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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태] 의 서재입니다.

퀸(Queen) : 어느 소녀 프로게이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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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한승태]
작품등록일 :
2016.04.07 23:09
최근연재일 :
2018.02.06 22:14
연재수 :
4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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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94
글자수 :
2,597,240

작성
16.04.08 00:02
조회
5,458
추천
80
글자
11쪽

소녀, 회귀하다

DUMMY

“부르릉! 빠-앙!”


차가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경적을 울리는 소리가 창문 바깥에서 들려 승아는 자리에서 깼다. 분홍색 프릴 커텐이 그나마 그 소리를 줄여주고 있었다.


지난 밤은 너무도 잘 잤었다.

아무 생각없이 편안한 잠을 잔게 얼마만인지.

승아는 언제나처럼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침대를 내려갔다.

아니 내려가려고 했다.


“어?”


하지만 승아가 자고 일어난 곳은 침대가 아니라 바닥에 깔린 요와 이불이었다.

곰팡이 쉰내가 나는 것을 억지로 페브리즈를 뿌려서 없앤 이불이 아니라 핑크색 하트모양이 이리저리 프린팅된 애들 것 같은 이불. 그런 이불이 일단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항상 곰팡이 핀 방에서 일어날 때 목에 걸리는 가래가 없었다. 항상 쿨럭거리면서 곰팡이 포자를 흡입한 것 같은 느낌으로 일어났는데...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느낌만이 아니었다. 몸이 깔끔해진.. 뭔가 온몸 혈관을 산소같은 기운이 싹 훑고 지나간 느낌이 들었다.

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라진 환경을 확인해야 했다.

일어나니 뭐가 이상한지 알 수 있었다. 보는 시점이 낮아졌다. 키가 작아진것이다.

그리고 손도 발도 가슴도 엉덩이도 모두모두 작아졌다.


‘보통은 이럴 경우에 우와! 헉! 이렇게 표현하던가?’


승아는 매우 놀랐지만 침착했다. 평소 생각이 많기도 했지만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놀랄때 놀란다고, 화날 때 화낸다고 바뀌는 것이 없을 때에는 침착하게 한번 더 생각하는게 낫다는 것을 많은 경험으로 배운 승아였다.

승아는 지금 일어난 일을 찬찬히 생각해 보려 했다.

이게 꿈이 아니라는 것은 코로 흡입하는 공기로 이미 확인했다. 공기의 감촉과 이어지는 정신은 굳이 얼굴을 꼬집는 등의 고전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도 이것이 현실임을 승아에게 느끼게 해 주었다.

승아는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컴퓨터가 있을법한 자리엔 컴퓨터가 없이 책상만이 있었다. 그리고 하얀 곰인형과 몇몇 인형들이 방 한쪽 구석에 작은 상위에 진열되어 있었다. 살던집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니 그보다 근본적으로 다른집이었다. 하지만 익숙했다. 초등학교 시절 사용하던 그 방.

그방이었다.

익숙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난생처음 내 방이 생긴 이 때 너무나도 좋았기에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작은 방인것은 똑같지만 침대 밑판과 벽지와 장판이 만나는 곳 부근에 녹색,검정 곰팡이가 가득해서 닦아도 닦아도 없어지지 않던 그 곰팡이냄새가 가득한 방이 아니었다. 벽은 하얗지만 귀여운 곰들이 오선지 위에서 나팔을 부는 귀여운 그림들로 프린팅되어 있었고, 핑크빛 하트가 프린팅된 이불,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곰인형 토미. 전부 기억속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 이 방은 분명 내가 초등학교때 쓰던 방이야. 5학년이었나? 그때 이사온 집이었어.

그런데 왜 난 여기 있는거지?‘


작은 소녀가 된 승아는 책상쪽으로 다가갔다. 서랍을 열자 항상 들여다보던 흰색 손거울이 나타났다. 거울을 집어들기 전에 만화라면 심호흡을 하느니 뭐니 그랬겠지만 승아는 바로 집어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자신의 얼굴을.


....


‘........!!!’


주변을 보았을때, 손과 발을 보았을때, 예상은 했다. 내가 어린시절의 방에 있는 ‘나’ 라는것을. 하지만 무슨 만화도 아니고 어린 시절로 돌아오다니.. 놀랐다.

손거울안에서 승아의 얼굴이 놀람을 표현하는 듯 미미하게 눈썹이 올라가고 입끝이 경직되게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승아는 거울을 든 손을 잠시 내려놓았다가, 다시 눈높이로 들어 거울안을 쳐다보았다. 역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29살의 윤승아가 아닌, 12살의 윤승아가. 그리고 예뻤지만 세상 풍파에 찌든 얼굴과 좌절이 깃든 얼굴이 아닌, 귀엽고 아직 세상을 그리지 않은 순수한 얼굴이 안에 있었다.


승아의 목에서 공기덩어리와도 같은 기운이 입안까지 올라왔다. 입술이 떨리고 이가 아래위로 살짜기 부딛혔다. 그리고.. 눈가가 흔들렸다.


[주륵-]

눈가가 계속 떨리고 거울을 보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얼굴 표정이 그대로인데, 눈에 뭔가 뿌옇게 되고 잘 보이지 않았다. 거울이..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물이었다.

그것은 눈물이었다.


승아는 울고 말았다. 소리없이.

강한 마음을 가진 자신이라 생각했는데, 어디서 이런 눈물이 흐르는지 몰랐다.

그렇게 힘든 일들이 있어도 울지 않았던 윤승아 자신에게 이렇게 많은 눈물이 있는지 자신도 몰랐다.


“흐윽.. 크읏.... 흐윽...”


참으려고 해도 계속 눈물이 흘러나왔다.

승아는 기뻤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왜 내가 어린시절의 내가 되어 여기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그 살아있는 힘든 현실에서 벗어난 것이 중요했다.


“크읏.. 흐윽.. 흑...”


기쁜데.. 왜 눈물이 나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아이답지않게 앙다문 입마저도 목에서 새어나오는 흐느낌을 막을수는 없었다. 승아는.. 자리에서 주저앉아 계속 울었다.


그리고 그때. 승아의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교복을 입은 한 남자가 문을 박차고 소리지르며 들어왔다.

고등학생쯤 되었을까. 얼굴에 여드름이 나 있고 평범한 얼굴이었다.


“야 윤승아! 너 내가 내 다마고치 건들지 말라고 했지! 죽었잖아 아!”

“흑...흑....”

“어? 야 우냐? 야.. 그 울어도.. 야야.. ”

“흐윽...흐으윽...”

“야야.. 알았어.. 아 .. 새로 키우면되지.. 울지마 .. 야. 울지말라니까!”


승아가 우는것은 그래서 우는것이 아니었는데, 오빠는 내게 와서 화를 내다가 계속 우는 날 보고는 오히려 날 달래기 시작했다.


윤승태.

승아의 오빠 이름이었다. 승태는 승아와는 6살차이가 나는 고2의 학생이었다. 세살때부터 한글을 다 떼고, 초등학교에서는 반장을 도맡아 하며 졸업생 답사를 하고 중학교에서는 신입생 수석과 입학생 선서대표를 거쳐 당연히 반장. 공부는 중학교까지 내내 공부를 잘해서 전교 1~3등만을 도맡아 한 승태. 그런 오빠때문에 승아는 항상 승태에게 비교당하는 어린시절을 보냈었다.


“승아야. 네 오빠 봐라. 또 1등했다. 넌 네 오빠 반만이라도 따라가면돼.”

“승아엄마, 승태를 어떻게 키웠기에 저렇게 공부를 잘해요.”


그렇게 부모님과 사회의 기대대로 공부천재로 잘나가던 승태가 약간 엇나가기 시작한것은 고1때 부터였다.

공부를 잘하긴 했지만 당시 게임을 좋아하던것은 남매가 다 같았기에, 게임을 시작하게 된 것이 성적 하락의 시작이었다. 물론 게임이 모든 사유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승태가 공부에 쏟던 시간을 게임에 쏟게 된 것은 중3때부터가 명확했다. 그놈의 오락실...


덕분에 민족사관고와 서울과학고 입시를 동시에 낙방한 승태는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그전에 공부한것으로 고1때는 전교 등수를 3등안에서 유지하였지만, 고2때부터 수학에 순수기하학이 아닌 해석기하학이 나오면서 성적이 하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받던 자체적인 스트레스와 부모님, 학원, 선생님 등으로부터의 압박을 아직 어린 승아에게도 가끔 풀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서로 그리 나쁜사이도 아니었던것이 나이차가 좀 나기에 일반적인 남매처럼 동생이 오빠한테 야야 거리면서 반말할 정도도 되지 않았고, 승태도 승아를 동생으로서 여러방면으로 아껴주어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승태는 화를 내고도 승아가 울자 본래 내려던 화는 금새 잊고 동생을 달래기에 바빴다.


“야야......”



[벌컥]


그리고 방문이 열렸다.

게임이었으면 사람뒤에 경고문이 떴으리라.


[Warnning!! 엄마 등장!! 엄마 등장!!]


승아와 승태의 엄마가 등장했다.


승태는 당황했다. 평소 잘 울지않던 초딩인 동생이 울고 있는데, 나는 같은 방안에 있다. 그리고 그걸 엄마가 보았다. 그렇다는것은? ..이건 뭔가 좋지않다는 느낌이 승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와 반대로 승아는 좋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고 계시다니...

이게 꿈이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생생한꿈이라면 너무도 좋았다.

우는 와중에도 어머니를 소리내어 불러보았다.


“흐윽...어...어머니...”

“우리 승아.. 우니?...야. 윤승태!! 너 승아한테 뭐라그랬길래 잘 울지도 않는애가 울면서 이래?”

“엄마 그게.. 난 아무것도....”

“아니 아무것도 안했는데 엄마라고 안하고 어머니 그래? 너 동생한테 뭐 시킨거야?”

“엄마 난 아무것도 안했다니까. 아니 그냥 다마고치 얘가 건드린거같아서...”

“..........”

“.......”


잠시 방안에 정적이 흘렀다.

승태는 말을 실수한것을 느꼈다. 게임이라면 질색을 하는 엄마앞에서 다마고치 이야기를 꺼냈으니 이제 금방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마고치가 어찌나 유행이라 뉴스에서도 때려대는지 게임을 잘 모르는 엄마도 다마고치가 게임기란건 알았다.


“너 이놈시키... 엄마가 하란 공부 안하고 게임이나 하라고 너 밥멕인줄 알어! 그놈의 다마고치! 어딨어! 여기야?! 내가 그걸 오늘 부셔버리고 말테니까!!”

“어..엄마..”


승태는 다마고치를 뺏기지 않기위해 아마도 다마고치가 든 것으로 추측되는 왼쪽 교복바지주머니에서 손을 전혀 빼지 않았고, 그 꾹 잡은 승태의 손을 엄마는 연신 손으로 때려대었다.


“너 이놈시키... 맨날 오락실이나 가고.. 옆집 민철이 엄마가 맨날 요즘 승태 뭐하냐고 물어보는데 너보다 못하던애가 앞질렀는데 넌 오락할 시간이 나?! 이놈아.”

“아! 엄마! 공부를 잘할수도 못할수도 있는거지 왜 그래요! 사실 전에 나오던 성적이 정상이었나.. 지금게 정상이지... 아, 글고 이사왔으면 장남을 방줘야 하는거 아니에요? 왜 저런 초딩을 방주고 난 안줘요? 나 방만줬어봐 내가 서울대 간다 가.”

“니가 공부만 잘했어봐 방을 주지. 그럼 내가 방 백개라도 준다.”

“엄마 백개 정말 줄수 있어요? 못주면서..”

“뭐야? 이놈이! 회초리 어딨어, 회초리!!”

“어어.. 엄마 나 나갔다 올게요!”

“너 또 오락실 갈려 그러지!! 빨리 안와!!”


승태는 기회를 잡은듯 얼른 밖으로 뛰어 피신했고, 그런 승태를 잡으려 엄마도 뛰어 나갔다.


이런 촌극을 보는 승아는 확신했다.

내 12살때랑 똑같아.. 이건 내 과거야..

그리고 현실이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게 내 앞에 닥친 현실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겠어. 이 삶을.. 편안하고 행복한 가족을..’



1999년 4월의 어느 시끄러운 날.

29살 윤승아는 12살의 초딩으로 돌아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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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16.10.30 21:27
    No. 1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2

  • 작성자
    Lv.55 워나이트
    작성일
    16.12.16 10:14
    No. 2

    그냥 게이머로 검색했는데 뭔가 보물을 찾은것 같네

    찬성: 3 | 반대: 1

  • 작성자
    Lv.43
    작성일
    17.02.06 01:41
    No. 3
  • 작성자
    Personacon A가B
    작성일
    18.03.14 10:56
    No. 4

    이야 아무리 퇴물 여제라 해도 10년간 프로한 짬밥과 과거랑 비교도 안되는 빌드들과 최적화를 경험했으니 2000년대 초반은 주인공이 점령하겠네요ㄷㄷ 과거 레전드라던 임요환 강민 홍진호 시절 경기보면 지금 공방 아마추어들보다 수준이 낮으니..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A가B
    작성일
    18.03.14 10:58
    No. 5

    ㄹㅇ 미네랄 1,2천 남는건 예사고 물량도 제대로 못뽑던게 2000년대 초인데 그 당시로 10년대 2군 연습생이 가면 이영호+이제동급 됨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af******..
    작성일
    19.08.14 19:11
    No. 6

    프로게이머 검색해서 들어왔는데 앞으로 쭉쭉읽어야겠네요 ㅎㅎ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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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피씨방(3) +5 16.04.10 4,485 78 9쪽
7 피씨방(2) +2 16.04.10 4,474 79 13쪽
6 피씨방(1) +3 16.04.09 4,622 75 9쪽
5 어린 시절 +10 16.04.09 4,956 83 13쪽
» 소녀, 회귀하다 +6 16.04.08 5,459 80 11쪽
3 그 뒤.... +6 16.04.07 5,239 61 11쪽
2 여제 윤승아(2) +4 16.04.07 6,166 73 9쪽
1 여제 윤승아(1) +8 16.04.07 10,962 6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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