거야?”
“플레이가 투박해요. 갈무리 된 느낌이 아니라고 할까? 근데, 잘해요.”
대화를 하면 할수록, 송오창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투박한데, 잘한다고?’
“안 되겠다. 지금 바로 리플 돌려보자.”
송오창은 바로 메일에 접속해 리플레이를 다운받았다.
그리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실행.
“너 저글했네? 뭐, 운열이 너 정도면 저글도 프로급이긴 하니까.”
이운열이 부종족을 선택했다는 것이 상대의 실력을 폄하할 이유는 되지 않을 터.
송오창은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무난하네.’
초반 내용을 본 송오창의 생각이었다.
무난하다는 것은 잘하지도 못하지도 못한다는 의미.
빌드는 깔끔했지만 최적의 심시티도 아닐뿐더러, 미세하게 타이밍이 엇나갔다.
이 정도 선수는 연습생 중에도 널렸다.
여느 때 같았으면 여기서 리플레이를 껐겠지만, 참았다.
다른 이도 아닌 이운열이 추천한 녀석이기 때문이었다.
‘운열이 눈에 든 이유가 있겠지.’
게임이 종반에 든 시점.
이운열의 폭탄드랍 페이크에 프로투스의 앞마당이 쓸려나간다.
거기까지 봤는데도 특별한 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송오창은 이운열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기엔 그냥 평범한 아마 고수인거 같은데? 어떤 점이 잘한다는 거야?”
“더 보세요.”
“뭘 더 봐? 게임 다 끝났는데···.”
격차가 벌어진 이상, 버텨봐야 관광만 당하기 마련.
‘버티는 능력이 탁월한 건가? 뭐 그래봐야 별 거 없을 거 같은데.’
참고 보긴 하겠지만, 이 정도 녀석을 추천한 이운열의 저의를 모르겠다.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저 친구한테는 이제부터 시작이더라고요.”
이운열의 말과 동시에 시작 된 프로투스의 한 방 러쉬.
구성이 잘 되긴 했지만, 병력량 자체는 많지 않았다.
기대감을 가지기엔 역부족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빠지지직-!
앞마당 앞에서 벌어진 전투는 송오창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미세한 마이크로 컨트롤이 이운열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고점과 저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탐낼 만한 친구 아니에요? 만약 저 고점까지 경기력을 끌어 올려 줄 수만 있다면···.”
다음 가을의 전설(가을 시즌, 유독 프로투스의 우승이 많은 것을 빗대는 표현)은 저 녀석의 차지가 될 것이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송오창 감독 또한 같은 생각을 했다.
경기를 보는 눈은 현역 프로 못지않다고 자부하는 그이기에 더욱 그랬다.
‘마지막 싸움만 보면 피지컬로는 비빌 선수가 없다. 이 녀석은 꼭 잡아야 해. 커리지(준프로 자격증 획득을 위한 대회)만 통과시키면 바로 2군 등록해도 쓸 만한 녀석이야.’
송오창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코치들 싹 다 감독실로 와. 회의 좀 하자.”
영입 제안이야 선수도 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영입은 감독, 코치, 그리고 프론트의 역할.
제 할 일을 마친 이운열은 씨익- 웃으며 감독실을 빠져 나갔다.
#
‘그 유저가 이운열이었다니···.’
나는 침대에 누워 지난 경기를 떠올리는 중이었다.
확실히 여러모로 압도 된 판이었다.
스킬이 아니었다면 절대 못 이겼을 만큼의 실력 차를 느꼈었으니.
‘그래도 영광이네. 전설한테 1패를 안겨준 거잖아?’
LOL로 따지자면, 전성기 머린, 스매브와 탑라인 전을 해서 이긴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주력픽이 아닌 것이긴 하지만.
그 정도여도, 노력을 한 참 상회하는 성과다.
이대로 차근차근 준비만 한다면 프로게이머가 되는 건 시간문제.
모든 게 잘 풀리는 중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지만.
“휴우.”
깊은 한숨이 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006년이 되면 아버지의 사업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정확한 정황은 모르지만 자금 부족으로 도산하며 거액의 빚을 짊어지게 되고,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신다.
‘돈이 필요한데···.’
회귀한 이상, 돈 벌 방법은 널렸다.
코인을 사도 될 것이고, 주식을 해도 된다.
하지만.
[‘마이 프로게이머’는 투자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바꾸는 일이며, 프로그램의 취지와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어기고 투자할 시 회귀는 무산 됩니다.]
이 망할 녀석이 훼방을 놓으니 그럴 수도 없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버지에게 정보를 흘리는 정도였다.
“주 5일제가 되면 여가 관련 산업이 뜰 거 같죠?”
“SC 주식회사에서 원전을 찾을 거라는 소문이 돌던데···.”
“줄기세포 연구라는 게 있는데, 5월 즈음 되면 성과를 보인다고 하던데요?”
처음엔 엉뚱한 소리처럼 여기던 아버지도 내 말에 관련 된 정보들을 찾아보시더니 마냥 허투루 듣지는 않는 것 같다.
제발 좋은 성과를 보이셨으면 좋겠는데.
일단, 그건 그거고 나도 나름대로 수익을 만들 필요가 있다.
‘후, 볼마우스가 왠 말이야.’
광마우스가 출시 된 이후인데도, 볼마우스 똥이나 빼야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 키보드, 마우스 등 구매 할 것이 수두룩하고, 값도 만만찮다.
용돈으론 턱도 없이 부족한데, 집에 손을 벌리고 싶지도 않다.
등골을 빼먹은 기억은 전생으로도 충분하니까.
‘흐음, 알바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 말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 시대 시급은 대략 3.000원가량.
학교를 마친 후 밤늦게까지 해도 푼돈이다.
그럼 게임도 못하고 수입도 어설퍼지는 거다.
‘할 게 마뜩찮네. 흐음, 진짜 뭐 없나?’
학생이 알바 말고 돈 벌 거리가 무엇이 있겠는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게 당연하다.
‘에라이, 나중에 찾고 스타나 보자!’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는, 검색 창에 스타를 쳤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것이 눈에 들어온다.
[OOPC방배 스타리그! 우승 상금 - 30만원 / 참가비 1,000원]
‘응? 겜방 대회가 한 둘이 아니잖아? 이거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저 상금들만 쓸어 담아도 어중간한 직장인 월급의 몇 배를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좋은 소식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히든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이런 걸 두고 임도 보고 뽕도 딴다고 하던가?
#
“아버지, 오셨어요?”
김철규는 간만에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를 맞이하는 중이었다.
멀쑥한 정장차림을 한 김철규의 아버지, 김태진은 수수하게 미소 지으며 김철규를 바라봤다.
“그래. 잘 지내고 있었냐.”
“예,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잘 지냈어요. 아직 많이 바쁘신가 봐요.”
“회사원이 다 그렇지 뭐. 죽겠다.”
김철규는 김태진의 엄살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
후계 자리는 포기했다지만, 아버지 또한 엄연한 JC그룹 회장의 아들.
그런 사람이 회사원이 어떻다는 둥, 힘들다는 둥의 소릴 늘어놨다는 걸 알면, 이 나라의 말단 사원들이 다 들고 일어날 지도 모른다.
“이 놈이 애비가 힘들다는데 웃기 있냐?”
“아버지가 힘들 게 뭐 있어요. 할아버지가 또 숙제 내주셨어요?”
“어.”
“뭔데요?”
김철규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었다.
딱딱한 학업과는 다르게 할아버지가 내주는 숙제는 현실적인 문제라, 흥미 있는 소재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네가 알아서 뭐 하려고.”
“혹시 알아요? 도움이라도 될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저리 신을 내며 궁금해 하니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김태진은 자신보다 한참이나 큰 김철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문화산업에 투자하자 신다. 말이 문화산업이지 따지고 보면 얼마나 광범위 한데···. 투자 효과도 예측하기 어렵고. 이거 고민하느라 머리 다 빠지게 생겼다. 허허.”
아버지의 말을 들은 김철규가 눈을 빛냈다.
‘문화 산업?’
바로 떠오르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 작가의말
현실의 인물, 회사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이니까요!
이 점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사랑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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